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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콕과의 대화

 

[밑줄]

 

+816

공포를 영화로 표현하는 데 탁월한 이 사람은 정작 그 자신은 아주 겁이 많은 사람이어서 나는 그의 이러한 특질이 그의 성공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경력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배우, 제작자, 기술자 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필요를 느꼈다. 그들의 사소한 실수나 변덕이 작품의 통일성을 해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들 모두는 감독에게 위험물로 여겨진다. 배우들이 전혀 질문할 필요가 없는 감독이 되는 것, 감독 자신이 제작자가 되는 것, 그리고 기술자보다 기술 문제에 대해 더 많이 아는 것보다 스스로를 더 잘 방어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겠는가?

 

+817

감독에게 있어서 가장 큰 위험은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더 이상 영화 전체를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실패의 가장 흔한 원인이다. 3초에서 10초 정도 되는 영화의 컷 하나하나가 관객에게 주어지는 정보이다. 이 정보들은 너무 모호하거나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흔한데, 그 이유는 애초에 감독의 의도가 흐릿했거나 아니면 감독이 자신의 의도를 명확히 전달할 능력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명확성만이 중요한 것인지를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그것이 영화를 만드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818

흔히 히치콕에게 퍼부어지는 비난 중의 하나는 그가 명확성을 강조하다 보니 단순화가 불가피해져 그의 영화적 지평이 거의 어린애 같은 아이디어에 머무른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사실과 전혀 다른 것이다. 오히려 이와 반대로 인물의 생각을 대사에 의존하지 않고 영상으로 담아 전달하는 그의 고유한 능력 때문에 내 판단으로 그는 리얼리즘적 감독이다.

 

+819

내가 한 리셉션에서 관찰자로서 Y씨가 최근 아내와 스코틀랜드로 휴가를 다녀온 것에 대해 세 사람과 얘기하는 것을 지켜 보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Y씨의 얼굴을 유심히 지켜 보면 그가 X부인의 다리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나는 X부인에게로 다가가는데 그녀는 학교 다니는 자녀의 문제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나는 그녀가 Z양을 계속 지켜 보면서 Z양의 우아한 외모를 꼼꼼히 살펴보고 있는 것을 눈치챈다. 확실히 이 장면의 실체는 아주 습관적인 그들의 대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생각하는 것에 있다. 그들을 관찰함으로써 나는 Y씨가 육체적으로 X부인에게 매력을 느끼고 있으며, X부인은 Z양을 질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할리우드에서 치네치타에 이르는 세계 영화계를 통틀어 방금 내가 묘사했던 장면이 보여 주는 인간적 진실을 히치콕보다 더 충실하게 포착해 낼 수 있는 영화 감독은 없다.

 

+820

트뤼포 : 나는 당신이 주인공이 살인광인 것으로 밝혀지는 쪽을 더 좋아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히치콕 : 꼭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서 나는 그가 밤중에 사라져 버리는 것을 좋아했을 겁니다. 그래서 결코 진상을 모르도록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공을 대스타가 연기하는 경우에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는 결백하다"라고 대문자로 분명하게 써 넣어야 하는 겁니다.

 

+821

트뤼포 : 파리의 카바레 장면은 아주 좋았습니다.

히치콕 : 그 장면에서 사소한 실험을 하나 했습니다. 한 여자가 어떤 청년을 유혹하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녀는 나이가 제법 들었지만 아주 우아합니다. 청년은 새벽녘이 될 때까지 그녀가 매우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가 창문을 열자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며 그녀의 얼굴을 비춰 줍니다. 그 순간 그녀는 흉해 보입니다. 열린 창 밖으로는 사람들이 관을 메고 지나가는 것이 보입니다.

 

+822

히치콕 : 이 영화에는 재미있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 존이 로리타에게 청혼하는 장면입니다. 그녀는 즉시 대답을 하지 않고 "자정쯤 전화를 걸겠어요"라고 말합니다. 그 다음 자정을 가리키는 작은 시계 장면이 이어집니다. 그것은 책을 읽고 있는 한 전화 교환원의 손목 시계입니다. 교환대에 작은 불이 들어옵니다. 그녀는 전화를 연결해 주고 다시 책을 집으려다가 자신도 모르게 이어폰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그런 뒤 그녀는 책을 내려놓는데, 전화 통화 내용에 매혹당한 것임이 확실합니다. 말하자면 나는 두 남녀 중 한 사람도 보여 주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통화를 듣는 전화 교환원의 표정과 행동만을 보여 주었습니다.

 

+823

히치콕 : 내가 보기에 가장 멋있던 것은 술꾼이 배의 복도를 비틀거리며 가는데 배가 흔들리지 않을 때는 술꾼이 이러저리 흔들리지만, 배가 정신 없이 동요해서 모든 사람들이 균형을 잡으려고 할 때는 술꾼이 완전히 똑바로 걷는 장면입니다.

 

+824

히치콕 : 요즘 만드는 많은 영화 중에는 시네마cinema가 거의 없습니다. 그 영화들은 거의 내가 "대화하는 사람들의 사진첩"이라고 부르는 것들입니다.

 

+825

시나리오를 쓸 때 시각적 요소와 대사를 명확히 구분하고, 가능하다면 대사보다는 시각적인 것으로 표현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연기를 어떤 방식으로 연출하든간에 감독의 주요 관심은 관객으로부터 최대의 주의를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직사각형의 스크린은 감정emotion으로 가득 채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826

히치콕 나는 그 장면에서 일종의 무성 영화에 대한 작별 인사라고나 할 재미있는 시도를 했습니다. 무성영화에서 악당은 일반적으로 콧수염을 기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악당은 말끔히 면도를 한 사나이지요. 그러나 그의 윗입술 위에 스튜디오의 철제 샹들리에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매우 사납게 보이는 콧수염을 연상시키지요.

 

+827

히치콕 : 할리우드 감독들이 문학의 걸작들을 왜곡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습니다. 나는 그런 일에 끼여들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일을 하는 방식은 스토리를 한 번만 읽고 그 기본 아이디어가 맘에 들면 그 책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영화를 만드는 겁니다. 지금 나는 다프네 뒤 모리에Daphne du Maurier의 <새the Birds>의 스토리를 당신에게 얘기해 줄 수 없습니다. 그 책을 한 번만, 그것도 아주 빨리 읽어 치웠습니다. 한 작가가 훌륭한 소설 한 편을 쓰려면 3년 내지 4년이 걸립니다. 그 소설은 그의 삶의 전부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그것을 완전히 물려받습니다. 스태프와 기술자들이 어영부영하며 그 작품을 만지작거리고, 나중에는 아카데미상 후보작으로 지명되기도 합니다. 그러는 동안 작가는 완전히 잊혀집니다. 나는 그런 것을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습니다.

 

+828

히치콕 : 시퀀스는 결코 정지된 채 있을 수 없습니다. 시퀀스는 마치 산악 지대를 운행하는 기차의 톱니바퀴가 한치 한치 기차를 언덕 위로 밀어 올리듯 전진하는 내용을 담아야 합니다. 영화는 연극이나 소설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영화는 단편 소설과 좀더 가깝습니다. 단편 소설은 통상 하나의 주제를 끌어가는데, 그것은 이야기가 극적 전개상 최고점에 도달했을 때 절정에 도달합니다. 알다시피 단편 소설은 도중에 수그러지는 법이 거의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영화와 비슷합니다. 영화가 무엇보다도 시각적으로 빼어나게 표현돼야 하는 극적인 상황을 만들고 플롯을 끊임없이 전개시켜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특성 때문입니다. 이제 서스펜스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스펜스는 관객의 주의를 계속해서 잡아 두는 가장 강력한 수단입니다. 그것은 상황이 야기하는 서스펜스이거나 관객들이 "다음엔 무슨 일이 일어날까?"라고 묻게 만드는 서스펜스일 수 있습니다.

 

+829

트뤼포 : '서스펜스'와 '놀라움' 간의 차이에 대한 당신의 정의를 듣고 싶습니다.

히치콕 : '서스펜스'와 '놀라움' 간에는 명확한 차이가 있는데, 많은 영화에서 아직도 이 둘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무슨 의미인지 설명을 하죠. 지금 우리는 악의 없는 사소한 잡담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앉아 있는 식탁 밑에 폭탄이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다가 갑자기 '쾅!'하고 폭탄이 터집니다 관객들은 놀라게 됩니다. 그러나 이 경우 놀라기 이전까지도 관객들에게 특별한 중요성이 없는 일상적인 장면만 보여 주었습니다. 자, 이제 서스펜스를 유발하는 상황을 살펴봅시다. 폭탄이 식탁 밑에 있는데 관객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무정부주의자들이 그 곳에 폭탄을 설치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관객들은 그 폭탄이 1시 정각에 터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마침 벽에는 시계가 걸려 있습니다. 관객들은 시계가 1시 15분 전을 가리키는 것을 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똑같은 무해 무익한 대화에도 끌리게 마련입니다. 관객들이 그 장면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관객들은 화면 속의 인물들에게 "그런 사소한 얘기나 할 때가 아니야. 식탁 밑에 폭탄이 곧 터질 거란 말이야!"라고 경고하고 싶어 안달하게 됩니다. 앞의 경우 관객들은 폭발 순간에 15초간의 '놀라움'을 맛보게 됩니다. 나중 경우엔 15분간의 '서스펜스'를 맛볼 수 있습니다. 결론은 가능하면 관객들에게 정보를 알려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놀라움을 비틀어 사용할 때, 즉 의의의 결말이 그 자체로 스토리의 정점을 이룰 때는 예외가 되겠지요.

 

+830

히치콕 : 텔레비전이 초창기였을 때 경쟁 관계에 있던 두 네트워크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나는군요. 한 방송사가 자기들의 추리 프로그램을 치켜세우며 광고했습니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이 방송되기 직전 상대 방송사의 아나운서가 "다른 방송사의 오늘 프로그램에서 범인은 집사라는 사실을 알려 드립니다."라고 방송했답니다.

 

+831

히치콕 : 허버트 마셜이 라디오를 켜 놓고 면도하면서 음악을 듣는 장면이 있는데...

트뤼포 :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은 오페라 <트리스탄Tristan>의 서곡이었습니다. 그 장면은 가장 멋진 장면 중 하나였습니다.

히치콕 : 그런데 나는 스튜디오의 목욕탕 세트 뒤에 30인조 오케스트라를 배치했습니다. 당시는 사운드를 나중에 집어넣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음악은 동시에 바로 촬영 현장에서 녹음해야만 했습니다.

 

+832

히치콕 : 심벌즈를 저격 신호로 쓴다는 아이디어는 <펀치Punch> 같은 풍자 잡지에 실린 만화에서 힌트를 얻은 것입니다. 만화에는 한 남자가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로 가서 양치질을 하고, 면도를 하고, 샤워를 한 다음 옷을 챙겨 입고 아침을 먹는 그림이 나옵니다. 그런 다음 모자를 쓰고 외투를 입은 뒤, 작은 가죽 악기 케이스를 들고 집을 나섭니다. 거리로 나와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 앨버트 홀 앞에서 내립니다. 그는 연주자 통로로 들어가 모자와 외투를 벗어 놓은 다음, 케이스를 열고 작은 피리를 꺼냅니다. 그리고는 다른 연주자들과 함께 슬슬 무대로 올라가 자기 자리에 앉습니다. 드디어 지휘자가 들어서서 신호를 하자 교향곡이 연주되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연주자는 자리에 앉은 채 악보를 넘기면서 자기 차례를 기다립니다. 마침내 지휘자가 그를 향해 지휘봉을 흔들자, 그는 단 한 음을 '뿌'하고 붑니다. 연주가 모두 끝나자 그는 피리를 케이스에 다시 집어 넣고 발소리를 내지 않은 채 걸어 나와 모자를 쓰고 외투를 입고 나섭니다. 이제 거리는 어두워졌습니다. 그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저녁 식사가 차려져 있습니다. 그는 식사를 한 뒤 자기 방으로 올라가서 옷을 벗고 화장실로 가 양치질을 한 뒤 잠옷을 입고 침대에 누운 뒤 불을 끕니다.

트뤼포 : 그건 멋진 아이디어여서 만화가들이 여러 잡지에 비슷비슷한 만화를 싣곤 했지요.

히치콕 : 그랬을 겁니다. 그들은 이 연주자를 '단음 연주자'라고 부르는데, 단 하나의 음을 연주하기 위해 기다리는 이 불쌍한 연주자 이야기에서 나는 심벌즈로 서스펜스 효과를 낸다는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습니다.

 

+833

트뤼포 : 명확히 하는 것만큼이나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감독은 단순화에 대한 감각을 가져야 합니다.

히치콕 :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그것은 필수적입니다. 감독 자신이 느낄 수 없다면, 관객에게 정서를 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시간이란 요소를 통제해야 한다고 할 때 그것을 단순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통제력을 잃은 감독들은 추상적인 것에 대해 신경을 쓰는 데다 모호한 선입견을 갖기 때문에 특정한 문제에 주의를 집중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지나치게 자기 의식적이어서 당황하는 무능한 연설가와 마찬가지입니다.

 

+834

트뤼포 : <오명Notorious>에서도 비슷한 숏을 이용했죠. 카메라를 아주 높이 샹들리에 위에 설치하고는 먼저 리셉션 홀 전체 장면을 찍은 뒤 서서히 내려오면서 최종적으로 잉그리드 버그먼 Ingrid Bergman의 손에 쥐어져 있던 열쇠를 프레임에 잡아 냈었죠.

히치콕 : 거기서도 우리는 대사를 카메라의 언어로 대체한 겁니다. <오명>에서 카메라의 쭉 훑어 가는 움직임은 하나의 진술입니다. 그것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 집에서는 지금 큰 규모의 리셉션이 열리고 있다. 그러나 여기엔 아무도 알 수 없는 드라마가 있고 그 드라마의 핵심은 바로 이 작은 물건, 즉 이 열쇠에 있다"고 말하는 겁니다.

 

+835

히치콕 : 요즘도 신무의 일요판에는 외국 영화들이 지면의 상단을 차지하고, 할리우드 영화는 아래에 작게 취급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영국 지식인층이 전통적으로 여름 휴가를 대륙에서 보내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들은 유럽으로 관광을 가서는 나폴리의 빈민가에 들어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어린이들의 사진을 찍습니다. 그들은 집들 사이로 널려 있는 세탁물과 자갈길 위를 터벅터벅 걷고 있는 당나귀들을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 관경들은 모두 생생하고 영화 같은 것입니다!

 

+836

트뤼포 : 그 유명한 암호를 알고 있는 반 미어 씨를 얘기하는 거죠?

히치콕 : 그 암호가 바로 우리의 '맥거핀MacGuffin'이었습니다. 맥거핀이 무얼 의미하는지 좀 얘기해야겠습니다.

트뤼포 : 그건 단순히 플롯을 끌어가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닙니까?

히치콕 : 그렇습니다. 그건 하나의 영화적인 장치로서 속임수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재미있는 유래가 있습니다. 영국의 작가 키플링이 쓴 대부분의 소설은 인도나 아프가니스탄 국경에서 원주민들과 싸우는 영국 군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것입니다. 특히 요새로부터 비밀 계획서를 빼내 오는 과정이 이야기의 포인트가 됩니다. 여기서 비밀 문서를 빼내 오는 것을 맥거핀이라고 불렀던 겁니다. 즉 비밀 계획서나 문서, 암호 등 그 내용에 상관 없이 이런 종류를 빼내 오는 것을 총칭해서 부르는 용어인 셈입니다. 따라서 맥거핀의 내용이나 진상을 해명해 보겠다는 것은 초점을 벗어난 잘못된 겁니다. 따라서 나는 영화에서 그 비밀 계획서나 문서, 암호 등이 등장 인물들에게 대단히 귀중한 것으로 보이도록 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맥거핀이라는 이름이 어디에서 유래한 건지 궁금할 겁니다. 아마도 스코틀랜드인의 이름에서 빌려 온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두 남자가 기차를 타고 가면서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한 사람이 '저 선반 위에 있는 짐은 뭡니까?"라고 묻자 다른 남자가 "아, 저거요? 맥거핀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처음 남자가 다시 "맥거핀이 뭡니까?"라고 하니까, 그 남자가 "그건 스코틀랜드의 고지대에서 사자를 잡는 데 사용하는 겁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처음 얘기를 꺼냈던 남자가 다시 "그런데 스코틀랜드 고지대엔 사자가 없잖습니까?"라고 하자 상대방은 "아, 그래요? 그러면 맥거핀이 아닙니다"라고 했다는 겁니다. 이 이야기는 결국 맥거핀이라는 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837

트퓌포 : 그렇습니다. 구체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거죠. 어쨌든 이런 것들을 볼 때 당신은 자신의 의도를 항상 완벽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또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은 용의 주도하게 준비한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신 영화는 구체적인 것이 아무것도 없는 맥거핀 위에 구축되기 때문에 흔히 비평가들로부터 "히치콕 영화는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는다"라는 비난을 듣습니다. 여기에 대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은 "영화 작가는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 줄 뿐이다"라는 것입니다.

 

+838

히치콕 : 그런데 우유잔이 나오는 장면은 어땠습니까?

트뤼포 : 캐리 그랜트가 2층으로 우유잔을 가지고 올라가는 장면 말이죠? 네, 대단히 좋았습니다.

히치콕 : 우유에다 조명을 비췄습니다.

트뤼포 : 우유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췄다는 말입니까?

히치콕 : 아니오. 잔 안에다 작은 전구를 넣어 두었습니다. 그래야만 우유의 하얀 색이 강렬하게 빛나게 되니까요. 캐리 그랜트가 2층으로 걸어 올라갈 때 관객들의 시선이 그 잔에 집중될 수밖에 없도록 했던 겁니다.

트뤼포 : 아, 그런 방법을 썼군요. 그건 대단히 멋진 장면이었습니다.

 

+839

히치콕 : 클로드 레인스와 잉그리드 버그먼은 멋진 한 쌍입니다. 그러나 키 차이가 너무 나기 때문에 동시에 두 사람을 클로즈업으로 잡을 때는 클로드 레인스를 상자 위에 올라가도록 해야 했습니다. 한번은 두 사람이 멀리서 걸어오는 것을 한 컷으로 찍어야 했는데, 중간에 커트 없이 찍기 때문에 상자를 따로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레인스가 카메라 쪽으로 가까이 다가옴에 따라 높이가 점점 높아지는 특수한 계단을 주문해 만든 적이 있었습니다.

트뤼포 : 촬영에 관련되 그런 이야기들은 아주 재미있습니다. 특히 좌우가 넓고 위아래가 좁은 시네마스코프로 찍을 때가 그렇스니다. 위아래 공간이 좁기 때문에 샹들리에나 벽에 걸린 유화, 장식품들은 끌어내려야 하고, 반대로 침대나 식탁, 의자 등은 위로 끌어올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연히 세트에 들른 사람이 이런 광경을 보게 되면 대단히 재미있어 할 겁니다. 영화를 찍는 장면을 영화로 만든다면 일급 코미디가 될 거라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840

히치콕 : 감독이라면 다음과 같은 점에 대해서 의문의 여지가 없어야 할 겁니다. 즉 작가나 주제, 또는 그 무엇이든지 뭔가 의심스럽거나 모호하다고 느낄 때마다 돌아가서 다시 해야 합니다. 어찌할 바를 모를 때는 시도해서 확실하게 밝혀진 것을 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트뤼포 : "시도해서 밝혀진 것"으로 "돌아가서 다시 해야 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뭔가 의심스러운 것이 있을 때는 이미 시험을 거친 것에 의지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겁니까?

히치콕 : 당신이 전적으로 확신하고 있는 방법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글자 그대로 당신의 마음에 혼란이나 의심이 있을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당신의 위치를 아는 것입니다. 어느 안내자나 탐험가라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길을 잃었거나 길을 잘못 든 것을 깨달으면, 숲을 가로지르는 최단 코스를 택하지도 않고 올바른 방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신들의 본능에 의지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출발점이나 잘못된 코스를 택하게 된 지점을 발견할 때까지 모든 길을 조심스레 되짚어 갑니다.

 

+841

히치콕 : 당신도 알다시피 그녀는 걸작에만 출연하고 싶어했습니다. 도대체 누가 영화가 걸작이 될지 졸작이 될지 미리 알 수 있겠습니까? 그녀는 금방 마친 영화에 만족했을 때는 '이 작품 이후 무엇을 더 할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하곤 했지요. 그녀는 <잔 다르크Joan of Arc>를 제외하고는 위대한 작품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주 어리석은 생각이었죠. 대작을 하고 그것이 성공했을 때 더 큰 것을 계속하겠다는 욕심을 부리는 것은 풍선을 계속 불어 결국 눈앞에서 뻥 하고 터뜨려 버리는 어린애 같은 짓입니다. 난 그런 사고 방식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난 스스로에게 "<사이코>는 소품이지만 해 볼만한 멋있는 영화가 될거야"라고 말하지, 결코 "1500만 달러를 벌 수 있는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습니다. 그 당시 난 버그먼에게 "나가서 비서 역을 하시오 그러면 '보잘것 없는' 비서에 관한 '대단한' 영화가 될 거요"라고 말하곤 했죠.

 

+842

히치콕 : 촬영을 마치기 전에 그 사실을 깨닫게 됐지만, 그 때는 너무 늦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왜 누구도 위험 속에 놓이지 않습니까? 그건 약한 자신이 두려워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약점은 악한이 성공적일수록 영화도 성공적이라는 불문율을 깨뜨린 것입니다. 그건 하나의 철칙인데 이 영화에서 악한은 완전 실패였습니다.

트뤼포 : 악당이 잘할수록 영화는 좋아진다 - 아주 멋진 공식입니다. <오명>, <의혹의 그림자>, <의혹의 전망차 Stragers on a Train>가 매우 뛰어난 것은 클로드 레인스, 조셉 코튼, 그리고 로버트 워커가 당신 영화 중에서 가장 뛰어난 악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사실이군요.

 

+843

트뤼포 : 내가 말하려는 바는 관객들은 대개 이러한 공들인 세부 사항들을 알아채지 못한다는 겁니다. 장면 속의 주인공들에게 모든 주의가 집중돼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그러한 것들을 끼워 넣은 것은 당신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이고, 또 물론 영화를 풍부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히치콕 :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전체 모자이크를 채워 넣는데, 그것이 사람들이 이러한 세부적인 것을 모두 알아차리려면 그 영화를 여러 번 봐야 한다고 느끼는 이유입니다. 세부 사항 중 어떤 것은 노력의 낭비라고 할지라도, 그런 것들이 영화에 힘을 주는 것입니다. 그 점이 이들 영화가 요 몇 년 전 재개봉됐을 때 흥행성적이 꽤 좋았던 이유입니다. 그런 영화는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법입니다.

 

+844

히치콕 : 나는 제작자들이 연극에 바탕을 둔 영화를 만드는 방식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이론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무성 영화를 재영화화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영화 제작자들은 한 연극을 잡고서 "이걸 영화로 만들겠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펼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무대에서 연극은 하나의 세트에 갇혀 있었는데, 그것을 밀폐된 무대 세팅에서부터 끄집어 낸다는 것이지요.
트뤼포 : 프랑스에서는 "연극을 통풍시킨다"고 합니다.

히치콕 : 그런데 전체 작업은 쪼그라들어 별것 아닌 것이 됩니다. 연극에서 등장 인물 중 한 명이 택시를 타고 등장한다고 합시다. 그들은 영화 속에서 택시의 도착 장면을 보여 준 뒤 그 사람이 택시에서 내리고, 요금을 지불하고, 계단을 올라가서 문을 노크한 뒤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것은 긴 실내 장면의 도입부 역할을 합니다. 때로는 연극에서 등장인물이 여행 얘기를 할 경우 영화로는 플래시백으로 여행 장면을 보여 줄 겁니다. 이러한 테크닉은 연극의 기본적 특징이 바로 프로시니엄 안에 한정되는 데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입니다.

트뤼포 : 실제로 연극을 영화화하는 데 가장 어려운 일은 그러한 집중입니다. 스크린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흔히 연극의 극적 효율성이 흩어져 버립니다.

히치콕 : 그 점이 영화 제작자들이 흔히 일을 그르치는 대목입니다. 그들은 단지 연극에 인공적으로 몇몇 장면을 추가하는 데 머물게 됩니다. 그러나 <다이얼 M을 돌려라>에서 나는 실내에서 나가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실외 장면은 형사가 뭔가를 조사할 때 두세 번에 불과하고, 그것도 아주 짧습니다. 실제 발자국 소리를 얻으려고 마루에 진짜 타일을 깔기까지 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내가 할 인은 연극적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845

히치콕 : 그건 순전히 영화적인 영화를 만들 기회였습니다. 여기에 밖을 내다보는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이 영화의 첫 부분입니다. 두 번째 부분은 그가 보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고, 세 번째 부분은 그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로 영화적 아이디어의 가장 순수한 표현입니다. 당신도 아는 바처럼 푸도프킨 V. Pudovkin이 이런 것을 시도했습니다. 몽타주 기법에 대한 책에서 그는 스승인 쿨레쇼프 L.V.Kuleshov가 한 실험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먼저 러시아 배우 이반 모주힌 Ivan Mosjoukine의 클로즈업을 보여 줍니다. 뒤이어 즉시 죽은 아기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다시 모주힌의 모습을 보여 주면 당신은 그의 얼굴에서 동정심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번엔 죽은 아이 대신 수프 한 사람을 보여 줍니다. 이제 다시 모주힌의 모습을 보여 주면 그가 배고픈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 두 경우 모두 똑같은 배우의 모습을 보여 준 것으로 그의 얼굴은 완전히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창을 통해 밧줄에 매달린 바구니에 강아지가 담겨져 내려오는 것을 스튜어트가 바라보는 장면을 생각해 봅시다. 스튜어트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떠오릅니다. 그러나 강아지 대신 열린 창 앞에서 반라의 소녀가 체조를 하는 것을 보면서 스튜어트가 미소 짓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때 그는 추한 늙은이라고 해야겠지요.

 

+846

트뤼포 : 우연히도 그 장면이 영화의 시점이 바뀌는 유일한 대목입니다. 단지 카메라를 스튜어트의 아파트 밖에 놓음으로써 장면 전체가 아주 객관적으로 됐습니다.

히치콕 : 맞습니다. 그게 그러한 유일한 장면이었습니다.

트뤼포 : 이것은 당신의 작업 규칙 중의 하나, 즉 한 장면이 극적인 절정에 도달하기까지 세팅의 전모를 보여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 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아니겠습니까? 예컨대 <파라다인 부인의 사랑>에서 50분간의 재판정 장면은 모욕을 당한 그레고리 펙이 재판을 포기할 때 절정에 이릅니다. 그때서야 카메라가 멀리서 그가 재판정을 나서는 것을 잡음으로써 당신은 재판정의 전체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이창>에서도 당신은 처음으로 뜰 전체를 보여 주는 것은 여자가 자신의 개가 죽을 것을 알고 울부짖기 시작해서 이웃 사람들이 모두 무슨 일인지 궁금해 창가로 달려나오는 때입니다.

히치콕 : 틀림없습니다. 영상의 크기는 극적인 효과를 위해 사용되는 것이지, 단지 배경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그 다음 날 나는 TV용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었는데 그 중에 한 사나이가 자수하려고 경찰서에 나타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나는 들어서는 그 사나이와 뒤에서 닫히는 문, 그리고 그가 책상까지 걸어오는 것을 클로즈업으로 잡았습니다. 세트 전체는 보여 주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관객이 그 곳이 경찰서인 것을 알도록 전체를 보여 주어야 하지 않느냐"고 내게 물었습니다. 나는 "왜 신경을 쓰는가? 카메라의 오른쪽 옆에 보이는 경사의 팔에 세 개의 줄무늬가 있다. 그것이면 그곳이 경찰서임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극적인 순간에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롱 숏을 낭비할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했습니다.

 

+847

히치콕 : 나는 모든 사건을 결백한 남자의 시점에서 보여 준다면, 다른 사람이 저지른 범죄 때문에 고통받는 것을 그린다면, 흥미 있는 영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모든 시련이 더욱 끔찍했던 것은 그가 무죄임을 항변했을 때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물론 그렇겠죠"라면서 아주 친절하게 대했다는 겁니다.

 

+848

히치콕 : 영화에서 나는 다른 접근법을 썼습니다. 제2부 처음에 스튜어트가 갈색 머리 주디를 만날 때 주디의 정체를 알려 줍니다. 그러나 관객에게만 알려 주지요. 스튜어트는 아직 주디가 매들린과 닮은 여자가 아니라 바로 매들린이라는 사실을 모르지만 관객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이구 동성으로 이렇게 바꾸는 것에 반대했습니다. 그들은 그 사실을 마지막에 밝혀야 한다고 했습니다. 나는 어머니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아이의 입장으로 돌아갔습니다. 어머니가 얘기를 멈추면 아이는 항상 "다음엔 뭐예요"라고 묻지요. 소설의 제2부는 마치 다음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돼 있지만, 내 식으로 하면 매들린이 주디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아는 아이는 "스튜어트는 그걸 모르네요. 그가 그 사실을 알면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을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서스펜스를 원하는가, 놀라움을 원하는가 하는 통상적인 양자 택일에 직면하게 됩니다.

 

+849

히치콕 : 스튜어트가 종루에서 계단을 내려다볼 때 현기증을 일으키는 순간적 왜곡 효과를 알아봤습니까? 그것을 어떻게 찍었는지 압니까?

트뤼포 : 앞으로 줌 forward zoom 하면서 동시에 트랙 아웃 track-out 한 것이 아닙니까?

히치콕 : 바로 그겁니다. <레베카>에서 심문당하던 조운 폰테인이 기절할 때, 나는 그녀가 넘어지기 전에 모든 것이 그녀로부터 멀어져 가는 것처럼 느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나는 어느날 밤 런던의 앨버트 홀에 있는 첼시 아트 무도회장에서의 일을 항상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때 나는 엉망으로 취해 있었는데, 모든 것이 나로부터 멀어져 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는 그것을 <레베카>에 집어넣으려 했는데 잘 되지 않았습니다. 알다시피 원근감은 길고 깊게 바뀌지만, 시점은 고정돼야만 합니다. 나는 이 문제를 15년 동안 생각했습니다. <현기증>을 찍을 때 돌리와 줌을 동시에 사용해 이것을 해결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데 비용이 얼마나 드냐고 물었더니, 그들은 5만 달러가 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비용이 드는 이유를 물었더니, "카메라를 계단의 꼭대기에 놓으려면 카메라를 들어올려 무게 중심을 맞추고 공간 속에 잡아 두어야 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내가 그랬죠. "이 장면에는 인물이 나오지 않으니 단지 시점만 보여 주면 돼. 미니어처로 계단을 만들어 수평으로 누이고 카메라를 거기서 끌어 내면서 촬영하면 되잖아? 평평한 땅에서 트래킹 숏과 줌을 사용하면 된단 말야" 그래서 그런 식으로 했는데 비용은 1만 9000달러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850

히치콕 : <오명>의 러브 신에는 육체적인 측면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잉그리드 버그먼과 캐리 그랜트의 키스 신을 생각하고 있지요?

트뤼포 :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 영화의 광고 문안에 '영화사상 가장 긴 키스'라고 적혀 있었던 것 같은데요.

히치콕 : 사실 두 배우들은 그렇게 하는 걸 싫어했습니다. 두 사람은 그들이 서로 바짝 붙어서 오랫동안 그렇게 있어야 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불편함을 느꼈던 것입니다. 나는 "당신들이 어떻게 느끼는가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겠다. 스크린에서 그것이 어떻게 비쳐지는지가 내 관심사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851

히치콕 : 비록 무의식적으로라도 나는 자주 원점으로 돌아가곤 합니다. 확실한 지점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해 보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결코 '전에 써먹었던 것을 이번에 다시 이용해 먹자'고 생각할 정도로 타락했던 적은 없습니다.

 

+852

히치콕 : 나는 다른 사람의 시나리오를 택해 단순히 그것을 촬영하는 것에는 만족하지 못합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 자신이 전체 과정을 장악하고 만들지 않으면 성이 차지 않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아이디어가 부족하지 않도록 늘 신경 쓰는 겁니다.

 

+853

히치콕 : 가장 중요한 것은 관객들의 감정을 환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정은 영화 속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데 따라, 즉 시퀀스들이 병치되는 방식에 따라 불러일으켜 집니다. 나는 가끔 내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이거나 트럼펫 연주자인 것처럼 느낍니다. 클로즈 숏이나 아주 멀리 잡은 숏은 소리 없이 반주되는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비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아름다운 풍경을 앞에 두고 컬러와 광선을 조절할 때는 마치 화가처럼 느낍니다.

 

+854

영화가 탄생했던 초기에, 영화란 스틸 사진의 확장으로서 삶을 기록하는 데 이용되었다. 영화는 다큐멘터리에서 탈피함으로써 예술이 되었다. 이 때가 되어서야 영화란 더 이상 삶을 반영하는 수단이 아니라 삶을 강화하는 매체라는 인식이 생겨나게 되었던 것이다. 무성 영화 시대의 감독들은 모든 것들을 고안해 냈다. 고안해 내지 못했던 감독들은 실패자로 전락했다. 히치콕은 유성 영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동반한 영화상의 후퇴를 자주 아쉬워했다. 또 이야기를 시각화하는 데에 아무 관심이 없고 이야기를 필름에 기록하는 데에만 만족하는 무대 감독들을 기용해야 하는 점에 대해서도 못마땅해했다. 히치콕은 다른 계통에 속하는 감독이다. 즉 채플린, 스트로하임 E.V. Storheim, 루비치와 같은 계열에 속한다. 그들처럼 히치콕은 단순히 예술에 종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의 가능성을 파고들고, 그 규칙들 - 소설을 쓰는 것에 관련된 규칙들에 비해 훨씬 많은 것을 요구하는 규칙들 -을 만들어 내려고 했다. 히치콕은 삶의 밀도를 높였을 뿐만 아니라 영화의 세계를 강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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