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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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권 작가 막스 프리쉬(Max Frish)는 <나를 간텐바인이라고 하자>라는 작품에 이렇게 쓴 적이 있다. "활주로에 비행기가 닿을 때면 발생하는 통상적인 충격을 나는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바로 현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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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한국을 이해할 언어를 새롭게 발명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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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가 보기에 좀비의 결정적 특징은 씻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병이 창궐해도 좀비는 결코 손을 씻지 않는다. 씻는 좀비는 좀비가 아니다. 씻는 좀비는 "동그란 네모", "짧은 장총", "못생긴 미남", "즐거운 시험", "굿 모닝(Good Morning)"처럼 형용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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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와 관련하여 또 하나의 흥미로운 사실은, 현존 족보의 대부분 혹은 상당수는 위조된 족보라는 점이다. 결코 양반이 아니었던 이들이 양반을 자처하기 위해 족보를 위조하는 일이 19세기와 20세기에 집중적으로 벌어졌다. 어느 한 개인이나 한 지역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 전국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진 일이었다. 20세기 전반 한국의 대표적 베스트셀러가 족보였다는 사실 저변에는 이러한 사회사가 깔려 있다. 노비라는 가계를 집단적으로 세탁함을 통해 현대 한국인이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사에서 노비는 단순히 신분제 때문에 흥미로운 존재가 아니다. 노비는 집단적인 망각과 무시의 대상이었다는 점에서도 사뭇 흥미롭다. 그토록 많은 노비가 실존했으나 지금은 노비의 자손(을 표방하는 사람)을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곳이 바로 현대 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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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피터 버크는... 기억의 역사와 지식의 역사를 연구할 필요가 있듯이, 망각의 역사와 무지의 역사도 연구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 바 있다. 실로 각 시대는 의도적으로 망각하고자 하는 대상, 그리고 무지의 상태로 남아 있으려는 대상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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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먹이를 삼켰다가 에너지가 부족해서 오히려 죽는 뱀들도 있다. 코끼리를 삼켜버린 보아뱀은 이제 어찌 될 것인가. 상대를 오판한 뱀은 소화를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써야 한다. <어린 왕자>에서 코끼리를 삼킨 뱀은 꼼짝달싹 못 하고 여섯 달 동안 소화시키며 잠을 잔다.. <산해경>에는 동정호에 사는 파사라는 커다란 뱀이 코끼리를 삼키고 3년에 걸쳐 소화시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본 제국주의는 조선을 삼킨 지 30년이 넘도록 동화를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말았음을 이후 역사는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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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욕망은 충족되지 않을 때 가장 강하고, 충족하고 났을 때 가장 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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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승옥의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생명연습>은 이 욕망의 동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생명연습>에는 한 교수라는 이가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 여자 친구 정순은 "배암과 같은 이기심을 발휘하여, 대학 졸업 후 런던 유학을 꾀하고 있는 한 교수에게 그 계획을 포기하라고 희생을 강력히 요구해오기도 하는 것이었다." 한 교수는 일기에 딜레마를 이렇게 적는다. "정순과의 결혼이냐 젊은 혼을 영국의 안개 낀 대학가에서 기를 것이냐." 그는 마침내 딜레마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낸다. "정순의 육체를 범해버리기로 한 것이었다. (...) 그러자 예상했던 대로 한 교수의 사랑은 식어질 수 있었다. 다음 해 사쿠라가 질 무렵엔, 마카오 경유 배표를 쥐고도 손가락 하나 떨지 않고 서 있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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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리를 <님의 침묵> 해석에 적용해보자. 정순처럼 늘 조국이 자신의 곁에 함께했을 때는 애국심이라는 욕망이 약하기 마련이다. 늘 공무원이 어른거리고 세금까지 걷어간다면, 조국이 지겨워질 수 있다. 즉 조국이 건재할 때 애국의 욕망은 약하다. 그렇다면 애국의 욕망이 언제 가장 강한가? 마찬가지 논리로, 조국이 멀쩡하지 않을 때, 혹은 갓 멸망했을 때 가장 강하다. 연정을 해소할 대상이 사라져 버렸을 때 연정이 가장 강하듯, 애국의 욕망을 해소할 대상이 망해버렸을 때 애국의 욕망이 가장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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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저열함은 놀랍게도 생존의 욕망에서 온다. 살겠다는 의지에서 온다. 인간은 죽음이 두렵다. 그 바닥없고 어두컴컴한 구덩이가 두렵다. "입을 벌리고 몸에 구멍이 뚫린 채, 반투명한 창자를 쏟아내며 숨이 끊어지고 싶지 않다"(89쪽) 그리하여 "쇠가 몸을 뚫으면 사람이 쓰러진다"(115쪽)는 사실에 집착한다. 그래서 총칼을 피하고, 먹을 것을 입에 쑤셔 넣고, 자기 것을 챙기고, 자기 새끼를 감싸고, 재산 증식에 골몰한다. 살아 있는 그 누구도 이 욕망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삶이란 실로 지긋지긋한 것이다. 그래서 말한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1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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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의 마지막 부분, 죽은 동호의 어린 시절을 엄마는 이렇게 회상한다. "여덟살 묵었을 때 네가 그랬는디. 난 여름이 싫지만 여름밤이 좋아."(191쪽) 그렇게 말한 동호에게 나는 이렇게 화답해 본다. "난 인간은 싫지만 인간의 영혼이 좋아." 영혼은 밤처럼 서늘한 것이니까. 여름밤이 없으면 여름을 견딜 수 없고, 영혼이 없으면 인간을 견딜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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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촛불 시위는 정말 '혁명'이었을까? 그것이 정말 혁명이었다면, 촛불혁명이 약속한 세상은 정녕 도래했을가? 혁명은 일어났으나 혁명이 약속한 세상이 오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외친다. 혁명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혁명을 어떻게 끝내야 하는지를 모르기에, 사람들은 그렇게 외칠뿐이라고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는 말한 적이 있다.
+2745
21세기 전반 반바지를 입고 서울의 변두리를 거닐면서 한국의 현대에 대해 생각한다. 동네마다 하나둘씩 꼭 있는 건강원과 개소주집을 보며, 한국인이 갖는 강박적인 건강욕과 그것이 갖는 정치성에 대해 생각한다. 한국은 과로에 젖은 사회다. 지친 사람들은 휴양지 빌라 발코니에서 해안선을 바라보며 천천히 맥주를 마시고 튀김을 폭식하면서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고 그저 조물주를 원망하다가 저절로 잠드는 생활을 동경한다. 그거나 현실의 해가 뜨면 너도나도 앞 다투어 출근해야 한다. 정도 이상으로 과로하다 보니, 심신 양면으로 보양식을 찾게 된다. 마음의 보양식을 찾아, 어려운 인생에 쉬운 답을 주는 소위 사회적 멘토의 강연장에 간다. 육체의 보양식을 찾아, 고성능 영양제를 찾고 동네 건강원을 방문한다. 절제되고 균형 잡힌 섭생과 규칙적인 운동이 장기간 축적된 끝에 마침내 찾아오는 은은한 활력을 기다릴 여유는 대개의 한국 사람들에게 없다. 꾸준한 마음의 잔근육 단련을 통해 정교한 생각의 힘을 얻을 여유는 상당수의 한국 사람들에게 없다. 바쁘고 지친 사람들은 몇 번의 인문학 강연과 몇 번의 보약으로 심신의 건강을 쟁취해야만 한다. 스트레스로 정신의 방광이 터져나가는 상황에서 한입 베어 물면, 좁아터진 방광을 떠나는 오줌처럼 스트레스가 배출되고, 또 한 주를 살아갈 정력이 샘솟게 되는 보양식을 먹어야만 한다. 한국에 깔려 있는 수많은 자칭 멘토의 강연과 건강원과 개소집은 후다닥 진행된 한국의 '근대화' 과정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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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김장하>는 김장하에 대한 이야기인 만큼이나 그를 취재한 김주완 기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평생 지역 신문기자로서 살아온 김주완 기자는 그동안 기득권자의 비리와 악행을 폭로하고 비판하는 기사를 주로 써왔다고 자평한다. 그리고 나직하게 덧붙인다. 그런 방식을 통해서 이 사회는 바뀌지 않았다고. 그토록 폭로하고 비판했건만, 세상은 여전히 비리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고. 은퇴를 맞은 그는 이제 다른 방신을 선택한다. 나쁜 사례를 폭로하고 비판하기보다는 좋은 사례들을 발굴하고 선양하기로 결심한다. 그리하여 진주 시민운동의 숨은 대부라고 불릴 만한 김장하를 취재한다. <어른 김장하>가 재구성한 김장하의 삶은, 악을 보는 데 지친 김주완 기자가 기어이 보고자 했던 선의 모습이기도 하다.
+2747
기적은 일어나지 않고 일상은 계속된다. 그토록 과학 기술이 발전한다는데, 한국이 선진국이 되었다는데, 어째 내 삶을 내 손으로 통제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가. 삶도 '오마카세'가 유행인가. 세상이 주는 삶을 그대로 받아먹어야 하나.
+2748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 삶을 통제하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너도 나도 말하는데, 월급은 조금 오르고 삶의 비용은 많이 오른다. "쉬지 않고 벌어야 한다"라고 자신에게 속삭인다. 무엇을 하고 싶기에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돈을 벌고 있지 않다는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 삶의 순간들을 포기해야 하는 나날들이 이렇게 늘어난다.... 번아웃에 시달리는 육신에게 영혼의 존엄을 좀처럼 깃들지 않는다.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구는 시들고, 잘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구만 남는다. 잘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구도 시들고, 잘나 보이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구만 남는다. 잘난 사람이 되는 데 실패하면 분발하는 마음이 생기지만, 잘나 보이는 사람이 되는데 실패하면 토라지는 마음이 생긴다. 왜 이리 잘난, 아니 잘나 보이는 나를 알아주지 않는 거지! 잘나 보이는 데 실패한 사람들은 오늘도 하염없이 토라져간다. 이제 고요함 속에서 자신의 존엄을 길어 올리는 일 대신, 남을 무분별하게 비난하면서 자기 존재의 존엄을 찾으려 드는 사회가 되어간다.
+2749
이른바 보수 우익에게도 뭔가 정신이라고 할 만한 게 필요하지 않겠나. 정신줄을 놓지 않으려면 정신이 필요하지 않겠나. 반공이나 시장 숭배나 권위주의 이상의 어떤 정신이 필요하지 않겠나. 진보 좌익이 경박한 패스트푸드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려면, 그 스스로 진국 같은 소울푸드가 되어야 하지 않겠나. 소울이 없는데 어떻게 소울푸드가 될 수 있겠나. 도대체 어떻게 보수 우익의 소울 혹은 정신을 가져야 할지 모르겠
다고? 보수적 영화인으로 유명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그랜 토리노>부터 시작하는 건 어떤가. 이 한 편의 영화를 보고, 정신줄 붙잡을 수 있기를.
+2750
보수 우익에게 허무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보수 우익은 자신의 가치 지향에 관해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죽으면 다 끝이라고 생각하는 대신, 소중한 것을 남겨 공동체에게 전하려는 게 보수 우익이다. 보수 우익에게 많은 경우 그것은 그 나라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가치다. 월트 역시 자신이 믿는 미국의 가치를 후대에게 전해주고 싶다. 그 가치는 그가 직접 생산 라인에서 조립한 빈티지 카, 그랜 토리노라는 자동차가 상징한다. 오래되었으나 여전히 품위 있고 아름다운 자국산 차. 멋진 빈티지 카를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한때 아름다운 것이 존재했음을 뜻할 뿐 아니라 그 아름다움을 줄곧 잘 간수했다는 뜻이다.
+2751
국가 폭력의 기억을 가진 한국의 보수 우익은 과연 월트처럼 핏줄을 넘어, 인종 편견을 넘어, 구식 남성성을 넘어 자신의 후계를 찾을 수 있을까. 반공과 시장에 대한 집착을 넘어 월트처럼 세대를 넘는 가치를 발견하고 전해줄 수 있을까. 그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자신을 버릴 수 있을까. 중병에 걸린 자신을 버림으로써 공동체를 재건할 수 있을까.
+2752
육신은 죽었지만 정신은 살아 있다고 외치는 사람도 있다. 육신은 살아 있지만 영혼은 죽었다고 믿는 사람도 있다. 셰익스피어는 <줄리어스 시저>에서 말한다. "겁쟁이는 여러 번 죽지만, 용기 있는 사람은 단 한 번 죽는다." ... 웹툰 <겨울의 글쓰기>에서 주인공은 나직하게 중얼거린다. "죽지 않아도 죽은 것처럼 사는 사람들도 있어. 삶은 죽음 이외의 방식으로도 끝장날 수 있거든." 그렇다 죽음 이외의 방식으로도 삶이 끝장나는 경우가 있다. 지켜온 가치가 사라졌을 때, 그리하여 그가 더 이상 '그'가 아닐 때 사람들은 말한다. 내가 아는 그는 죽었다고. 자신이 지켜온 가치를 버리고자 할 때 자신을 믿어주던 이들에게 말할 수 있다. "당신이 아는 아무개는 죽었습니다." 누군가 태연히 당신의 죽음을 선언하기도 한다. "내가 아는 아무개는 이제 이 세상에 없어요"라며 애인이 당신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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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란 친구가 위험하다고 해서 쾌락만 벗하면 결국 권태라는 또 다른 위험한 친구가 찾아온다. 쾌락은 지속되지 않으며, 이완은 무기력으로 이어지고, 휴식은 권태로워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