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챗지피티로 사주까지 봐?” 대수롭지 않은 척 얘기하곤, 지나갔었는데, 문득 궁금해졌다. 도대체 얼마나 잘 본다는 거야? 시키는 대로 생년월일에 태어난 시간까지 입력하자 사주앱에서나 보던 익숙한 한자와 녀석이 풀이한 내 팔자가 펼쳐진다. 의심스러운 마음에 입력하기 전에 갖고 있던 사주앱에서 읊어댄 내 팔자도 한번 읽어본 터였다. 나의 의심은 ‘갑목일주’ 큰 나무가 있는 팔자라 물이 아주 많이 필요하다는 구절에서 이내 ‘호오~ ‘라는 감탄사와 함께 주억거림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래, 내가 늦게 배워서 그렇지. 수영에 푹 빠진 게 다 사주에 있는 거였어.’ 그리고 나서 좋은 관계는 사주에 수나 토가 많은 사람, 의외로 화가 많은 사주의 사람들도 그렇게 심하게 나쁜 관계는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번개를 맞는다던 지, 어쨌든 불은 나무를 모두 태우기도 하지만, 자연 속에서 겪을 수 있는 관계였다. 하지만 유독 조심해야 될 관계가 사주에 금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나를 찍어 벨 도끼가 될 사람은 피하라는 것이었다. 근데, 만나는 사람마다 생년월일시를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대체 금이 많은 지 수가 많은 지 알 길이 없지 않나? 좋은 관계와 나쁜 관계를 미리 알면 좋은 관계를 맺을 사람만 만나면 진짜 좋은 삶인가? 누군가 때문에 심한 고난을 겪거나 했을 때, 그 사람의 생년월일시를 알아 보고, 아하 역시 그래서 그 사람이 나를 이렇게 벤 것이구나, 난 도끼질을 당했구나 하고 생각해야 하는 건가? 잘 모르겠다. 인간의 진화에서 사회성이라는 게 가장 큰 역할을 했다는 이론이 꽤나 강하게 대두된 건 오래 전부터다. 이 약육강식의 지구라는 땅에서 약한 신체적 조건을 가진 인간은 무리로써 생존문제를 극복해왔고, 무리 안에서 또 생존하기 위해 자신과 편 먹기 할 이를 구분하고, 도움될 이를 구분하고, 해가 될 이를 구분하고, 사랑할 이를 구분하고, 먹이가 될 이를 구분하고, 이용해야 할 이를 구분하고 그래서 고도로 발달된 사회성이 언어를 필요로 하게 하고, 수많은 사회적 약속을 만들고 뭐 그랬다는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그렇게 길들여져 인간은 자신에게 안전함을 제공하는 혹은 아 이 사람은 나의 생존에 도움이 되겠구나 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쾌’를 느낀다고 한다. 그것을 누군가는 행복이라 부르고, 그렇게 불쾌를 자아내는 관계를 회피하게 진화했다는 것이다.
챗지피티로 피해야 할 사주를 알게 되고, 인간의 사회성의 이유를 알게 되고, 나의 ‘쾌’와 ‘불쾌’가 생존의 본능으로 관계를 구분 짓는 신호체계라는 걸 안다고 한들, 피할 수 없는 관계들이 있지 않나. 진짜 궁금한 건, 그런 피할 수 없는 관계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이다. 피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는 뻔한 이야기가 아닌, 지금 이 순간에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이 벌어지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쟁 중이고, 트럼프는 관세로 주먹질을 해대고, 여야는 서로 이 세상에 없어야 할 존재라고 깎아내리고, 남과 여,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지역, 수많은 불쾌한 관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피하는 게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가 함께 생존가능한 지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너무 거창한 이야기로 빠져나갔지만, 물 속에 있을 땐, 행복한 건 오로지 나라는 존재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함께 해야 살 수 있는 게 인간이지만, 또 혼자여야 살 수 있는 것도 인간이다. 생각해보면 물도 처음부터 마냥 행복한 관계였던 건 아니다. 얼마나 두렵고 불편한 관계였던가. 어떻게 떠야 하는지도, 어떻게 나갈 수 있는 지도, 어떻게 물을 안 먹을 수 있는 지도 늘 헤매이던 어려운 관계, 불편한 관계였다. 하지만, 이렇게 친해지고 나니,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관계 중 하나가 되었다. 어쩌면 챗지피티가 맞고, 우리의 생존신호체계가 정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생존 시그널이, 그 운명의 지침이 꼭 절대적이란 말은 아니다. 인간이 이다지도 오래 살게 된 건(개나 고양이 등에 비해) 의학의 발달이나 그런 것도 있지만, 어쩌면 함께 살아가기 위해 서로 더 이해하기 위해 워낙 오랜 시간이 걸리는 종족이라 그런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