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2491
새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길을 잃을 것이에요.
거기에서부터 당신의 정원이 시작되는 거예요.
+2492
도심을 비추던 해가 붉은 옷깃을 끌며 사위어가고 있었다. 나는 내게서 더 멀리 떠나가는 것들을 이렇게 혼자서 바라보곤 했다.
+2493
사슴뿔 같은 고목의 자태와 산천의 벗겨진 얼굴도, 가슬가슬 메마른 들판의 품도 봄바람이 스친 자리엔 초록이 물들고 살이 올랐다... 자연의 혼이 바람을 일으켜 인간의 혼을 깨우는 기운이 생동하는 계절이었다.
+2494
바람이 불 때마다 잎새에 빛이 산란했다. 그들은 저마다 다양한 각도로 햇빛을 충전하고 있었다.
+2495
아무리 기술이 좋아졌다고 한들 눈으로 바라보는 색감, 그리고 그 풍경을 덧입힌 감정과 분위기까지 잡아낼 수 있는 카메라는 마음 하나밖에 없는 듯했다.
+2496
나의 관심이 누군가를 향할 때 욕심이 될 수도 있다. 잘해줬는데 대응이 섭섭하다는 마음도 집착이고 욕심 아닐까.
+2497
근심 없이 살자고 다짐하며 끝없이 태웠다... 담아두고 모아두지 말자. 감당 안 될 만큼 쌓아두지 말자.
+2498
최선을 다해 봄이다.
나도 피어나야지.
+2499
나는 이상하게도 저렇게 말 없는 것들을 자꾸 믿게 된다.
+2500
내가 나무에 기대어 있는 줄 알았는데 나무가 나에게 기대어 있었다. 여전히 바람이 부는 오후였다.
+2501
각자의 산책_ 우리는 같은 길 위를 걷더라도 실은 전혀 다른 길들을 걷는 사람들
+2502
저마다 자신이 아침을 제일 먼저 물고 온 것처럼 우렁차다. 시키지 않아도 같은 시간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로 하루를 시작한다.
+2503
우리가 오늘 해야 할 업무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하루를 자각하고 감사하게 잠들 수 있다면, 선물 같은 이 시간을 오늘도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할 수 있다면, 새들이 설교를 마치면 나는 시원한 한 잔의 성수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한다.
+2504
빛나고 향기로움뿐인 스스로가 되고 싶다
+2505
꽃은 항상 그곳에 있지만 마주하기는 쉽지 않다. 의식과 생각이 완전히 멈춘 자리에서 비로소 꽃 한 송이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2506
오색딱다구리는 나무 없이는 저 소리를 낼 수 없다
+2507
인간은 왜 평화로운 침묵 사이로 확고한 의견을 타인에게 자주 피력하려고만 할까. 그런 사람을 마주하면 이제 막 열었던 마음의 문을 황급히 닫아버리게 된다.
+2508
의견은 뱉을수록 하나의 칼날처럼 날이 서 있으며 그 곁에서 바람은 인간의 사고와 의견을 통과할 수 없었다. 점차 경직된 채 말의 테두리를 부딪치며 내려와야 했다.
+2509
타인의 울림을 좇지 않으며 스스로가 그런 울림이 되고자 전 생애를 몰두하는 사람들
+2510
나는 늘 어떤 만남을 바란다. 나를 안정감 있게 해주는 사람들은 함부로 방문을 열고 제집처럼 살고자 하기보다는 거기 존재해주는, 자신을 다하는 사람들에 가까웠다.
+2511
텅 빈 하루 치의 공허를 채우는 방식이 비슷한 사람이 가깝다. 어디선가 공허를 차분히 자신으로 채우는 사람들이 즐겁다.
+2512
"외로움이란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하는 말이고 고독이란 혼자 있는 즐거움을 표현하는 말이다." - 폴 틸리히
+2513
나는 마음의 중심에 늘 고독의 축대를 놓는다... 외로움과 달리 고독은 실존적인 삶을 살아가게 하는 생의 원천이다. 고독은 세계의 파장을 잠재우는 평정과 같으며, 넘어짐을 일으켜 세우는 마음의 중심축에 가깝다.
+2514
어쩌면 푸르던 지난 여름날의 녹음보다 다 털어내고 오롯이 혼자 남은 나무, 여백 속에 단 한 줄로 요약되는 저 나무의 골자야말로 자신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내 삶의 줄거리를 바라본다. (줄거리는 가지만 남은 나무를 의미하는데 우리가 책에서 보아왔던 그 줄거리의 어원이기도 하다.) 겨울에서야 훤히 잘 보이는 것들이 많다.
+2515
구름 위에 내려앉은 보름달은 매혹적이다. 내가 등지고 걸어도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는다. 사라지는 순간까지 환한 그 얼굴을 보이며 빛으로 말을 건다. 밤새 환한 고백이 잠들지도 않는다.
+2516
어쩌면 나는 나를 찾아가 나아가는 게 아닌 계속해서 되돌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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