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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riting

뜨끈한 국밥의 기억

#17

뜨끈한 국밥의 기억_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이유밖에 없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들어간 허름한 돼지국밥집의 기억이
지금도 국밥을 사랑하게 된 이유의 전부다 
비릿한 냄새의 어느 추운 날
왜 거기로 이끌려 들어가게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어리둥절한 채로 다 큰 사내들 투성이인 그곳에서
어린 난 주인이 던져주듯 함석테이블에 놓은
된장이 풀어헤쳐진 돼지국밥을 한숟갈 입에 물었다
따뜻했고 구수했고 알지못할 서글픔도 모두 삼키는 맛이었다

아마도 그날도 아버지는 불콰한 얼굴로 소주잔을 들이켰으리라
그의 상실과 그의 좌절을 난 알지 못한다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그는 늘 현학적이었고 나약했고
술에 취해 비칠거릴 때만이
사람 좋은 웃음을 흘러 놓을 뿐이었다
가족의 밥벌이를 책임지는 남자의 몫을
어머니에게 넘긴 후로 그는 늘 그렇게 비틀거렸다
술 먹은 날 집안 가득 울려 퍼지는 어머니의 높은 소리와
어찌할 바 모르는 아버지의 나약한 허우적거림이
그저 선명할 뿐이다
그래서일까, 뜨거운 국밥의 위로는 따뜻했다
알지 못할 그의 슬픔과 알지 못할 나의 슬픔이
모두 잊힐 만큼 헛헛한 속을 채워주었다

모든 국밥은 그래서 그렇게 뜨거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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