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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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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부탁 [밑줄] +259 호남 지방에 내려가 웬만한 식당에 들어가면 스무 가지 서른 가지 반찬이 그득하게 차려진 밥상을 받을 수 있다. 감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호남 사람들이, 비록 부잣집에서라고 하더라도, 일상적으로 그런 밥상을 차려놓고 먹었던 것은 아니다. 내 아버지 세대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런 차림은 일제 강점기에 목포나 군산 등지 미두장에 투기꾼들이 모여들면서 생겨난 여관의 밥상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 잔칫집 같은 데서 "이게 여관집 밥상인가"하며 불평하는 어른들을 본 적이 있다. 차린 것은 많은데 먹을 것은 없다는 뜻이다. +260 그래서 저 밥상을 생각하게 된다. 문화를 과시하고 소비하려는 기획은 많지만, 문화의 창조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생산적 이용의 전망을 발견하기는 어려운 ..
밤이 선생이다 [밑줄] +241 불의를 불의라고 말하는 것이 금지된 시대에 사람들은 분노를 내장에 쌓아두고 살았다. +242 어머니가 전자오락에 빠져 있는 아들을 앞에 앉히고 타이른다. 오락의 폐해를 조목조목 늘어놓고 나서 아이를 설득하는 말이 그럴듯하다. "공부보다 더 재미있는 오락은 없다. 너는 갈수록 규칙이 복잡하고 쉽게 끝나지 않는 오락을 찾는데, 공부가 그렇지 않냐? 갈수록 수준이 높아지고 평생을 해도 끝나지 않고." 다소곳이 듣던 아이가 대답한다. "저도 그건 알아요. 그러나 다른 점도 있어요. 오락은 이기건 지건 판이 끝나면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공부는 그럴 수 없으니 아득해요." 대단한 말이다. 아이는 오락과 공부의 차이를 따지면서, 현실의 삶과 가상세계가 어떻게 다르고, 도박과 노동이 어디서 갈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