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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선생이다

밤이 선생이다

 

[밑줄]

 

+241

불의를 불의라고 말하는 것이 금지된 시대에 사람들은 분노를 내장에 쌓아두고 살았다.

 

+242

어머니가 전자오락에 빠져 있는 아들을 앞에 앉히고 타이른다. 오락의 폐해를 조목조목 늘어놓고 나서 아이를 설득하는 말이 그럴듯하다. "공부보다 더 재미있는 오락은 없다. 너는 갈수록 규칙이 복잡하고 쉽게 끝나지 않는 오락을 찾는데, 공부가 그렇지 않냐? 갈수록 수준이 높아지고 평생을 해도 끝나지 않고." 다소곳이 듣던 아이가 대답한다. "저도 그건 알아요. 그러나 다른 점도 있어요. 오락은 이기건 지건 판이 끝나면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공부는 그럴 수 없으니 아득해요." 대단한 말이다. 아이는 오락과 공부의 차이를 따지면서, 현실의 삶과 가상세계가 어떻게 다르고, 도박과 노동이 어디서 갈리는지를 꿰뚫어 본 것이다. 유희와 노름은 늘 출발점에서 다시 시작하지만, 삶과 노동은 이미 이루어놓은 결과에 줄곧 얽매여야 한다.

 

+243

도시 사람들은 자연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자연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도 없다. 도시민들은 늘 '자연산'을 구하지만 벌레 먹은 소채에 손을 내밀지는 않는다. 자연에는 삶과 함께 죽음이 깃들어 있다. 도시민들은 그 죽음을 견디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거처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철저하게 막아내려 한다. 그러나 죽음을 끌어안지 않는 삶은 없기에, 죽음을 막다보면 결과적으로 삶까지도 막아버린다. 죽음을 견디지 못하는 곳에는 죽음만 남는다. 사람들이 좋은 소금을 산답시고, 우리 고향 마을의 표현을 빌리자면, '죽은 소금'을 고르게 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같은 이치다. 살아 있는 삶, 다시 말해서 죽음이 함께 깃들어 있는 삶을 고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좋은 식품을 고르기 위해서도, 사람 사는 동네에 이른바 혐오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용납하기 위해서도 용기가 필요하다. 

 

+244

사람들은 반드시 몽유도원도가 아니라 해도 위대한 어떤 것에 존경을 바치려 했으며, 이 삶보다 더 나은 삶이 있다고 믿고 싶어했다. 저마다 자기들이 서 있는 자리보다 조금 앞선 자리에 특별하게 가치있는 어떤 것이 있기를 바랐고, 자신의 끈기로 그것을 증명했다. 특별한 것은 사실 그 끈기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은 두텁고 불투명한 일상과 비루한 삶의 시간을 헤치고 저마다의 믿음으로 만들어낸 일종의 전리품이었기 때문이다. 아흐레 동안 국립중앙박물관의 광장에 구절양장을 그린 긴 행렬은 이 삶을 다른 삶과 연결시키려는 사람들의 끈질긴 시위였다.

 

+245

내가 고교 1학년일 때, 서울대 미학과 학생이었던 김지하 선생은 방학중에 목포에 내려와 자기 모교의 문예반 후배들을 이끌고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상연했다. 나도 그 연극을 구경했지만, 그때는 지하라는 필명은 물론 김영일이라는 본명도 알지 못했다. 내가 그 연극에서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감명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이해할 수는 없어도 거기에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알았으며, 우리가 일상 쓰는 언어로 우리가 사는 세계와 전혀 다른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246

영화(이창동 감독의 '시')는 흥행에 실패했다. 가슴속에 있는 시를 우리가 두려워하기 때문일까. 내 아내만 하더라도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 상영관을 찾기 어렵고 시간대가 맞지 않아서라고 하지만, 실은 영화를 보고 나서 마음이 무거워질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이 유례없는 경쟁사회에서 우리는 조금씩 지쳐 있다. 그렇더라도 마음이 무거워져야할 때 그 무거운 마음을 나누어 짊어지는 것도 우리의 의무다. 엄마가 아이를 키우듯이, 나라 잃은 백성이 독립운동하듯이.

 

+247

모든 시간이 같은 시간은 아니며, 모든 땅이 같은 땅은 아니다. 사람들은 시간을 같은 길이로 쪼개서 달력을 만들지만 어떤 날은 다른 날과 다르고 어떤 시간은 다른 시간과 다르다. 어떤 독재 권력이 추석을 양력 9월 18일로 바꾸고 그날에 차례를 지내라고 강압할 수는 있어도, 이 나라 사람들을 남북으로 이동하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추석인 날을 추석 아닌 날과 다르게 하여, 그 많은 사람들을 제 고향으로 달려가게 하는 것은 이 나라 사람들이 이 나라의 시간 속에 쌓아놓은 기억이다. 땅이라고 다를까. 어느 부자가 어느 언덕에 아무리 호화로운 집을 지어놓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하루이틀도 아닌 오랜 세월에 걸쳐 내 고개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돌아가게 할 수는 없다. 비옥한 땅에서건 척박한 땅에서건 사람들이 살고, 꿈꾸고, 고뇌하는 가운데 조금 특별한 일을 실천하려 했던 기억이 한 땅을 다른 땅과 다르게 하고, 내 몸을 나도 모르게 움직이게 한다. 땅이 그 기억을 간직하지 못한다면, 이 나라 사람이 이 땅에서 반만년을 살았다 한들, 한 사람이 이 땅에서 백년을 산다 한들, 단 한순간도 살지 않은 것이나 같아. 이 말은 과장이 아니다.

 

+248

만드는 기술 못지않게 먹는 기술이 필요하다. 아니, 먹는 정성이 곧 만드는 정성이다. 정성스럽게 음식을 느끼려는 자에게 맛은 도처에 있다. 게다가 이것은 음식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 것 같다. 삶을 깊이 있고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들은 우리가 마음을 쏟기만 한다면 우리의 주변 어디에나 숨어 있다. 매우 하찮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내 삶을 구성하는 것 하나하나에 깊이를 뚫어 마음을 쌓지 않는다면 저 바깥에 대한 지식도 쌓일 자리가 없다. 정신이 부지런한 자에게는 어디에나 희망이 있다고 새삼스럽게 말해야겠다.

 

+249

고서 시장이 움츠러든 가장 큰 원인은 우리가 글을 읽고 쓰는 태도에 있을 것 같다. 눈앞에 현안으로 떠올라 있는 문제로 다른 모든 문제를 덮어버리는 정황에서는 누가 옛날에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 지경에서는 무슨 말끝에 이 말이 나왔는지도 알아보려 하지 않고 이 말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도 진정으로 따져보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논의는 원점에서 항상 다시 시작한다. 한번 사라진 책은 영원히 사라지는 이 사정이 한번 낙오하면 영원히 패배하는 우리 교육제도의 원리와 같다고 해야 할까.

 

+250

상대주의의 편에 선 수험생들은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사고의 지표와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사고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적절한 선에서 타협할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 다양성을 주장하는 의견들은 대체로 목소리가 활달하고 문체가 자신감에 넘쳐 있어서, 모든 사안에 양비론이나 양시론으로 반응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인 것처럼 여겨지는 우리 사회의 정신적 풍토를 그대로 반영하고 상징하는 것만 같다. 출제자들이 필경 염두에 두었을 의견, 진실에 대한 추구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의 의견이 자신의 의견 속에 들어갈 자리를 마련하고, 그로써 자신의 생각을 다시 성찰하고 그 깊이와 폭을 넓혀, 한 주관성이 다른 주관성과 만날 수 있는 전망을 내다보고, 인간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 걸음이라도 사실에 접근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견해가 오히려 수줍은 목소리다.

 

+251

교수의 직업이 공부하는 직입인 것이 사실이라면, 그 일이 그림을 그리거나 작곡을 하거나 영화를 만드는 일보다 덜 창조적이라고 할 수도 없고 위험을 덜 안고 있다고 할 수도 없다. 이 직업이 저 신랄한 야유 앞에 몸 둘 바를 몰라야 하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 지식 사회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근본적인 패배주의에서 찾아야 할 성 싶다. '어느 세월에'라는 생각, '해도 안 된다'는 생각이 그 패배주의의 내용이다. 홍 감독의 영화는 적어도 이 패배주의를 낱낱이 고방하는 방법을 깨쳤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다.

 

+252

모든 사람이 한 믿음을 가지고 한 가지 형태로 살아야 한다고 믿는 전제주의가 이런 사소한 일에 신경을 써야 할 이유는 없다.

 

+253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바르게 살지 못한 사람이라고 말해야 할 것인가. 그야말로 도덕을 빙자하여 그 불행한 사람들을 두 번 죽이는 횡포가 아닐 것인가.

 

+254

이 소금이 너무 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고쳐 생각한다. 소금이 짜지 않으면 그것을 어찌 소금이라 하겠는가.

 

+255

인터넷은 인간들의 모든 삶을 한꺼번에 끌어안기 위해 그 그물을 더욱 넓고 더욱 촘촘하게 짜겠지만, 사람들은 또 어디로 피해 달아나 은근한 사이트를 구성할 것이다. 그래서 그 그물이 더 커진다. 불투명한 것들이 투명한 것의 힘을 만든다. 인간의 미래는 여전히 저 불투명한 것들과 그것들의 근거지인 은밀한 시간에 달려 있다.

 

+256

좋은 문학은 오히려 문학적으로 그럴듯하거나 그럴듯하게 문학적인 것들의 허울을 헤치고 사물의 본색을 보려고 애쓴다.

 

+257

고인이 자신의 장례에 관해서 말하는 마지막 부분은 세 줄로 짧다. 화장하되,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라고 당부했으며, "오래된 생각"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작은 비석은 공훈을 적기 위한 것이 아니다. 세우는 것이 아니라 남겨야 할 이 비석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것이다. 자신을 면목 없는 사람으로 생각했던 고인은 이렇게 그 영욕의 자리였던 생물학적 육체의 흔적을 지상에서 지우고 싶어했으나, 역사에 걸었던 기대를 끝내 접지 않았으며, 그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래된 생각은 깊은 생각이다. 그는 역사의 깊이를 믿었다.

 

+258

나는 내가 품고 있던 때로는 막연하고 때로는 구체적인 생각들을 다듬어내어, 합당한 언어와 정직한 수사법으로 그것을 가능하다면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었다. 그 생각들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존경받고 사랑받아야 할 내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그리워했다. 이 그리움 속에서 나는 나를 길러준 이 강산을 사랑하였다. 도시와 마을을 사랑하였고 밤하늘과 골목길을 사랑하였으며, 모든 생명이 어우러져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꿈을 꾸었다. 천년 전에도, 수수만년 전에도, 사람들이 어두운 밤마다 꾸고 있었을 이 꿈을 아직도 우리가 안타깝게 꾸고 있다. 나는 내글에 탁월한 경륜이나 심오한 철학을 담을 형편이 아니었지만, 오직 저 꿈이 잊히거나 군소리로 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작은 재주를 바쳤다고는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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