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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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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가모시타 씨가 연출한 연극 <유리 동물원>의 연습 장면을 일주일 동안 구경한 적 있는데, 저는 그런 정교하고 치밀한 고도의 연출을 도저히 할 수 없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가령 화자이자 주인공 롤라의 남동생 톰을 연기하는 가가와 데루유키 씨가 담배를 물고 "그게 가족의 추억입니다"라며 성냥을 긋는 장면. 연기를 마친 가가와 씨에게 가모시타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냐. '추억'은 내성적인 단어니까 성냥을 그으려면 바깥쪽이 아니라 안쪽을 향해 그어야지." 그리하여 안쪽으로 성냥을 그었더니 확실히 배우가 능숙해 보였습니다. 소름이 돋았습니다. 안쪽을 향하는 단어와 바깥쪽을 향하는 단어란 무엇일까, 하고 필사적으로 메모했던 기억이 납니다. 가모시타 씨는 배우가 계단에서 어떻게 멈춰 설지, 그건 오른발일지 왼발일지, 이쪽으로 돌아볼지 저쪽으로 돌아볼지 등 모든 행동과 대사의 의미나 역할을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배우가 고민하며 묻는 것에는 모두 대답해 줄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 생각해 봐"라는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답은 모두 가모시타 씨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배우의 애드리브는 전혀 신용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합니다. 가모시타 씨는 깊이 있는 교양이 뒷받침된 연출가였습니다. 대사를 음악에 비유하며 "피아노처럼 시작해서 바이올린으로 변하게" 같은 지시를 할 수 있었고, 세트 도면도 직접 그렸다고 합니다. 도쿄 대학 문학부 미학미술사과를 졸업한 그는 "연출가는 세트 도면을 전부 그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극작가 히라타 오리자 씨입니다. 히라타 씨와는 두 번 정도 대담을 했는데, 그의 사고방식은 매우 심플합니다. "애드리브는 대사를 못 쓰는 사람의 핑계다." "배우의 자기표현 같은 건 작가에게는 방해가 될 뿐이다." "뛰어난 작가는 배우의 애드리브 같은 데 의지하지 않고도 그 대사가 그 자리에서 태어나는 것처럼 쓸 수 있다. 그런 대사를 쓸 수 없다면 작가가 되어선 안된다." 두 연출가의 생각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역시 같은 연기를 반복해야 하는 연극과 영화 사이에는 차이가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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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 내부의 어디가 현지 촬영이고 어디가 세트인지 몰랐다는 기쁜 감상도 들었는데, 이는 수준 높은 미술과 오노시타 에이지 씨의 훌륭한 조명 덕분입니다. 미타카의 소아과 의원은 볕이 매우 잘 들어서 자연광으로 찍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오노시타 씨는 구태여 인공광을 더했습니다. 어째서인지 궁금해서 이유를 묻자 "의도적으로 인공적인 빛을 더해서 자연광을 살짝 인공광에 가깝게 만들어 두지 않으면, 세트 촬영분과 합쳤을 때 한 영화 안에서 조화를 이루지 않아요. 그 자리의 자연광이 아름답다고 해서 반드시 자연광만으로 촬영해도 좋은 건 아닙니다"라고 조명에 대한 철학을 들려주었습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기술자란 정말로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