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Reading

4할의 비결


+3


이용균의 베이스볼 라운지 2018.05.02. 경향

아침식사는 항상 똑같다. 프로 데뷔 후 2010까지는 매일 카레. 이후 탄수화물 섭취를 위해 식빵과 국수를 먹는다. 경기장에는 항상 5시간 전에 도착하는 게 원칙이다. 원정경기 때는 숙면을 위해 전용 베개를 챙긴다. 경기 전 다른 사람의 글러브와 배팅 장갑을 만지지 않는다. 손에 그 감각이 남아 자신의 감각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2005년 이후 휴가를 한 번도 가지 않았다. 휴가를 가서 몸을 편안하게 쉬면 루틴을 망칠 수 있다고 여긴다. "소파에서 하루 종일 뒹굴면 몸이 더 쉽게 피곤할 수 있다"고 했다. 몸의 유연성을 유지하기 위해 특별한 트레이닝 머신을 개발했다. 하루 4번, 정해진 시간 동안 머신을 이용해 운동을 한다. 20년 동안 빼먹지 않았다. 스프링캠프 때도 이 장비를 콘테이너에 실어 갖고 간다. 장비가 생기기 전에도 훈련은 필수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하루도 훈련을 거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타석에 들어서는 루틴도 매번 '복붙'이다. 매 타석 똑같은 루틴을 유지하면서 두 개의 리그에서 27시즌 동안 안타 4367개를 때렸다. 스즈키 이치로(45)는 "나는 나와의 약속은 한 번도 어겨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유한준(37.KT)은 루틴에 대해서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가히 한국의 이치로라 불릴 만하다. 운전할 때는 한밤중에라도 규정속도를 절대 어기지 않는다. 신호를 지키는건 당연하다. 혹시라도 야구에 손해가 될 수 있는 행동을 피하는 원칙 때문이다. 매운 음식을 먹지 않는다. 아내는 회를 좋아하지만 가족 외식 메뉴는 항상 스테이크다. 홈경기 때는 집에서 저녁식사를 한다. 타격 훈련 때도 루틴은 계속된다. 코스와 강도가 일정 순서대로 반복된다. 가장 중요한 루틴은 웨이트 트레이닝이다. 정해진 요일마다 절대 거르지 않는다. 유한준은 "가끔 악마의 속삭임이 들린다. 쉬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실제 쉬고 난 다음날 잘 친 적도 있다. 그럼 악마의 속삭임이 더 커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 핑계가 쌓이면 결국 커다란 손해로 찾아온다고 믿는다. 조금씩 빠져드는 모래 늪과 같다. 처음에는 티가 안 나지만 나중에는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고 덧붙였다. 꾸준함을 만드는 것은 마음의 평정심이다. 유한준은 "25일 롯데전에서는 너무 화가 났다"고 말했다. 그날 유한준은 4타수 2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보이는 기록은 타율 5할. 4-4로 따라붙은 6회 2사 만루에서 3루 땅볼을 때렸고, 4-5로 뒤진 8회말 2사 2.3루에서 삼진을 당했다. "너무 열받았는데, 그걸 다스려야 한다는 걸 이제는 안다"고 말했다. 유한준은 그럴 때마다 수첩을 꺼내 적어둔 글들을 읽는다. 일종의 기도 혹은 명상을 통해 평정심을 유지한다. 유한준은 롯데전이 끝난 뒤 KIA와의 3경기에서 12타수 8안타(0.667), 3홈런 4타점을 기록했다. 3경기 OPS(출루율+장타율)가 2.275다. 유한준의 시즌 타율은 4할 4푼 7리까지 올랐다. 넉넉한 타격 1위다. 유한준은 "야구는 어려운 종목이다. 운이 좋았고, 다른 선수들이 잘해준 덕분에 내가 편안하게 타격할 수 있어서다"라고 말했다. 쉽게 믿기지 않는 타율 4할 4푼 7리를 만드는 비결은 엄청난 재능이나 눈이 번쩍 뜨이는 변화가 아니다. 변함없는 꾸준함과 이를 만드는 평정심, 야구에 대한 존중이 대기록을 만든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이 믿어지지 않는 결과 역시 변함없이 꾸준한 인내와 선동하지 않는 평정심, 상대에 대한 존중에서 비롯됐다. 깜짝 놀랄 만한 일들 대개가 이렇게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