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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일기

Journal Extime

 

[밑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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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여행을 하는 동안의 여정과 그때 그때 있었던 일들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크고 작은 사건들, 날씨, 철따라 변하는 우리 집 정원의 모습,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 운명의 모진 타격, 흐뭇한 충격따위를 노트에 적어두는 습관이 있었다. '일기'라고 부를 수도 있을 이것은 내면의 일기 journal intime'와는 정반대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에 '외면일기 journal extime'라는 이름을 만들어 붙여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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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나온 김에 미셸 뷔토르의 생각을 언급해두는 것도 좋겠다. 그는 'exploration(답사)'과 'imploration(탄식)'을 서로 대립시킴으로써 나의 '외면일기'보다 더 나은 착상을 선보인 바 있었다. 전자는 발견과 획득 같은 원심적인 운동에 해당되는 것이다. 반대로 탄식이란 앙드레 말로가 말했듯이 우리의 '자질구레하고 한심한 비밀들의 무더기'를 들여다보면서 눈물로 엄살떠는 것과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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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 고안, 창조. 이 세 가지 과정 사이에는 심오한 친화력이 있다. 고안 inventer은 어원적으로 '향하여 나아가다 invenire', 즉 발견하고 창조한다는 뜻이다. 법률용어로 보물을 '발견'하는 사람을 그 보물의 '고안자 inventeru'라고 부른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그가 개입하기 전까지는 그 보물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소급효력을 가지면서 그것을 존재하게 하는 것은 바로 그의 발견이다. 고장의 풍경들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것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없었더라면 그것들은 과연 존재했을 것인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이전의 아메리카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이 새로운 땅들은 '발견자'의 정신과 영혼에 힘입어 그와 같은 모습을 갖게 된 것이 아닐까? 이것은 작은 문제도 새삼스러운 문제도 아닌, 인식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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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해의 시작을 구실 삼아 그동안 소식을 듣지 못한 몇몇 친구들에게 내 모습을 드러낸다. 친구를 잃어버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다시 접촉하는 주도권을 그에게 맡겨두는 것이다. 그러면 머지않아 그가 꼼짝도 하지않게 되는 날이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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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점점 들리지 않는다. 적당한 기계를 맞출 생각으로 보청기상과 만날 약속을 해놓았다. 그래놓고는 자꾸만 약속을 연기한다. 혼자 속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과연 남들이 하는 얘기를 듣는 게 그리도 중요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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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정원에서 괴물처럼 엄청난 덩치로 자라버린 코카서스 산 어수리나무를 보고 어떤 여자 친구가 한 말이 생각난다. "당신이 그렇게 사랑하니까 그렇죠. 이 나무가 그걸 아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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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기가 젖어서 물렁물렁한 정원의 땅바닥에 첫 번째 사프란 속이 돋아나 보라색 꽃잎을 펼친다. 아직 잎이 돋지 않은 헐벗은 나뭇가지들 속에서 꾀꼬리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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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프레베르 : "만약에 물고기가 이름을 붙였더라면 대지를 바다라고 불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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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M이 내게 하는 말  "아름다움의 정의는 간단해. 그건 다름이 아니라 우리를 절망하게 하는 것, 바로 그거야." 그 말에 추가하여, 흔히들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아름다움은 아주 흔한 현상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길거리에 나서기만 하면 어디서나 아름다움과 마주치게 되니 말이야 장 보러 나가는 날이면 나는 언제나 세바스티엥 성인처럼 사랑의 화살을 온 몸에 맞고 돌아오거든." 이제부터 나는 장 보러 나갈 때 언제나 그와 함께 가기로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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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하는 말로 "한쪽 발을 무덤 속에 담고 있다."는 것은 병들어 아프다는 뜻이라기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반을 땅 속에 묻었다는 뜻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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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나드 쇼 :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마라. 그들의 취향이 당신과 똑같은 것이라는 증거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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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님이 말한다. "나는 이제 어둠이 어떤 것인지 알겠다. 그대가 내 몸을 더 이상 건드리지 않을 때 그것이 어둠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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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빅토르 위고와 보들레르에 대한 폴 발레리의 다음과 같은 평가를 상기한다. "위고는 물론 보들레르보다 더 위대한 시인이지만 보들레르는 빅토르 위고보다 더 중요한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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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슈테른 Stern>지의 한 기사는 '불굴의 사람들'이라는 제목 하에 어떤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그 기사에 따르면,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가장 강한 성인들은 병약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니체가 한 말이 그대로 증명되었다고 하겠다. "나를 죽이지 않는 모든 공격은 나를 강하게 만들어준다."고 그는 말했었다. 면역학의 원리가 그러하다. 즉 백신은 나에게 죽지 않을 정도의 공격을 가함으로써 나를 강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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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발레리의 플레이아드 전집 제1권에서 문득 [물의 예찬]이라는 멋진 텍스트를 발견한다. 문학의 어떤 드높은 경지를 보여주는. 그런데 그 글에 대한 주석이 달려있어 읽어보니, 그 글이 페리에 광천수 회사에서 발레리에게 청탁한 광고문안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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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노출된 빙산의 일각과도 같은 얼굴은 말을 하고 거짓말을 한다. 다른 여러 기관들과 더불어 의복 속에 숨겨져 있는 거대한 덩어리인 몸은 빙산의 잠겨 있는 부분이다. 그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바로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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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트 크레송 수상은 프랑스는 개미떼들의 사회라고 할 수 있는 일본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고 천명함으로써 세상 사람들이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일본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를 만난 기회에 나는 그에게 우리 수상의 그 같은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대답하기를, 자기도 그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고 그래서 즉시 개미에 관한 곤충학 전문서적들을 자세히 읽어보았다고 했다. 그 결과 그는 개미들에게 과연 일본인 군중들에게 찾아볼 수 있는 한 가지 특징을 주목해볼 수 있었다. 즉, 곤충학자는 피상적인 관찰자들이 자칫 잘못 보기 쉬운 점 한 가지에 대하여 지적하고 있다. 부산하게 우글대는 개미집을 보면 저마다의 개미가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대다수의 개미들은 일정한 목적도 없이 그냥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이게 바로 일본인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오에는 말한다. 치열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환상을 주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다.

 

+21

어떤 기자를 앞에 앉혀놓고 나는 영혼을 중심으로 동심원을 이루는 몸, 집, 정원, 돈이라는 네 가지 건강에 대한 이론을 전개한다. 아주 섬세한 이론은 못되지만 매우 편리한 성찰과 결산의 공식이라고 할 수 있다.

 

+22

나는 어떤 학교의 어린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매일 큼지막한 공책에다가 글을 몇 줄씩 쓰십시오. 각자의 정신상태를 나타내는 내면의 일기가 아니라, 그 반대로 사람들, 동물들, 사물들 같은 외적인 세계 쪽으로 눈을 돌린 일기를 써보세요. 그러면 날이 갈수록 여러분은 글을 더 잘, 더  쉽게 쓸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특히 아주 풍성한 기록의 수확을 얻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눈과 귀는 매일 매일 알아 깨우친 갖가지 형태의 비정형의 잡동사니 속에서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골라내어서 거두어들일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사진작가가 하나의 사진이 될 수 있는 장면을 포착하여 사각의 틀 속에 분리시켜 넣게 되듯이 말입니다."

 

+23

정원은 석양빛에 물들어 고요하게 빛난다. 그 이탈리아 기자는 온통 우수에 잠긴 표정이다. 내 말 : "우리가 가진 인터뷰가 맘에 안 드시나요? "아뇨, 맘에 안 들 리가 있나요. 그건 그렇지만, 그냥... 아름다운 것은 마음을 쓸쓸하게 하거든요." 나는 그 아름다운 것이 나인지, 내 아프리카 이야기인지, 아니면 정원인지 묻는다. 그는 나를 향해 고개를 들면서 난처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24

박쥐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생쥐가 소리친다 : "오, 천사로구나!"

 

+25

영감을 받은 작가란 곧 자기 자신의 텍스트에 의하여 추월당한 작가다.

 

+26

원하건 원하지 않건, 우리 자신이 의식적으로 전혀 개입하지 않은 채로, 삶이란 '여러 시기들'의 연속이다. 규칙적으로 하나의 시기가 끝나면 또 하나의 시기가 시작된다.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것이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 심각한 병, 직업의 변화, 이사, 절교 등등. 흔히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한 페이지가 넘어갔다"는 것을, 분위기가 변했다는 것을 의식하게 된다.

 

+27

아를르에 살던 잔느 칼르망이 123세에 사망하다. 그녀는 인류의 장로다. 특별한 섭생법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분별 있게 살아야지요. 그래서 나는 114살 때 술과 담배를 끊었어요."

 

+28

우리 마을 정육점 주인 : "투르니에 씨, 나처럼 진짜 당신을 잘 아는 처지라면 당신이 쓴 책 같은 것은 안 읽어도 되는 거죠. 안 그래요?"

 

+29

주여, 엄청난 사랑이 찾아와서 저의 삶을 비추어 뒤죽박죽을 만들어놓도록 해주소서! 마음의 고요와 한여름의 고요 속에서 나는 이 기도를 드리자니 가슴이 떨린다. 내 소원은 그것이 열렬한 것이기만 하면 결국 이루어진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 30

너는 내게 말한다. "천만의 말씀. 네가 사라져버린다 해도 세상 사람들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그랬듯이 계속해서 다양하고 혼란스러운 삶을 영위할 것이다."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는 세상의 과거가 있었다. 내가 죽은 뒤에는 세상의 미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과거, 그 미래는 세상의 현재가 그렇듯이 마찬가지로 내 머릿속에 있을 뿐 다른 어느 곳에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목이 떨어져버린다면 모든 것이 다 무無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나야 사라져버릴 용의가 있다. 그러나 세상과 인류 전체가 그와 동시에 무의식 속으로 무너져내린다면 솔직히 말해서 나는 마음을 달랠 길이 없을 것이다.

 

#31

쥘리엥 그린과 점심식사. 우리는 블랙 유머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는 어떤 미국 일간지에서 읽은 그 잡보 기사를 인용한다. 센트럴 파크에서 강간, 살해당한 한 젊은 여자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그녀의 핸드백에 일기장이 들어 있었다. 그 전날 일기에서 그녀는 아무 일도 일어나는 법이 없는 자신의 무미건조한 생활을 한탄하고 있었다.

 

#32

루브르에 가다. 전세계의 각종 사람들이 뒤섞인 그 군중 속에서 걸작 미술품으로부터 눈을 돌리게 하는 매혹적인 얼굴들을 주목하게 된다. 마침내 나는 다음과 같은 생각에 도달한다. 이렇게 '매혹적인 얼굴들'은 다른 어느 곳에서보다 이곳에 더 많이 있고 더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그런 얼굴들을 유난히 드러나게 하고 어느 면 그 얼굴에 '불을 붙이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그 걸작품이 아닐까?

 

#33

[니벨룽겐]에 대하여 이야기해달라는 요청이 있어 독일 TV방송국을 찾아가다. 지그프리드는 용을 정복하고 그 피로 목욕함으로써 공격을 받고도 끄떡없는 피부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나무 잎사귀 하나가 그의 어깨 위에 떨어져 그 자리의 피부는 상처 입기 쉬운 것이 되고 말았다. 그의 살해자는 바로 그 부분을 겨냥한 것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여러 가지 시련들을 극복하고 이겨서 경험을 통하여 이렇게 공격을 받고도 끄덕없는 힘을 갖게 된다고 나는 말한다. 그러나 흔히 인간은 여전히 취약한 곳을 지니고 있는 법이어서 그 때문에 파멸하고 만다. 마약, 알코올, 돈, 섹스 같은 것이 바로 그런 취약점이다. 정치는 매년 우리들에게 그런 예들을 보여준다. 기자가 내게 묻는다. "그럼, 선생님, 선생님의 취약점은 어디인가요?" 나는 용의 피로 목욕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신의 모든 곳이 다 상처받기 쉬운 취약점이라고 나는 대답한다.

 

#34

"여러분들 앞에 빈손으로 나올 수 없기에 나는 우선 여러분들에게 신학자 앙젤뤼스 슈와젤리스(미셸 투르니에가 스스로 지어낸 신학자의 이름. 즉 자신이 살고 있는 슈와젤의 천사, 즉 작가 자신을 가리킨다.)의 격려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즐겁게, 신명나게 삶과 사랑과 죽음의 모험에 찬 여행을 도모하라, 그리고 안심하라, 그대가 비틀거린다 할지라도 그대는 하나님의 손보다 더 낮게 쓰러지지는 않으리라."

 

#35

"너 자신을 알라" 세상에 나 자신보다 더 재미없는 것이 또 있을까?

 

#36

작품의 작자야말로 그 작품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가장 부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분명히 작품의 가치는-그것이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제로에서 무한대 사이의 어떤 지점에 위치한다. 그런데 그 작품의 작자는 바로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작품을 때로는 제로의 수준으로, 때로는 무한대의 수준으로 보는 것이다.

 

#37

컴퓨터는 미래의 사회에 위험요소일 것인가? 내 생각에 가장 재능 있는 인간들보다 더 지능적인 컴퓨터가 그 능력을 이용하여 세상사를 이끌면서 인간을 노예로 만들 위험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요컨대 로봇이 이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만약에 그 로봇이 인간들 중에서 가장 현명한 이보다 더 현명하다면 말이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위험은 다른 곳에 있는 것 같다. 컴퓨터가 지는 초인적인 수준의 유일한 능력은 다름 아닌 기억이다. 그런데 과거의 축적은 어느 한도까지는 중요한 장점이지만, 무거운 짐이요 자연이 현명하게도 각 새로운 세대마다 제거해버리는 저장탱크 밑의 침전물 같은 것이기도 한 것이다. 부모의 지식들은 자식들에게 유전적으로 대물림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프랑스의 법률제도에는 장차 컴퓨터가 가져올지도 모르는 재난을 어렴풋하게나마 예시하는 혐오스러운 관습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전과기록과 신청 즉시 그 증명서를 발부하는 제도다. 그 제도 덕분에 유죄판결을 받고 형을 치른 사람은 계속하여 그 전과를 꽁무니에 달고 다니게 됨으로써 결국은 실업과 재범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어떤 로봇이 우리들의 모든 행동, 모든 말을 기록하여 그 무시무시하고 위협적인 중압을 우리 앞에 끊임없이 들이댄다고 할 때 우리들의 삶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모든 것을 지워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능력은 한없이 귀중한 것으로 그것은 어린아이의 탄생, 더 비근한 경우로는 밤에 잠이 들었다가 이른 아침에 깨어나는 일 속에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완전한 망각의 자질, 절대적 기억상실의 능력을 지닌 인간은 불멸의 인간이 될 것이다.

 

#38

'사랑의 슬픔'이라는 것을 말할 때 생각하게 되는 것은 다만 사랑하면서도 사랑받지는 못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상대방은 무엇이든 다 줄 태세로 사랑하고 있는데 이쪽은 그저 막연한 연민의 감정 이외에는 아무것도 갚아줄 것이 없는 사람의 씁쓸한 감정을 무엇이라고 표현해야 좋은 것인가? 상대방의 풍요로움 앞에서 느끼는 이 엄청난 낭패감, 이 수치심, 이 비참한 기분의 씁쓸함을 누가 알랴?

 

#39

J.S 바흐가 하프시코드 연주나 피아노 연주에 있어서 엄지손가락 사용을 처음 도입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이전에는 누구나 다 네 손가락으로만 연주했던 것이다. 

 

#40

데생은 이차원의 조각이다. 삼차원은 선 속에 숨어서 그 모든 역동성을 확보해준다. 사실 대다수의 위대한 조각가들은 동시에 탁월한 데생 화가였다 미켈란젤로(식스틴 대성당의 천정화는 회화보다 데생으로 인하여 더욱 두드러진 것이다.), 로댕, 마이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