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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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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배움을 가능하게 하는 비판적 성찰이란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묘사적 단계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 소위 상식적인 신념이나 자명하다고 생각하는 경험 법칙 등 다양한 정황들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우리의 지식, 이해, 전제 등을 묘사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묘사한 것들을 비판적으로 점검하고 분석하는 분석적 단계이다. 이 분석적 단계에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이해, 감정, 전제들의 적절성 또는 부적절성을 살펴보고, 왜 그런가 하는 이유를 생각해본다. 근원적인 물음들, 즉 '뿌리 질문 root question'을 던지면서 분석하고 조명하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비판적 단계'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것에 물음표를 붙이면서 그러한 이해, 지식, 전제들을 묘사하고 정말 적절한 이해인지를 다양한 관점으로 들여다보는 앞선 두 단계를 거치고 난 후, 새로운 대안적 이해나 전제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이러한 세 단계를 거치면서 우리는 우리의 일상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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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배움이란 '변혁적 배움transformative learning'이다. 변혁적 배움은 '나'와 '우리'의 생활 속에서 일상화된 비판적 성찰의 과정을 통해서만이 가능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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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마스 크바스토프)가 지닌 '육체의 장애'가 그의 존재를 규정하는 우선적 표지 marker가 되지 않는 삶을 창출해온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늘 진실하라. 자신이 아닌 어떤 사람의 모조품이 되지 마라. (...) 눈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발자국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Stay true to yourself. Don't be an imitation of someone else. (...) I have to make my own footsteps in the snow."

"한 사람의 진정성은 냄새가 난다 You can smell the authenticity"

 

+1017

미소란 실제적인 미소이기도 하고 메타포로서의 미소이기도 하다. 무작정 어느 상황에서나 웃기만 하라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인간성을 상실하지 말아야 한다는 철학적 의미를 지닌 메타포로서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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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침 조깅을 하며 내 앞에서 오던 이가 "해피 튜스데이Happy Tuesday"라고 말하면서 환한 웃음과 손짓까지 보내며 지나간다. 머릿속에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걷던 나에게 이 삶의 명랑성이 듬뿍 담은 "해피 튜스데이"가 내 마음을 환하게 해주는 것을 느꼈다. 이 사람의 인사로 '봄이구나'하는 생각을 돌연히 하게 된 것이다. 이 사람은 자신의 그 명랑성과 지순한 웃음으로 누군가에게 봄의 도착을 느끼게 함으로써 마음을 환하게 해 주었다는 것을, 그리 이 글을 쓰게 하였다는 것을 전혀 모를 것이다.

 

+1019

인터뷰가 시작되면서 찰리 로즈가 평상적인 인사말인 "어떻게 지내십니까How are you?"를 힐러리에게 물었다. (...) 말 잘하기로 유명한 힐러리 클린턴이 이 너무나 통상적인 질문 앞에서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송 인터뷰에서의 '침묵'이란 때로는 무수한 말보다도 강렬한 언어로 남는다는 것을 나는 그 순간 처음 경험했다. (...) "나는 매일 아침 침대에서 눈을 뜨면 나 자신에게 묻습니다. '자, 힐러리. 오늘 어떠한 자신을 선택할 것이지? 주변에 불만을 터뜨리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냉소적인 힐러리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네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가장 최선을 다하여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힐러리를 선택할 것인가?' 그리고 나는 매일 아침 냉소적인 힐러리가 아니라, 이 삶을 인정하고 긍정하는 힐러리를 선택합니다."

 

+1020

우리 삶의 조건들 속에 은닉도니 다양한 불평등의 구조와 문제점에 대한 예민성의 끈을 놓치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 불완전한 삶의 조건들 속에서도 '당당한 명랑성'으로 자신의 고유한 목소리를 내면서 살아가는 연습을 하는 것도 참으로 중요하다.

 

+1021

자크 데리다 - "종교란 책임성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한 말은 사실상 예수가 자신의 삶과 가르침으로 가장 분명하게 제시한 구원의 단서를 가장 잘 표현했다고 나는 본다..

 

+1022

한집에 사는 것은 아니고 아들이 자기 집 근처에 사는데, 회사 가기 전에 이렇게 아침마다 자기에게 와서 같이 산책을 한다고, 그래서 참 좋다고 고운 미소를 띠고 '자랑'하신다.

 

+1023

'장소place'는 고정되어 있지만 '공간 space'은 언제나 새롭게 창출되고 의미 부여가 이루어지면서 형성된다.

 

+1024

'친구 관계'를 포함해서 모든 여타의 관계에 자신을 헌신한다는 것은, 둘 중 한 사람은 언제나 다른 친구의 '죽음'을 경험하게 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함을 의미한다. 그 누구도 동시에 죽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인간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전보다 더욱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기기를 바란다. '자기 사랑'을 배우고 연습하지 않으면, '타자 사랑'을 하는 법도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자기 사랑'이란 자동으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배워야 하고 연습해야 하는 것이다.

 

+1025

인간은 끊임없이 '의미 물음'을 하는 존재이다. 생족하기 위한 물질적 토대가 마련된다고 삶의 의미 충족이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인간만이 자살을 하는 동물인 이유이다.

 

+1026

인간은, 특히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하려는 이들은 두 가지 통로, 즉 '말'과 '글'로 명확히, 설득력 있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타인들에게 전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글쓰기와 말하기로 지적 훈련을 하는 것이 이 과제의 목표라는 설명을 반드시 학기 초에 해준다.

 

+1027

데리다가 "칸트는 읽을 때마다 언제나 처음이다"라는 말을 했듯이 (...) 누군가를 '온전히 아는 것'은 언제나 불가능한 일임을, 그리고 언제나 그 '알지 못함. 알 수 없음'의 영역을 남겨놓고 타자를 받아들여야 함을 그 특유의 웃음으로 나지막이 말한다.

 

+1028

환대, 정의 , 사랑, 이 가치를 구체적인 삶의 정황에서 실현해내려고 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는 신의 현존을 순간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는 것.

 

+1029

강의실에서, 또는 연구실에서 나와 마주하고 있는 그들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노라면, 그들이 지닌 다양한 다름이 절대적인 배타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평범한, 그러나 무수히 외면되고 왜곡되는 진리와 조우하게 된다. 도대체 누가 어떠한 기준으로 이 생생한, 살아 있는, 절절한 생명으로서의 '얼굴'들을 부정하고 배제할 것인가.

 

+1030

동일한 책을 읽는데 학생들이 각기 가져오는 주제와 개념은 모두 다르다는 것, 그것은 우리 각자가 지닌 독특한 시선과 관점, 그리고 삶의 정황이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학기가 진행되면서 그들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성숙해지기도 하고 그들이 가진 인식의 세계가 확장된다는 사실을 나는 매 학기마다 감동스럽게 경험한다. 그 누구도 지금의 모습으로 절대화되어 결정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 그 '비결정성'이 인간이 지닌 가능성이며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특히 데리다 수업을 할 때마다 절감한다.

 

+1031

사회변화를 위한 열정은 구체적인 '얼굴들'을 늘 기억하면서 유지되어야 한다고 나는 본다. 그렇지 않게 될 때 끊임없이 타자를 악마 화하고 자신은 의인화하면서 사람을 집단이나 이슈로밖에 보지 못하는 독선에 빠지게 된다. 인간화의 이름으로 비인간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곤 하는 것이다. 변화와 정의의 이름으로 사실상 자신의 내면적인 권력 확장의 욕망을 은닉하곤 하는 이들은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대체 불가능한 개별적인 '얼굴'들을 기억하지 않는다.

 

+1032

유토피아u-topia는 '아무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장소 no place'를 의미하는 것으로 애초에 '불가능한 세계'를 예시하곤 한다. 그러나 카를 만하임 Karl Mannheim은 두 종류의 유토피아가 있음을 분명히 한다. 하나는 '절대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유토피아 absolutely unrealizable utopia'이고 또 다른 하나는 '상대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유토피아 relatively unrealizable utopia'이다. 인간의 역사에서 끊임없는 변혁을 가능하게 했던 동력은 바로 이 '상대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유토피아'적 정신이다. 그래서 이러한 유토피아적 정신을 억누르거나 그 정신이 아예 부재한 사회는 더 이상의 변혁이 불가능한, 절망의 사회이다.

 

+1033

한국, 미국, 또는 국제 여성운동 단체에서 일을 하면서, 인간이 지닌 이기성, 명예에 대한 욕망, 권력에 대한 집착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모두 지니고 있다는 것을 무수히 경험해왔다. 이러한 실천적 경험을 하면서 여성이 남성보다 덜 이기적이고 평화를 사랑하며 생명을 사랑하는 존재biophilic이고, 남성은 폭력적이며 죽음을 사랑하는 존재 necrophilic라고 보면서 여성에 대한 이상화와 미화를 이론화하는 그 어떤 이론에도 비판적이 되었다. 이러한 인간의 이기성 표출은 인종차별, 성소수자 차별에 저항하는 단체 등 여타의 모임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난다. 특정 집단의 이상화, 낭만화, 또는 미화는 '인간이 누구인가'에 대한 복합적인 이해가 결여된 것이다. 사회적 차별과 억압의 대상이라고 해서 그 집단이 선과 악이 상충적으로 공존하고 있는 '인간의 조건'을 초월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 인종, 성적 성향, 종교 등 다양한 형태의 차별과 억압에 반대하는 것은 그들과의 동질성에 근거해서가 아니다. 그러한 차별과 억압은 '너, 그들'뿐 아니라 '나, 우리'의 삶을 일그러지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앨리스 워커 Alice Walker가 그녀의 <컬러 퍼플>이라는 소설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지요." 누군가가 '저편'에서 차별받고 있는 것은 결국 '이편'의 삶도 일그러져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1034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다양한 차별적 언어 생활과 행동들을 하고 있다는 시실. 그래서 끊임없이 배우고 자신을 훈련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1035

여성의 날, 어린이날, 장애인의 날 등 이러한 특정한 그룹을 지칭하는 '특별한 날'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면서도, 거기에는 여전히 어두운 이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사실이다. 여성, 어린이, 장애인 등과 같은 '집단'은 여전히 주 변화된 존재로서 살아가고 있으며, 그렇기에 '특별한 날'에 '특별한 관심'을 주어야 한다는 토크니즘 tokenism의 이면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토크니즘 tokenism : 사회적 소수자에게 실제로는 실질적 힘을 주지 않으면서, 소수자를 포용하는 행위 자체가 힘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한다고 이해하는 것, 혹은 그러한 관점에서 비롯된 관행을 말한다.

 

+1036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의 '헤게모니 이론'은 어떻게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의 '자발적 동의'에 의하여 자신의 헤게모니를 유지하는가를 예리하게 분석한다. 이러한 그람시의 분석은 어떻게 폭력의 희생자들이 표면적으로 가해자들에게 '자발적 동의'를 주면서 그 폭력적 상황 속에서 지속적으로 살아가는가를 들여다보도록 한다.

 

+1037

"작은 변화가 큰 차이를 만든다"

 

+1038

그들에게 '보이는 장애'가 있는지 모르지만, 사실상 장애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지니지 못한 다른 다양한 '능력'들을 지니고 있는 이들이라는 'differently abled'라는 표현이 현재로서는 가장 바람직한 것 같다. 나는 이 'differently albed'라는 표현이 단순히 긍정적으로 표현해주기 위해서인 것이 아님을 나와 박사과정 때부터 친한 친구이며 교수로, 작가로 사는 친구를 통해서 분명히 알게 되었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교수를 하고 있던 그녀의 집에서 며칠을 함께 지낸 적이 있다. 그 며칠 동안, 한쪽 다리만으로 사는 나의 친구가 두 다리가 있는 나보다 참으로 멋지게 잘하고 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체험한 이후로 이 표현이 지니고 있는 의미가 여러 가지 점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체득하게 되었다.

 

+1039

다양한 폭력의 현실이 일상이 되어버린 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사실상 '냉소주의적 무관심'이다. 그래서 "무관심은 인류에 대한 범죄의 시작이다"라는 자크 데리다의 말은 이 시대에 더욱더 중요한 통찰로 다가온다. 

 

+1040

"멘토는 없다"는 나의 이 선언은, 다른 말로 하면 "제1의 멘토를 자기 삶에서 갖고 싶다면, 자신이 그 제1의 멘토가 되도록 끊임없이 자신을 훈련시키라"라는 것이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지도 없는 여정'을 가는 것과 같다. 한 개별인의 삶은 누군가가 제시하는 매뉴얼에 의해 움직이거나, 다른 사람이 그린 '삶의 지도'를 그대로 따라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041

자신이 스스로의 멘토가 되기 위해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치열한 읽기, 비판적 사유하기, 그리고 복합적 판단하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 자신만의 고유한 삶의 지도를 그려나가는 것은, 나 아닌 '외부자 멘토'에 의해서가 아니라 '치열한 독학'을 통해서 해야만 하는 이 삶의 엄중한 과제이다. 

 

+1042

도대체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인가. 산업사회가 도래하면서 이러한 비인간적 고립 사회를 많은 이들이 오래전부터 예견하였다. 이러한 고립 사회에서 종교, 철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주요한 과제는 무엇일까, 나는 '우분투 ubuntu'정신을 상기시키고 실천하고자 하는 열정을 끊임없이 촉구하는 것이라고 본다. 우분투는 아프리카 응구니족의 말로, 한 단어로 번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분투 철학은 "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로 인해 비로소 한 사람이다 A person is a person through other persons"라는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우리의 인간됨이란 타자의 인간됨과 분리될 수 없다는 의미이다.

 

+1043

인문학적 지신은 인문학적 성찰의 세 가지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나, 타자, 그리고 이 세계를 복합적으로 이해하면서, 자신의 고유한 관점을 형성하고, 자신의 관점을 갖고 다층적인 방식으로 이 세계에 개입하도록 하는 것이다. 단편적 '정보'와 인문학적 '지식'의 차이다. 소위 인문학적 소양이란 치열한 '왜'로부터 출발한다. '오'를 묻는다는 것은 비판적 사유와 분석을 필요로 한다. 

 

+1044

많은 이들이 삶의 해답을 원한다. 그런데 '절대적 해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해답은 부분적이고, 잠정적이며, 특정한 정황 속에서만 작동될 뿌닝다. 그래서 삶이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추구하고 잠정적 답을 모색하는 '여정'인 것이다. 어떤 종류의 해답을 찾고자 하든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자기 삶의 한가운데에서 치열하게 씨름하면서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내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질문들'과 만나는 것이다. 자신만의 질문이 없을 때, 이 유행의 물결에서 만나는 사상가, 이론들은 오히려 '무엇인가 얻었다'는 환상만을 심어줄 뿐 자신의 삶에 아무런 의미를 남기지 못한다. 자신만의 물음, 질문이 없는 이가 자신에게 의미가 되는 해답부터 찾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은가.

 

+1045

내가 리더leader와 매니저 manager의 차이를 구분하는 하나의 방식이 있다. 타자와 사물을 '보는 방식 mode of seeing'. 매니저의 주요 업무는 현상 유지인 반면, 리더는 단순한 현상 유지가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의 세계를 동시에 보아야 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리더는 언제나 두 축 사이에 서 있어야 한다. '지금의 세계, 현실 the world as it is'과 아직 오지 않은 그러나 '와야만 하는 세계 the world as it ought to be'라는 두 축.

 

+1046

그런데 진정 고향은 이렇듯 지리상의 물리적 공간하고만 연결되는 것일까. 오래전 어느 시를 읽다가 "나는 나의 고향에서 망명 중이다 I am in exile in my home"라는 구절이 나의 마음에 충격처럼 와 닿은 적이 있다.

 

+1047

빅토르 위고Victor Hugo의 말과 같이 "모든 땅을 자신의 고향으로 보는 사람은 이미 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전 세계를 하나의 타향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완벽하다. 예민성을 지닌 사람 The tender soul은 이 세계의 한 곳에만 애정을 고정시켰고, 강한 사람은 모든 장소로 애정을 확장했고, 완전한 사람은 자신의 고향을 소멸시켰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1048

'고향 떠남'이라는 메타포는 어느 특정한 공간에 대한 자신의 소유 의식을 버린다는 '탈 영토화'의 의미이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공간의 구성원 개개인의 다양한 존재 방식을 긍정하고 수용한다는 의미이며, 자신도 타인의 환대가 필요한 것처럼 타자에 대한 환대의 의미를 실천해간다는 의미이다.

 

+1049

폴 틸리히 Paul Tillich는 그의 <존재의 용기>라는 책에서 인간은 세 가지 불안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 세 가지 불안이란 첫째, 죽음에 대한 불안, 둘째, 공허함과 무의미에 대한 불안. 그리고 셋째, 자신이 한 일들에 대한 죄책감과 그것들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비난에 대한 불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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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경험 glimpse exper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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