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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가로질러

[밑줄]

 

+909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1899년 베를린에서 쓴 시 <나의 기원인 너, 어둠이여>는 제목과 똑같은 행으로 시작된다. 우아하고 호기심을 자아내는 첫 행이다. 마지막 행은 다음과 같은 고백이다. "나는 밤들을 믿습니다." 

 

+910

세상이 고요해야 비로소 소리가 들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통찰은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생각들이 나의 내면의 밤 속에 있지 않다면 달리 어디에 있을 것이며, 그 생각들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단어들은 또 어디에 있겠는가.

 

+911

인간의 가슴속에는 두 개의 영혼이 깃든 듯하다. 한 영혼에서 인간의 선한 측면이 나오고, 다른 영혼에서 악한 측면이 나오는 것 같다... 개인의 낮-측면과 밤-측면은 둘 다 삶의 일부다. 그 두 측면의 공존은 지구가 자신의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면서 겪는 우주적 사건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자전하는 지구의 한쪽 면은 빛에 노출되어 있는 반면, 반대쪽 면은 아침을 기다린다.

 

+912

낮과 밤의 구분으로서의 세계 창조와 더불어 이성이 어둠에서 빠져나오는 모험이 시작된다. 태초에 어둠이 깊은 물 위에 뒤덮여 있었고, 그 어둠에서 세상의 모든 운동이 발생했다.

 

+913

저녁 어스름에서 시작하여 아침에 태양이 '떠오르면' 사라지는 어둠이 어디에서 오는지가 밝혀지기까지는 100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다. 이제 사람들은 태양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지구 표면에 있는 자신들이 회전하면서 밤을 향해 나아가고 더 나아가 낮에 이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여전히 태양이 '떠오른다'라고 말한다.

 

+914

달의 뒷면은 구덩이들로 뒤덮여 있으며 우주 공간에서만 볼 수 있다.

 

+915

'달의 어두운 면 the dart side of the moon'을 언급하는 사람은 달의 뒷면에는 관심이 없을 수 있겠지만 핑크 플로이드가 발표한 동명의 앨범만큼은 건너뛸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앨범 제목은 달이 아니라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의 재담에서 유래했다. 그는 모든 사람 각각이 달이라는 견해를 표명한 바 있다. 누구나 어두운 면이 있고, 그 면을 타인들의 시선 앞에서 감출 줄 알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달의 어두운 면>은 1973년 출시되어 5000만 장이 넘게 판매되었다. 

 

+916

검은색이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은 원래 다음과 같은 질문 때문이었다. 빛이 아니거나 빛을 내지 않는 대상을 사람이 대체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오랫동안 많은 살마들은 검은색을 빛의 부재로 규정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위대한 아이작 뉴턴의 시대에도 몇몇 과학자들은, 검은색 빛은 어떤 진동수도 가지지 않으며 따라서 물리학적인 의미에서는 아예 빛이 아니라고 추측했다. 현대 과학의 유명한 개념인 '블랙홀'의 바탕에도 똑같은 생각이 깔려 있다. 즉, 특정한 천체들의 이름인 '블랙홀'은 어떤 빛도 그 천체들을 벗어나 우리에게 도달할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917

밤하늘이 검게 보이는 것은 우주가 (끝이 없기는 하지만) 무한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주는 경계 boundary가 없지만 한계 limit는 있다.

 

+918

우주가 유한다하는 말은 무한히 펼쳐져 있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주 안에서 여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끝(경계)에 도달하지 않는다. 이 사정을 공의 표면 위에서 여행하는 사람의 경험에 빗댈 수 있다. 그 사람은 한정된 공간 안에서 움직이지만 끝에 도달하지 않는다. 요컨대 우주의 밤이 검은색인 것에 대한 정교하고 과학적인 설명은 우주의 기하학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그 기하학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1차 세계대전 중에 발표하여 우주론의 토대가 된 일반 상대성 이론의 귀결이다. 

 

+919

우리의 논의와 관련해서 상대성 이론의 핵심은, 이미 19세기에 알렉산더 폰 훔볼트가 '공간을 바라보는 것은 시간을 바라보는 것이기도 하다'라는 말로 표현한 통찰이다.

 

+920

밤하늘의 어둠이 보여주는 것은 과거의 불투명한 우주, 아직 불투명하던 시절의 우주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시절의 우주를 이루던 물질은 빛을 통과시키지 않았다.

 

+921

루돌프 키펜한의 말을 빌리면 "밤하늘의 어둠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별들이 영원한 과거부터 존재해온 것은 아니라는 사실과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이다.

 

+922

그러나 세상사가 늘 그렇듯이, 일단 불러들인 유령을 그렇게 간단히 떨쳐낼 수는 없다. 아인슈타인은 누구나 잘 아는 다음 사실을 경험했다. 말하는 사람은 말하기 시작할 때만 자유롭다. 일단 말을 해놓으면, 그는 자기 말의 노예가 된다.

 

+923

일찍이 19세기 말에 방사선이 발견되고 전파가 생산되었다. 또한 뢴트겐선(엑스선)은 보이는 빛 에너지보다 보이지 않는 빛 에너지가 더 많다는 것, 따라서 실재의 대부분이 어둠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이제 이를테면 화가로서 세계를 그대로 보여주고자 하는 사람은, 세계의 겉모습을 내놓지 말아야 했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보여주려는 사람은 세계를 지어내야 했고, 그렇게 추상화를 향한 길이 열렸다. 당시에 물리학자들도 (에너지에 관한 기이한 명제들과 에너지 요동들을 포함한 양자 이론의 틀 안에서) 대상들에 형태를 부여함으로써 대상들을 이해했다.

*1920년대 유럽이라는 시공간은 양자역학과 초현실주의를 동시에 탄생시켰다-김상욱

 

+924

불을 다루기 시작한 사람들은 난해한 질문들에 직면했다. 물질이 불타고 죽은 것들에서 살아 있는 불꽃이 피어오를 때,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불은 어디에서 나와서 어디로 사라질까?

 

+925

미술사에서는 유럽 기독교 문화가 밤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크 회화들에서 어둠은 능동적 요소로 등장한다. 이탈리어어 '키아로스쿠로 Chiaroscuro'는 이 특징을 표현하는 단어이며 '명암 회화'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빛에 노출된 대상을 주변의 어둠을 통해 강조하는 키아로스쿠로 기법은 20세기 사잔에까지 적용되었다.

 

+927

알다시피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소음을 통해 고요를 알아챈다. 사람들은 악마를 통해 비로소 신을 이해한다. 악은 선을 통해 비로소 의미를 얻는다.

 

+928

계몽주의는 사람들이 세계에 관한 합리적 질문을 제기하고 합리저으로 대답하면 확실한 앎을 얻을 수 있다고 당당하게 선언했다. 하지만 낭만주의자들은 어쩌면 이 선언이 사실에 관한 질문에만 타당하고 가치가 개입할 때는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계몽주의자들에게 상기시켰다.

 

+929

전자책 단말기 디스플레이는 파란색 LED를 사용하는데, 그 디스플레이가 현대인의 잠을 빼앗는다. 잠자리에서 전자책을 읽는 사람은 더 어렵게 잠들고 더 졸린 상태로 깨어난다는 것이 의학 연구에서 확인되었다. 파란색 LED의 빛이 눈에 미치는 영향은 코카인이 뇌에 미치는 영향과 같다. 즉, 그 빛은 눈을 흥분시킨다. 

 

+930

흥미로운 것은 지금도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어인이용 자장가다. 자장가 가사는 흔히 무의미한 문장들이어서 온갖 효과를 내지만, 피곤한 아이의 머릿속에서 꼼꼼한 생각이나 이해하려는 의지를 일으키는 효과만큼은 내지 말아야 한다.

 

+931

페터 폰 마트의 제안에 따르면, 괴테에게 잠은 "살아 있는 자의 근원적 재생력"을 상징한다. 그 재생력은 "육체적으로 병든 자뿐 아니라 영혼이 파괴된 자에게도" 효과가 있다. 

 

+932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서 동명의 주인공은 "비탄으로 뒤엉킨 실타래를 풀어주는 잠"을 언급한다.

 

+933

갈레노스는 꿈꾸는 사람의 생리학적 시스템이 어떤 상태인지를 그의 꿈에서 알아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꿈의 예언 능력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했다(그런 꿈을 '솜니아 Sommnia'라고 한다). 그러나 모든 꿈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방금 인용한 페넬로페의 말이 암시하듯이, 사람들은 아무 의미 없는 자연적인 꿈(이른바 '인솜니아 insomnia')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934

전설적인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기원전 6세기에 잠든 자아가 마주하는 세계에 대해서 숙고한 끝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꿈 해석자들이 명심해둘 만한 결론이다. "깨어 있는 사람들은 유일한 공통 세계를 가지지만, 잠들었을 때는 누구나 고유한 세계를 마주한다." 

 

+935

셰익스피어의 <소테트 43번>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내가 당신을 볼 때까지 모든 낮은 밤이며 / 꿈이 내게 당신을 보여주면, 밤은 밝은 낮입니다."

 

+936

1899년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저서 <꿈의 해석>이 나오면서, 꿈은 사소한 현상이거나 신적인 계시가 아니라 새로운 무의식적 질서를 보여주는 현상으로서 독자적인 탐구 대상으로 격상했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이론이 "잠든 세상을 휘저었다"고 확신했다. 칸트가 우리를 경험 세계가 선험적으로 창조된다고 가르치는 의식의 학교로 이끌었다면, 프로이트는 그 의식에 무의식을 보충해야 한다는 달갑지 않은 통찰을 안겨주었다. 무의식이 없으면 사람은 심리적 개별자로 존재할 수 없다면서 말이다.

 

+937

나는 레싱이 자신은 달걀을 낳을 수 없지만 달걀의 맛이 어떠한지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는 것을 안다. 그 말마따나, 철학자들이 어떤 이론이 자기 마음에 들고 어떤 이론이 안 드는지 말한다면 아무도 반발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론들의 발생을 설명하고 그 설명에 진실의 향기를 부여하고자 한다면, 철학자들은 마땅히 삼가야 한다. 

 

+938

자코브는 과학자 경력을 쌓아가는 동안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여러 번 던졌다. "어떤 필요 때문에 인간은 늘 이토록 열정적으로 세계를 탐구하고 세계에 관해서 질문하는 것이며 무엇 때문에 그런 활동에서 이토록 큰 재미를 느낄까?"

 

+939

자코브가 고민 끝에 도달한 멋진 결론에 따르면, 과학은 "인간이 신과 나란히 존립할 수 있기 위해서, 실재를 간과하지 않으면서도 쉬지 않고 새로운 세계들을 건설하기 위해서 찾아낸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자코브는 과학을 연구하고 박테리아의 생식에 관한 실험을 했지만, 나날의 활동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깨달았다. "나의 오랜 믿음과 달리, 실험 과학은 아는 것을 바탕으로 모르는 것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오히려 실험 과학은 관찰된 바를 상상도니 속성들을 통해 명확히 이해하는 것을 추구한다. 즉, 보이지 않는 것을 통해 보이는 것을 설명하고자 한다."

 

+940

그는 과학에 두 측면이 있다면서 그것들을 "낮 과학과 밤 과학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을 제안한다. "낮 과학은 톱니바퀴들처럼 맞물린 논증들과 강한 확실성을 갖춘 결과들을 내놓는다. 낮 과학의 위풍당당한 구조는 다빈치의 그림이나 바흐의 푸가에 못지않게 감탄을 자아낸다. 당신은 마치 프랑스풍 정원에서처럼 낮 과학 안에서 산책할 수 있다. 자신의 진보를 의식하고, 과거를 자랑스러워하고, 미래를 확신하면서, 낮 과학은 빛과 영광 속에서 전진한다." 반면에 밤 과학은 "맹목적인 방황이다. 밤 과학은 머뭇거리고, 비틀거리고, 부딪히고, 땀 흘리고, 소스라치며 깨어난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자신을 발견하려 애쓰며, 자신에게 조언을 구하고 끊임없이 새로 시작한다. 밤 과학은 말하자면 가능성의 제작소이며, 거기에서 가설은 단지 어렴풋한 직감, 어스름한 예감으로 머문다."

 

+941

자코브가 기존 경험의 본질을 깨닫기 위해 실험을 앞에 두고 한 행동은 요셉이 파라오를 앞에 두고 한 행동과 똑같다. 꿈꾸는 자인 자코브와 꿈 해석자인 요셉은 둘 다 눈을 감았다. 현대 뇌과학은 이 행동의 의미를 강조하고 정확하게 서술할 수 있을 따름이다. 뇌과학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눈을 감거나 손으로 가리는 등의 방법으로 시각피질(시작 정보를 처리하는 뇌 부위)의 활동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사람들은 내면의 연상에 더 잘 순응할 수 있다. 그런 내적인 연상은 오늘날 창조적 발상의 전제조건으로 여겨진다.

 

+942

빛을 전자기파로 해석하고 계산하는 데 최초로 성공한 맥스웰도 19세기에 '실재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발상 혹은 통찰은 어디에서 유래할까?'라는 질문을 화두로 삼았다. 그는 이 질문에 대한 견해를 시로 표현하고 '꿈나라에 대한 회상 Recollecton of a Dreamland'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 시를 의역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 안에 힘들과 생각들이 있지만, / 의식적인 행위의 흐름 속에서 / 자아가 숨어 있는 곳으로부터 / 그것들이 떠오를 때까지 우리는 그것들을 모르네. / 그러나 오가는 생각들과 / 의지와 이성을 침묵시키면, / 우리는 은밀한 깊은 곳에서 바위와 소용돌이를 감지할 수 있지."

 

+943

영혼 안에서 원형이 반짝일 때 인식하는 당사자가 만족과 행복을 느낀다는 것은 아마도 억지스러운 생각이 아닌 듯하다. 추측하건대 자코브, 아인슈타인, 밀리컨, 뮐러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자신의 앎을 의심하지 않은 것은 바로 그 만족감과 안정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944

원형을 거론하는 인식론은 총체적 시각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다. 총체적 시각은 방금 언급한 물체와 정신 사이의 간극을 마침내 메울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의미를 묻는 질문을 유물론적-자연과학적 틀 안에서도 다시 제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윤리 논쟁으로 가득 찬 우리 시대에 그 필요성이 점점 더 절실해지는 의미에 대한 질문을 말이다. 사람들은 의미 없이 살 수 없으며 살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945

만약에 악의로 가득 차서 악행을 저지르는 악한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다면 우리는 그들을 나머지 사람들로부터 분리항 제거하기만 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선과 악의 경계선은 모든 사람 각각의 마음속에 그어져 있다. 자기 마음의 한 부분을 기꺼이 제거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 알렉산드로 솔제니친 

 

+946

마크 트웨인은 인간은 어두운 뒷면을 지닌 달과 같으며 타인들 앞에서 그 뒷면을 감춘다고 말했는데, 이 말은 명백한 진실이다. 그는 뚜렷한 진실을 표현했다. 사람들의 은폐에도 불구하고 그 어두운 뒷면은 때때로 드러난다.

 

+947

선은 미디어의 관심을 받기 어렵고 집중 조명을 받기는 더욱더 어렵다는 점에서 불리한 처지다. 대중의 관심을 지배하는 것은 살인과 전쟁을 비롯한 악이다. 이 사실은 심지어 과학의 관점에서도 선은 따분하게 느껴진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948

오이켄 로트(1805~1976, 독일 시인)도 그런 악마를 묘사한다. 그는 한결같이 "한 사람 Ein Mensch"이라는 단어로 시작하는 수많은 시들 중 한 편에서 '악'을 다르면서 지나가는 말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막스 플랑크부터 원자폭탄 투하까지의 현대 물리 학사를 언급한다. 구체적으로 이런 대목이다. "한 사람이, 아직 전혀 위험하지 않게, 양자를(이해하기 어렵게) 설명한다. / 그 모든 것을 눈여겨본 또 다른 사람이 / 방사능을 연구하고, / 세 번째 사람은, 여전히 해롭지 않게, / 우라늄에 비밀이 숨어 있다고 추측한다. / 네 번째 사람은 원자핵을 쪼갠다는 생각을 / 외면할 수 없다. / 다섯 번째 사람은, 역시 여전히 선의로, / 그 힘을 당연히 평화적으로만 이용하려 한다. / 이들은 모두 잘못이 없는 듯하다. / 누구를 개별적으로 벌해야 할까? / 폭탄을 고안하고 이어서 제작한 / 일곱 번째 사람과 여덟 번째 사람이 아닐까? / 악한 자들 중에서도 가장 악한 자는 / 그다음에 감히 폭탄을 터트린 사람이 아닐까? 악마는 끝내 검거되지 않을 것이다. / 처음부터 악마는 사이에 숨어 있으니까."

 

+949

 우리 사회는 철학자 오도 마르크 바르트 Odo Marquard가 "발뺌 솜씨 die Kunst, es nicht gewesen zu sein"라고 부른 것을 실행하는 사람을 존경한다. 고발자를 전문가로 대접하는 것이 관행이 되었고, 심지어 일부 사람들은 그 관행에 따르는 것이 책임 있는 행동이라고 믿는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왜 우리는 해답을 제시하고 따라서 책임을 떠맡는 과학자를 존중하지 않게 되었을까? 왜 재판을 거는 사람이 칭송을 받을까?

 

+950

서양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도덕적이며 예절에 맞게 행동하는 사람을 이끄는 것은 감각 지각 Wahrnehmung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상대방의 유일무이성을 감각으로 지각하는 능력이 도덕의 원천이라고 보았는데... 개체의 특징들에 대한 감각적 지각이 도덕을 촉진한다는 생각이 옳다는 것은 우리가 동물을 어떻게 대하는지만 돌아봐도 알 수 있다. 잠을 방해하는 모기나 찬장 안의 파리를 죽이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개별적인 얼굴과 성격의 특징들을 알아볼 수 있는 동물, 심지어 개별적인 이름까지 있는 동물(예건대 고양이나 개)을 죽일 때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951

도덕의 원천은 내가 마주한 개별 인간의 특수성에 대한 감각 지각이다. 일반적인 것은 비현실적이며 나의 도덕을 차갑게 만든다.

 

+952

할리우드 영화산업은 1944년(그러니까 2차 세계대전 막바지)부터 수상하고 저열한 인물들을 등장시키고 인간과 세계를 음울한 색채로 묘사하는 '누아르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레이먼드 챈들러에 따르면 "길거리가 캄캄한 것은 밤의 어둠 때문만은 아니었다."... 1940년대 미국 문화의 음울한 분위기는 에드워드 호퍼(1882~1967)의 유명한 회화 작품 <밤샘하는 사람들 Nighthawks>에서도 나타난다. 이 작품은 1941년에 있었던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의 충격 속에서 제작되었다. 

 

+953

누아르 영화에서는 결국 정의와 질서를 회복하고 관객에게 행복한 결말을 제공하는 탐정이나 수사관이 등장하지 않는다. <밤샘하는 사람들>이래로 사람들은 위안 없는 어둠을 기쁨 없는 표정으로 응시했고, 그 어둠이 바로 자신이 사는 세계임을 이해했다.

 

+954

도덕은 본질적으로 이중 도덕이라는 점을 명심할 때만, 도덕에 희망을 걸어도 좋다. 이처럼 도덕의 분열이 불가피하다는 생각은 심리학자 노르베르트 비쇼프에게서도 발견된다. 비쇼프는 저서 <도덕 Moral>에서 도덕에 관한 견해들을 제시하는데... 비쇼프의 관심사는 "도덕의 본성, 도덕의 역동, 도덕의 그림자"다. 비쇼프는 책의 서두에서 도덕은 "인류의 가장 고귀하고 복된 성취들" 중 하나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도덕은 "가장 위험하고 무자비한 살인 도구"로 전락했다. "참혹한 자연재해에 목숨을 잃은 사람보다 도덕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이 더 많다." 

 

+955

이 간과할 수 없는 도덕의 양면성 때문에 많은 공인들은 물을 마시라고 설교하면서 술을 마시고, 음란 동영상을 낮에는 비난하면서 밤에는 소비하고, 소년의 성적인 과오와 소녀의 그것을 다르게 평가하고, 은행이 빚을 지는 것은 구조적 요인에 의한 것으로 관대하게 용인하면서 갚을 빚이 남은 개인들은 게으르다고 냉혹하게 비난하는 등의 이중 행동을 아주 쉽게 한다.

 

+956

약 100년 전에 그야말로 밤이 유럽을 덮쳤다. 어떤 이들은 그 시기를 "유럽의 Nacht uber Europ"으로 부르지만 역사책들은 1차 세계대전으로 칭한다. 그 전쟁의 참혹한 전투들에서 1700만 명이 사망했다. 1915년 러시아 화가 카시미르 말레비치(1879~1935)는 그 공포의 밤을 절실히 느꼈다. 그에게 그 밤은 죽음의 색깔로 나타났고 전쟁이라는 무의미한 무無로 인한 문화의 상실을 표현했다. 그 전쟁에서는 모든 참가자가 패배할 수밖에 없었고 실제로 온 세계가 패배했다. 말레비치는 <검은 사각형>을 그렸다. 크기가 가로 80센티미터, 세로 80센티미터인 그 작품은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마지막 미래파 전시회'에서 주목받았다. 처음에는 틀림없이 당혹스러웠겠지만 이미 세계적인 회화 작품으로 인정받은 지 오래인 <검은 사각형>은 관람자에게 대상 없는 카오스를 보여준다. 그 작품의 기원인 카오스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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