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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마음을 흔드는 건 다 카피다

남의 마음을 흔드는 건 다 카피다

[밑줄]

 

+997

남프랑스 어느 미술관 입구에 이렇게 쓰여 있다. "아무 일이 없을 때조차 무슨 일인가는 일어나고 있다." 카피를 쓰고 있는 일 중에도 매일 무슨 일이 일어난다. 화가 나고 울고 싶은 일들, 억울하고 얄밉고 답답하고 속상한 그런 일들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피노자의 이 경구를 떠올린다. 

징징거리지 마라.

화내지 마라.

오직, 이해하라

 

+998

나는 나 자신과 동료 선후배들을 오랫동안 그 관점으로 관찰해왔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놀라움은 그 자체로 하나의 능력이며,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도 놀라움을 찾아낼 줄 아는 사람과 놀랄 만한 대상에게조차도 심드렁한 사람의 성장 그래프는 시간이 갈수록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난다고.

 

+999

놀라움은 반드시 어딘가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부족한 앎을 돌아보게 만들어서 공부하게 하거나, 나는 못하고 그는 해내는 차이가 궁금해져 그에게서 어떤 태도를 배우게 한다. 그 시작에 '놀람'이 있다.

 

+1000

어떤 산책은 모든 책보다 낫다

 

+1001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책이 아니면 만날 수 없었던 숱한 마음의 파문과 생각의 일깨움을.

 

+1002

책은 저자가 가진 노하우와 사상의 집약체다. 그래서 책이 가지는 아우라는 다른 무엇과도 비교될 수가 없다. 그래서 시대가 아무리 달라졌다 하더라도 책의 권위는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책 많이 읽은 나쁜 놈들은 책의 권위를 나쁘게 쓴다. 많이 읽었다는 사실 자체를 자기 과시의 재료로 삼거나, 제 생각은 없이 책에서 가져온 말을 제 말인 양 쓰기도 한다. 

 

+1003

회의 내내 애써 참다가 마지막까지 참지 못한 게 잘못이라면, 난 그게 틀렸다고 생각해.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개입했어야 했어. 최대한 앞부분에서부터 상황을 여우처럼 통제했어야 한다는 거지. 받을 건 받아주고, 무시할 건 짐짓 지나치고 증폭시킬 만한 얘기는 좌중을 주목하게 해주고, 누가 키맨인지, 회의의 공기는 어떻게 시시각각 변해가는지, 빠르게 읽고 그에 맞는 구체적 대처를 해야 했어.

 

+1004

독서가 중요한 이유를 하나 더 들고 싶다. 판단과 협업을 잘하기 위해서도 독서는 필요하다. 카피를 쓴다는 게 처음엔 발상의 문제로 여겨지지만 일을 알아가면 갈수록 판단의 문제가 더 크다는 걸 깨닫게 된다. 손자병법이나 노자를 읽고 마음에 새겨 둔 밑줄들이 일의 우선순위를 판단하거나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할 때 더 큰 힘이 된다는 것이다.

 

+1005

그럴 수도 있겠지

우리의 삶에 정답이란 없는 것

오랫동안 꿈꿔온 사랑이 다를 수도 있겠지

 

+1006

프리젠터의 당위성을 나에게서 찾아야 한다. 손흥민을 보라. 골 찬스는 가만히 그라운드에 서 있다고해서 오는 게 아니다. 나에게 공이 올 거라 믿고 죽어라 달리는 자에게 오는 법이다.

 

+1007

혼자 있을 때 외로운 사람은 둘이 모이면 더욱 외롭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혼자 있을 때 생기발랄한 사람으로 있어 주세요.

- 이바라기 노리코의 詩

 

+1008

만일 광고를 젊은 비즈니스로 정의하는 것이 일면의 진실이라도 품고 있는 거라면 그것은 오직 우리 일이 지적 호기심 위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물리적 나이가 얼마나 새파란가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과 인간에 대해 얼마나 마음으로부터 알고 싶어 하는가의 문제. 그래서 새뮤얼 울먼(Samuel Ulman)의 시를 빌자면 광고야말로 '청춘'의 일이 아닐 수 없다.

 

청춘

청춘은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다.

그것은 마음의 상태다.

장밋빛 볼, 붉은 입술,

그리고 유연한 무릎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의지, 상상력의 질, 그리고 감정의 활력에 관한 것이다.

청춘은 생명이라는 깊은 샘이 지닌 신선함 그것이다.

본능적 욕망이란 소심한 것인데

용기가 기질적으로 이를 압도할 때

청춘이라 한다.

쉬운 것에 대한 사랑을 이기는 모험심,

그것을 청춘이라 한다.

때때로 청춘은 스무 살 청년보다

육십 먹은 사람 안에 존재한다.

아무도 단지 세월의 숫자만으로는 늙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이상을 저버림으로써 늙는다.

세월은 피부를 주름지게 하지만

열정을 포기하는 건 영혼을 주름지게 한다.

걱정, 두려움, 자기 불신은 마음을 굴복시키고

영혼을 먼지 상태로 되돌려버린다.

육십이든 열여섯이든

모든 인간의 마음 안에는

경이로움에의 이끌림,

다음은 뭘까, 삶이라는 게임의 기쁨이 무엇일까 하는

변치 않는 어린아이의 욕구가 있다.

당신 마음과 내 마음의 중심에

어떤 무선 기지가 있는데,

아름다움, 희망, 응원의 함성, 용기,

그리고 사람이라는 무한으로부터 힘을 수신하는 한

당신은 청춘이다.

안테나가 내려지고

당신의 영혼이 냉소의 눈과 비관의 얼음으로 덮일 때

설령 스물이더라도 당신은 늙었다.

그러나 안테나를 높이고

낙관의 전파를 잡아내고 있는 한은

팔십이더라도 젋은 채로 죽을 수 있는 희망이 있다

- 이원흥 역본

 

+1009

일 잘하는 사람은 언제나 소수였다. 그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잘했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겸손한 열정, 집요한 긍정의 소유자였다.

 

+1010

"문학이야 말로 뉴스다. 시간이 지나도 늘 뉴스로 남아있는 뉴스." -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1011

열입곱 켈리는 남자용 중고 청바지를 입고 기름때를 묻혀가며 아버지 일을 5년 동안 도왔다. 아버지는 배관공이었다. 소녀는 "이건 끈기와 품위를 요하는 일"이라며 "우리는 배관이라는 소우주에 혼돈을 일으켰다가 다시 질서를 창조한다. 인생은 오물을 받아들이고 그걸 청소하는 일련의 과정임을 배웠다. 세상은 자기 손을 기꺼이 더럽히는 이들이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역시 같은 열입곱 살인 앤디는 휴양지에서 청소 일을 한다. 새벽부터 쓰레기통 수백 개를 비우며 음식물 쓰레기에 옷이 젖고 들끓는 모기에 물리기가 일쑤였다. 하지만 그는 "덤프트럭을 몰고 뻥 뚫린 도로를 달리는 건 나를 자유롭게 해 준 최고의 경험"이라면서 "여덟 살 때부터 트럭에 빠져 온갖 지역의 쓰레기차를 보여주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6,000명의 구독자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가난한 이들의 거주지와 백인 부자들이 잠시 놀다 간 곳의 쓰레기는 확연히 달랐다. 쓰레기통은 누군가의 삶을, 사회를 보여주는 렌즈와 같았다"라고 했다.

뉴욕타임스가 소개한 2019년 가을, 명문대 입학이 확정된 10대들의 대입 지원 에세이들이다.(내용 참조 :조선일보 2019년 5월11일 기사)

 

+1012

카피라이터의 일이라는 게 날씨 같다. 어떤 제품과 브랜드를 만나 어떤 타깃을 향한 카피를 쓰게 될지 알 수 없고, 매일의 날씨가 다 다른 것처럼 모든 프로젝트도 다 다르다. 예산도 다르고 목표도 다르고 클라이언트의 성향도 다르다. 그러나 내가 있는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내가 가진 것으로 어디까지가 최선인지, 그것은 햇살과 눈보라가 아니라 나에게 달려 있다. 변화무쌍한 날씨에 투덜대지 않고, 변화무쌍한 날씨에 꼭 맞는 최선을 찾는 카피라이터, 나는 그를 '날씨의 인간'이라고 부르고 싶다.

 

+1013

한 십 년 가장 좋아했던 구두가 이제 그 명을 다한 듯. 너와 함께, 한 세월 이겼고, 졌고, 설랬고, 비틀거렸다.

물끄러미,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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