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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land애드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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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길비는 1951년에 메인(Maine) 주에 있는 작은 의류회사인 해서웨이로부터 중간 가격대 셔츠의 전국 광고 캠페인을 의뢰받는다. 오길비 자신이 <어느 광고인의 고백>에서 언급했듯이 적당한 규모의 광고주는 광고에 대해 너무 큰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에 업무를 방해하지 않는다. 오길비는 캠페인을 통해 애로 셔츠를 따라잡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해서웨이는 단지 3만 달러를 쓸 수 있는 데 반해 애로의 예산은 200만 달러다. 기적이 필요했다." 

기적은 안대에서 일어났다. 오길비는 광고에서 상류층의 기품과 세련미가 배어 나오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는 세련되고 콧수염을 기른 조지 랑겔(George Wrangell)이라는 모델을 기용했다. 당초 아이디어는 해적과 같은 안대를 착용시키는 것이었으나 너무나 이단스러워서 배제했다. 마침내 촬영 당일 스튜디오로 가는 길에 오길비는 "약국에 들러서 1달러 50센트를 주고 안대를 하나 샀다. 이 광고가 왜 성공했는지는 정확하게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오길비는 캠페인을 어떻게 전개해야 하는지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오길비는 이것을 '스토리 소구'라고 일컬었다. 건달패 같은 안대는 유별난 것이었고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독자들은 사진을 보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게 뭐야?" 그리고 카피를 읽는다. 덫에 걸린 것이다.

꿈을 실현시키는 몽상가로서 오길비는 해서웨이 캠페인을 카네기홀에서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거나, 오보에를 연주하고,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고야의 그림을 스케치하고, 트랙터 운전, 항해, 펜싱, 르누아르를 구매하는 등 자신의 자아를 발견하고 싶은 일련의 상황들 속에 적용시켜 재창조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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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에 롤스로이스를 광고주로 영입할 때도 오길비는 첫 번째 광고를 위해 26개의 헤드라인을 썼었다. 광고주가 선택한 것이 "시속 60마일로 달리는 동안 새 롤스로이스 안의 가장 큰 소음은 전자시계 소리였습니다. (At 60 miles an hour, the loudest noise in this new Rolls Royce comes from the electric clocks)"였다. 이 카피는 공교롭게도 25년 전 BBDO에서 만든 피어스 애로(Pierce Arrow) 자동차의 광고와 거의 일치했다. 오길비는 훗날 주장하기를 자신이 새로운 광고주를 위해 조사에 3주를 보냈으며 자신이 쓴 헤드라인은 어느 잡지 기사에서 영감을 얻었노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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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도, 어떤 경우에서라도 오길비의 헌신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오길비는 새로운 광고주를 수주할 때는 새로운 광고주에 대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경주해 공부한 것에 근거해 판단하며, 클로드 홉킨스처럼 판매에 직결되는 통찰력을 신봉한다. 오길비는 신이 그에게 준 모든 시간, 심지어 주말까지도 일하는 데 바쳤다. 그는 '열심히 일하다 죽는 법은 없다'는 그의 아버지의 말을 즐겨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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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이 흘러 오길비는 봄베이광고클럽에서 연설을 한 적이 있다. 거기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오길비 씨, 인도의 광고는 매디슨 애비뉴로부터 영감을 받았습니다. 도대체 매디슨 애비뉴는 어떤 것이며 그 근원은 무엇입니까?" 오길비는 대답했다. "겸손은 금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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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로 고담호텔(Gotham Hotel)에 자리 잡았던 웰스 리치 그린은 매디슨 애비뉴로 재입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치장할 시간이 없었다."고 웰스는 술회했다. "벽에 예쁜 포스터도 붙이고, 주위에 사이키델릭한 장식도 하고 대기실에는 믹 재거(Mick Jagger)의 <엄마를 본 적이 있나요?(Have You Seen Your Mother, Baby?)>를 틀어 놓고 싶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웰스 리치 그린이 채용한 젊은 인재들이 텔레비전을 영화처럼 이용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인재들이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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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후, 레오는 카피디렉터인 존 크로퍼드(John Crawford)에게 로고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 크로퍼드는 불쑥 이렇게 말했다. "레오, 당신은 결코 별을 딸 수 없습니다. 하지만 손에 흙은 묻지 않을 겁니다." 레오는 이 말을 받아 적었고 그 뒤로 써먹었다. 그 말을 누가 처음 했는지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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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에 버넷은 "우리 중에 아무도 친구 같은 친근감이 갖는 빙하와 같은 위력을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고 중역들에게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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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버넷은 필립모리스의 중역들에게 편지를 썼다. "카우보이는 모든 남성이 되고 싶어하는 남성성의 보편적 상징입니다.... 꼭 프로이트가 우리 기획회의에 영향을 미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조사에 근거한 것이고 우리의 노련한 감각에 의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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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12월 1일, 레오 버넷의 연례 조찬 모임에서 버넷의 연설은 커튼콜을 받을 만했다. 레오버넷 사람들에게 "내 이름을 내릴 때(When to take my name off the door)"로 알려진 연설은 레오버넷의 전설이 되었다. 연설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어디론가 선을 따라가다가 언젠가 나의 선도 역할이 끝나면 당신들이나 당신들의 계승자들이 내 이름을 떼고 싶어 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는 나에게 이야기해 주십시오." 그 연설은 버넷의 철학을 환기시키는 감동적인 것이었다. 레오 버넷은 "돈 버는 데 더 치중하고 레오버넷 스타일의 광고를 만드는 데 소홀해질 때.... 철저함에 대한 열정이 식었을 때, 상실에 대한 증오가 끝났을 때... 주된 관심사가 잘 되는 일이나 열심히 하는 것, 멋진 일이 아닌 단순히 회사가 커지는 것이 될 때... 회사가 진정 크리에이티브한 대행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립 서비스로만 그치게 될 때"는 그의 이름을 떼라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이다. 레오 버넷은 이러한 징조가 보이면 저주의 사과를 엘리베이터 통로에 쏟아 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버넷을 연설을 마칠 때 몇몇 참석자들은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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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행사를 시작하는 것은 디킨슨의 아이디어였지만 시장의 틈새를 간파한 것은 피어스였다. 새먼과 리치는 말했다. "존 피어스는 충분한 광고를 집행할 수 없는 광고주들 가운데 대행사의 적절한 도움을 받는다면 효과적인 결과를 나타낼 수 있는 광고주들이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는 많은 광고들이 건전한 전략에 기초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무미건조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영감을 자극하고, 모험적이면서 무엇보다도 눈에 잘 띄는 광고를 만든다면 시장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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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스가 정말 잘한 일은 콜먼프렌티스앤드발리에서 훗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고 CDP의 상상력의 원천이 되었던 요크셔 출신의 과묵한 콜린 밀워드(Colin Millward)를 영입한 것이었다. 많은 유명한 이름들이 CDP를 거쳐 갔는데 그들 모두가 밀워드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들 가운데는 유명한 영화감독인 앨런 파커 경도 포함되어 있다. 앨런 파커의 말이다. "밀워드는 의심의 여지없이 대행사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열정과 비전, 그리고 취향의 산물이 CDP였습니다. 밀워드는 사람을 보는 눈도 탁월해서 우리 같은 사람들을 크리에이티브 부서에서 일할 수 있도록 뽑았습니다. 밀워드에 대한 평가는 '근엄하다', '기인이다', '사려 깊다', '감당이 안 된다', '지혜롭다', '총명하다' 등 다양하다. 밀워드는 "요크셔에서 어떻게 그렇게 재능 있는 아트디렉터들이 많이 나올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요크셔는 모든 평평한 곳이 공해로 덮여 있어서 아무 데나 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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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을 받기 위해 밀워드에게 가면 그는 잠시 동안 손톱을 물고 앉아 있다가 아주 정겨운 소리로 말해요. '이것은 안좋아, 그렇지?' 그러면 내가 '그래요?', 그러면 그가 다시 '맞아, 최고는 아니야!', '안 좋은 것이 뭐죠?', '다시 해. 가지고 나가. 내일 다시 보자고.' 퍼트넘은 밀워드로부터 적성이나 능력은 출발점이지 도착점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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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DDB에서 많은 사람들이 왔는데 DDB가 대단한 대행사였지만 급여는 별 볼 일 없었죠. CDP는 크리에이티브에 재능이 있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합당한 보수를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죠. 그래서 CDP는 업계의 임금 구조를 깼습니다. 하우랜드(Howland) 거리에서 우리 사무실이 가장 보잘것없기로 악명 높았는데 마치 무슨 중학교의 구내식당 같았어요. 그러나 존 피어스는 늘 사무실을 치장하는 것보다 급여를 많이 주는 것이 낫다고 말했어요. 그 결과 크리에이티브 부서에 로스 크레이머(Ross Cramer) 찰스 사치, 토니 브리그널(Tony Brignull)과 같은 기라성들이 모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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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파커는 사무실에서 존 피어스, 콜린 밀워드, 로니 디킨슨과 자리를 함께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앨런, 당신이 떠나 주어야겠소.' '맙소사, 나는 해고당해 본 적이 없는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이 또 말했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텔레비전 프로덕션을 시작하기를 바랍니다. 당신에게 무이자로 자금을 빌려 주고 일을 주겠소.' 나는 그들의 기대만큼은 흥분되지 않았습니다. 내 생각의 전부는 콜린 밀워드의 일에 가 있었기 때문이죠.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들은 나에게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을 열어 준 것입니다." 앨런파커필름(Alan Parker Film)은 버드 아이 비프 버거(Bird Eye Beefburgers)와 하인츠 스파게티(Heinz Sapghetti) 같은 광고로 수상 행진을 계속했다. "오늘날은 거의 대부분이 30초지만 당시에는 45초나 1분짜리를 만들 수 있는 행운도 있었어요. 그처럼 짧은 시간에 스토리를 말할 수 있고, 주장할 수 있으면, 누군가를 웃게 할 수 있고 무엇인가를 팔 수 있는 진정한 예술의 형태를 갖출 수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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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조사 방법과 데이터 분석 수단 또한 보다 정교해졌다. 이러한 현상이 역설을 만들었다. 폴릿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보다 예리한 광고 기획에 필요한 데이터가 나오고 있는데 그 데이터를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은 대행사를 떠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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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영국에서 가장 존경 받는 대행사 중 하나를 공동 창업한 데이비드 애벗(David Abbott)을 만나 보지 못한 것이 매우 실망스럽다. 하지만 애벗은 인터뷰 요청을 지금까지도 완곡하게 사양하고 있다. 1998년에 <마케팅 위크(Marketing Week)>가 은퇴의 변을 요청하자, 그는 정중한 팩스 메시지를 보냈다. "죄송합니다. 나는 소개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저는 따분한 사람이니까요.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간결함과 품위, 그리고 재치. 이것은 존경받는 카피라이터가 갖춘 존경할 수밖에 없는 요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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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부터 사랑받아온 전화번호부 광고가 있다. 어떤 노인이 희귀본을 찾기 위해 중고책방을 찾았다. "J.R 하틀리(J.R. Hartley)의 <플라이 피싱(Fly Fishing)> 있습니까? 노인이 물었다. 노인이 피곤에 지쳐 낙담할 때까지 돌아오는 대답은 가는 곳마다 '없다'였다. 다음 장면에서 노인이 안락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 전화번호부를 올려놓고 자신이 찾는 책들을 전화번호부에서 찾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마침내 노인이 그 책이 있는 서점을 찾아 통화에 성공한다. 서점 주인은 주문자의 이름을 묻는다. 노인의 대답이다. "내 이름? 그래... J... R... 하틀리." 광고는 품위 있고, 절제되어 있으며, 교양 있는 AMV의 걸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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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위크>는 또한 애벗이 1968년에 쓴 에세이에서 그의 또 다른 재능을 발굴했다. "처음부터 시작해보자. abcdefghijklmnopqrstuvwxyz- 이것이 카피라이터의 도구 상자다. 이 26자를 종이 위에 써서 카피라이터는 소비자들이 광고주들의 제품이나 아이디어, 서비스를 구매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카피를 쓰느냐에 따라 소비자를 웃길 수도 있고 화나게 할 수도 있다. 또 다른 방식으로 쓰면 서로 교감할 수 있다. 스크래블(Scrabble) 게임(철자가 적힌 플라스틱 조각들로 글자 만들기를 하는 보드 게임의 일종) 보다 낫다. 게다가 돈까지 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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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드버타이징에이지>는 1980년대의 대행사로 캘리포니아 베니스 비치(Venice Beach)에 있는 대행사를 선정했다. 이 회사의 대표는 기독교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한 완벽주의자로 '꽤 괜찮은 것은 괜찮은 것이 아니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 회사에서는 반바지와 슬리퍼가 근무복으로 용납되었고 해적 깃발이 비공식적인 상징이었다. 호사가들에게 치아트/데이(Chiat/Day)는 언제나 화젯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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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침에 사용하고 오후에는 그가 사용했지요. '루 세겔라' 간판을 만들어 아침마다 그의 간판을 떼어 내고 우리 간판으로 바꿔 달았습니다. 우리가 떠나고 나면 그는 자신의 간판을 다시 달았지요. 오후에는 사무실 밑의 카페에서 일했습니다. 카페 종업원은 우리의 안내원 역할까지 두 가지 일을 한 셈이지요. 유일한 문제는 예상 광고주를 오후에 카페에서 만나야 하는 경우인데, 그곳은 상습적으로 성매매가 이루어지는 곳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잡담으로 시간을 끌면서 2층으로 뛰어올라 가 사무실을 10분간만 빌려 줄 것을 구걸하곤 했습니다. " 이들의 첫 번째 캠페인은 머큐리 선외 발동기(Mercury outboard motors)였다. 시사 잡지 <렉스프레스(L'Express)>에 광고를 게재했는데 조르쥬 퐁피두 대통력이 머큐리 제품 모터보트의 키를 잡고 있는 오래된 파파라치 사진을 이용했다. 잡지의 신간 견본을 보았을 때 퐁피두는 자신의 사진이 무단 사용된 데 대해 격노해 발행인을 소환해 광고를 내릴 것을 요구했다. 세겔라에 따르면, 60만 부를 3일에 걸쳐서 손으로 광고를 찢어 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라디오를 타고 전해졌고 결과적으로 새로운 대행사가 효과적으로 시장에 진입하는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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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카릴론이 TBWA를 대행사로 삼았을 때, 보나주와 그의 팀은 소비자들이 앱솔루트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조사해 보기로 했다. 보나주의 말이다. '세 가지 제언을 했습니다. 첫째, 앱솔루트가 거만하게 들리기 때문에 네이밍을 바꿀 것. 둘째, 소변 샘플처럼 보이는 병을 바꿀 것. 셋째는 푸른색으로 병에 직접 인쇄되어 선반에 놓일 경우 보이지 않게 되는 로고를 바꾸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조사 결과를 루에게 가지고 갔는데 루는 이 결과를 완전히 무시하면서 말했습니다. '적어도 시장에서 그렇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병은 그대로 갑니다." 상냥한 루에 의해 방향이 전환된 TBWA의 전략은 앱솔루트를 패션 액세서리화하는 것이었다. 별나게 생긴 병은 도심의 최첨단 바와 나이트클럽에 진열되었다.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내용물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인지시키기 위해 병 자체를 로고로 삼아 인쇄광고를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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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 깨기'는 소위 '미디어 아트(Media Arts)'의 지원을 받아 여전히 TBWA 서비스의 중심이 되고 있다. 매체 업무가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전략과 연계되어 있으며, 대부분이 지출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다기화된 매체 환경에서 불협화음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교가 요구된다. 미디어 아트는 이렇게 요약된다. - '광고가 소비자에게 판매 이상의 그 무엇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즐거움을 주는 기본적인 아이디어, 그 이상이어야 한다. 궁극의 목표는 아주 오래 기억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이벤트여야 한다.' TBWA의 최근 대표작 가운데 하나는 2009년의 에너지 드링크 게토레이 광고다. TBWA는 15년 전 7대7 동점으로 끝난 미국 대학 풋볼의 두 라이벌을 다시 불렀다. 당시의 선수, 코치, 심지어 치어리더들까지 모아서 전통적 미디어와 온라인 미디어로 중계했다. 경기는 4월26일, 1만 5000여 관중 앞에서 이루어졌다[필립스버그 스테이트라이너(Philipsburg Stateliner)가 이스턴 레드 로버(Eastern Red Rover)를 27대 12로 이겼다]. 대행사에 의해 기획된 이 명물 이벤트는 매체의 중계방송으로 그 효과를 극대화하고 방송사들의 유사 이벤트가 이어지는 파급효과를 낳았다. 틀 깨기와 미디어아트가 매체사들을 자극한 것이다. 전통적인 광고의 형태가 확실하게 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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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타는 훌륭한 광고는 보는 이들에게 조금은 불편하게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에 모든 사람에게 편안하다면 그 작품은 주목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주변을 둘러싼 평범의 바다로 침몰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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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에 이탈리아에서 상업 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되었다. 살라는 말한다. "많은 광고 회사들이 텔레비전 광고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일을 접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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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렐라와 괴체는 박차고 나와서 피렐라 괴체(Pirella Gottsche)라는 독립된 회사를 연다. "우리의 첫 광고주는 내가 선택했습니다. 시장을 주도하거나 규정에 매달려야 하거나 현상 유지를 해야 하는 커다란 브랜드는 아니었습니다. 나는 시장에서 3위 정도 되고, 위험을 감수하고 규칙을 깰 수 있는 도전자를 좋아합니다. 그런 광고주가 많았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서 4명이 70명, 80명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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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도발은 1990년대 내내 계속되었다. 수녀와 키스하는 사제, 교미하는 말, 피 묻은 보스니아 군복, 흑인과 백인의 손목에 채운 수갑, 앞서 언급한 에이즈 희생자 등. 베네통과 토스카니는 자신들이 개발하는 영상에 대한 언론의 비난을 주저 없이 기꺼이 수용했다. 그사이에 스마트한 사진 잡지 <컬러(Colors)>와 전자시대의 바우하우스라 불리는 선구자적인 아트스쿨 '파브리카(Fabrica)'가 동시에 출범했다.

 

+1222

보다 최근에 많은 대행사들이 솔선해서 매체와 크리에이티브 기능을 밀접하게 결합시킨 형태의 대행사를 출범시켰다. BBH는 이와 같은 새로운 형태를 '참여 기획(engagement planning)'이라 했고 TBWA는 '연결기획(connections planning)'이라는 용어를 채택했다. 그러나 풀 서비스로 회귀하는 것이 매력적인 아이디어라는 데는 확실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1223

직설적 화법을 구사하는 사치앤사치월드와이드의 대표인 케빈 로버츠(Kevin Roberts)는 과거로의 회귀에 대해 간단하게 결론 내리고 있다. "누구나 관심을 가지고 묻는데, 대단히 잘못되고 어처구니없는 질문입니다. 매체에 대한 구태의연한 관념은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의 관심사는 소비자와 관련성입니다. 광고주들이 바라는 것은 전 세계에 걸친 소비자에 관한 전문가 집단입니다. 같은 테이블에 둘러앉는 것입니다. 준비된 브리프가 없어도 말입니다. 사실 브리프는 광고주들은 통상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기 때문에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니 나에게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을 주십시오.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한 회사에서 충족시킬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과거로 돌이킬 수는 없다. 두말할 필요 없이 원래 단순한 조직의 대행사들과 오늘날 고도로 복잡한 마케팅 거인들과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1224

이렇게 스폿이 길어지고, 스타일이 서구화되고, 스토리 중심의 광고가 등장하기 시작했지만 영국풍의 보다 신랄한 광고는 일본 시청자들에게 환영받지 못할 것 같다. 일본 광고에서 섹스, 정치, 종교 등은 엄격하게 터부시되어 있다. 정치적 중립 또한 원칙이다.

 

+1225

회사 이름에는 오카의 철학이 반영되었다. 일본이라는 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 광고는 섬이다. 오카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설득력으로 방향을 전환시키고 싶었다. "가장 큰 문제는 광고주가 우리의 철학을 지원해 주지 않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 광고주는 우리가 고릅니다. 전통적 접근을 원하는 광고주는 대체로 큰 대행사로 갑니다.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모험을 하고 싶은 광고주는 우리에게 옵니다."

 

+1226

나이트는 대행사에게 혁신적이고 절실하게 자신을 깨우칠 것을 요구했다. "나이키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놀랍고 경이로운 것을 요구했습니다." 위든의 말이다. 불과 열 단어도 안 되는 말로 표현한 이 대행사와 광고주의 관계가 위대한 광고를 만든 것이다. ("무엇이 나이키 광고를 만드는가", <가디언>, 2003.6.17)

 

+1227

나이키의 글로벌 축구 전략 개발의 중심인물이기도 한 그는 마이크로소프트(윈도95 론칭), 코카콜라도 담당했다. 또한 멜빈은 매우 비범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대행사에는 전 세계의 크리에이터들이 모여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위든앤케네디가 국제 광고가 나가야 할 방향을 바꾼 대행사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마이크로 네트워크와 디지털 미디어의 이용으로 모든 자원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1228

"문제는 그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웰린더에서 대행사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보았던 것입니다. 스콧은 욕구불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 자, 거대한 국제 대행사가 어떤지는 잘 아시지 않습니까? 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인원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웹은 규모에 관계없지요. 극소수의 사람으로 전 세계와 소통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했습니다. '충분히, 우리는 할 수 있다'고 말이죠." 암스테르담은 싸고, 멋지고, 교통이 좋아 선택되었다. 세제 혜택은 차치하고라도 암스테르담은 상업 도시고 문화의 교차로다. 구드슨은 스트로베리프로그라는 이름을 우연히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는 평소 전통적인 매디슨 애비뉴의 대행사들을 '공룡'으로 보고 있었다. 

 

+1229

척 포터는 알렉스 보거스키(Alex Bogusky)를 크레이에티브디렉터로 영입한다. 그때는 멀리 암스테르담에서 180과 스트로베리 프로그가 국제적인 일을 추진하기 위해서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할 때였는데 마이애미에 근거를 둔 두 사람은 자신들이 현 상태에서 글로벌화의 영향을 수용할 필요성을 자각했다. 더 나아가 이들은 다른 대행사들이 장래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미래에 대한 구상을 하고 있었다. 포터가 <애드위크>와 가진 인터뷰 내용이다. "우리는 언제나 회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확실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마이애미에 세계적 수준의 대행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의사 결정을 그 기준에서 해왔습니다. 만약에 당신이 대단하고 재미있는 일을 했다면 결과는 그렇게 나오는 법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렇게 생각해 왔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1230

열정적인 아마추어들에 의해 이 광고가 무단 전용된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었다. 특수 효과보다는 깔끔한 아이디어에 치중한 이 광고는 진정성으로 시청자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광고가 인기를 얻으면서 히트송과 수많은 패러디를 낳았다.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다른 음악으로 편집한 새로운 버전들이 웹상에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후안 카브랄은 "미디어는 이제 세계화되어 있다. 이제 '오직 나만'은 없다. 이제는 나와 모두가 함께한다"고 지적했다.

 

+1231

재능있는 감독들 중 일부만이 광고에 전념하는 것은 크게 수치스러운 일이다. 이름을 거명해 보자. 나의 개인적인 명단에서 정상에 가까운 이는 토니 케이(Tony Kaye)다. 그는 볼보나 기네스, 시어스(Sears). 기타 여러 광고주들의 광고에서 광범위한 예술적 수완을 보여 주었고 1980년대 이래 자극적인 광고의 새 지평을 열어 놨다. 논쟁을 좋아하고 거리낌 없는 성품이었던 그는 끊임없이 라이벌들과 시청자, 언론의 관심 대상이 되어 왔다. 만약에 그의 프로덕션 웹사이트(www.supplyanddemand.tv)에서 꼭 하나만 보아야 한다면, 1995년 AMV.BBDO를 위해 만든 볼보의 '트위스터(Twister)'편을 추천하고 싶다.

 

+1232

그다음으로 프랭크 버젠(Frank Budgen)을 보자. 그는 런던의 프로덕션 고저스 엔터프라이즈(Gorgeous Enterprises)의 공동 설립자이며, <고저스 엔터프라이즈의 응접원은 전화를 받을 때 "헬로! 고저스(Hello Gorgeous!)라고 응대한다> 수많은 블록버스터 광고를 연출했다. 대표작으로는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이 있다. 군중이 '인간산'을 쌓으면서 위로 기어오르는 장면의 광고다. 차가운 터치의 영국 갱 영화 <섹시 비스트(Sexy Beast)>(2000)를 본 사람이라면 더 이상 소개가 필요 없을 만큼 찬사가 아깝지 않은 감독이 있는데 그가 바로 조너선 글레이저(Jonathan Glazer)다. 광고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1999년 처음 방영된 기네스의 환성적인 '서퍼(Surfer)'편을 연출했다. 

 

+1233

6피트가 넘는 키에 사자 갈기 같은 백발의 조 피트카(Joe Pytka)는 사실 그대로를 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마치 다큐멘터리를 찍을 만큼의 예산을 광고에 쏟아부을 요량으로 피트카는 아이언 시티(Iron City) 맥주의 광고를 만들 때 진짜 선술집에서 실제 손님들을 찍었다. 피트카는 자신의 데뷔작에 대해서 <DGA>지에서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나는 감정에 호소하는 방법으로 다큐멘터리를 찍어왔습니다. 그래서 내가 주장하는 바를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다큐멘터리를 정교하게 다루어야 했습니다. 광고를 만들 때도 실제 상황에서 실제의 당사자들과 작업을 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당시에는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광고는 전부 연출이었습니다.("광고계의 황제, 조 피트가", 월간 <DGA>, 2002,9)

 

+1234

독창성에 관해서는 트랙터(Traktor)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스웨덴의 제작사인 트랙터는 MTV용으로 만든 유카 브라더스(Jukka Brothers)르르 등장시킨 새로운 초현실적인 기법을 광고에 도입했다. 이 광고를 한 줄로 요약한다면 '스칸디나비아 양아치, 바보 음악 텔레비전을 발견'이라 할 수 있다. 이 광고와 유사하게 나이키나 리바이스 밀러 라이트의 광고가 줄지어 제작되었다. 이 모든 것은 www.traktor.com에서 볼 수 있다.

 

+1235

파르티잔의 록 뮤직 비디오 프로듀서로서의 성공은 광고계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논쟁의 소지가 있지만, 베르망은 "광고는 언제나 다른 크리에이티브 전문 영역의 한 발 뒤에 있다."고 주장한다. "광고에는 독창적인 것이 거의 없습니다. 예술적으로 재생되는 것입니다. 내가 뮤직 비디오에서 주목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면 그것은 3년 뒤에 광고에서 아이디어로 구현되었습니다." 그는 텔레비전 광고가 매스커뮤니케이션인 이상 이것은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형태는 광고에서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전에 공중의 의식 속에 침투되어 있어야 한다.

 

+1236

베르망은 앨런 파커와 리들리 스콧과 같은 거장이 광고인 출신임을 인정하지만 과거에는 상황이 달랐다고 주장한다. "뮤직비디오가 등장하기 전이었습니다. 당시 영국은 필름산업이 매우 영세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감독이 되기를 원한다면, 광고를 만드는 것이 카메라 뒤에 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나는 광고가 확실히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이미지를 만들 수 있기는 하지만 장래에도 순수한 광고인 출신만이 감독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1237

베르망은 위대한 광고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감독이 아닌 예술, 문학, 연극, 무용 등의 감수성을 포용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가장 위대한 광고는 광고 외 모든 것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입니다. 광고의 주된 목적인 매출 증대를 ㄹ위해 크리에이티브가 필요한가라는 문제와는 별개입니다."

 

+1238

1994년 5월에 프록터앤드갬블의 회장이자 CEO인 에드윈 아르츠(Edwin L. Artzt)가 미국대행사협회(4A, the American Association of Advertising Agencies)에서 한 말이다. "광고업은 앞으로 문제에 직면하게 되거나 새로운 영광의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그 방향은 이미 우리의 손안에 있다. 이유는 이것이다. 가장 중요한 매체인 텔레비전은 가장 큰 변화의 시기에 있다. 오늘날의 기준에서 보면, 미래는 광고를 기반으로 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작이나 주문형 비디오(video-on-demand)나 유료채널(pay-per-view) 같은 것도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불과 수년 내에 소비자들은 수백 편의 유료 채널 영화를 골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수십 개의 홈쇼핑 채널도 가지게 된다. 인터랙티브 비디오 게임도 즐길 수 있게 된다. 이런 것들 중 상당수는 광고가 전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현실화되어서 가정용 오락에 더 이상 광고비를 투여할 필요가 없어진다면, 그때서야 자신들의 브랜드를 위해 도달률과 빈도를 높이기 위해 무진 애를 스던 우리를 광고주들이 좋아하게 될 것이다. ("P&G의 아르츠 : 텔레비전 광고가 위험하다.", <애드버타이징 에이지>, 1994.5.23)

 

+1239

사치앤사치의 케빈 로버츠도 소비자들이 평균적으로 광고주들보다는 덜 혼란스럽다고 주장한다. "소비자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압니다. 소비자들은 그것 전부를 원합니다. 신문에서는 뉴스 전체를 읽기 원하고 주간지에서는 전체적인 시각을 얻기를 원합니다. 모바일폰에서는 최신 정보를 얻습니다. 인터넷으로 소일합니다. 라디오는 주로 차 안에서 듣습니다. 저녁에 보는 텔레비전은 큰 화면을 원합니다. 서로 격리되어 있다고 혼란스러워하지 않습니다. 로버츠에게 다양한 매체는 브랜드들을 위한 노다지인 셈이다. 로버츠의 말이다. "앞으로는 거의 모든 것이 시각화될 것입니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슈퍼마켓이나 휴대전화도, 세계의 모든 것이 시각화될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소비자들과 어디서나 교감할 수 있는 감정적인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일찍이 이러한 환경에서 새로운 모델을 만들려는 용기 있는 시도가 런던에 근거지를 두고 2000년에 설립된 네이키드 커뮤니케이션(Naked Communications)에 의해 있었다. 네이키드는 크리에이티브 부서를 두지 않았다. 매체, 플래너, 어카운트 담당자만 두었다. 전통적인 매체들을 신뢰하지 않았으며 대안 매체에 주력했다. 광고주의 요구가 어디에 있으며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전통적인 광고로서는 제시하지 못할 해결책을 모색했다. 네이키드 커뮤니케이션스의 설립자 세 사람, 윌 콜린(Will Collin), 존 윌킨스(Jon Wilkins), 그리고 존 할로(John Harlow)는 런던의 미디어 전문회사 PHD에서 만났다. 이들의 경력의 전략기획, 리서치, 그리고 미디어 플래닝이다. 콜린은 네이키드 창립의 배후에 "현존하는 업계 모델에 대한 환멸"이 있었다고 말한다. "PHD에 있는 동안 몇 개의 매체 중심(플래닝과 바잉)의 대형 광고주를 수주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형 광고주들이 바라는 것은 최대한 싼 매체료이기 때문에 대행사의 매체 수수료는 천천히 내려간다는 사실을 바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계약 기간 동안은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이 울적할 뿐이고 설상가상으로 광고의 내용이나 전략 아이디어 같은 것은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광고주와 밀고 당길 때 광고주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싼 매체료다. 다른 말로 하면, 대행사는 큰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대량으로 구매해야 한다는 것이다. 콜린과 윌킨스, 그리고 할로는 자신들이 진정 열정을 가지고 하고 싶은 일은 광고주가 매체 대행사에 바라는 그런 것이 아니라, 소비자와 관련된 크리에이티브를 찾는 일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일부 광고주들은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크게 자극되어 고무되기도 하지만 대개는 동상이몽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거래가 매체 계획과 구매 대행사에서 이루어졌으니 말이지요." 세 사람은 크리에이티브 사고 요소만을 떼어 가지고 나와 그것만을 팔아 보기로 결심했다. 실행과 성취로부터 전략을 벗겨 내고 가공되지 않는 아이디어를 파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이름의 대행사를 2000년에 설립한 것이다. "돈을 지불한 것을 소중히 여기라는 금언이 생각난 것이다. 전통적 대행사들이 청구한 것은 광고 제작비나 웹사이트 구축비용, 우편발송비 같이 실제로 실행된 결과물에 대한 것이었다. 전략에 대해서는 무료였다." 마케팅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아이디어 상인이 되는 것은 네이키드를 절대적으로 자유롭게 할 것이다. 대규모 크리에이티브팀을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광고대행사들은 어쩔 수 없이 광고를 광고주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 디지털 대행사들도 유사한 편견을 가지게 된다. "우리는 제작 기능을 갖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습관처럼 말해 왔습니다. 우리가 즐기는 경구 가운데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생선 장수를 찾지 말라'는 말이 있지요. 이는 바로 핵심으로 들어가라는 말입니다." 네이키드는 매체 중립이라는 말은 피하고 자신을 "커뮤니케이션 불가지론자"라고 지칭했다. "결국 당신이 소매업자라면 가장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당신의 점포일 것입니다. 만약 자동차 생산자라면 거리를 질주하는 자동차가 광고보다 더 소중할 것입니다. 그러나 광고가 가지는 잠재적인 해결 능력을 평가절하하면 안 됩니다. 단순히 텔레비전의 위력이 잠식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 같은 회사가 존재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것은 1950년대의 사양대로 구축되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네이키드는 확장을 거듭해 이 책을 집필하는 시점에는 전 세계에 16개 지점을 보유하고 있다. 네이키드가 뉴욕에 진출할 때, 매디슨 애비뉴의 일각에서는 회의적인 불평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네이키드는 이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예를 들면 아노말리(Anomaly)를 인수하는 식이었다. 아노말리는 2004년에 문을 열었으며 구글과 애플, 페이스북 등과 같이 가장 혁신적인 기업들이 광고주였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광고 캠페인에 적용했다. 기발한 아이디어는 캠페인뿐 아니라 패키지와 신제품 론칭 캠페인에도 적용되었다. 이러한 기발한 아이디어들은 다시 지적 재산권이 되어 돌아왔다. 파트너였던 칼 존슨(Carl Johnson)의 말이다. "우리는 비타민 워터 광고보다는 비타민 워터의 다음 제품을 만듭니다." 아노말리의 또 다른 성공 캠페인은 버진 아메리카(Virgin America)의 수하물 광고였다. 리처드 브랜슨은 2005년에 새로 시작하는 항공 사업을 위한 아이디어를 위해 아노말리를 선택했다. 아노말리의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는 승무원용 가방을 항공사 브랜드를 알리는 매체로 활용하고 스노보드 케이스와 스케이트보드 바퀴를 매체로 사용키 위해 스노보드 회사 버튼(Burton)과 제휴했고 착탈식 화장품 주머니까지 활용했다. 여행용 가방을 판매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 세 회사가 서로 윈윈하는 중요한 판촉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2008,3.1) 거의 같은 시기에 호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데이브 드로가(Dave Droga)는 새로운 대행사 드로가 5(Droga5)로 유사한 야망을 표현했다. 드로가는 드로가5를 아이디어 발생기로 만들었다. 드로가는 <캠페인>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광고주들이 우리에게 수만 가지의 커뮤니케이션 해결책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자유를 주기를 원합니다. 거기에는 오락과 건축, 공동체와 온라인 같은 것들이 포함됩니다. (중략) 바퀴를 다시 만들자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비포장도로나 어디에서든지 바퀴를 굴려 보자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드로가가 통제된 인생을 즐기는 이유",2006.8.4) 드로가에서 의상 디자이너 마르크 에코(Marc Ecko)를 위해 만든 바이럴 인터넷 캠페인이 그해 칸에서 사이버 부문 대상을 차지했다. 입자가 거친 벽화 화면에 "스틸 프리(Still Free)"라는 꼬리표가 달린 에어포스원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캠페인은 인터넷을 통해서 소수에게 퍼져나가서 그것이 순환되어 마침내는 보편화되었다. 프랑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BETC의 레미 바비네(Remi Babinet)는 말했다. "광고 대행사는 짧은 영상물의 전문가다. 스크린 수가 증가함에 따라 우리의 전문성은 그 활용 가치가 더욱 높아졌다. 모바일 매체 또한 특별한 기회를 제공한다. 스크린이 매우 작아졌기 때문이다. 매우 매력적인 짧은 영상물이 탄생할 것이다." 

+1240

오늘날 칸의 화두는 브랜드화한 엔터테인먼트다. 그것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이론이 분분하지만 이 분야에서 전문 대행사인 카멜레온(Kamelon)의 이사 리처드 암스트롱(Richard Armstrong)은 스타일러스닷컴(Stylus.com)을 통해 나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크리에이티브한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브랜드들이 유튜브에 고유 '채널'을 갖는 것은 이제 일반적이다. 그 채널을 통해 새로운 비디오를 론칭도 하고 지난 자료들을 보관하기도 한다. 시청자들이 질 좋은 브랜드의 콘텐츠에 반응할 것임을 입증하는 자료는 매우 많다. 에너지 드링크인 레드불(Red Bull)이 호주의 모험가 펠릭스 바움가르트너(Felix Baumgrtner, 맨몸으로 음속을 돌파하는 등의 화제를 낳은 인물)가 2012년 10월 14일에 성층권에서부터 자유 낙하하는 이벤트를 스폰서 했으며, 800만의 시청자가 온라인 생중계를 시청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평범한 스포츠 스폰서십이라 볼 수 있으나 디지털 미디어의 활용을 통해 전 세계적 현상으로 바뀔 수 있었다. 레드불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된 하이라이트 비디오는 필자가 집필 중인 현재 기준으로 조회수 3200만 건을 기록했다. 온라인 브랜드 콘텐츠의 보다 보편적인 형태는 웹 시리즈다. 전통적인 텔레비전을 모방한 짧은 '웹피소드(webpisode)'가 그것이다. BMW의 화려했던 시리즈가 이러한 맥락에서 이미 언급되었다. 2012년 올림픽 기간 동안에 카멜레온에서는 프록터 앤드 갬블의 유튜브 채널에 '올림픽 출전 선수들 엄마의 시각'을 주제로 짧은 동영상 시리즈를 제작해 올렸다. 아시아의 대행사 퓨즈(Fuse, 옴니콤그룹의 일원)는 유니레버와 함께 클리어(Clear)라는 비듬 방지 샴푸 광고를 위해 중국에서 온라인 브랜드 드라마를 제작했다. 그리 매력적이지 않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자신들의 경력과 인생을 걸고 도전하는 젊은 친구들의 모습은 공전의 히티를 기록했고, 온라인뿐 아니라 텔레비전의 황금시간대에도 방영되었다. 담당 대행사에 따르면 2012년 세 번째 시리즈는 조회수 13억 건을 기록했다. 브랜드의 콘텐츠들은 30초라는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더욱 풍성한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 그것이 아마도 이미 검증된 전문가들에게 매력적인 요소였을 것으로 보인다. 

 

+1241

아노말리의 발자취를 따라 대행사들은 광고 이외 다른 것들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이키는 나이키플러스(Nike+)와 나이키 퍼스널 트레이너 애플리케이션 등을 통해 이미 피트니스 분야에서 소셜 영역을 장악했다. 2012년에 나이키는 나이키 플러스 퓨얼밴드(Nike+ Fuel Band)를 통해 더욱 앞서 나갔으며, 이는 디지털 대행사 R/GA와 협업을 통해 이루어졌다. 플라스틱 손목밴드(기술적 관점에서 이는 가속기로 불린다)가 움직임을 추적해 포인트로 환산해내기 때문에 더 많이 움직일수록 더 많은 포인트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공유가 가능하다. 나이키 플러스 퓨얼밴드는 운동을 하루 종일 함께하는 소셜 일인 게임으로 바꿔 냈으며 칸에서 사이버 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이 대단한 퓨얼 밴드는 단 하나의 광고주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대행사들은 광고주들의 동의를 구할 필요 없이 기술을 먼저 개발하면서 광고주들이 기다려 주고 승인해 줄 것이라는 철석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TBWA는 위시(Wi/Sh)라는 인터랙티브 아이쇼핑 플랫폼을 만들어 냈고, 이를 독일 뉘른베르크의 NEO 스토어에서 쇼케이스를 통해 공개했다. 매장의 창을 통해 구매자는 가상 선반의 실물 크기의 제품이 진열된 디지털 매장을 보았다. 사인을 통해 아디다스의 인터넷 쇼핑 사이트에 휴대전화를 통해 들어가 코드를 입력하도록 했다. 그 순간부터 그들이 드래그하고 드롭한 아이템이 인터랙티브 매장의 장바구니에 담기며 휴대전화에도 등장했다. 소비자들은 이후 구입할 제품을 저장할 수 있고, 친구와 공유도 할 수 있었으며, 물론 바로 결제도 가능했다. TBWA 헬싱키는 아디다스와 파트너십을 통해 이러한 것을 개발해 대행사 차원에서 국제 지적 재산권을 취득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틴 모어(Martin Mohr)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플랫폼을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벗겨 낼 수' 있다. 이것은 블로그와 약간 비슷한데, 기본적인 틀을 개인적으로 설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우리는 이 시스템을 어떠한 브랜드의 윈도에도 적용시킬 수 있다." 모어는 이 개발을 특허출원한 일이 이상하고도 새로운 경험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는 대행사의 변화되는 풍토를 보여주며, 대행사가 광고주를 위해 하는 일이 달라지는 측면의 한 예다. 그들은 광고주를 위해 광고를 만들어 낼 뿐 아니라 새로운 채널을 만드는 것이고, 자산을 구축하는 것이다."

 

+1242

광고의 거인들은 자기네 광고주를 멀티스크린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살아남도록 하거나 광고 대행사의 유용성에 대해 불편한 질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기쁘게도, 성공적인 광고의 핵심은 변하지 않고 있다. 앤드루 로브트슨(Andrew Robertson)은 BBDO월드와이드의 CEO다. 뉴욕에 사는 영국인인 로버트슨은 데이비드 오길비의 책을 보고서 자기를 스트라이프 셔츠와 밝은 색 멜빵으로 꾸몄다. 하지만 전통적인 드레스 코드에도 불구하고 그의 내면에는 기술에 대한 열정이 있다. "내가 나와 모든 기록물을 10대 때 가져야 했다면 그랬을 것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오늘날에는 문제가 없다.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모든 것에 언제나 널려 있다. 그들은 그에 대한 돈을 지불할 필요도 엇다. 두 시간이 넘는 영화 한 편을 우표보다 사게 다운받을 수 있다. 한편 이는 우리 산업에 가장 큰 위협이 되기도 하는데, 사람들이 우리가 하려는 말을 들으려고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이다. 기회적인 측면에서 보면, 우리가 충분히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내면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소비자와 대면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들은 콘텐츠를 볼뿐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보도록 권할 것이다. 로버트슨과 그의 동료들이 내린 결론을 종합해 보면, 그것은 '좋은' 그리고 '전통적인 크리에이티브'다. "우리가 할 일은 콘텐츠를 생산해 소비자를 오랜 시간 멈추게 하고 붙잡아 두어서 메시지나 설명 혹은 경험을 접해 그들의 생각, 느낌, 제품에 대한 태도를 바꾸게 하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미디어는 평범한 것을 콘텐츠로 만드는 것이다. 광고 대행사들에 던져지는 화두는 언제나 똑같다. "좋은 아이디어 어디 없나?"

 

+1243

광고업계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좋은 소식은 구습이 무너지고 새로운 기회가 부여되고 있다는 것이다. 네이키드커뮤니케이션스와 사치앤사치는 많은 대행사들 가운데서도 유옥 광고 경험이 없는 사람을 구한다고 말한다. 앞선 수십 년 동안 그래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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