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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충격

[밑줄]

 

+1599

몸은 암울한 유신체제의 서울로 돌아왔지만 가슴속에는 여전히 지중해가 출렁거리고 남프랑스의 태양이 수직으로 내리꽂히고 있었다.

 

+1600

"바다 언제나 다시 시작하는 바다!"

 

+1601

교양이나 시직이나 견문을 넓히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이 책은 또한 능률적이고 경제적인 여행안내에도 기여하지 않는다.

 

+1602

청춘은 그 자체가 자기 스스로의 정당화가 된다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 이 특권을 이해하지 못하는 때가 오면 우리들의 모든 변명에도(지혜라든가 조심성이라든가 분별 같은 것의 이름으로) 불구하고 우리는 이미 늙기 시작한다. 두 번 다시 되풀이할 수 없는 것들의 수가 늘어나고, 속 깊은 공포감을 안락의 방 속에 감추려 한다. 그리고 늦가을 바람이 옷깃에 스며들 때면 가슴속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가 쓰러지는 소리를 내려고 한다.

 

+1603

우리들이 참으로 '떠난다'는 일은 쉽지 않다. 떠나는 방법은 누구도 가르쳐줄 수 없는 것이다. 수없이 떠나본 사람에게도 모든 '떠남'은 항상 최초의 경험이다. 떠나는 방법은 자기 스스로에게도 교육할 수 없는 것이다. '미지의 것' '다른 것' '다른 곳'이 감추고 있는 '새로움'은 우리들의 모든 유익하였던 경험들을 무용하게 하는 데 그 힘이 있다. 행복을 향하여 미래를 향하여 새로운 낙원을 향하여 떠나는 자는 사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공포, 그 공포를 지불하는 순간에 가슴을 진동시키는 놀라움을 향하여 떠나는 것이다.

 

+1604

그러나 그 어느 풍경도, 기념관도, 이국적인 거리도, 그곳에 내리는 햇빛, 부는 바람, 쾰른 시의 거대한 돔 위로 3월 하순에 내려치는 눈보라도 우리들은 소유하지 못한다. 기념사진으로도 여행기로도, 녹음기로도, 감탄사로도 소유하지 못한다. 여권에 찍힌 입국 비자로도 소유하지 못한다. 그러나 바로 소유를 버리기 위해서 우리들은 떠나지 않는가?

 

+1605

고개를 넘을 때마다 새로운 위험, 새로운 두려움, 새로운 놀라움이 기다리는 저 미지에로의 여행을 이 카라반 여행자들은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 떠나면서도 제 집을 끌고 떠나는 이들의 카라반은 도시에 두고 온 아파트의 모든 풍경조차 이끌고, 아니 그 속에 들어앉아서 떠난다. 몸에 젖은 풍경, 잃어버리면 무방비 상태가 되는 풍경, 이 피난처는, 이 '정처 없는' 여행의 끝에는 따뜻한 아파트와 월화수목금토로 이어지는 행복과 정착이 있음을 쉬지 않고 확인시켜준다. 그리하여 그들의 여행은 단 한 번도 미지를 향하여 열리지 않는다. '나의 방' 속에서 '나의 행복' 위에 걸터앉아 이 부르주아들은 창밖으로 남의 풍경들이 지나가는 것을 구경하며 휴식한다.

 

+1606

파리의 늦가을은 써늘하다. 이상한 일이다. 방향감각이 혼란되면 더욱 춥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할 때 나의 눈은 보지 않는다. 사물을 보는 나의 눈은 나의 밖에 있는 사물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동시에 본다. 나와 사물과의 통제할 수 있는 거리를 우리는 이상하게도 친밀감이라고 부른다. 그때 내 몸은 그 친밀감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1607

철도회사가 발행하는 빳빳하고 손안데 쑥 들어가는 그 승차권은 단순한 추상적 물건이 아니라 원거리에까지 나를 데려다줄 것을 보증하며 나와 동반하는 공식적인 권위, 여행에의 초대를 웅변한다.

 

+1608

파리에서 누군가에게 'Aix(엑스)'를 아느냐고 물으면 그는 물론 엑상프로방스를 머리에 떠올린다. '아름다운 도시' '다정한 도시'라고 대답하는 파리 사람들의 표정 속에는 꿈과 선망이 담겨 있다. 그 꿈은 어느 여름 오후를 보낸 쿠르 미라보의 카페, 그늘지고 조용한 구시가의 작은 골목에로의 산책, 벤치 위에 내리는 햇빛의 반점들, 서점에서 만난 초록빛 눈의 처녀, 부활절 무렵부터 늦봄까지 피는 코클리코 붉은 야생화, 자동차로 십오 분이면 항상 눈앞에 출렁거리는 지중해, 근교의 푸른 하늘을 물들일 듯한 보라빗 라벤더의 광활한 고랑들, 언덕배기에 자욱한 향료 텡(타임)의 그윽한 냄새, 자리잡은 하얀 별장들, 작열하는 태양에 빛이 바랜 붉은 기와, 시 인구의 반을 차지하는 학생들이 이 소도시를 가득히 채우는 영원한 청춘의 설렘, 카페의 카운터 앞에 서서 낯선 사람과 어깨를 툭툭 치며 웃으면서 마시는 차디차고 독한 파스티스, 목마른 자에게 물의 정수를 맛보여주는 녹색의 박하수, 골목골목에 나직이 고요의 소리를 보태는 분수, 그리고 아, 그리고 모든 것, 은밀하면서도 다정한 것들, 바쁜 관광객들에게는 쉬 내보이지 않는 비밀들, 이 모든 기억들 쪽으로 그의 꿈은 남몰래 열려 있다.

 

+1609

프로방스에 내리는 각종 햇빛의 감도, 부활절 무렵 애무하는 꽃물결처럼 피부를 간질이는 햇빛, 저녁나절 가벼운 바람에 실려와서 당신의 목덜미를 쓸고 가며 벌써 저 앞에 걸어가는 처녀의 갈색 머리털을 번뜩이는 햇빛, 한여름 심벌즈를 난타하는 듯 금속성을 내며 찌르릉거리는 햇빛, 가을철 분수의 물줄기를 타고 천천히 걸어 내려오는 햇빗, 한겨울 론 강 골짜기를 따라 살을 에도록 미스트랄 바람이 불 때도 창밖에서 내다보면 언제나 따뜻한 겨울'의 환상을 주는 노랗고 투명한 햇빛, 작은 커피 잔 위로 플라타너스 잎새들 사이로 스며 나와 짤랑짤랑 흔들리며 요령 소리를 내는 은빛 반점의 햇빛, 이 모든 햇빛, 이 도시의 문화, 이 도시의 청춘, 이 도시의 행복의 살 속에, 핏속에 들어와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려면 우리들은 최초의 낯선 시간들을 견디지 않으면 안된다.

 

+1610

프로방스 사람들도 고대의 그리스인들처럼 말한다.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목욕하지 못한다"라고.

 

+1611

그러나 프로방스가 나의 고향처럼 느껴지기 위해서는 수년이 걸렸다. 언어가 잘 통하지 않는다거나,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거나, 말없이 씩 웃기만 해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는 친구들의 그 소우주가 부재한다는 이방인 특유의 상황만이 그 이유는 아니었다.

 

+1612

요컨대 나는 갑자기 병풍그림이나 외국의 원색판 사진첩이나 화집 같은 곳에 그려진 행복한 풍경 속으로 나 자신도 모르게 들어오게 된 틈입자만 같아서 안절부절못하였다. 수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나는, 그때의 얄궃은 저항감이나 불안정감은 아마도 내가 최초로 받은 '행복의 충격'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프로방스에 도착하기 전 나의 반생은 참으로 행복한 것이 아니었다. 아니, 혹 이런 표현이 허용된다면 내가 때때로 경험한 행복은 단순하지 않고 반드시 어떤 아이러니컬한 형용사가 동반된 것들, 즉 '어두운 행복' '비참한 행복' '젖어 있는 행복' '눈물겨운 행복' 같은 것들이었다. 그 당시 나에게 있어서 '행복'이란 말은 이상하게도 '안정'이라든가, 또는 죽은 자들에 대하여 신문기사들이 "좋은 남편이요 좋은 아버지였다"라고 회고하기 일쑤인 사람들의 '단란한 가정생활', 혹은 '아담한 집, 따뜻한 방' 따위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은 잘 보호된 세계, 닫힌 공간을 뜻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대학 시절 어디선가 읽은 장 폴 사르트르의 말, "빤들빤들한 마누라와 동글동글한 자식들을 거느린, 볼 장 다 본 녀석'의 편안하고 문제없고 의미 없는 생활과도 행복은 그리 무관한 것이 아닌 듯 여겨졌다.

 

+1613

참으로 이곳에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 아니 '지금'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은 올 것이 아니다. 이곳은 내일의 행복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올 곳은 아니다. 지금 당장, 여기서, 행복한 사람, 가득하게, 에누리 없이 시새우며 행복한 사람의 땅, 프로방스는 그리하여 내게는 그토록 낯이 설었다.

 

+1614

방 앞으로는 엑스발 마르세유행 기차를 아르크의 운하 위로 건너보내는 옛날의 구름다리가 고성처럼 굽이돌고 그 왼쪽으로 멀리 생트 빅투아르 산의 헐벗은 자태가 바라보였다.

 

+1615

나는 이 산을 바라보면서 이 산을 끊임없이 그리던 세잔 영감의 만년을 생각하였다.

 

+1616

... 우리들의 예술은 흘러가는 시간의 전율을 표현해야 한다. 자연을 그의 영원의 모습으로 환원시켜야 한다. 자연의 이 모든 현상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마도 모든 것이 담겨 있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진실이란 것은 그의 본질에 있어서는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오직 색채만이 그 진실을 표현할 수 있다. 색채는 이 세계의 뿌리이다, 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1617

문명은 우리들이 무엇인가를 향하여, 어떤 머나먼 목적을 향하여 가고 있다고 설득시키고자 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유일한 목적은 사는 것이며, 삶은 우리가 매일같이 항상 하고 있는 일이며, 하루의 매 시각 우리가 살기만 한다면 우리는 진정한 목적을 다 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1618

우리는 그 어떤 목적을 향해서 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바로 모든 것을 향해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언제든 느낄 태세를 갖추고 있는 오관과 살을 가지는 그 순간에 모든 목적은 달성되었다. 날들은 과일과 같다. 우리들의 역할은 그 과일들을 먹는 일이다. 우리들 본성에 따라 부드럽게든 탐욕스럽게든 그 과일들은 먹는 일이다. 그 과일이 담고 있는 모든 것을 섭취하여 우리의 정신적인 살을, 우리의 영혼을 만드는 일, 즉 사는 일이다. 산다는 것은 그 밖의 어떤 목적도 없다.

 

+1619

지상에 태어나 이 사물들을 본 필멸의 생명은 행복하여라

 

+1620

여기가 인간의 왕국이다. 살이 썩으며 모든 것이 끝나는 것임을 다 아는 인간이 건설한 행복의 왕국이다. 수세기의 역사도, 승리자도, 패배한 자도, 장군도, 황제도 이 정경을 변모하게 하지는 못하였다. 이곳이 스겡의 하얀 염소 불랑게트의 땅이다.

 

+1621

프랑스 말로는 춤을 '당스'라고 한다. 춤이 몸에 가득차 박자가 빨라지고 비로소 몸이 음악에 실리면 춤이 몸을 춘다.

 

+1622

그렇게 훌쩍 떠나버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러나 언젠가는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르세유는 영원히 간직하고 있다.

 

+1623

'안방까지 쳐들어올 것 같은 친절'이라고 사람들이 부르는 그 청년들의 대담성이 나는 오히려 밉지 않았다. 내겐 그것이 뻔뻔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그 솔직함과 유쾌함, 바람둥이의 외향성을 즐겁게 바라보았다. 여자의 새침한 거절에 실망하는 기색도 없고 그렇다고 친절과 웃음 이외의 불쾌감에까지 자기의 연정을 밀고 가지도 않는 젊음은 보기에 즐겁다.

 

+1624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받는 사람보다 한층 더 신에게 가깝다

 

+1625

나는 그에게 생선 한 토막을 권하였고 그는 나에게 포도주를 내었다. 이 우주에는 지구라는 별이 있어, 그 별 위에서는 이처럼 낯선 두 생명이 그렇게 어느 지점에서 잠시 만났다 헤어지는 우연도 일어난다.

 

+1626

후에 내가 엑스에 돌아와서 안 일이었지만 브라이언은 베네치아로 편지를 했었고 그가 제의한 약속에 따라 빗속을 달려 제노아 시립박물관 앞에서 진종일 기다리다가 결국은 다시 혼자서 엑스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러면 결국 주인을 찾지 못한 그 우편물은 이탈리아 어디선가 지금도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1627

우리의 옆 테이블에 자욱이 앉은 그 찬란한 젊음들과 나는 말을 건네보지 않았으나 종종 마주치는 그들의 눈길이 얼마나 많은 것을 말하고 있는지 막연히 느꼈었다. 

 

+1628

해 질 녘, 초록생의 황혼 빛, 바닷가에 서면, 눈을 감아야 참으로 보이는 나의 별, 잘 익은 과일, 하루에 한 번 익은 지구가 비로소 내 가슴에 깊이깊이 들어앉는다. 내가 그 별 속에 살고, 그 별이 나의 속에서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자전을 시작한다.

당신은 혹시 보았는가? 사람들의 가슴속에 자라나는 그 잘 익은 별ㅇ르. 혹은 그 넘실거리는 바다를. 그때 나직막이 발음해보라. "청춘." 그 말 속에 부는 바람 소리가 당신의 영혼에 폭풍을 몰고 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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