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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걸작

[밑줄]

+1648

치열하게 사는 것은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욕망이고 예술적인 삶에선 필수적이다

 

+1649

어떤 사물을 정말 깊이 있게 보게 만든다는 데 그 가치가 있다. (*수집의 미덕)

 

+1650

그리고 언제나 눈을 크게 뜨고 있는 것이 좋다. 언제 무엇을 발견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직업적인 예술가이든 열정이 낳은 예술가이든 좀 더 깨어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은 인간의 본능이고, 그러려면 잘 보는 기술이 필수적이다. 다행히도 이 기술은 배울 수 있다. 나는 이 책에서 아마추어의 정신으로 '보는 기술(the art of seeing)'이라는 문제에 접근하고 싶었다. 여기서 아마추어란 그 본연의 의미, 즉 애호가를 뜻한다.

 

+1651

스페인의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예술의 비인간화>에서 '아이러니적 운명'이라는 제목도 적절한 장에서 요즘 사람들이 얼마나 페이소스를 멀리하고 아이러니를 선호하는지, 이로 인해 "현대미술이 견딜 수 없이 지루해졌는지"를 한탄했다.

 

+1652

왜 그리스인들은 음악을 의학과 연결시켰느냐고. 스콧씨는 의학이 몸을 낫게 하듯 그리스인들에게 음악은 영혼을 치유하는 것이었다고 대답했다.

 

+1653

앙투완 드 생텍쥐페리가 "바람과 조류와 별을 막기 위한 작은 성벽"을 쌓고 그 "우아한 안정" 속으로 돌돌 말려 들어갔다고 표현했던 그 사람이었다. 생텍쥐페리는 또 시간이 지나면서 "당신이 쌓아 올린 진흙은 점점 말라 굳어갈 것이고, 처음부터 당신 안에 살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음악가와 시인과 천문학자를 깨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1654

1911년 에드가 드가는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화가였던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에게 가장 특별한 경의를 표혔다. 노인이었던 드가는 파리의 조르주 프티 갤러리에서 열리는 앵그르의 전시에 하루도 빼놓지 않고 갔다고 한다. 그런데 그 당신 드가는 눈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름들 위로 손을 저어 볼 뿐이었다. 어른이 아이를 안아 보듯 그림을 쓰다듬어 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저 애정 때문만이 아니라 직접 손을 대는 행위를 통해 그 순간을 초월하고 싶었을 것이다. 

 

+1655

앞으로 할 얘기들은 나 자신보다 훌륭한 것들에, 내 몸이 닿았던 접점들이다.

 

+1656

스탕달은 "아름다움은 행복을 약속해 준다."라고 했다. 이 말을 논리적으로 확대해 보면 적절한 시각만 있다면 내부의 삶이 겉에서 보는 것보다 행복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얘기다.

 

+1657

로스의 프로그램은 그림을 가르치기도 했지만 위안을 주자는 목적도 있었다. 그러니까 희망을 판 것이다. "이 캔버스에 당신의 세상이 있습니다." 그는 시청자들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라도 할 수 있지요. 절대적이고 완벽한 힘이 당신에게 있어요. 내가 힘을 가진 곳은 이곳뿐이에요. 여기서 나는 독재자가 될 수 있어요. 그래요. 난 뭐든 할 수 있고 당신도 할 수 있어요." 이렇게 해서 로스는 그림을 그리는 기본적인 이유를 제공했다. 무의식을 즐기고 자아를 달래고 권위를 가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1658

쿠크는 그 다음으로 열두 단계 프로그램과 비슷한 제안을 했다. "피아노는 조율할 것," "건반은 깨끗이 닦을 것," "양손 손톱은 짧게 깎을 것," 그리고 다음을 기억하라고 했다. "하루에 30분 연습하면 1년에 1095분, 즉 182시간이 되고, 5년이면 910시간, 10년이면 1820시간이 된다." 다시 말해 시간 투자와 훈련이 예술을 즐기기 위한 필요조건이라는 얘기다. 그는 이런 점에서 후에 등장한, 노력을 최소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대중문화 세일즈맨들과 달랐다. 쿠크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열심히 노력해서 천천히 '풍요의 뿔'의 좁은 끝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러면 나중에는 노력을 덜하더라도 삶을 즐기며 커다란 다른 끝으로 나올 수 있다."

 

+1659

말링이 지적한 대로 '스스로 하기(do-it-youself)'는 상관과 임원들이 군림하는 세상에서 자신감과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마지막 피난처였다."

 

+1660

때론 예술은 이렇게 태어난다. 예상치 못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반드시 앞문으로 들어오는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뒷문으로 몰래 들어오는, 엉뚱한 우연의 결과이기에 더 놀랍다. 내 생각에 만약 전문가가 이 사진을 계획해서 찍었다면 아마 감동이 덜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마추어가 실수로 좋은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은 언제 들어도 고무적인, 삶의 중요한 전제를 알려 주기 때문이다. 즉 예술은 언제나 우리가 발견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고 문제는 우리가 그걸 알아볼 준비가 되어 있냐는 것이다.

 

+1661

화가 바넷 뉴먼(Barnett Newman)이 1948년 "현대미술은 아름다움을 파괴하려는 욕망에서 온다."고 하면서 숭고와 아름다움을 대립시켰다. 그런데 이런 추동이 꼭 뒤샹을 비롯한 현대의 서구 미술가들에게서만 기원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덧붙이고 싶다. 쿠르베에서 마네, 반 고흐에서 고갱에 이르기까지 이것은 이미 전통이었다. 

 

+1662

누구나 알 수 있겠지만 앙리 마티스나 파블로 피카소, 또는 빈센트 반 고흐는 시대마다 새로운 예술가로 다시 태어난다. 시간이 지나면서 환경이 바뀌고 세대가 바뀌면서 그들의 작품이 전혀 다른 새로운 의미를 띄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마티스의 그림 자체는 유한하고 완성된 하나의 오브제이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다른 예술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계속 변하고 새로워진다. 비평가 존 러셀(John Russell)은 이에 대해 "우리가 이번 주에 본 것은 다음 주가 되면 다르게 보일 것이다."라고 짧게 표현했다. 바꾸어 말해 최고의 예술은 죽음도 물리친다.

 

+1663

이런 예술가들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창조성의 한계(결국 시도해 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를 넘어서는 삶의 본보기를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 

 

+1664

솔르윗은 언젠가 편지로 헤세의 이런 태도를 격려했다. 예술가끼리 주고받는, 영감을 주는 글의 전형이라 할 만한 편지였다. "세상을 향해 가끔 '엿 먹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해." 르윗이 헤세에게 말했다. "넌 그럴 권리가 있어. 생각하고 걱정하고 뒤돌아보고 망설이고 의심하고 두려워하고 상처받고 쉬운 방법을 찾고 몸부림치고 헐떡거리고 혼란스러워하고 가려워하고 긁고 더듬거리고 버벅거리고 투덜거리고 초라해하고 비틀거리고 덜거덕거리고 헤매고 걸고넘어지고 지우고 서두르고 비틀고 꾸미고 불평하고 신음하고 끙끙대고 갈고닦고 발라내고 허튼소리를 하고 따지고 트집 잡고 간섭하고 남에게 몹쓸 짓 하고 남 탓 하고 어슬렁대며 훔쳐보고 오래 기다리고 조금씩 하고 나쁘게 보고 남의 등이나 긁어 주고 탐색하고 폼 재고 앉아 있고 명예를 더럽히고 자신을 갉고 갉고 또 갉아 먹지 말라고. 다 멈추고 무조건 '하라'고."

"멋있는 걸 만들 생각은 버려. 너만의 고유한 '볼품없음'을 창조하라고. 너만의, 너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라고."

 

+1665

1848년에 독일이 혁명 후 검열을 폐지했을 때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는 이렇게 썼다. "아, 난 더 이상 쓸 수가 없다. 검열이 없는데 내가 글을 쓸 수 있단 말인가? 검열과 평생을 살아 온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검열 없이 글을 쓴단 말인가? 그동안의 스타일과 문법, 좋은 습관들이 모두 사라질 것이다!"

 

+1666

범선 시대의 모험가 헐리는 인류의 우주 비행을 보고 난 후인 1962년, 일흔여섯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늘 하던 대로 하루의 고된 일과를 마친 후 죽어 가는 걸 알면서도 눕기를 거부하고 의자에 똑바로 앉은 채였다.

 

+1667

사람들은 예술가들을 별나다고 생각하지만, 펄스타인은 예술가들도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더 중요한 진실을 보여준다. 즉 예술가들도 매일매일 조금씩 똑같은 방식으로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습관의 동물이다. 무용가인 트와일라 타르프(Twyla Tharp)는 매일 아침 5시 반에 일어나 택시를 타고 헬스클럽으로 향한다. 별 볼일 없는 일과인 것 같지만 그녀는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일정한 습관에 따라 일하는 많은 창조적인 사람들이 매일 똑같은 준비 작업을 하는데, 하루를 시작하는 환경과 밀접하게 얽혀 있다. 그 환경 속으로 들어감과 동시에 창조적인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프레데릭 쇼팽(Frederic Chopin)은 바흐의 서곡과 푸가를 들었고 베토벤은 머리를 깨우고 생각나는 단상을 적기 위해 메모지를 들고 산책했다. 창조적인 작업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것은 일상에서 온다. 뭐가 새로운지 알기 위해선 먼저 뭔가에 익숙해져야 하는 것이다.

 

+1668

그는 좋은 사람이고 자신을 깎아 내리는 농담도 종종 한다. 하지만 다른 예술가들처럼 자존심이 강하면서도 예민해서 농담은 양날을 지닐 때가 많다. 어느 날 오후 쉬는 시간, 그는 1950년대 잡지 <아트(Arts)>에 실렸던 풍경화에 대한 얘기를 시작했다. 그림이 잡지에 실린 건 경력에 큰 도움이 되었고, 몇년 후 그 잡지 편집자를 만난 자리에서 그는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그때 알코올중독 때문에 직장에서 막 해고당한 상태였는데 마지막으로 한 건 해 보자는 심산으로 그때까지 본 것 중 가장 추하다고 생각한 내 그림을 잡지에 실은 거라고 하데요."

 

+1669

"아마 이 그림은 안 팔릴 거예요. 가슴에 털이 난 그림은 팔리지 않아요. 하지만 이게 내가 하는 일이에요. 난 화가이고 매일 아침 일어나 일을 해요. 문명에 대한 내 작은 기여지요."

 

+1670

모든 작품은 우리가 감상하는 그 순간, 주변환경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는 장소 특정적 예술이 된다. 그게 붐비는 미술관이든, 친구의 거실이든, 또는 사람이 없는 성당이든 마찬가지인데, 특히 거기까지 간 이유가 그 작품을 보기 위해서였을 때는 더욱 그렇다.

 

+1671

호레이스 피핀(Horace Pippin)의 그림들은 언젠가 코넬 웨스트(Cornel West)가 말한 것처럼 "미국 예술 속에 있는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의 풍부한 전통을 잇는 것으로, 평범하고 흔해 빠진 일상의 삶 속에 숨겨진 영화로움에 초점을 두었다." 에머슨은 이렇게 썼다. "나는 이탈리아나 아랍, 그리스의 예술이나 프로방스의 음유시처럼 거창하고 멀리 있고 낭만적인 것을 원하는 게 아니다. 나는 평범함을 껴안고, 발밑의 익숙한 것들, 낮게 있는 것들을 탐색한다."

 

+1672

우린 이것저것 물건들을 모으고 그 물건들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이 물건들도 어쩌면 우리의 가족처럼 되었다. 그리고 애완동물이나 사람에게 그러듯 이런 물건들에도 애착을 갖게 된다.

 

+1673

사진작가인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말년에 루브르에서 샤르댕과 다른 화가들의 그림을 모사하면서 수도승처럼 지냈는데, 샤르댕의 유명한 그림 중 하나인 껍질이 벗겨진 채 고리에 걸려 있는 죽은 가오리 그림에 대해 가오리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 같다고 한 적이 있다.

 

+1674

눈을 뜬다는 것은 실제로 생각보다 훨씬 힘들어요. 어쩌면 우리는 자라면서 보지 못하도록 훈련되어 왔다고도 할 수 있어요. 주변에서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시각적으로 정지되어 있도록,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우리가 보는 대상에 대한 정보를 미리 얻도록(미술관에서 그림을 보기 전에 설명을 먼저 읽는 것처럼) 훈련되어 온 거죠. 본다는 건 때로 그저 믿는 걸 뜻해요. 봐야 하는 방식대로 보는 것에 '실패'할 준비가 되어 있고 자기만의 감각으로, 자신에게 의미 있는 뭔가를 볼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해요. 대개 미술에 관한 글들은 눈을 뜨고 있으라고 권하지 않아요. 어떻게 보라고 지시할 뿐이죠. 하지만 값진 교훈(진정한 의미에서 '선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은 예술가로부터 얻을 수 있어요. 그들은 그냥 보는 행위를 즐길 뿐, '옳게' 보는 일에 대해 걱정하지 않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