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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서재

마음의 서재

[밑줄]

+2029

도대체 무슨 책을 읽어야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요. 그 질문이 너무 아파, 한참을 망설이다 늦어진 답장은 이렇다. 인생을 확 바꾸는 책은 없지만, 인생을 확 바꾸는 절실한 물음은 있다고.

 

+2030

얼마 전 문득 깨달았다. 내겐 '앞으로 읽어야 할 수많은 책들의 목록' 때문에 '이미 읽은 책들이 놓일 마음의 자리'가 없다는 것을.

 

+2031

중요한 것은 '읽어 가지는 것'이 아니라 '퍼뜨려 나누는 것'이니까.

 

+2032

나는 '혼자 읽고 좋아하는 것'보다 '함께 읽고 기뻐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배웠다.

 

+2033

무엇이든 이야기로 전달하면 지식의 파급력이 엄청나게 커지고 그 이미지의 잔상이 오랫동안 각인된다.

 

+2034

'잡담처럼 들리는 것'이야말로 흥미로운 강의의 기술이다.

 

+2035

책은 처음부터 '나의 문제로부터의 도피처'가 되어주고,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영혼의 지도가 되었다가, 결국 내가 도망쳐온 곳이 어디인지를 스스로 깨닫게 만든다.

 

+2036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중요했던 모든 것들이 상투적인 배경화면으로 전락하고, 오직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만이 슬로 모션으로 포착되는 순간. 저마다 아웅다웅 치고받는 현실의 세속적 경쟁이 무의미해지는 순간. 입학이나 취업을 위한 성실한 자기계발의 노력조차 하찮아지는 순간. 모든 욕망의 화살표가 한 사람의 표정과 말투에 집중되는 순간. 그렇게 첫사랑은 시작된다. 인간이 이토록 강렬한 쾌락을 경험해도 좋은 것인가 싶을 정도로 커다란 기쁨이 찾아오는 순간, 동시에 그 사람을 독점할 수 없다는 현실적 고통이 발목을 붙잡는다. 가장 큰 희열이 시작되는 순간, 가장 큰 고통도 시작되는 것이다.

 

+2037

매력은 미모처럼 자신을 '볼거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함께하고 싶은 존재'로 만드는 기술이다. 

 

+2038

이 철학자들을 묶고 있는 보이지 않는 힘은 바로 이야기를 향한 사랑이다. 타인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나 있는 뜨거운 이야기를 향한 사랑. 타인을 논박하거나 굴복시키기 위해 각종 권위에 호소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넘어뜨린 이야기로 타인 또한 넘어뜨리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향한 열정.

 

+2039

앤을 얌전한 모범생으로 훈련시키는 것은 할 줄기 얕은 시냇물 위에서 춤추는 햇빛을 훈련시키는 것과 마찬가지임을.

 

+2040

앤이 어느새 마릴라보다 키가 훌쩍 컸다는 사실을 알아챈 날, 마릴라는 저녁 어스름 속에서 이상한 슬픔을 느끼며 홀로 흐느낀다. 나의 사랑과 보살핌이 필요한 존재, '나의 아이', '내 소속의 책임'이었던 앤은 사라져버리고 어느덧 '타인에게 필요한 존재', '이 세상을 향해, 세상 밖으로 내보내야 할 존재'가 된 것이다.

 

+2041

일리히에 따르면, 믿음이야말로 '가장 바보 같은 인식'임과 동시에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인식'이다. 인간은 바로 그 조건 없는 믿음의 목소리를 잃어왔기에, '최선의 것이 타락하여 최악이 되어버린 세상' 속에서 고통받는다.

 

+2042

막상 상대방이 뜻대로만 움직여준다면 사랑은 결코 지속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상대방에게서 어떤 의외성도 어떤 매력도 느낄 수 없으니. 우리의 뜻밖으로만 한사코 도망치는 존재, 늘 짐작할 수 없는 곳으로 도망침으로써 '나'라는 소우주의 경계를 넓혀주는 타자가 바로 우리의 영혼을 뒤흔드는 존재,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아닐까.

 

+2043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에게 너무 많은 것을 원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폭력이 될 수 있다.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네가 나에게 이럴 수 있어? 이런 감정이야말로 사랑을 '맞교환'으로 환원해버리는 분노의 본전계산법이다.

 

+2044

타자의 타자성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타자를 타자인채로 사랑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정답은 없겠지만, 우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를 철회하는 것이다. '사랑의 완전성'과 '상대방의 완전성'에 대한 기대를 철회하는 것. 그리고 '나의 사랑'과 '너의 사랑'을 비교하는 작업을 끝장내는 것이다. 내 사랑에 비해 네 사랑이 얼마나 작은가를 매번 측정하는 일은 사랑 자체를 끝없는 서바이벌 게임으로 만들어버린다.

 

+2045

아무리 실패한 사랑이라도 사랑은 자아에 매몰된 협소한 삶을 세상 바깥으로 끌어내어 우리 정신의 터전을 확장시킨다.

 

+2046

오늘 당신은 어떤 '한 사람의 힘'으로 하루를 버텼는가. 바로 그 한 사람의 어여쁜 미소가 우리의 미래고, 우리의 희망이다.

 

+2047

현대인은 교양 자체로부터 자연스레 샘솟는 기쁨을 느끼기보다는 '교양 없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피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곤 한다.

 

+2048

살아가면서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지만, 학교에서는 쉽게 배울 수 없는 것들을 찾아보자. 예를 들면 실연당했을 때 슬픔을 견디는 법, 누군가를 증오할 때 그 분노를 극복하는 법,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함께 울어줄 이를 찾는 법,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 함께 울어줄 이를 찾는 법. 이런 것들이 진짜 우리에게 필요한 교양이 아닐까.

 

+2049

그래, 우리는 항상 자라고 있는데. 우리는 어른이 된 뒤에도 불현듯 어린이로 되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죽을 때까지 늘 조금씩 '되어가는 존재'다.

 

+2050

루쉰은 선생의 사진을 보고 용기백배하여 성인군자들이 노발대발할 글을 열심히 쓴다. 이렇듯 진정한 스승은 함께 있지 않아도, 영원히 다시 볼 수 없어도, 함께한 기억만으로도 인생의 거대한 힌트를 준다.

 

+2051

'세대교체'라는 표현에는 은밀한 잔혹성이 묻어 있다. 그것은 결국 신세대의 입장만을 대변한다. 세대교체는 전 세대의 '사라짐'을 전제한다.

 

+2052

수백 년 동안 대를 잇는 가게들의 특징은 자식 또는 후임자를 최후의 보루나 이미 잡은 고기처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최초의 고객이자 최고의 비평가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부모는 아들딸에게 좀 더 멋진 장인처럼 보이기 위해 늘 노력하고 늘 유혹하고 늘 눈치 본다.

 

+2053

각종 '증오범죄'에 숨은 심각한 윤리적 딜레마는 바로 타인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의 편협함이다.

 

+2054

'폭력을 중단시키는 힘'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것이 바로 타자에 대한 책임이다. 그냥 대충 뭉뚱그려 '이 사회가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약자에 대한 죄책감을 희석시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책임을 오직 '1인칭의 책임', 즉 '나의 책임'일 때만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2055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좀 더 살 만하게 만드는 힘, 우리 아이들이 자랄 세상을 좀 더 따뜻하게 만드는 힘이 바로 이 '타인을 향한 책임'이다. 이것이 우리가 아이들에게 "이 세상이 얼마나 험한지 아니?"라고 겁주기에 앞서, "우리는 이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 권리가 있다."라고 가르쳐야 하는 이유다.

 

+2056

나를 사랑하라. 나를 가꾸라. 나에게 투자하라.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서는 어떤 수고도 아끼지 말라. 이런 명령어들은 자본주의와 개인주의의 전략적 제휴를 상징하는 매우 근대적인 욕망을 함축한다. 자기 자신이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그 사랑의 방식이 곧 자신에게 화폐를 투자하는 것이라는 인식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바람직한 자아'와 '뭔가 결핍된 자아'로 나누어 바라보게 만든다. 이 사랑에는 전혀 낭비라는 개념이 존재할 수 없다. 자아는 무한히 소중한 것이고, 자아를 위한 투자는 무한히 허용되기 때문이다.

 

+2057

"아첨꾼들로부터 당신 자신을 지키는 유일한 길은, 당신이 진실을 들어도 기분이 상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로 하여금 알게 하는 것이다."

 

+2058

타인을 지배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타인을 '두려워할 줄 아는' 것이다.

 

+2059

현대인이 무한경쟁의 원조로 숭배하는 스파르타는 정작 전쟁이 끝났을 때 심각한 아노미 상태를 겪은 뒤 결국 몰락하고 말았다. 전쟁의 기술을 고안하느라 삶의 기술을 개발하는 일에 소홀했기 때문이다.

 

+2060

상대방이 멋진 의견을 낼 때, 그저 '대박', '헐'이라는 상투적 감탄사로 그칠 것이 아니라 좀 더 대화를 신명나게 이어나갈 수 있는 멋진 추임새를 넣어주는 센스, 그것이야말로 교양의 숨결이 아닐까.

 

+2061

아무리 세상의 종말이 온 것 같아도, 서로에게 리액션을 보내줄 단 한 사람만 있으면 인간은 고통을 견딜 수 있다.

 

+2062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성공보다 중요한 것은 성공의 결과물이 모두 사라지고 난 후에도 영혼의 존엄을 잃지 않는 일임을 눈부시게 증명해낸다.

 

+2063

<낭만주의의 뿌리>에서 이사야 벌린은 베토벤을 독일 낭만주의의 아이콘으로 설명한다. "가난하고 무식한 촌뜨기"에다가 "예의범절은 형편없고, 지식도 천박"한 베토벤이야말로 다락방에 틀어박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위대한 음악을 창조해냈다고. 자기 내면의 빛에만 의지해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한 인간을 영웅으로 만드는 비밀의 전부라고.

 

+2064

칸트의 친구였던 게오르크 하만은 인간의 본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은 볼테르가 주장한 것처럼 행복과 만족과 평화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인간이 진짜 원하는 것은 각자의 모든 능력을 쏟아 부어 최대한 풍성하고 열정적인 방식으로 삶을 즐기는 것이라고. 낭만주의는 바로 이 인간 내면의 창조적 열정을 지상 최고의 보물로 승화시킨 것이다.

 

+2065

인간이 숲을 나와 문화생활을 하게 된 것은 비평을 통해서였다. 모두가 나체인 것에 이의를 제기하고 옷을 입을 것을 권고한 사람은 최초의 비평가였다. - E.L. 고드킨

 

+2066

비평은 '메타적 글쓰기'이기 때문에 그 창조성을 폄하당하기도 하지만, 바로 그 '메타의 힘'이야말로 비평의 끊이지 않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메타의 힘은 일종의 교묘한 연기력이다. 무엇에 대해 쓰는 척하면서, 사실은 바로 자신의 이야기를 슬쩍 끼워 넣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비평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어떤가'를 쓰면서 사실은 그 작품을 그렇게 보는 나 자신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비평은 '이 글은 온전히 내 것이다'라는 명제에서 오는 심리적 부담을 줄이면서, '사실은 내 것'을 털어놓는 글쓰기, 그러니까 감추면서 드러내는 글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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