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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The Pleasure and Sorrows of Works

 

[밑줄]

+1883

일이 의미 있게 느껴지는 건 언제일까? 우리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의 기쁨을 자아내거나 고통을 줄여줄 때가 아닐까? 우리는 스스로 이기적으로 타고났다고 생각하도록 종종 배워왔지만, 일에서 의미를 찾는 방향으로 행동하려는 갈망은 지위나 돈에 대한 욕심만큼이나 완강하게 우리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합리적인 정신 상태에서도 안전한 출세길을 버리고 말라위 시골 마을에 먹을 물을 공급하는 일을 도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또 인간 조건을 개선하는 면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고급 비스킷보다도 섬세하게 통제되는 제세동기가 낫다는 것을 알기에, 소비재를 생산하는 일을 그만두고 심장 간호사 일을 찾아볼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우리가 그저 물질만 생각하는 동물이 아니라 의미에 초점을 맞추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1884

나는 르네에게 내 의문을 제기했다. 왜 우리 사회에서는 가장 의미 없는 것들을 판매할 때 가장 큰 돈이 생기는 일이 종종 벌어지는 것일까?

 

+1885

제조업자는 자신의 일이 인류에게 의미 있는 기여를 한다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경박한 방식을 보면 그 주장은 빛이 약간 바랜다. 한 직원이 '핌블스'라고 부르는 만화 캐릭터들이 인쇄된 공짜 스티커 증정 행사를 골자로 한 슈퍼마켓 프로모션을 고안하는 데 3개월을 보냈다는 소식에 대한 합리적 반응은 슬픔뿐이다. 어른들은 왜 그렇게 치사하게 자신의 책임을 방기할까? 두건이 달린 검은 망토 차림의 죽음이 어깨에 낫을 둘러메고 지평선에 나타나기 전에 한번 이루어보고 싶은 더 큰 야망은 없을까?

 

+1886

현대의 상업적인 노력은 우리가 영웅주의 하면 연상하는 것들과는 다를지도 모른다. 그런 노력에는 하나 가격에 두 개를 주는 특별행사나 스티커를 뇌물로 주는 가장 진부한 방식의 싸움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싸움이며, 그 강도와 부담이라는 면에서 볼 때, 선사시대 벨기에의 죽음의 숲으로 달아난 동물을 쫓아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1887

이 사회는 우리의 진지하고 의미심장한 요구와 관계가 없는 산업, 수단의 진지함과 목적의 하찮음 사이의 괴리를 피하기 어려운 산업, 그 결과 컴퓨터 터미널 앞과 창고 안에서 우리를 의미 상실로 몰아놓기 십상인 산업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1888

일을 중심에 둔 것은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일이 형벌이나 속죄 이상의 어떤 것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 것은 우리가 사는 사회가 처음이다. 경제적인 필요가 없어도 일은 구해야 한다고 암시하는 것도 우리 사회가 처음이다. 직업 선택이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새로 사귀게 된 사람에게도 어디 출신이냐, 부모가 누구냐 묻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느냐고 묻는다.

 

+1889

시먼스는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가 <동기부여와 인격 Motivation and Persnality>에서 한 말을 좋아하여, 변기 위에 써붙여놓기까지 했다.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그것은 보기 드물고 얻기 힘든 심리학적 성과다."

 

+1890

시먼스는 사람들과 그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에 관해 직접 이야기하는 단순한 방법으로는 더 큰 충족감을 주는 직업으로 그들을 안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돈과 지위에 대한 걱정이 대분분의 사람들에게서 진정으로 자신이 택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능력을 소멸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먼스는 사람들을 직업이라는 경직된 틀에 맞추려 하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이 첫 번째 원칙들로 돌아가, 그들을 기쁘게 하고 흥분시키는 관심사들을 중심에 두고 자유연상을 하게 했다.

 

+1891

헤어네트를 쓴 여러 그룹의 엔지니어들이 위성 발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자 현재 과학계의 삶이 개인적 에고의 제한 또는 말살을 의미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개인적 영광의 기회는 없었다. 전기가 기록되거나 일반인이 기억할 만한 이름으로 남을 전망이 없었다. 이것은 어떤 한 사람도, 심지어 어떤 상업적 또는 학술적 조직도 명예를 독차지할 수 없는 집단적 기획이었다. 천재들이 관측소나 작업장에서 일로매진하여 과학사의 방향을 바꾸던 시절은 지나갔다. 우리는 천체물리학자와 항공 엔지니어들이 어느 한 사람을 우리 시대의 갈릴레오로 띄우려는 미디어의 시도에 저항하면서 공동 실험실에서 작은 수수께끼를 10년 동안 함께 공략하는 소박한 시대에 들어섰다. 

 

+1892

아이작 뉴턴(그의 이름이 붙은 거리에는 쿠루의 유일한 여행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은 위성 발사의 기초가 되는 이론들을 처음 제시한 사람이었다. 그는 만일 높은 곳, 예를 들어 믿어지지 않을만큼 높은 산꼭대기에서 대포를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쏘면, 대포알이 궤도를 따라 지구 둘레를 돌 것이라고 추론했다. 지구가 회전하여 대포알에서 멀어지지만, 동시에 지구의 중력은 대포알을 잡아당길 것이었기 때문이다. 

 

+1893

그녀는 위성이 발사되는 동안 자기가 모기에게 엄청나게 물린 것을 한참 자랑하더니 급기야 발목까지 보여주었다. 그녀가 여전히 매력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그 아주 작은 존재들이 관심을 가져준 흔적들을 마지막 증거로서 필사적인 심정으로 제출하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나는 로켓에게 질투심을 느끼는 것도 가능한 일임을 깨달았다.

 

+1894

반면 자연은 피를 흘리고 죽어가면서 우리 문 앞에 당도한 예전의 원수처럼 우려와 동정의 대상이 되었다. 자연 풍경은 이제 우리를 훌쩍 뛰어넘는 모든 것의 상징 자리에서 물러나, 어디에서나 우리의 돈키호테적인 힘 때문에 상처를 입고 있다. 우리는 킬리만자로의 줄어드는 눈을 보며 터빈의 악영향을 생각한다. 아마존 강 주변의 벌거벗겨진 땅 위를 날며 열대우림이 우리 손에 쥐어진 꽃 한 송이만큼이나 약하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회로판에는 존중심을 느끼고 빙하에는 동정심과 죄책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1895

테일러는 사물의 겉모습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괴로워한다. 밀의 색깔이 잘못 표현되었거나, 하늘의 두 조각 사이에 불편한 단층선이 있으면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한다. 그는 자신의 일 때문에 긴장된 침묵의 분위기에 빠져들기도 하고, 그런 기분으로 콜체스터 거리를 걷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걱정은 다른 사람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것이다. 팽팽하게 펼쳐놓은, 돈이 생기지도 않는 천 조각에 부정확하게 발라놓은 물감 때문에 생긴 괴로움에 너그러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1896

우리의 모든 지능과 감수성을 한 장소에 모아둘 기회는 더군다나 찾아보기 힘들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노력은 오랫동안 지속되는 물리적 상관물을 찾지 못한다. 우리의 거대하지만, 손에 잘 잡히지 않는 집단적인 기획들 속에서 희석되고, 그러다 보면 작년에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궁금해진다. 더 깊은 수준에서는 우리가 어디로 간 것이고, 도대체 무엇이 된 것인지 궁금해하다가 결국 퇴직 기념 파티 같은 분위기에 젖어 우리의 사라진 에너지들을 바라보게 된다.

 

+1897

"물을 본 적 있어요?" 테일러가 묻는다. "제대로 본 적이 있냐는 거죠?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처럼."

 

+1898

잠을 자려고 노력할 수록 정신은 고집스럽게 더 말짱해질 뿐이었다. 그래서 일어나려 하면 바로 더 깊은 피로와 마주쳤다. 새벽 두 시에 나는 불을 켜고 동이 틀 때까지 책을 읽겠다고 공식적인 결정을 내렸다. 앙심을 품고 나의 말짱한 정신에게 그의 봉기의 최종 결과를 통보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1899

그러나 이언이 이 책에서 특히 관심을 갖는 대목은 네덜란드와 풍차의 관계의 역사에 대한 명제다. 이 책은 처음에는 산업적 구조물이었던 풍차도 지금의 철탑과 마찬가지로 위협저이고 이질적인 물체였다고 강조한다. 지금 일반적으로 풍차 하면 연상되는 매혹적이고 장난스러운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설교단에서는 풍차를 비난했고, 의심 많은 마을 사람들은 가끔 풍차를 태워버리기도 했다. 풍차가 재평가를 받은 것은 많은 부분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위대한 화가들의 업적이었다. 이 화가들은 조국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이 실용적인 구조물에 의존한다는 사실에 강한 인상을 받아, 그들에게 캔버스에서 자랑스러운 자리를 내어주고, 폭풍우가 몰아쳐도 튼튼하게 버틴다든가 늦은 오후의 햇빛을 받아 날개를 반짝인다든가 하는 가장 멋진 면들이 부각되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1900

이언은 침울해졌다. 어디를 둘러보나 조류 관찰자 모임이 번창한다는 것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 조직은 새를 관찰하는 개인적 만족감이라는 작은 기회를 포착하여, 그것을 공식화되고 상업적으로 활성화된 활동으로 바꾸어놓았다.

 

+1901

45분 전만 해도 온 나라가 얼마나 고요했던가. 그러나 이제 이 회계사의 집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포크스턴에서 에일즈버리까지, 하슬미어에서 첼름스퍼드까지 수도를 둘러싼 거대한 원 안에 있는 다른 수많은 가정에서 되풀이되는 30분 동안 얼마나 많은 머리 감기, 넥타이 묶기, 열쇠 찾기, 얼룩 제거하기, 배우자에게 소리치기가 동시에 일어날 것인가.

 

+1902

인간이 자연스럽게 모여 사는 종임을 고려할 때, 열차 안의 정적은 왠지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통근자들이 서로 은밀히 평가하고, 심판하고, 비난하고, 욕망을 드러내는 것보다는 다른 일에 몰두하고 있는 척하는 것이 얼마나 더 편하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1903

모두 신문을 읽고 있다. 물론 새로운 정보를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잠으로 인해 내성적이 되어버린 마음을 살살 달래 밖으로 끄집어내려는 것이다. 신문을 본다는 것은 소라고등을 귀에 대고 인류의 고함에 압도당할 각오를 하는 것이다.

 

+1904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자유의 끝이라는 뜻이지만, 동시에 의심과 집념과 변덕스러운 욕망의 끝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녀에게는 사람을 만나면 나누어주는 명함이 있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녀가 우연적인 우주에 나타났다가 곧 사라질 덧없는 의식 한 조각이 아니라 '비즈니스 유닛 시니어 매니저'라고 말해준다. 아니 좀 더 의미 있는 관점에서 보자면, 그녀 자신에게 그 사실을 일깨워준다. 동료들이 그 직책을 근거로 나에 관하여 가정하는 것들이 나를 제어해 주는 덕분에 새벽의 외로움 속에서도 과거에는 가능했지만 이제는 결코 가능하지 않은 것들을 생각하지 않게 되니 얼마나 만족스러운지.

 

+1905

사장은 자신의 앞선 위치를 보존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평직원의 자세를 취하는 것이ㄷ다. 부하 직원들은 그가 그들과 운명을 공유하는 척할 때 보여주는 신실함에 감탄하지만, 그는 속으로는 자신이 보통 사람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줄 때만 다시 보통 사람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사장은 또 큰 소리로 명령을 내리는 권리도 포기할 수밖에 없다. 하긴 인시아드와 와튼 졸업생들을 야단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에게 남은 한 가지 도구는 설득뿐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제국 여러 곳에서 한 달에 서너 번씩 연단에 올라가 재킷을 벗고 앞에 모인 회계사 3천 명을 건너다보며 파워포인트 구호들을 배경 삼아, 그들이 존경할 만한 전문직업인이라고 먼저 이야기를 꺼낸 뒤에야 그들이 일하는 방법에서 개선할 점들을 교묘하게 제시할 수 있다. 마치 신앙이 쇠퇴하는 시대에 겸손하게 호소하는 설교자 같다.

 

+1906

이런 식으로 피곤하고 신경이 곤두설 때 유일하게 효과가 있는 해결책은 와인이다. 사무실 문명은 커피와 알코올 덕분에 가능한 가파른 이륙가 착륙이 없으면 존립할 수 없을 것이다. 

 

+1907

나는 영감과 동시에 벌을 받은 기분으로 창업자들의 모임을 떠났다.... 이 사람들은 현대 소설의 하위 장르인 사업계획서 장르에 속하는 이야기를 쓰고, 거기에 전혀 있을 법하지 않은 인격을 부여받은 등장인물들을 집어넣었다. 이런 허점은 <런던 리뷰 오브 북스 London Review of Books>에 실린 똑똑한 젊은이의 신랄한 서평 대신, 고객 부족과 즉각적인 파산이라는 벌을 받게 될 터였다.

 

+1908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근시안적으로 행동한다. 그 안에 존재의 순수한 에너지가 들어 있다. 밤이 올 때쯤이면 죽을 것이라는 커다란 사실을 외면한 채, 서둘로 칠한 붓이 남긴 페인트 한 방울을 피해 창턱을 계속 열심히 가로지르려는 나방에게서 볼 수 있는 강렬하고 맹목적인 의지가 있다.

 

++1909

우리의 일은 적어도 우리가 거기에 정신을 팔게는 해줄 것이다. 완벽에 대한 희망을 투자할 수 있는 완벽한 거품은 제공해 주었을 것이다. 우리의 가없는 불안을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성취가 가능한 몇 가지 목표로 집중시켜 줄 것이다. 우리에게 뭔가를 정복했다는 느낌을 줄 것이다. 품위 있는 피로를 안겨줄 것이다. 식탁에 먹을 것을 올려놓아줄 것이다. 더 큰 괴로움에서 벗어나 있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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