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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배반한 근대

우리를 배반한 근대_화려한 허울을 벗겨낸 근대의 속살

[밑줄]

+2041

역사의 진실은 희망과 환멸 사이, 아니면 기대와 두려움 사이 어디쯤엔가 있을 것이다

 

+2142

나는 근대를 '18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사이에 형성되어 그 이후 인류의 삶에 영향을 미친 가치(그리고 제도)가 지속된 시대'라는 뜻으로 쓰려한다

 

+2143

에리히 프롬은 고독과 무력감으로 불안해할 때 누군가 개인의 자유를 박탈하더라도 불안을 없애준다고 약속하면 자유에서 벗어나 그 관계 속으로 도피하거나 복종으로 도피하는 강력한 경향이 생겨난다고 보았다.

 

+2144

근대의 사회체제는 개인을 발달시켰지만 개인을 더욱 무력하게 만들었고, 자유를 증대시켰지만 새로운 종류의 의존을 낳았다.

 

+2145

독립된 자아는 도덕적, 공동체적 유대감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맞서야 한다. 따라서 세상에 압도되고 위축될 수밖에 없다.

 

+2146

개인은 시장을 통해 자유를 어느 정도까지 증대시킬 수 있었지만, 모든 개인이 자신의 자유를 무한대로 증대시킬 수는 없었다. 그 한계 앞에서 자유의 한도를 정하는 권위가 필연적으로 요구되었는데, 그 역할을 바로 국가가 맡게 되었다. 다시 말해 국가만이 자유를 제한하는 유일한 주체가 될 수 있었으므로 "자유주의는 결국 '해방된 개인'과 '통제하는 국가'라는 존재론적 요소에 도달했다"라고 드닌은 파악한다

 

+2147

문제는 자유주의의 실패가 그들 각 개인의 이익과 욕망이 제한되는 선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 자유주의의 실패로 정치적으로는 귀족정과 관료제의 강화, 경제적으로는 환경파괴의 가속화 등 전 분야의 위기가 더 심각해질 것이다. 다 함께 지켜야 할 공동선의 가치들이 갈수록 위험해질 것이라는 얘기다.

 

+2148

공화주의는 개인의 이익과 욕망의 추구가 아니라 공동선, 자치, 관용과 절제, 시민의 미덕을 중시하는 정신이다.

 

+2149

한병철은 <피로사회>에서 신자유주의의 특징으로 '자기 착취'라는 섬뜩한 용어를 제시했다.

오늘날 디지털 소통은 점점 더 공동체 없는 소통으로 발전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모든 각자를 자기 자신의 생산자로서 개별화함으로써 공동체 없는 소통을 강제한다.(중략) 오늘날 우리는 모든 곳에서 강박적으로 자기 자신을 드러낸다. 사회적 차원은 자기 생산(자기 과시)에 완전히 종속된다. 모든 각자는 더 많이 주목받기 위해 자기를 생산한다. 자기 생산의 강제는 공동체의 위기를 초래한다.

 

+2150

신자유주의가 원하는 바를 자유의 이름으로 포장해서 자발적으로 행동하도록 사람들을 은밀히 조종한다는 얘기다. 신자유주의가 원하는 행위란 대개 순응적 노동과 과소비를 말한다.

 

+2152

유럽 근대사회는 로피탈 제네랄에 수용된 자들로 대표되는 자신의 '타자들'을 발명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 곧 자신을 발명했다고 해석한다.

 

+2153

"보편성이 결코 보편적이지 않으며 오직 역사적 구성물일 뿐"이라는 푸코의 말은 보편성은 정치적으로 결정된다는 뜻이며, 이는 곧 해석 권력을 가지 자만이 광기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2154

대단히 허탈한 일이겠지만, 계몽주의의 합리성과 이성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 결국에는 모든 판단과 결정의 배후에 기득권 세력의 해석 권력이 작용하고 있다는 현실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2155

사랑은 아니 인간의 삶은, 광기와 이상이 분리되지 않고 합쳐진 상태에 있는 숭고한 그 무엇임을 이 대화는 암시하고 있다.

 

+2156

장하준 교수는 이런 부자 나라들을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하나는 이런 행태가 나쁜 줄 알면서도 강자의 논리로 낯 두껍게 밀어붙이는 '사다리 걷어차기' 유형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들이 부자가 되기 위해 자유무역, 자유시장 정책을 채택했다는 잘못된 믿음을 갖고 가난한 나라들에 자유 무역, 자유시장 정책을 권유하는 '나쁜 사마리아인들' 유형이다.

 

+2157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결국 성장, 평등, 안정 등 경제생활의 모든 전선에서 실패했다. 반면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개발에 성공한 개발도상국들은 거의 모두 보호관세와 보조금을 비롯한 갖가지 형태의 정부개입을 활용하는 민족주의적 정책을 통해 성공을 거두었다.

 

+2158

해밀턴은 <제조업에 대한 보고>에서 미국 같은 후진적인 나라는 외국의 경쟁으로부터 '유치산업'을 보호하고 그 산업들이 자기 발로 설 수 있을 때까지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159

프리드먼이 추구하는 근본주의 자본주의는 재난이 있어야 출현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커다란 위기 상황은 유권자의 뜻을 무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내고 '경제기술관료'에게 국가를 넘겨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곧 근본주의적 자본주의는 민주주의가 파괴된 백지상태에서 번성한다는 뜻이다.

 

+2160

자유시장과 프리드먼을 주술처럼 떠받드는 사람들에게 "경제는 너무나 중요해서 경제학자들에게 맡길 수 없다"라는 말을 꼭 들려주고 싶다. 또 "우리가 경제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경제학자들에게 속지 않기 위해서다"라는 말도 있다. 아 참, "유한의 세계에서 끝없는 경제성장이 계속될 것으로 믿는 자는 미치광이이거나 경제학자다"라는 말도 있다. 

 

+2161

<풍요의 조건>의 저자 자라 바겐크네히트도 "한 기업의 소유자에게 그 기업에서 형성한 모든 수익을 완벽하게 자기 마음대로 사용토록 보장하지만, 그 기업이 안게 된 위험에 대해서는 처음에 투자한 자본금만큼만 책임을 지운다"라며 주식회사의 놀부식 소유권 제도를 비판한다.

 

+2162

약탈경제 시대에는 자급자족하는 생산 공동체로 발전하면 약탈품보다 재산 그 자체가 공동체 내 능력의 우열을 부각하는 요인으로 중시되었다. 다시 말해 재산(부)이 일반적인 우월함과 성공을 상징하고 명예와 존경을 얻는 근거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가 더 성숙하면 부모나 선조로부터 받은 부가 노력으로 확보한 부보다 더 명예로운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재산에 의한 비교와 차별이 행해지는 한, 사람들은 재산을 경쟁하고 재력에 대한 평판을 끝없이 추구하며, 경쟁 상대보다 평판을 더 높이는 것에서 무한한 기쁨을 발견한다." 이 말은 곧 부를 축적하려는 가장 큰 동력은 경쟁심이며 이 경쟁심이 부의 과시를 낳는다는 뜻이다. 문제는 부와 권력을 갖는 것만으로는 존경을 받거나 유지하기 어렵다는 데 있었다. 그래서 부나 권력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필요했다. 이때 부를 보여주는(즉 과시하는)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기 위해 동원된 도구가 바로 과시적 여가와 소비였다는 게 <유한계급론>의 핵심 주장이다.

 

+2163

과시적 여가와 과시적 소비가 처음에는 부의 소유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동등하게 여겨졌지만,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과시적 여가보다는 과시적 소비가 더 유효해졌다는 것이 배블런의 설명이다... 저소득층이 과시적 소비를 모방한다는 대목은 적잖은 충격을 준다. 배블런은 계층 간 경계선이 애매하고 고정적이지 않은 현대문명사회에서, 상부 계급이 정한 기준은 바로 위 계층에서 유행하는 생활양식을 이상으로 삼고, 그것에 가까워지고자 온갖 힘을 기울이고 있다"라고 진단한다....프롤레타리에게 부르주아는 타도의 대상이기 이전에 모방의 대상이었다. 그 사실을 마르크스는 몰랐으나 베블런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2164

소비주의가 형성되는 데에는 노동시간의 단축과 임금 상승 그리고 할부판매와 신용 카드 같은 새로운 제도들도 기여했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역시 광고였다.

 

+2165

광고는 대중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생활방식에 불만을 느끼게 만들고 그들 주위의 추한 것들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불만을 느끼는 소비자보다 만족하는 소비자가 더 많은 이윤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2166

광고가 추구한 소비주의가 하나의 세계관이었고 인생철학이었음을 지적하면서, 광고는 단지 무엇을 살 것인가라는 물질적 영역을 넘어 무엇을 소망할 것인가라는 정신적 영역에서 대중을 교육시킴으로써 그 새로운 세계관이 자리 잡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음을 확인시켜 준다.

 

+2167

게오르크 루카치는 소설의 성격을 "길이 끝나자 여행이 시작되었다"라는 한 문장으로 압축했다. 근대인은 자아를 찾아서 늘 미지의 목적지를 향해 떠나야 하는 존재인데, 그 모험의 여정을 담는 형식이 바로 소설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렇게 떠나는 사람을 '문제적 개인'이라고 불렸다.

 

+2168

이해타산에 휘둘리며 고단해진 삶, 배제 위협에 시달리며 지친 삶에 우정과 환대라는 큰 위안을 준다면 신파인들 무슨 상관이겠는가.

 

+2169

<오래된 미래>에서 소개하는 라다크의 원래 모습을 살펴보자. 라다크는 공존의 지혜가 살아 있는 곳이다. 사람들은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돈을 버는 일보다 중요하다고 여긴다. 배려와 관용이 일상화되어 있고, 간혹 갈등이 생겨도 늘 자발적 중재자가 나타나 갈등을 조정한다. 마을마다 모임이 활성화되어 있어 대소사를 다 함께 상의하고 결정한다. 개인의 이익과 공동체 전체의 이익이 상충하는 일은 거의 없다.... 라다크 사람들은 자기 자신보다 훨씬 더 거대한 그 무엇인가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2170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환하게 비춰주던 시대는 또 얼마나 행복했던가? 이런 시대에 있어서 모든 것은 새로우면서도 친숙하며, 또 모험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결국의 자신의 것이다. 세계는 무한하고 광대하지만 마치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아늑하다. 왜냐하면 영혼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은 별들이 발하고 있는 빛과 본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 <소설의 이론>, 게오르크 루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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