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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 데이터 THICK data

THICK data 빅 데이터도 모르는 인간의 숨은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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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은 공감과 선입견 없는 관찰, 총체적 접근을 통해 감춰진 이면을 포착함으로써 인류가 현재 어디로 가고 있고, 앞으로 무엇을 향해 갈지 통찰을 얻는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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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상대주의적 시각이란 나 자신이 아니라 상대방의 관점에서 문제를 다시 보는 것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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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장의 특징은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한국 시장은 경쟁이 극심하다. 뒤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필립모리스의 비전은 '담배 연기 없는 미래 Smoke-Free Future'다. 이를 위해 10년간 13조 원을 쏟아부어 전자담배 아이코스를 개발했다. 그런데 아이코스가 한국 시장에 진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국내 리딩 경쟁사에서도 궐련형 전자담배를 출시했다. 그뿐 아니라 이후 평균 7개월 주기로 신제품을 선보이며 필립모리스를 무섭게 추격해 왔다. 이 정도 속도로 경쟁사를 따라잡을 수 있는 기업은 전 세계적으로 얼마 되지 않는다... 스낵 하나가 인기를 끌면 곧이어 유사 경쟁품이 우르르 쏟아진다. 국내 시장 규모가 크지 않은데 경쟁마저 이렇게 치열하니 한 분야에서 우위를 점해도 안심할 수 없는 것이다. 한국 시장의 두 번째 특징은 소비자가 매우 까다롭다는 것이다... "한국 관객은 웬만한 영화에는 만족하지 못한다. 장르 영화 안에도 웃음, 공포, 감동이 다 있길 바라니 영화인들이 많이 시달렸고, 그 덕분에 한국 영화가 발전하게 된 것 같다."... 한국 시장의 세 번째 특징은 규제가 심하다는 것이다. OECD가 개발한 상품시장규제지수PMR, Product Market Refulation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우리나라의 규제 수준은 OECD 38개국 중 여섯 번째로 강하다고 한다. 이는 외국 기업이 진입하기에 우리나라 규제 수준이 상당히 높고 까다롭다는 의미다.

 

+2174

이처럼 경쟁이 치열하고, 소비자가 까다로우며 규제가 심한 한국은 글로벌 기업에 그리 매력적인 시장이 못 된다. 더군다나 우리는 시장 규모마저 그리 크지 않다.

 

+2175

LVMH와 같은 글로벌 기업은 한국을 파일럿 마켓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한국 명품 시장이 날로 커진다고는 해도 중국 시장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런데도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이 한국을 최초 출시 국가로 선택하는 이유는 호기심이 강하고 트렌드에 민감하며 안목이 깐깐하 소비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시장이 주변 시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인플루언스 마켓임을 일찍이 알아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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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에서 말하는 총체적 접근이란 어떤 대상을 연구할 때 그에 영향을 미치는 주변 요소와 그것들끼리의 관계를 규명하려는 시각이다. 한마디로 어떤 대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그것이 전체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 맥락을 함께 살핀다는 뜻이다.

 

+2177

한국 사회의 양극화 현상을 살피려는 사회학자든, 현대인이 자존감에 집착하는 이유를 분석하려는 심리학자든 총체적 시야를 통해 감추어진 이면을 포착하고 문제를 더 풍부하게 고찰할 수 있다.

 

+2178

비즈니스는 숫자에서 시작된다는 선입견을 버리고 다각도에서 문제를 분석할 줄 알아야 한다. 숫자는 부분적인 사실을 말해줄 뿐 총체적인 진실을 드러내진 못한다. 진실은 기업과 소비자가 공동체와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사회문화적 맥락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

 

+2179

그런데 어째서 우리 문화에 '빨리빨리'가 깊이 뿌리내리게 된 걸까. 이에 관한 여러 설명이 있겠지만, 나는 군사 정부가 주도한 경제개발 방식에 그 이유가 있다고 본다. 군사 작전을 방불케 하는 경제개발 개년 계획이 무려 다섯 번, 총 25년간 시행됐다. 인류학에서는 한 세대를 30년으로 잡는다. 속도와 효율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숭배하는 세상을 25년, 즉 한 세대가 경험했으니 수십년이 흐른 지금도 '빨리빨리 문화'가 우리 의식 저변을 지배하는 DNA가 돼 버린 것이다.

 

+2180

개인주의가 강한 서구권에서는 개성과 남다름을 매우 중시하므로 수염 난 여성이나 머리에 뿔이 돋은 남성 등 현실에서는 보기 힘든 독특한 게임 캐릭터가 사랑받을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집단주의 성향이 강해 자신의 개성보다 남들 시선에 더 신경을 쓴다.

 

+2181

T자형 인재가 되려는 노력만으로도 버거운데 한술 더 떠 n형 인재가 되라고 하고, 급기야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통섭형 인재까지 되라고 하니 21세기에 인재 되기 참 어렵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어쩌면 T자형 인재니, n형 인재니, 통섭형 인재니 하는 말은 호사가들의 말장난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자기 전문 분야가 하나인가 둘인가, 이과인가, 문과인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모든 직원이 스티브 잡스가 될 필요도 없다. 이 모든 인재상의 핵심은 결국 총체적 접근 능력에 있다. 자기 전문 분야, 자기 업무에만 지나치게 매몰되지 않고 총체적 시야로 전체 업무를 상상할 줄 아는 사람, 일이 잘 돌아가게 하려면 자기 업무와 타인의 업무를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 그러려면 어떻게 협력해야 할지 아는 사람이 바로 기업이 원하는 진정한 인재다.

 

+2182

내가 구글에서 일할 때 가장 많이 듣고 쓰던 단어 하나가 구글리니스googliness'였다. 우리말로는 '구글다움' 또는 '구글 문화 이해도' 정도로 번역된다. 사실 구글리니스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답도 없다. 대개는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사고, 구글에 대한 주인의식, 협업을 위한 겸손한 소통 능력 등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데, 내가 보기에 이 모든 역량은 결국 '총체적 시야'와 다를 바가 없다. 내 업무와 타인의 업무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원활한 소통과 협업으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결국 구글리니스, 구글에서 요구하는 역량인 셈이다.

 

+2183

흔히 총체적 시야라 하면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선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인류학에서 말하는 총체적 접근법은 그 반대에 가깝다. 인류학자가 탐구하려는 주제는 거시적일 수 있지만, 그것에 접근하는 방식은 지극히 미시적이다.

 

+2184

누구나 어느 자리에서든 다음의 세 가지 요소에 주목하면 총체적 시야를 키울 수 있다. 첫째는 당연히 전문성이다. 요즘 여기저기서 '피보팅 pivoting'이라는 단어가 자주 들려온다. 원래는 공을 든 채 한쪽 다리를 고정하고, 다른 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다음 플레이를 준비하는 행동을 가리키는 농구 용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한쪽 다리를 단단하게 고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다른 다리를 자유로이 움직이며 다음 기회를 살필 수 있다. 이처럼 자신의 전문분야를 확실하고 단단하게 다져 두면 이를 중심으로 다른 분야까지 내다보고 때로는 방향을 전환하는 일도 가능해진다. 둘째는 호기심이다... 셋째는 커뮤니케이션이다. 총체적 시야는 결국 '관계를 파악하고 연결하는 능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통 능력은 총체적 시야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2185

'우연의 개입'은 참여관찰의 약점이 아니라 최대 강점이다. 인류학자들은 자신이 참여관찰을 통해 무엇을 발견하게 될지 전혀 모른다. 자연과학이나 여느 사회과학 연구자들은 가정을 세우고 이를 실험으로 증명하지만, 인류학자는 어떠한 추측이나 가정 없이 일단 관찰부터 한다. 관찰한 바를 세세하게 기록은 하되 연구 대상이 되는 요소가 사회 전체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 맥락이 발견될 때까지는 함부로 재단하거나 추측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참여관찰에서는 무언가가 늘 '우연히' 발견될 수밖에 없다. 바로 여기에 참여관찰의 핵심이 있다.

 

+2186

그렇다면 비슷한 시기 개발된 스타벅스 사이렌오더는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사이렌오도는 매장에는 사람 귀에는 안들리는 고주파 신호를 쏘면 내 스마트폰 마이크가 이를 인식해 내가 매장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알리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내가 매장에 들어서야만 비로소 주문과 결제가 완료되어 커피가 만들어지기 시작하기 때문에 식은 커피를 받을 걱정이 없다. 행여라도 주문만 해 놓고 매장에 가지 못해도 이튿날이면 카드결제가 취소된다. 그러나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할 점은 사이렌오더가 코로나19시기를 거치면서부터 급성장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팬데믹이라는 예상치 못한 거대한 압력 때문에 우리가 그간 고수해 왔던 문화습관을 거의 강제적으로 변화시켜야 했으며 주문 및 결제 방식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났음을 보여 주는 증거다. 일찍이 삼성전자 개발자들이 스마트오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참여관찰을 통해 깨친 바도 이와 같았다. 혜택이나 편의성이 뛰어나면 소비자들이 기꺼이 결제 방식을 바꾸리라는 예측은 어긋났다. 대신 결제 행위는 일종의 문화이며, 경험 축적으로 새로운 습관을 형성해야 새로운 결제 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렇게 얻은 통찰이 삼성페이 출시 전략에 큰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이다. 삼성페이를 일종의 문화 코드로 만들어 전파하고 확산해야 한다는 전략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다.

 

+2187

아이폰 출시 2년 후인 2009년, 노키아는 새로운 스마트폰 개발 전략을 위해 어마어마한 고객 데이터를 확보하는 한편, 인류학자를 고용해 중국 저소득층의 휴대전화 사용 실태를 조사하기로 한다. 이때 노키아와 협업한 인류학자가 바로 트리시아 왕이다. 그는 중국 10대들과 인터넷 카페에서 밤을 지새우거나 건설 노동자에게 만두를 파는 등 저소득층의 일상으로 파고들어 수개월 간 참여관찰을 시행한 끝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론에 다다른다. 저소득층도 스마트폰을 향한 강한 열망을 품고 있으며 자기 월급을 훌쩍 뛰어넘는 가격일지라도 아이폰을 구매할 의사가 확실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당시 노키아가 추진하던 저소득층 사용자를 위한 저렴한 스마트폰 개발 전략을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노키아는 트리시아 왕의 연구 결과를 무시한다. 그들이 자체적으로 수집한 big data로는 그런 징후를 전혀 발견하지 못했으며 샘플 크기가 겨우 100개 정도에 불과한 트리시아 왕의 연구는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한마디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이 항상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What is measurable isn't the same as what is valuable'라는 사실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2188

트리시아 왕은 'thick data'라는 개념을 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의 'thick description'에서 가져왔다고 밝힌다. 기어츠는 '중층 기술 : 해석적 문화 이론을 향하여 Thick Description : Toward an Interpretive Theory of Culture'라는 글에서 어떤 조직이나 생활양식에 대한 인류학자의 기록은 thick description의 작업이어야 한다... thick description은 인류학을 포함한 모든 학문 영역에서 인간 행위를 파악할 때 행위 자체분 아니라 그 맥락까지 설명하는 것을 가리킨다.

 

+2189

bit data가 머신러닝machin learning에 의존한다면 thick data는 인간 학습에 의존한다. big data는 패턴 식별을 위해 변수를 제거하지만, thick data는 복잡성을 수용한다. big data는 해상도resolution가 떨어지고, thick data는 확장성scalability가 떨어진다. 이런 차이 덕분에 오히려 big data와 thick data는 서로를 보완할 수 있다. 정량적인 정보인 big data로는 '무엇을 얼마나'에 관해 알 수 있고, 정성적인 정보인 'thick data로는 '왜, 어떠한 맥락에서'에 대해 통찰할 수 있다.... big data가 과거 벌어진 일과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을 말해 준다면, thick data는 미래에 있을 일, 아직 알지 못하는 일을 알려 준다.

 

+2190

2008년 윌스트리트발 금융위기를 다른 영화 <빅쇼트 The big Short>에서 마크 바움과 동료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상품 대부분이 엉터리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플로리다로 간다. 그들은 인류학자가 하듯 집집마다 방문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집값의 5%만 내고 다섯 채의 집을 분양받은 스트리퍼, 대출 서류에 사인만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돈을 빌려주는 브로커, 심지어 키우던 개 이름으로 대출받은 사례까지 마주한 그들은 미국의 금융 시스템이 곧 붕괴하리라 직감한다. 그리고 역사상 유례가 없는 공매도 배팅을 결정한다. 고학력 엘리트로 가득한 윌스트리트도 내다보지 못한 미래를 이들은 어떻게 예측할 수 있었을까. 이들은 현장을 발로 뛰어 스토리를 듣고 thick data를 모았다. 샘플 크기가 작다거나 몇몇 사람들의 주관적인 이야기라며 thick data를 무시하지도 않았다. 결국 이들을 움직인 것은 숫자로 채워진 객관적인 보고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생생한 스토리에서 얻은 직관적인 통찰력이었다.

 

+2191

넷플릭스는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하기 5년 전인 2002년부터 DVD대여 사업에 '시네매치cine match'를 활용했다. 시네매치는 고객이 매긴 영화 별점을 바탕으로 다음에 어떤 영화를 선택할지 예측하는 추천 알고리즘이다. 2006년부터는 시네매치의 정확도를 10% 이상 올리는 팀에게 100만 달러의 상금을 수여하는 '넷플릭스 프라이즈'를 매년 개최하여 시네매치를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 왔다. "고객은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그들이 무엇을 좋아할지는 우리가 찾아낼 수 있다."... 그런데 big data의 승리로 일컬어지는 이런 일화 뒤에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이면이 존재한다. 가령 시네매치의 경우 그 정확도는 점점 향상했지만, 수익 개선 효과는 미미했다....그렇다면 넷플릭스 신화의 진실은 무엇일까. 넷플릭스 성장과 성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요소는 무엇일까... 알고리즘은 시청자가 이탈한 이유까지는 알지 못한다. 콘텐츠가 재미없어서인지, 갑자기 급한 용무가 생겨서인지 알지 못하면 알고리즘은 이용자에 관한 반쪽짜리 정보만 제공할 뿐이다. 

 

+2192

넷플릭스는 big data를 통해 이용자 다수가 빈지워칭(binge watching, 몰아보기)을 한다는 사실까지는 확인했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영어 표현 'binge'에는 '폭음'이나 '폭식'처럼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데, '빈지워칭'이라는 개념에는 '통제할 수 없고 죄책감이 수반되는 행위'라는 뜻이 있는지 알아야 했다. 인류학자 그랜트 맥크래켄은 넷플릭스의 이러한 우려가 사실인지 알아보기 위해 미국의 여러 가정을 방문해 넷플릭스 이용자들이 TV를 시청하는 방식을 직접 관찰했다. 그 결과 빈지워칭을 하는 이용자들은 불쾨감이나 죄책감보다 순수한 즐거움을 더 많이 느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맥크라켄은 이 결과를 한마디로 "카우치 포테이토가 각성했다 The couch potato has awoken"라고 표현한다. '카우치 포테이토 couch potaot'란 소파 couch에 누워 감자 칩 potato을 먹으며 TV만 들여다보는 사람을 뜻하는 속어다. 그에 따르면 빈지워칭을 하는 넷플릭스 이용자들은 전형적인 카우치 포테이토처럼 수동적이고 고립된 게으름뱅이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만의 일정에 따라 자기 주도적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며, 친구나 가족들과 함께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에서 콘텐츠에 관한 대화를 나누면서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2193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넷플릭스는 자체 제작한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1의 에피소드 13편을 빈지워칭이 가능하도록 한꺼번에 공개하기로 한다. 보유하고 있던 기존 드라마 시리즈가 아니라 새로 제작한 드라마를 이런 방식으로 공개하는 것은 2013년 당시에는 매우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시청자가 원하는 콘텐츠만 단기간에 몰아보고 구독을 해지하는 일을 막으려면 자체 제작 시리즈를 연속해서 되도록 단시일 내에 만들어 내야 한다. 드라마를 순차적으로 공개하면 두세 달에 걸쳐 구독자를 견인할 수 있는데, 이런 효과도 포기해야 한다. 대신 넷플릭스는 빈지워칭을 자신만의 핵심 정체성으로 삼기로 한다. 넷플릭스를 이용하면 다음 회차가 공개되기까지 인내할 필요가 없고, 내가 원하는 순간에 원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이미지를 강화하기로 한 것이다. 이와 동시에 넷플릭스는 'TV Got Better(TV는 더 나아지고 있다)' 캠페인을 시작한다. TV는 바보상자라는 오랜 통념을 과감히 부수고, TV시청을 건강하고 새로운 소비 형태로 자리매김하려는 대담한 시도였다.

 

+2194

한때 '20세기 최고의 장난감'으로 칭송받던 레고lego가 1990년 들어 출산율 저하, 비디오 게임의 부상 등으로 위기에 봉착한다. 레고는 문제 해결을 위해 대규모 설문조사를 벌여 big data를 수집한다. 그 결과 요즘 아이들은 시간 압박이 심하고 놀이 시간이 거의 없으므로 오랜 시간을 들여 조립하는 브릭 장난감은 더는 인기를 못 끌 거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런 가정을 바탕으로 레고는 사업 영역의 변화를 꾀한다. 창의력과 인내심을 덜 요구하고 즉각적인 재미를 선사하는 비디오 게임과 더 매력적인 외양을 지닌 캐릭터 인형 등으로 사업을 확장한 것이다. 결과는 비참했다. 레고의 새로운 전략은 어린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을 뿐 아니라 어릴 때 레고를 가지고 놀던 부모 세대에게도 외면 받았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레고 경영진은 근본적인 문제부터 점검하기로 한다.

 

+2195

ReD가 레고의 의뢰를 받고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질문 바꾸기였다. '아이들은 어떤 장난감을 좋아할까'를 '과연 장난감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으로 바꾼다...

 

+2196

장난감 업계는 아이들의 주의 집중 시간이 매우 짧다는 가설을 오랫동안 의심하지 않았지만, 현실 세계에서 아이들을 실제로 관찰한 레고 인류학자들은 정반대의 결론을 도출한다. 아이들은 난이도 높은 놀이 경험에 강한 의욕을 보이며 이를 통해 성취감을 느낀다. 이런 놀이는 또래 집단에서 나름의 서열을 정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알고 보면 아이들의 비디오 게임을 좋아하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비디오 게임은 즉각적인 만족감을 얻을 수 있어서가 아니라 점수를 얻기 위해 매우 정교한 기술 습득이 필요해서 인기 있는 것이다.

 

+2197

이 연구를 바탕으로 경영진은 '레고의 본질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레고를 만들자'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아이들의 성취욕을 자극할 만한 제품, 즉 조립에 시간은 걸려도 그만큼 도전할 가치가 있고 재미있는 장난감을 만들기로 한다.... 매장에는 아이들이 자유로이 제품을 조립할 수 있는 '레고 클럽하우스'라는 공간을 만들었다. 또 어른을 위한 고난도 레고 시리즈를 출시하고 '레고에 열광하는 성인들의 모임'을 창설해 소비자들과의 접촉을 지속해서 확대해 갔다. 이렇게 '레고다움'에 집중한 결과는 놀라웠다.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 업체 인터브랜드가 발표한 '글로벌 100대 브랜드 2022'에 따르면 레고의 브랜드 가치는 세계 63위로 118억 달러에 달한다. 장난감 업계에서는 압도적 1위다.

 

+2198

오랫동안 아디다스는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 육상선수 제시 오웬스와 같은 스포츠 엘리트를 위한 제품을 만들어 왔다. 매출 5%에 해당하는 최고의 선수들을 위해 제품들을 개발하면 이들을 동경한 일반인들이 매출의 나머지 95%를 채운다는 것이 아디다스의 오랜 전략이었다... 2003년 봄, 아디다스의 부사장 제임스 칸스는 뭔가 미묘한 변화를 감지한다. 그는 산악자전거나 요가 매트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과 부쩍 마주쳤지만, 그들이 스포츠 대회에 출전하려고 훈련받진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우리가 일명 '도시 스포츠'를 일상적으로 즐기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ReD의 연구를 통해 아디다스는 머지않아 스포츠 브랜드 시장에 크나큰 변화가 오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앞으로는 '스포츠'의 정의 자체가 달라질 것임을, 운동선수들의 '전통적인 스포츠 경기'가 아니라 일반인들의 '도시 스포츠'에 주목해야 살아남을 수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이에 따라 아디다스는 일부 스포츠 스타가 아니라 더 건강하고 나은 삶을 위해 운동하는 평범한 소비자를 위한 브랜드로 서서히 변화하기로 한다.

 

+2199

아이디오의 혁신 프로세스의 핵심은 '인간 중심'이라면서 다른 사람에게 깊이 감정 이입하면 단순한 관찰도 강력한 근원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의 행동에 어떤 이유가 있는지 이해하는 것이 그들의 1차 목표이고, 더 나아가 미래에 어떻게 행동할지 이해하는 것이 이우 목표라고 밝히기도 한다. 아이디오가 디자인한 실제 사례를 보면 이 회사가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무엇을 추구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이디오는 P&G 오랄비 어린이용 칫솔을 개발할 때 가장 먼저 아이들이 칫솔질하는 모습을 관찰하기로 한다. 오랄비 임원들은 이 결정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수십년 동안 칫솔만 연구하고 개발한 그들에게는 사람들이 칫솔질하는 모습을 새삼 관찰할 필요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디오는 미국 내 많은 가정을 방문해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칫솔질을 하며 그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직접 관찰하고 기록한다. 그 결과 아이들은 어른처럼 손가락으로 칫솔을 쥐는 게 아니라 손바닥 전체로 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아이디오는 이런 관찰을 바탕으로 칫솔 손잡이가 어른 것보다 굵고, 손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고무를 부착한 칫솔을 만든다. 스위스 주방용품 브랜드 질리스 ZYLISS와 협업해 아이스크림용 스쿱을 디자인할 때도 아이디오의 디자인팀은 책상에 앉아서 인체 공학적인 손잡이를 그려 내는 대신 소비자들이 일상에서 아이스크림 스쿱을 어떻게 쓰는지부터 알아보기로 한다. 관찰 결과 이전에는 간과했던 중요한 사실이 드러난다. 많은 사람들이 스쿱을 사용하고 설거지통에 넣기 전에 자신도 모르게 스쿱에 남은 아이스크림을 핥았는데, 이는 당사자조차 의식하지 못할 만큼 사소한 버릇이거나 창피해서 부인하는 행동이라 설문조사나 인터뷰로는 절대로 알아챌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를 통해 훌륭한 아이스크림 스쿱이란 아이스크림을 푸기에도 핥기에도 편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디자인팀은 손과 입에 친화적인 제품을 개발한다. 이 사례에서 보듯 아이디오의 디자인은 심미적인 만족을 줄뿐 아니라 제품의 성능과 편의성을 개선하고, 더 나아가 사용자의 삶과 일상을 변화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 아이디오의 이러한 디자인 신념은 2008년 국제환경발명품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자전거 정수기 아쿠아덕트auaduct에서도 잘 드러난다. 아프리카 아이들은 멀리 있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는 힘든 일을 매일 하는데, 그나마도 수질이 좋지 않아 물을 마시고 탈이 나는 경우가 많다. 아쿠어덕트는 자전거 본체에 빗물을 담은 물탱크를 달고 페달을 밟아 물을 정수하게 만든 제품이다. 이 역시 지역 주민들의 삶을 가까이서 면밀하게 관찰하고 그들의 삶의 질을 개선할 지속 가능한 제품을 고민한 결과다. <아이디오는 어떻게 디자인하는가>에는 GE헬스케어에 근무하는 MRI 시스템 개발자의 사례도 실려 있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MRI 모델이 설치된 병원에 갔다가 우연히 한 어린이 환자가 그 기계에 들어가기가 두려워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의사는 아이를 진정시키지 못해 마취제를 주사하기로 한다. 너무나 많은 아이가 MRI 기계를 두려워해 마취 상태로 검사를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개발자는 큰 충격을 받는다. 자신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던 그 기계의 디자인이 정작 어린 환자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그는 디스쿨d.school 임원 교육 연수를 받기로 한다. 디스쿨은 아이디오에서 스탠퍼드대학교 대학원생들을 위해 설립한 디자인 학교다. 여기에서 인간 중심적 접근법으로 디자인과 혁신에 다가서는 것을 배운 그는 일일 보육센터를 방문해 아이들을 관찰하고 그들에게 감정 이입하는 데서 출발하기로 한다. 어린이 환자들의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 여러 전문가를 만나 대화를 나눈다. 

 

+2200

가정이나 매장을 방문해 소비자를 관찰하고 인터뷰한다고 절로 thick data가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얀 칩체이스와 동료들의 작업에서도 알 수 있듯 thick data를 얻기 위해서는 고도로 숙력된 기술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특정 학위나 자격증이 요구되는 일은 아니다. 중요한 건 인류학 학위가 아니라 인류학적 시각이다. 즉 문화 상대주의의 관점으로 선업견 없이, 외부인인 동시에 내부인의 시선으로 총체적인 접근을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2201

프랑스어 '톨레랑스 tolerance'는 우리말로 흔히 '관용'으로 번역되지만, 실은 나와는 다른 종교, 믿음, 사상, 행동방식 등을 용인한다는 뜻을 지닌 말이다.

 

+2202

아이디오의 공동 대표 톰 켈리는 <혁신의 조건 The Ten Faces of Innovation>이라는 책에서 '인류학자들은 뷔자데 vuja de의 감각으로 통찰을 얻는다'라고 썼다. 데자뷔 deja vu가 경험한 적 없는 상황이나 장면을 이미 경험한 듯 친숙하게 느끼는 감각이라면, 뷔자데는 친숙한 것도 처음 보는 듯 생경하게 느끼는 현상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인류학자는 일상적이고 친숙한 현상이나 사물을 새삼 초심자의 마음으로 선입견 없이, 톨레랑스의 자세로 들여다봄으로써 통찰을 얻는다는 것이다.

 

+2203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포수, 요기 베라는 요기즘이라는 신조어를 낳을 만큼 숱한 명언을 남겼다. 그중 하나가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 많은 것을 관찰할 수 있다"라는 말이다. 누군가를 알려면 대화와 질문도 필요하지만, 오히려 관찰이 상대방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줄 때도 있다.

 

+2204

인류학자들이 P&G의 신제품 개발을 위해 미국의 평범한 가정을 방문했을 때, 소비자들은 제품에 아무런 불만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반쪽짜리 진실이었다. 소비자들이 청소하는 모습을 끈질기게 관찰한 인류학자들은 청소 자체보다 더러워진 물걸레 빨래가 더 힘들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런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품이 바로 스위퍼 Swiffe다. 더러워진 걸레를 세탁하는 대신 버리고 새것으로 교체하도록 만들어졌다. 이처럼 관찰은 질문과 달리 소비자의 말과 실제 행동과의 불일치를 드러냄으로써 소비자가 의식하지도 못했던 잠재적 욕구를 발견하게 한다. 스위퍼 제품 라인은 1999년 출시된 이래 현재까지 P&G의 가장 성공한 제품으로 꼽히며 매년 5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2205

엄마들은 사전 면담에서 아이들에게 영양가 풍부한 음식만을 먹인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관찰 결과는 엄마들의 말과 달랐다. 아이들은 설탕 범벅 시리얼을 먹거나 아예 굶은 채로 등교했다. 현실은 이상과 늘 차이가 있는 법이다. 만일 제너럴밀스가 면담이나 설문조사에만 의존했담면 아침 식단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영양성분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학자들은 참여관찰을 통해 아침 식사는 엄마의 죄책감을 덜어줄 만큼 영양이 풍부해야 할 뿐 아니라, 아빠가 준비하기에도 번거롭지 않아야 하고, 아이들이 흘리지 않고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심지어 학교에 가져가거나 이동하면서도 먹을 수 있게 포장 용기가 간편해야 하며, 무엇보다 맛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이를 바탕으로 제너럴밀스에서 출시한 신제품이 바로 짜 먹는 타입의 요거트인 고거트 Go-Gurt다. 이 상품이 크게 히트하면서 제너럴밀스는 경쟁사를 제치고 시장의 선두주자가 된다.

 

+2206

어떤 제품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내가 반드시 사용자가 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간접 경험으로도 훌륭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음을 증명한 인물이 바로 <국화와 칼 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을 쓴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다. <국화와 칼>은 미국무부의 의뢰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본인을 분석해 집필한 책이다. 첫 문장 "일본인은 미국이 지금까지 전력을 기울여 싸운 적 가운데 가장 낯선 적이었다"에서 잘 드러나듯, 일본국은 미군의 막강한 군사력으로도 굴복시키기 어려운 까다로운 적이었다. 일본군은 부대원 대부분이 죽거나 다쳐도 항복하는 법 없이 최후의 1인까지 저항했고, 명백한 자살 행위를 '옥쇄'니 '가미카제'니 하는 말로 미화하고 독려했다. 그런데 의아하게도 막상 포로가 되면 한없이 온순해져 다루기 편해졌다.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인의 이러한 이중성과 모순을 설명하기 위해 봉건사회에서 시작한 위계 서열, 보은과 의리로 이루어진 독특한 도덕 체계, 서양의 선악 개념을 대체하는 수치심 등 다양한 면모를 살핀다. 그 결과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군의 모순적인 행동은 수치심을 느낄만한 상황이냐 아니냐에 따른 결과이며, 종전 후에도 그 이중성이 여전히 드러날 것으로 예상한다. 즉 군국주의가 성공한 사례가 보이면 더욱 군국주의에 매진하고, 평화주의가 뿌리를 내리면 자신들도 모범국이 되려 애쓸 것이라 내다봤다. 제목 '국화와 칼'은 국화를 사랑하는 섬세한 미감과 칼을 숭상하는 냉혹함 모두가 일본인의 진실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놀라운 점은 루스 베네딕트가 이 책을 쓰면서 일본을 단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인류학자라면 1년 이상은 무조건 현지조사를 가야 하지만, 당시는 한창 전쟁 중이라 일본에 갈 도리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의 소설과 영화를 분석하고, 강제 수용소에 있던 일본인가 전쟁 포로들을 인터뷰하는 걸로 현지조사를 대신해야 했다. 그런데도 이 책은 일본인의 독특한 가치관을 가장 객관적으로 이해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루스 베네딕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 줬다.

 

+2207

조만간 사람의 표정으로 감정을 읽어 내는 인공지능이 상용화될 거라고 한다. 그러나 심리학자들은 이런 예측에 회의적이다. 감정을 유추하려면 그 표정이 만들어진 맥락을 이해해야 하는데, 인공지능은 그러지 못한다는 것이다.

 

+2208

P&G의 브랜드 관리자였던 찰스 L.데커의 저서 <P&G의 이기는 마케팅 99 Winning With The P&G>에서 소비자의 말이 아닌, 맥락을 이해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는 좋은 사례가 실려 있다. 책에 따르면 각 가정을 방문해 소비자가 세제를 사용하는 모습을 직접 관찰한 P&G는 액체 세제를 부을 때마다 세제 일부가 용기 밖으로 흘러나오는 문제를 발견한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사전 인터뷰에서 해당 세제에 아무런 불만이 없다고 대답했다. 세제가 흘러나오면 빨랫감으로 대충 닦아 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P&G는 소비자의 말보다 참여관찰을 통해 얻은 총체적 맥락에 훨씬 더 주목하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 결과 여분의 액체 세제가 용기 내부로 다시 흘러 들어가는 새로운 용기를 개발해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매출증대를 이루어 낸다.

 

+2209

클리퍼드 기어츠는 '심층 놀이 : 발리의 닭싸움에 관한 기록들'에서 자신이 어떻게 발리 주민들의 마음을 열 수 있었는지 묘사한다. 1958년 발리에 도착한 기어츠 부부는 지방 정부의 주선으로 한 대가족 구역으로 이사해 들어간다. 처음에 발리 주민들은 기어츠 부부를 철저히 무시한다. 못마땅한 얼굴을 하거나 언짢은 말이라도 건네는 게 차라리 낫겠다 싶을 만큼 기어츠 부부를 투명 인간 취근한다. 그러던 어느 날, 기어츠 부부가 주민들 사이에 섞여 닭싸움을 구경하고 있는데 기관총을 든 경찰이 도박 단속을 위해 들이닥친다. 주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와중에 기어츠 부부는 어떻게 했을까. 인류학의 대전제인 '로마에서는 로마법대로'를 충실히 따랐다. 즉 주민들을 따라 달아났다. 다음 날부터 기어츠 부부를 대하는 발리 주민들의 시선이 완전히 달라진다. 단속 현장에서 신분증을 꺼내 들고 특별 방문자의 지위를 과시하는 대신 주민들을 따라 혼비백산 달아났던 부부의 일화는 발리 주민들의 즐거운 대화거리가 됐고, 그날부터 부부는 마을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에피소드는 현지인에게 공감하는 능력이 참여관찰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 준다. 소비자의 민낯을 보고자 할 때도 공감과 감정 이입은 필수적이다. 인류학자 그랜트 맥크랙켄이 "인류학은 곧 공감이다"라고 말한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2210

IT 산업에서 자주 쓰이는 격언 하나가 GIGO Garbage In, Garbage Out다. 쓸모없는 데이터를 입력하면 쓸모없는 데이터가 출력된다는 말이다.

 

+2211

"아직 적히지 않은 페이지를 읽어 내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Our task is to read things that are not yet on the page." - 스티브 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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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까지 떨어진 브랜드 이미지가 반등하기 시작한 것은 1983년 할리데이비슨 소유자 모임인 '호그 HOG, Harley-Davidson Owners Group'를 발족하고부터였다. 돼지를 뜻하는 'hog'는 할리데이비슨과 인연이 무척 깊은 단어다. 1920년대 초, 한창 잘나가던 할리데이비슨의 공식 레이싱팀의 별명이 '할리호그'였다. 경기에 이길 때마다 팀의 마스코트 격인 새끼돼지와 함께 세리머니를 해서 붙은 별명이었다. 그러다 1960년대 들어서면서 할리데이비슨이 일본제 모터사이클과 달리 돼지처럼 둔중하고 운전하기 불편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할리 운전자는 경멸조로 'HOGs'라고 불리게 된다. 경영진다. 새로 조직한 팬클럽에 '호그'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부정적인 소수자 이미지를 '우리는 특별하다' '우리는 다르다'라는 자부심으로 탈바꿈시키려는 과감한 정면 돌파라 할 수 있었다.

 

+2213

할리데이비슨의 로고를 새긴 사람은 보상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할리를 소유하고 운전한다는 자부심, 할리의 자유와 도전 정신을 공유한다는 소속감이 문신의 유일한 대가라면 대가일 것이다.핵심은 소비자와 거래를 하느냐, 관계를 맺느냐에 있다.

 

+2214

"좋은 아이디어는 백 원에 몇 개라도 살 수 있지만, 이를 실행에 옮기는 사람의 가치는 값을 매길 수 없다. Good ideas are a dime a dozen. People who implement them are priceless." 기업가 메리 케이 애시  Mary Kay Ash의 이 말처럼 혁신적인 아이디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아이디어를 수용하고 실행하는 일이다. thick data로 얻은 통찰을 서비스 및 제품의 개발과 개선에 적용하려면 무엇보다도 기꺼이 변화하고 혁신하려는 기업문화가 전제돼야 한다... 혁신을 두려워하고 방해하려는 문화는 어느 집단에나 늘 있다. 하버드대학교 심리한과 수전 데이비드 교수의 저서 <감정이라는 무기>에 따르면 사람의 뇌는 종종 편안함을 안전함과 혼동한다고 한다.

 

+2215

아이디오의 CEO 팀 브라운은 자신의 저서 <디자인에 집중하라 Change by Design>에서 "빨리 실패하고 자주 실패라하 Fail fast, Fail often"이라고 썼다.

 

+2216

넷플릭스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 Reed Hastings는 "조직문화는 누가 상을 받고 승진하고 해고되는지에서 여실하게 드러난다"라고 말했다. 조직에서 내세우는 그럴듯한 캐치프레이즈가 아니라 어떤 직원이 높게 평가받고 승승장구하는지를 봐야 그 조직에서 실제로 추구하는 진짜 가치가 밝혀진다는 말이다.

 

+2217

나의 가장 큰 문제는 '나의 의견'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나만의 견해와 의견을 갖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인류학에 제대로 몰입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내가 나만의 의견이 아닌 저명한 인류학자들의 이론을 줄줄 읊고 있을 때, 다른 학생들은 인류학 관련 이슈를 각자 자신의 전공한 분야와 연결해 더 풍부하고 다양하게 해석하고 창의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내가 학부 4년간 공부했던 인류학의 테두리에서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는 동안, 그들은 철학, 의학, 문학, 경제학 등의 다양한 시각에서 때로는 합리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때로는 기발한 발상의 전환을 보여 줬다. 이러니 같은 책을 읽어도 통찰의 폭과 깊이가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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