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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riting

Thank for the music

#20

한쪽 이어폰을 꽂은 채로 아들이 말한다. 이어폰이 고장 나서 한쪽만 들린다고. 이어폰이 귀걸이 마냥 늘 귀에 붙어 있는 녀석인지라, 사준지 1년도 안된 이어폰의 고장이 왠지 이해가 된다. 바쁘신 고2 아들을 대신해 서비스센터에 갔다. 재빨리 미리 검색해 보니 한쪽 이어폰이 고장이면 리퍼 제품으로 교환할 거라고. 근데 그게 가격이 상당하다. 불길한 예감에 서비스 센터 옆 매장에서 신품 이어폰의 가격을 살펴보았다. 고장 이어폰의 검사가 끝났고, 직원은 상냥하지만 피곤한 목소리로 말한다. 두 쪽 다 고장이라 비록 한쪽이 지금 들려도 곧 안될 거라고. 두 쪽 다 리퍼 제품으로 교환하는 비용과 신품을 사는 비용이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다. 작은 망설임을 떨쳐내고 난 신품을 사주기로 결심한다.

 

선임 중 한 명은 기타를 기가 막히게 잘 쳤다. 어느 정도로 기가 막히게 잘 쳤냐 하면, 기타로 포상휴가를 나가고, 홍대 클럽에서 즉석 연주를 하면 밴드 영입 제의를 받을 만큼 잘 쳤다. 어떻게 그렇게 기타를 잘 치냐고 그 선임에게 물은 적이 있다. 근데 그 스토리가 더 기가 막혔다. 그 선임이 중1 때 아버지가 기타를 생일 선물로 사줬더란다. 그리고 해마다 생일이 돌아오면, 더 좋은 기타로 업그레이드해서 사줬단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그 이야기가 너무 멋져서, 첫사랑에게 받은 편지처럼 쭉 간직하던 터였다. 그래서일까? 녀석이 음악에 대해 요구하는 것에 난 늘 관대하다. 에미넴의 19금 앨범도 카니예 웨스트의 19금 앨범도 녀석이 원하니 사줬다.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는데 CD앨범은 왜?라는 질문에 명작은 소장해야 한단다. 그 말이 기특해서 CD플레이어를 사주고 말았다. 작년에 쇼미더머니에 나간다고 녀석이 만든 랩을 보고 내심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노래를 잘해서가 아니라 그 가사가 꽤나 그럴싸해서였다. 마냥 어린 줄 알았는데, 녀석의 세상은 내 생각보다 컸다.

 

좋아하는 게 많은 삶이 좋은 삶이다. 녀석이 지금 좋아하는 힙합 말고도 좋아하는 게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앞머리가 눈을 찌를 듯 내려온 채 그 귀엽던 목소리의 잔상조차 사라진 걸걸한 목소리로 툭 던진다. “아버지, 새 이어폰 감사합니다.” ‘그래, 많이 들어라.’라고 한마디 해주려다 슬쩍, 아내 눈치를 보고 입을 다문다. 늦게까지 깨어 있는 아들의 시간이 공부로 채워지는지 음악으로 채워지는지 늘 의심스러워하는 아내이기에. 근데 난 아무렴 어떤가라는 속 편한 생각이다. 하고 싶은 건 그때 해야 한다고 믿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왜 그걸 하고 싶어했는지도 까먹으니까. 녀석과 나만 아는 의미심장한 눈짓으로 격려를 보내곤, 나 혼자 뿌듯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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