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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감각

<일의 감각>, 조수용

[밑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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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는 좋아하는 것을 '디깅'하는 저만의 순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전거를 하나 사고 싶으면 오랜 시간 자전거의 세계를 탐험합니다. 첫 시작은 가장 비싼 자전거, 하이엔드 브랜드를 알아봅니다. 그리고 전문가용과 보급형으로 시장을 구분해서 찾아보고, 단계를 내려가며 마음에 드는 자전거를 집요하게 찾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자전거 커뮤니티의 댓글을 살펴봅니다. 또 그 분야의 잡지를 찾아서 광고까지 빠짐없이 봅니다. 이런 방식의 좋은 점은 해당 시장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저 내 소비만을 위한 거라면 추천받은 특정 브랜드만 살펴봐도 충분합니다. 반면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만한 새로운 기획과 감각적인 아이템을 찾고 싶다면 사람들이 시장을 보는 방식을 알고 거기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이 자전거가 좋은 것 같은데 저 사람은 왜 저 자전거가 더 좋다고 할까?'를 궁금해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공감 능력을 키우는 과정입니다.

 

+2605

제가 생각하는 감각은 '현명하게 결정하는 능력'입니다... 해당 분야의 현재와 그 흐름을 이해한 뒤 '지금 필요한 것'을 발견하고 재구성해서 더 현명한 방향을 제안하는 능력.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좋은 감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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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감각의 시작은 마음가짐입니다...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세상의 흐름을 알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며, 사소한 일을 큰일처럼 대하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 이것이 감각의 원천입니다.

 

+2607

아이와 함께 큰 아트 페어에 가서 쇼핑하듯 처음 시작해보기를 권합니다. "30만 원 예산 안에서 네 방에 놓을 그림을 하나 골라봐. 아빠가 사줄게."  미술이나 아트 페어에 전혀 관심 없던 아이들도, '쇼핑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림을 다르게 보기 시작합니다. 미술에 대한 이해를 떠나, 온전히 '어떤 그림을 방에 걸어야 계속 좋아할 수 있을지' 탐색하기 시작합니다. 선택의 기준이 훨씬 단순해지는 겁니다. 아는 그림, 사고 싶은 그림이 없기 때문에 답을 찾으려면 그림을 더 많이 볼 수밖에 없습니다. 대충 보고 '다 비슷하고 재미 없다'라며 진작에 집에 가자고 할 아이들이, 가격표까지 확인하면서 몇 바퀴를 더 돌아봅니다.... 일상 속에서 쇼핑에 집중하는 일은 '내 취향을 깎고 다듬어가는 과정'과 같습니다.

 

+2608

오랫동안 공을 들였다고 해도 그게 드러나면 안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모든 디자인에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감각적인 디자인은 그 과정이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2609

제가 정의하는 안정감이란 '업에 진심인 사람들이 성실하게 노력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2610

질물을 해서 내가 선택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하나씩 골라내면, 점점 내가 만들고 싶은 카페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러집니다. 결국 선택하지 않아야 할 것을 버릴 수 있는 용기, 그게 감각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브랜딩이라고 부릅니다.

 

+2611

네이버를 생각하면 간결한 녹색의 검색창이 떠오르고 명쾌한 답을 주는 스마트한 느낌만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용자들에게는 이 느낌의 합이 곧 네이버에게 기대하는 모습이라 판단했습니다.

 

+2612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모자 로고 없이 PT 진행하기'였습니다. 모자 로고와 전혀 상관없는 서비스에 대한 PT 자리였습니다. 발표 자료에는 일부러 모자를 뺀 네이버 로고타입만 넣었습니다. 그리고 발표를 마치고는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졌습니다. "혹시 눈치채셨나요? 사실은 프레젠테이션에서 보여드린 서비스 화면 모두에 모자 로고가 없었습니다" 다들 놀라는 모습이었습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으니까요. 덕분에 두 가지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미 사용자에게 '녹색 네모는 네이버'라는 공식이 각인되어 있고, 날개 달린 모자 로고가 빠져도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죠.

 

+2613

돌이켜 생각하면, 브랜드를 끌고 간다는 것과 크리에이티브 디렉팅한다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오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 브랜드가 실패하면 제일 슬퍼할 사람, 성공하면 제일 기뻐하고 득을 크게 보는 사람만이 디렉팅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이 사람 직업을 브랜드 매니저라든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이 아닐 수 있다. 오너를 가장 닮은 사람이거나, 그를 가장 많이 돕는 사람인 거다... 겉보기엔 멋있어 보이지만, 대다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결국 직장인이다. 정말로 위험을 안고 게임을 할 수 있는지, 위험을 안고 게임을 할 마음으로 충직한 참모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2614

이제까지 디자인하려고 했던 많은 것들이 '디자이너처럼 보지 않기'라는 게 중요했다.

 

+2615

아직도 애플을 쓰면서, 나는 마이너에 속한 사람처럼 느끼게 하는 요인은 일관성에 있다고 본다. 애플에서 배워야 하는 점이 있다면, 'A급과 매스티지로 넘어가지 않기'와 'B급스러움으로 남아 있기'라고 본다. 결국에는 많은 브랜드가 이제까지 있던 브랜드 마케팅이라는 규칙을 다시 봐야 하는 순간이 폭발적으로 올 것이다.

 

+2616

제가 일을 할 때 직원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이런 겁니다. 이 일은 왜 하는 건가요? 안 해도 되는 건 아닐까요? 우리는 뭐하는 회사인가요? 이걸 하면 수익이 생기나요? 어느 조직에서든 제게 회의 시간이란 이런 질문을 하고, 거기에 답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저의 역할은 업의 본질에 대해 반복해서 묻는 질문자였습니다.

 

+2617

온라인의 끝에 도달하면 결국 오프라인으로 연결되거든요. 여느 IT 기업들도 똑같은 행보를 보여요. 구글이 구글시티라는 프로젝트를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죠. 구글이 도시 하나를 제대로 설계해보겠다는 건데, 그럼 그 생각이 왜 나왔냐? IT 기술과 네트워크의 힘이 진짜 사람의 삶을 바꿔야 하는 거잖아요. '진짜 세상에서의 삶은 폐인인데, IT에서만 풍족하다' 그러면 그 패러다임은 끝난 거예요. '진짜로 건강하게 살고 있다? 진짜 삶이 편해졌나? 그래서 행복하고 즐거운가?'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완성이 되는 거죠."

 

+2618

"저는 주인의식을 '나라는 사람을 상대방에게 끝까지 감정이입 시키는 능력'이라고 보는데요. 가령 카페 주인이 나한테 디자인을 의뢰했다면, 그 사람의 머릿속에 나를 완전히 투영시켜요. 그런데 그 일을 안 하는 게 그 주인에게 더 이로울 수도 있다면, 내 이익에 반하더라도 빠지겠다고 말하는 거예요. 일은 하는 게 어려운 게 아니에요. 하고 싶은데 참거나, 열심히 했는데 빠지게 되거나, 완성했는데 무너뜨리고 다시 해야 할 때가 어려운 거죠. 그 상황에서 자기의 이해관계보다는 우두머리가 조직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이해나는 사람이 진짜 주인의식이 있는 사람, 인재라고 저는 보는 거죠."

 

+2619

건강한 자본이 강력한 브랜드를 만들고, 그게 진짜 돈이 된다는 걸. 경영주도 직원들도 소비자도 함께 행복한 기업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요.

 

+2620

광고 없는 브랜드 잡지 그런데 소비자를 위한 수준 있는 잡지가 없잖아요. 저는 비즈니스맨이예요. 그런데 이제는 예전 시대와 달라서 사업 자체가 올바르고 철학이 있어야 오래 살아남을 수 있어요. 물론 초기에 좀 버틸 힘이 있어야 하고, 버티려면 똘끼가 있어야죠."

 

+2621

지금은 산업화의 끝자락에 와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는 큰 브랜드와 작은 브랜드가 재차 역전됩니다. 매스 브랜드는 적당히 선택받기 쉽지만, 뾰족한 팬덤을 가지기는 어렵습니다. 이제 큰 브랜드는 작은 브랜드처럼 행동해야 하고, 작은 브랜드는 큰 브랜드처럼 생각해야 합니다. 작은 브랜드처럼 행동한다는 건 '불특정 다수'가 아닌 '의식 있는 소수'가 열광하는 부분을 찾아 이를 실천한다는 뜻입니다. 큰 브랜드처럼 생각한다는 건 '업에 진심인 사람들이 성실하게 노력하고 있는 느낌'인 '안정감'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작은 브랜드처럼 행동하는 큰 브랜드로는 애플을 꼽을 수 있습니다. 애플은 스타트업 시절부터 스티브 잡스가 직접 무대 위에 올라가 스스로 만든 문서로 프레젠테이션을 한 걸로 유명합니다... 아이폰의 시장 점유율이 엄청남에도 불구하고, 아이폰 유저들은 자신을 '의식 있는 소수'라고 생각하고 안드로이드 유저는 '개성 없는 다수'라고 생각합니다. 

 

+2622

반대로 작은 브랜드가 큰 브랜드를 지향하는 경우 또한 많습니다. 그 예로 일본의 발뮤다Balmuda라는 생활가전 브랜드를 보겠습니다. 발뮤다의 주력 제품은 대기업이 시장에서 철수해 중소기업들만 만들고 있는 선풍기와 토스터였습니다. 하지만 그 뻔한 선풍기, 토스터라도 마음 먹고 진심으로 만들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줬습니다. 바람을 일으키는 스크류를 일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만든다든지, 토스터에 물을 조금 넣어 죽은 빵을 살려내는 발상을 한 게 대단한 게 아니라, 그런 아이디어를 떠올릴 만큼 계속해서 생각하고 발전시킨 그 '진심'이 대단한 것입니다. 

 

+2623

브랜드 팬덤은 그 브랜드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에서 생겨납니다. 이 응원은 결국 만드는 사람을 향한 겁니다. 브랜드를 만든 창업자, 그 브랜드를 함께 이루어 온 직원들, 그 브랜드와의 경험을 함께 한 소비자들. 그러니 결국 브랜드 이야기는 사람 사는 이야기입니다.

 

+2624

우리는 브랜드 스토리를 통해 사람들이 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어떤 대상에 끌리는 심리는 무엇인지, 한 사람이 마음을 먹으면 기술로 세상을 어디까지 바꿀 수 있는지 흥미진진하게 공부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모여 브랜드를 움직이고, 또 브랜드가 사람의 삶을 바꿉니다. 애플이 그랬고, 츠타야 서점이 그랬습니다. 이게 바로 21세기에 브랜드가 가진 힘입니다. 결국 우리의 삶은 브랜드로 이루어져 있고, 브랜드를 통해 변화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브랜드 이야기는 사람 사는 이야기입니다.

 

+2625

완벽한 아름다움만큼 자기다움을 그대로 드러내는 게 더 아름다울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완벽함'과 '자기다움'을 계속 찾아야 합니다.

 

+2626

<B>를 창간하기 직전에 <모노클>이라는 잡지를 보고 많은 생각을 했어요. 너무 멋있다, 이런 컨셉으로 잡지를 만들 수도 있구나. 굉장히 많은 잡지들을 봤지만 완성도 높은 잡지를 볼때만 느끼는 쾌감이라는 게 있었는데 <모노클>은 그걸 충족시키면서도 지적이기까지 했습니다. <모노클>을 본다라는 건 전 세계에서 가장 괜찮은 테이스트와 안목을 지닌 사람을 의미할 수 있겠다라는 느낌을 받았을 때 잡지의 타깃 독자층 자체만으로도 브랜딩이 되는구나라고 봤어요. 

 

+2627

매거진 <B>의 사회적 역할이 중요한 것도 맞지만 제게 중요한 관심사는 매거진 <B>를 만드는, 이 회사 안에 있는 사람들의 행복이거든요. 그게 지속 가능해야 하기 때문에 얘기한 방향으로 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관심사가 조금 더 펼쳐져야 매거진 <B>도 행복해질 거라는 생각인 거죠. 

 

+2628

누군가는 내일 죽는다면 오늘 뭐 할 거야?, 다음 달에 죽는다면 지금 뭐 할 거야? 라는 질문을 하는데, 사실 그건 너무 극단적이고 상상이 잘 안돼서, 얼마 못 산다는데 너 뭐 하고 싶냐고 물으면 다 필요 없고, 그냥 사랑하는 가족들이랑 있어야겠다고 생각할 거잖아요. 반면 돈이 진자 많으면 뭐 할 거야?라고 하면 되게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거든요. 지금도 그 질문을 계속하는 중이고, 그 질문에 대한 첫 번째 답이 잡지였어요. 진짜 돈이 많다면 잡지를 하나 해보고 싶다. 그런 마음이 있었는데 실제로 돈이 많지도 않았으면서 한 거예요. 그랬더니 지금 이 인터뷰를 하는 순간이 온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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