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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의 인문학 9

야구의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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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다른 구기종목과 점수를 내는 방식이 다르다. 축구에서 득점은 공(ball)을 목표(goal)에 넣음으로써 이뤄진다. 골문 안의 골라인을 공이 통과해야 득점이 기록된다. 농구 역시 공이 림을 통과하면서 골로 기록된다... 북미 프로스포츠 최고 인기종목인 미국프로풋볼(NFL) 역시 던져진 공을 받아 상대 앤드라인 너머까지 옮겨야 터치다운이라 부르는 득점이 인정된다.... 야구는 공이 득점을 결정하지 않는다. 공이 플레이되는 동안 사람의 움직임을 통해 득점이 결정된다. 타자가 주자가 되고, 주자가 1루와 2루, 3루를 돌아 홈플레이트를 터치함으로서 득점이 기록된다. 공이 어디로 향하든 중요하지 않다. 사람이 들어와야 점수가 새겨진다. 공보다 사람이 중요하다. 야구는 '인본주의(humanism)'다. 득점이 인정되는 마지막 루를 '4루'라고 부르지 않고 '홈플레이트(home plate)'라고 부른다는 점에서 가족주의적이기도 하다. 집에 돌아 오는 것이 득점을 내는 길이다. 야구를 사랑하는 이들은 가족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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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단체 구기종목이 열리는 경기장을 코트(court, 법정), 필드(field, 전장) 등으로 부르는 것과 달리 야구장이 열리는 곳은 대부분 파크(park, 공원)라 불린다. 야구장은 열광적인 응원이 가능하지만, 한가로운 여유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소풍의 장소다. 무엇보다 다른 종목들이 킥 오프(kick off)를 하고, 점프 볼(jump ball)을 통해 경기 시작을 알릴 때, 야구 심판은 이렇게 외친다. "공 갖고 놀아봅시다(play ball)!"

 

+193

이렇게 특별한 야구를 완성시키는 것은 '9'다. 야구는 9개의 포지션에서 9명이 9이닝 동안 겨루는 종목이다. 아웃카운트 3개씩이 9번 모여 27개의 아웃카운트로 경기가 끝난다. 시계의 자판, 원을 뜻하는 12와 야구의 9가 결합되면 야구공을 채운 실밥 108개가 완성된다. 야구에서 각 베이스 간의 거리는 90피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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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메이저리그의 경기 시간은 3시간 안팎이지만 실제 경기가 진행되는 인플레이 시간은 겨우 18분 언저리밖에 되지 않는다. 매일매일 치러지는 경기, 그 속에서 나머지 90%는 모두 기다리는 시간이다.

 

+194

참고 기다리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김인식 전 감독은 "못할 때 화내는 건 하수 중 하수의 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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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반란'으로 월드시리즈에 오른 탬파베이 조 매든 감독이 "태도가 결과를 낳는다!(Attitude is a decision!)"고 말했던 것처럼. 각오가 있다면 야구는, 인생은 언제든지 다시 시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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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에서 김상헌은 "뜻을 빼앗기면 모든 것을 빼앗긴다"고 했다. 뜻을 잃지 않으면 KIA도 윤석민도 다시 부활할 수 있다. 이마를 땅에 댄 인조의 콧속에도 봄볕에 익은 흙냄새가 향기로웠다.

 

+196

매일 치르는 야구는 잊어야 사는 종목이다. '망각'은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한 필수 덕목이다. 영화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의 주인공 거스 로벨(클린트 이스트우드 분)은 "훌륭한 스카우트는 야구의 심장"이라며 "컴퓨터는 선수의 숨은 소질을 알지 못해. 주자 뒤로 공을 쳐낼 수 있는지, 4타수 무안타를 기록하고도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태연하게 돌아올 놈인지 알 수 없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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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실패를 먹고 자란다. 제 아무리 뛰어난 팀이라 해도 승률 6할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 경기의 40%는 패하기 마련이다. 타자는 실패가 더욱 익숙하다. '3할타자'라는 훈장은 70% 가까운 실패를 통해 얻는 명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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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김 코치가(김상진) 덧붙였다. "투수가 가장 멀리해야 하는 게 있다"고. 그것은 바로 패전에 대한 두려움이다. "경기 결과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 순간, 내 투수 인생은 끝난 거나 다름없었다"고 했다. 두려움이 담긴 공끝은 타자의 방방이를 배겨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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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PN은 최근 디 고든의 시즌 활약상을 소개하며 아버지 고든의 '조언'을 전했다. 디 고든은 "아버지가 '터프한 시간은 오래가지 않지만, 터프한 선수는 오래 뛸 수 있다'고 하신 말을 가슴에 새기고 있다'고 말했다.

 

+200

엡스타인은 "우리는 앞으로 최고의 정신력, 의지를 가진 선수를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카우트들은 보고서에 선수의 구속과 파워를 적는 대신 주변 인물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적어야 했다. 동료, 상대팀 선수, 친구, 선생님, 가족의 의견이 그 선수의 야구 관련 기록보다 중요했다. 그 선수가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가 어떤 변화구를 얼마나 잘 던지는 것보다 중요했다... 쏟아지는 데이터 속에서 무조건적인 효율에 집착하는 대신 새로운 가치를 모색했다. 핵심은 바로 사람이었다. 엡스타인은 "사람들이 어려운 일을 맞닥뜨렸을 때, 이를 해결하는 열쇠는 '관계'에 있다고 본다. 팀 동료들과의 관계, 우리 조직 전체와의 관계. 내가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 함께해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어려운 일을 헤쳐나가게 하는 힘"이라고 말했다. 엡스타인은 "우리는 혼자 일하기 싫어하고, 함께하길 원한다. 그게 사람 사는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제 이익만 생각하는 사람 대신, 남을 생각하고 공감할 줄 알고 어려움을 함께 극복할 줄 아는 사람들을 모았다. 그게 컴스 성공의 길이었다. 포천이 엡스타인을 세계 최고의 리더로 꼽은 것은 승리가 아니라 사람 때문이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구속, 점수, 승리가 아니라 바로 사람이다. 사람 사는 야구가 만들어내는 사람 사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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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엔 이용균의 야구 스포츠컬럼이 있다

야구에 빗댄 인생이야기가 범상치 않았다

결국, 그의 컬럼들이 묶인 글이 나왔다

그가 밝히듯, 

야구이야기가 정치나 사회면보다 저널리즘의 곁가지는 아니라는 소신이

그의 글을 통해 증명된다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가를 

세상의 선택에 맡기는 게 아니라

자신의 선택으로 만들어간다

그가 성실하고 깊숙하게 읽어낸 데이터는 어떤 이의 야구와 인생을 달리 바라보게 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인생 데이터를 그렇게 읽어낼 수 있다면

우리의 인생은 어떻게 달리 읽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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