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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루테이프의 편지

 

[밑줄]

 

 

+578

 

성경말씀에 승복하지 않는 악마를 퇴치하려면, 비웃고 업신여기는 것이 상책이다. 악마는 경멸을 참지 못하기 때문이다. - 마르틴 루터

 

 

+579

 

네가 맡은 환자만 해도 어려서부터 수십가지의 상충되는 철학들이 한꺼번에 머릿속에서 난장판을 벌이는 데 익숙해져 있는 게야. 그래서 어떤 교리를 보아도 '참'이냐 '거짓'이냐를 먼저 따지기보다는 '학문적'이냐 '실용적'이냐, '케케묵은' 것이냐 ''새로운' 것이냐, '인습적'인 것이냐 '과감한' 것이냐를 따지게 되어있지. 그러니까 환자를 교회에서 멀리 떼어 놓기에 가장 좋은 협력자는 논증이 아니라 전문용어란 말이다.

 

 

+580

 

원수는 인간의 노력이 문턱을 넘으려 할 때마다 이런 실망감이 찾아오는 걸 허용하고 있다. 이 실망감은 <오디세이 이야기>를 듣고 매혹되었던 소년이 진짜로 그리스어를 배우려고 작정할 때 찾아오지. 연인들이 마침내 결혼하여 현실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시작할 때도 그렇고, 그러니까 실망감이란 삶의 모든 부분에서, 꿈으로만 간직해 왔던 야심을 힘겨운 실천으로 옮길 때 나타나는 표시인 게야.

 

 

+581

 

두 사람이 오랜 세월 함께 살다 보면 서로 거슬리는 말투나 표정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 점을 노려야 해. 네 환자는 어머니가 눈썹 치켜올리는 표정을 어렸을 때부터 몹시 싫어했어니, 바로 그 표정을 환자의 의식 속에 최대한 부각시키면서 그게 얼마나 꼴보기 싫은지를 일깨워 주거라. 그리고 자기가 그 표정을 싫어한다는 걸 어머니가 뻔히 알면서도 일부러 그런다고 믿게 하는 거야. 너만 잘 한다면, 제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아채지 못할 게다.

 

 

+582

 

'저녁 언제 먹느냐고 물었을 뿐인데 엄만 괜히 난리야'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상황이 어떤 것들인지 너도 잘 알고 있겠지? 일단 이런 버릇을 잘 들여 놓기만 하면, 자기가 먼저 불쾌한 말을 해 놓고서도 상대가 언짢은 내색을 한다면 도리어 서운해하는 유쾌한 상황을 연출할 수 있다.

 

 

+583

 

전쟁이 계속해서 죽음을 환기시킨다는 점도 우리에겐 크나큰 재앙이다. 우리가 가진 최고의 무기 가운데 하나인 '세속에 만족하는 마음'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용지물이 되고 마니가. 전쟁통에도 자기가 영원히 살 수 있으리라고 믿을 인간이 한 놈인들 있겠느냐.

 

 

+584

 

그런 공상 속의 증오는 아주 맥 빠지는 결과를 낳는 경우가 잦은데다가, 특히 영국인들은 이 점에서 아주 구제불능의 졸장부들이다. 독일놈들은 어떤 고문을 해도 시원치 않다고 큰소리를 펑펑 치다가도, 막상 상처입은 독일 조종사가 뒷문으로 들어오면 얼른 차와 담배를 대접하는 한심스럽기 짝이 없는 족속이지.

 

 

+585

 

네가 경계해야 할 것은 환자가 현세의 일들을 원수에게 순종할 기회로 삼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세상을 목적으로 만들고 믿음을 수단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 환자를 다 잡은 거나 마차낙지지.

 

 

+586

 

인간은 양서류다. 반은 영이고 반은 동물이지(원수가 그렇게 역겨운 잡종을 창조하기로 결심했다는 사실은 우리 아버지께서 원수를 지지하지 않기로 하신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니까 인간은 영적 존재로서 영원한 세계에 속해 있는 한편, 동물로서 유한한 시간 안에 살고 있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인간의 영혼은 영원한 대상을 향하고 있지만 그 육체와 정욕과 상상력은 시시각각 변한다는 게야. 시간 안에 있다는 건 곧 변한다는 뜻이니까.

 

 

+587

 

골짜기에 있을 때의 성욕은 꼭대기에 있을 때의 성욕과 질적으로 미묘하게 다르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골짜기에 있을 때의 성욕은 인간들이 '사랑에 빠졌다'고 표현하는 들척지근한 현상으로 기울 가능서은 훨씬 적으면서 성도착에 빠질 가능성은 훨씬 크고, 종종 성적 욕구를 맥풀리게 만들어 버리는 사랑의 부산물-관대하고 상상력이 넘치며 심지어 영적이기까지 한- 에 오염될 가능성은 훨씬 적지. 성욕도 육체이 다른 욕구들과 하등 다를 게 없다. 착실한 술주정뱅이를 만들려면, 행복하고 느긋한 기분으로 친구들과 즐기고 있을 때 술을 권하기보다는, 침체되고 지쳐 있을 때 일종의 진통제로 마시도록 밀어붙여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야.

 

 

+588

 

인간은 미묘한 표정과 말씨와 웃음을 통해 자기가 상대방과 한편임을 암시할 수 있는 동물이니까

 

 

+589

 

환자가 충분히 쓸 만한 얼간이라면, 친구들이 곁에 없을 때에만 그들의 본질을 깨닫게 하고, 함께 있을 때에는 모든 비판력을 싹 실종시킬 수 있지. 이 작전만 성공하면, 환자가 꽤 오랫동안 이중적인 생활을 하며 유인할 수 있다. 나는 이렇게 사는 인간들을 많이 보아 왔지. 환자는 어떤 교제권에 속한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매번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게 될 게야.

 

 

+590

 

상상과 감정이 마무리 경건해도 의지와 연결되지 않는 한 해로울 게 없다. 어떤 인간이 말했듯이, 적극적인 습관은 반복할수록 강화되지만 수동적 습관은 반복할수록 약화되는 법이거든. 느끼기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질수록, 점점 더 행동할 수 없게 될 뿐 아니라 결국에는 느낄 수도 없게 되지.

 

 

+591

 

그러니 너는 환자가 겸손의 진정한 목적을 보지 못하게 해야 한다. 겸손이란 자기 자신을 아예 잊어버리는 게 아니라, 자신의 능력과 성격에 대해 특정한 형태의 의견(즉, 낮은 평가)을 갖는 거라고 생각하게 만들라구. 환자도 물론 몇 가지 재능쯤은 가지고 있겠지. '겸손이란 내 재능의 가치를 내가 실제로 믿고 있는 수준보다 낮게 보려고 애쓰는 것'이라는 생각을 마음속에 꼭꼭 박아 주거라.

 

 

+592

 

정말 중요한 건 어떤 자질에 대한 진실보다 평가를 더 중요시하게 함으로써, 미덕의 싹이 나타나는 족족 거짓과 가식의 요소를 그 중심에 주입하는 것이지. 이 방법을 통해 수천 명에 이르는 인간들이 '겸손이란 아름다운 여자가 스스로 못난이라고 믿으려고 애쓰며, 명석한 남자가 스스로 멍청이라고 믿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그래서 뻔히 사실과 다른 걸 믿으려고 애들을 쓰는 경우가 생기는데, 그런 시도가 성공할 리가 있나. 게다가 우린 인간이 이렇게 불가능한 일을 해보려고 노력하는 사이에 끊임없이 저자신만 생각하도록 붙들어 둘 기회를 얻을 수 있지.

 

 

+593

 

한마디로, 미래만큼 영원과 닮지 않은 건 없어. 미래는 시간 가운데서도 가장 완벽하게 찰나적인 부분이지. 과거는 꽁꽁 얼어붙어 더 이상 흐를 수 없고, 현재는 영원의 빛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으니까. 우리가 창조적 진화니 과학적 인본주의니 공산주의 같은 사상체계에 격려를 아끼지 않은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사상들은 인간의 애착을 미래에, 그 찰나성의 핵심에 붙들어 놓지. 따라서 거의 모든 악은 미래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감사는 과거를 바라보고 사랑은 현재를 바라보지만 두려움과 탐욕과 정욕과 야망은 앞을 바라보지.

 

 

+594

 

인간들을 잘만 가르치면 이런 의미들을 모조리 '내 장화' 와 같은 뜻, 즉 소유를 나타내는 '내'로 국한시킬 수 있다. 놀이방에서 노는 아이가 '내 곰인형'이라고 할 때도 '나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오랜 애정의 대상'이라는 뜻(조금만 방심하면 원수가 이런 뜻으로 사용하도록 가르칠 게다)이 아니라 '마음만 내키면 언제든지 찢어 버려도 되는 곰인형'이라는 뜻으로 사용하도록 교육시킬 수 있지.

 

 

+595

 

이런 확신은 제 아버지가 쓰는 생선칼이야말로 제대로 된 칼이고 정상적인 칼이며 '진짜' 칼이고, 이웃집에서 쓰는 칼은 절대 '진짜 생선칼이 아니다'라고 믿었던 열 살 때의 확신과 별반 다르지 않지.

 

 

+596

 

초심자들은 언제나 과장이 심한 법이다. 갓 출세한 사람은 지나치게 세련되게 굴게 되고, 젊은 학자는 현학적이 되게 마련이지.

 

 

+597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이라면 무조건 질색하는 감정을 파고들라 이 말이야. 이 감정은 우리가 인간의 마음에 만들어 낸 가장 값진 열정이다. 이 감정이야말로 종교에서는 이단을, 조언을 할 때는 어리석음을, 결혼생활에서는 부정을, 우정에서는 변덕을 일으키는 원천이지.

 

 

+598

 

이 욕구는 여러 모로 유익하다. 무엇보다 욕망은 증대시키면서 쾌락은 감소시킬 수 있지. 새 것이 주는 쾌락이란 본질상 그 어떤 것보다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 지배받게 마련이거든. 게다가 지속적으로 새것을 경험하려면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탐욕이나 불행 중 하나, 또는 두 가지 모두를 불러올 수 있다.

 

 

+599

 

우리는 미래란 '선택받은 영웅만이 얻을 수 있는 약속의 땅'이라고 생가하도록 인간들을 훈련시켜 놓았다. 물론 실제로야 직업이나 신분에 상관없이 한 시간 당 60분의 속도로 찾아오게 되어 있는 것이지만.

 

 

+600

 

이와 반대로 풍요로운 중년기를 보낼 경우에는 우리의 입지가 한층 더 확고해진다. 풍요로움은 인간을 세상에 엮어 놓거든. 풍요로운 중년기를 보내는 인간은 '세상에서 내 자리를 찾았다'고 생각하지. 사실은 세상이 자기 속에서 자리를 찾은 것인데도 말이야. 갈수록 높아지는 명성, 넓어지는 교제권, '나는 중요인물'이라는 의식, 열중할 수 있는 즐거운 일의 가중되는 압력 등은 '이 땅이야말로 편안히 안주할 수 있는 고향'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는데,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원하는 바다. 너도 알게 되겠지만, 일반적으로 중년층이나 노년층보다는 청년층이 죽음을 훨씬 덜 꺼리는 법이지.

 

 

+601

 

유머는 균형감각과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능력에서 나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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