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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감각

[밑줄]

 

+517

상상에 무한을 '모셔' 오면 무한의 괴력을 빌려 올 수 있다. 무한은 작렬하는 태양처럼 어떤 제약 조건도 녹여 버리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기면 제약 조건이 완전히 사라진, 툭 트인 상상의 공간에 서서 먼저 그 문제가 해결 가능하다는 확신을 갖고 시작해 보라.

 

+518

투시에 관한 모든 문제는 명백히 5개의 수학 용어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점, 선, 각, 면 그리고 부피를 갖는 덩어리다. 그중 점은 특별하다. 점은 높이, 넓이, 길이, 깊이를 갖지 않는다. 따라서 나눌 수도 없고 차원도 갖지 않는다.

 

+519

대상을 제대로 보려면 샅샅이 관찰해야 하고, 마음을 집중해 이치를 따져야 하며, 이것이 잘되려면 있는 그대로 보라는 조언이다.

 

+520

내가 있는 것은 네가 있기 때문이고, 너는 내가 있기 때문에 있다. 좋건 싫건 그 관계망 속에 내가 있다. 나는 관계 자체이며 관계의 '사이'에 있기도 하다. 점과 직선, 수와 셈은 악기와 손의 관계처럼 따로 있어서는 소리를 못 낸다. 이런 상황을 소동파는 아름다운 시로 표현했다.

 

만약 거문고에 거문고 소리가 있다면

갑(匣) 속에선 왜 울리지 않는가

만약 손가락 끝에 소리가 있다면

그대의 손가락에선 왜 들리지 않는가

 

+521

통합은 필연이지만 하필 10개로 통합된 것은 우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좋은 예가 영국과 아일랜드의 화폐개혁이다. 영국과 아일랜드는 1파운드=20실링, 1실링=12펜스 파운드의 화폐 체계를 일괄적으로 10단위로 통일했는데, 고작 40여년 전인 1971년이었다. 12와 20을 혼합해서 쓰던 복잡한 문화에서 10단위 문화로 길을 바꾼 것이다. 이 역사적인 날을 십진법의 날(Decimal day)이라 하여 'D-day'라고도 부른다.

 

+522

먼저 '그래야만 하나?'를 물어보라.

그리고 그래야만 한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523

아무리 해도 어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시스템 자체의 결함에서 기인한 것일 수 있다. 그것을 직시하고 과감하게 껴안아야 하다. 시스템을 새로 정립하는 방법은 개인이나 기업처럼 단위의 크기, 그리고 문제 성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시스템 자체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문제 해결은 요원하기만 하다. 진인사대천명이라 한다. 문제를 놓아 버리고 하늘의 명을 기다리기 전에 지긋지긋하겠지만 한 번 더 문제로 돌아가 보자. 혹시 문제를 이루는 시스템 자체에 결함이 있는 건 아닐까?

 

+524

시작은 소박한 놀이였지만 결과는 창대했다. 여기서 연결선은 산책 길뿐 아니라 전자 회로도나 상하수도 또는 도시와 도시를 잇는 교통로라고 상상해도 좋을 것이다.

 

+525

토폴로지에서 중요한 것은 연결 상태다. 따라서 우리의 '보는 태도'가 바뀔 수밖에 없다. 오일러에게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할까. 달리 방법이 없다. 모든 지점을 한 번만 지나 완성되는 연결로를 '오일러의 길' 또는 '오일러 산책'이라 부르는데, 자주 이 이름을 불러 주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526

연결됨, 위와 아래, 안과 밖에 대한 고정개념을 깬 새로운 관점은 단지 수학의 이론 영역만 자극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에 응용되는 경우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고, 미술, 건축, 영화 등 예술 분야에서도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특히 공간예술인 건축분야에서는 이런 사고 전환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최근 새로운 공간 개념을 예술로 승화시킨 작품이 속속 나오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예를 들면 호주 멜버른 인근의 별장들은 클라인 병의 수학적 상상력을 건축적 상상력으로 승화시킨 결과다.

 

+527

브라질에 있는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이 태평양 연안에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 이렇듯 작은 차이가 태풍 같은 큰 변화를 일으킨 예로 수와 도형의 통합만 한 것이 없다.

 

+528

우리 연구의 목표는 제기된 문제가 무엇이든 견고하고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도록 마음을 지도하는 것이여야 한다.

 

+529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미지수로 나타낸다

문제를 잘게 쪼개 수학 등식들로 바꾼다

수학 법칙을 적용해 계산하듯 풀어 간단히 한다

가능하면 덧셈과 뺄셈으로 한다

 

+530

좌표법은 말한다. '익숙하고 유용한 것에서 찾아라. 이것이 통합의 대원칙이다'고.

 

+531

소년 가우스가 1부터 100을 더할 때 머릿속에 섬광이 번쩍였던 문제 해결법은 이처럼 덧셈, 도형, 등식 어디에서든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어떤 문제를 직면했을 때 가우스를 떠올려 봐도 좋을 것 같다. 정해진 자원을 갖고 문제를 해결하려 했는데도 잘 안된다면, 먼저 문제 상황을 바꾸는 것이 가능한지 봐야 한다. 가우스가 1,2,3...,100의 수들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전체를 한 덩어리로 보았듯이, 일단 문제와 거리를 두고 문제 자체의 틀을 봐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방식으로 문제를 바꿔 보며 무엇이든 해 보라. 넘치는 것은 나중에 덜어 내면 되고, 부족한 것이 있다면 채우면 될 일 아닌가.

 

+532

우리 시대는 복잡해서 단순함을 동경한다

 

+533

풍부한 내용을 단순한 형식에 담아낼 때 내용의 본질이 더 선명해지고 상상력도 강력해진다.

 

+534

단순한 형식은 상상력의 발사대다: 리만 가설

숫자나 식의 단순화는 사고를 효율적으로 하는 데만 효과가 있는 게 아니다. 단순화 과정에서 꼭 있어야 할 것만 남긴 덕분에 군더더기에 가려졌던 본질을 전면에 드러내기도 한다.

 

+535

"거듭제곱이 3 이상인 경우에 이 식이 참이 되는 x,y,z들은 없다. 이것을 증명할 기막힌 방법이 생각났지만 여백이 부족해서 쓸 수 없다"는 메모를 책 귀퉁이에 서 두었다. 이 메모를 남긴 사람이 페르마다.

 

+536

수학은 0과 무한의 학문이다. 궁극의 없음인 0과 있음의 궁극적 확장인 무한 위에 서 있다.

 

+537

프랑스 언어의 금자탑이라 칭송받는 <팡세>에서 파스칼이 말한 아래 내용을 수학의 개념으로 이해해도 아무 문제없다.

 

사람이란 무언가? 

무한 앞에서는 없음이고 없음 앞에서는 모든 것인, 모든 것과 없음의 중간 아닌가. 

사람은 그 두 극한을 영원히 이해할 수 없다. 

사물의 시작과 끝은 어찌해 볼 수 없는 비밀로 사라져 버린다.

그가 나온 없음과 그가 빠져들 무한을 사람은 결코 볼 수 없다.

 

+538

상상을 초월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상상해야 한다면 먼저 친숙하게 상상할 수 있는 것을 지렛대로 삼아라.

 

+539

루이스 캐럴. 그는 작가이자 사진가였지만 주업은 옥스퍼드 대학교 수학과 교수였다.

 

+540

러시아의 형식주의 문학 비평가들은 '문학은 언어의 산물이다'는 기본을 재확인하고 문학 창작과 비평에서 '낯설게 하기'와 '분리하기' 개념을 전면에 내세웠다. 생각을 낯설게 하려면 생각의 뼈대만 드러내는 것이 매우 효과적이다. 항상 깨어 있기 위해 왼손으로 젓가락질을 했다던 수행자는 오른손의 낯익음을 왼손의 낯설음으로 맞섰다. 생각에서 내용을 빼고 기호로만 써 놓으면 익숙했던 것도 낯설어진다. 그리고 상상력은 낯익음보다 낯설음과 더 친하다. 하지만 이미 낯익은 것을 어떻게 낯설게 본단 말인가? 이는 말처럼 쉽지 않다.

바로 이 지점에서 생각 다이어트가 한몫을 한다. '구조만 드러내기'는 낯설게 하기를 의도적으로 이끌어 내는 상상력의 마술 지팡이가 되면선 말이다. 문장을 P, Q 같은 기호로, 생각의 셈을 ^, -> 같은 기호로 나타낼 때가지 생각을 단순화하는 것을 '낯설게 하기 단계'라고 부르겠다. 그렇게 해서 어떤 생각을 P -> Q로 뼈대만 드러냈다 하자. 그러면 Q -> P로 생각을 뒤집어 보기가 간편해진다. 내용까지 전면에 드러낼 때는 뻔했던 내용이라도 P -> Q 로 그 구조만 드러내 놓고 보면 어느 정도 낯설어지고 뒤집힌 Q -> P는 더 낯설어진다. 이렇게 이중으로 낯설게 하기는 상상력 버튼을 'on'으로 누르는 힘을 갖고 있다. 문학 창작에서도 이런 방식은 흔히 나타난다.

 

+541

낯설게 하기 - 뒤집기와 시적 상상력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운다'는 낯익은 문장을 보자. 낯설게 하기 1단계 P -> Q로 나타내기를 적용한다. '여름이다 -> 매미가 운다.' 그다음 낯설게 하기 2단계를 적용한다. 그 결과 Q -> P 뒤집기 기술이 들어가면 갑자기 시적 비약이 일어난다. 안도현은 <사랑>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썼다.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거운 것이다

 

멋지지 않은가! 백석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눈이 내린다 -> 그리움과 사랑의 감정에 울컥한다'는 식상함을,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오늘 밥은 푹푹 눈이 나린다'로 바꿔 버렸다. 이런 표현은 어제오늘의 것이 아니다. 연암 박지원도 친구에게 보낸 짧은 편지에서 거의 이와 같은 구조를 활용해, 기다리던 보름달을 못 본 서운함을 달랜다.

 

어제는 우리가 달을 저버린 게 아니라 달이 우리를 저버린 것이네.

 

+542

자유롭게 생각 쏟아 내기, 끈기, 연습, 단순성이라는 창조의 원칙들을 관통해 가면서 말이ㅏㄷ.

 

+543

이 방법은 실제 세계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 구글을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시킨 첫 발이 낯설게 하기 - 뒤집기다. 창립자 래리 페이지는 대학원 논문을 이렇게 시작했다. 보통 'P -> Q : 나는 무엇을 링크할까?라는 평범한 사고방식을 뒤집어 'Q -> P : 나는 무엇에 링크될까?라는 형태의 질문을 던진 것이다. 이 단순한 출발이 링크를 역추적해서 중요성이 높은 것부터 보여 주는 검색 엔진을 탄생시켰고 '구글 혁명'으로 이어졌다.

뮤지컬 <맘마미아>가 크게 성공한 계기도 그랬다. '좋은 시나리오가 있다 -> 대중이 좋아할 만한 노래를 만든다'는 논리가 법칙처럼 통하던 때에 제작자 크레이머는 아바의 노래를 바탕으로 '대중이 좋아할 만한 노래가 있다 -> 좋은 시나리오를 만든다'로 생각을 바꾸어 발전시켰다. 이 뮤지컬은 브로드우 ㅔ이에 밀려 침체돼 있던 런던의 웨스트엔드를 다시 살아나게 했다. 여기서도 낯설게 하여 뒤집기의 법칙이 통했다.

 

+544

계산은 가장 비창조적인 행위일 뿐이다. 그런데 기계적인 계산기 같은 수학이 갈수록 널리 쓰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수학으로 무장한 인공지능 로봇에게 체스 기사들이 두 손 든 지는 오래되었고 최근에는 바둑 최고수들도 나가떨어졌다. 계산이 스톱되면 전 세계 컴퓨터와 모바일 기기도 모두 즉시 스톱된다. 

계산이 없으면 현대 문명은 1초도 작동할 수 없을 것 같다. 계산이라는 비창조적인 행위들이 어떻게 현대 문명을 탄생시킨 창조의 원동력이 되었을까? 이런 궁금증은 자연스럽게 계산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이끈다. 하나의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그와 정 반대 현상을 맞대어 보듯 나는 가장 비창조적이라는 계산에게 창조의 길을 물어보라 제안한다.

 

+545

영국 수학자 앨런 튜링은 도심의 대중교통수단 시스템을 최초로 제안한 사람이다. 그느 ㄴ계산이란 무엇인지 매우 단순한 방법으로 정의했고, 현대적 개념의 컴퓨터를 만들었고, 마침내 "생각은 계산이다"는 혁신적인 주장을 해서 파란을 일으켰다. ('계산은 생각이다'가 아니라 '생각이 계산이다'고 주장한 것이다!)

 

+546

기록으로 전하는 최초의 여성 수학자는 히파티아다. 그녀는 기원후 400년 전후에 살았고, 세계 문화의 중심지였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사람이다. 대학자였던 아버지 테온의 배려로 지덕체 모든 분야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 히파티아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알렉산드리아의 대학자가 되었고 후학들에게 지혜의 샘이었다. 아버지 테온이 그녀에게 한 말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너에게는 생각할 권리가 있다. 그 권리를 지켜 내라.

틀리게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

 

+547

몇십 년 전 NASA에서 우주선을 날릴 때 외계 생명체를 위해 인간을 이렇게 간명하게 정의해 놓았다고 한다.

 

우리는 두 발로 걷고 남녀로 구분되어 있으며 호기심이 많다.

(그리고 이어진 한 문장)

그리고 우리는 소수를 안다.

 

+548

과학 소설이자 영화로도 만들어진 <콘택트>에서 외계 생명체도 인류에게 아래와 같은 리듬으로 신호를 보내어 자신들이 지적 생명체라는 것을 알렸다.

쿵쿵 쿵쿵쿵 쿵쿵쿵쿵쿵 쿵쿵쿵쿵쿵쿵쿵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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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9

"뚜벅뚜벅 전진하라. 저절로 눈이 열릴 것이다"는 교훈을 오일러처럼 잘 실천한 경우도 드물다. 

노년의 칼 포퍼는 <삶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다>에서 오류와 그 수정이 과학의 진보와 학습에서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실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삶의 본원적인 것이기도 하다. 실수 없이 사는 건 실은 사는 게 아닌 것이다. 실수 없이는 삶의 진화도 없기 때문이다. 실수는 삶의 주춧돌이다. 가장 끔찍한 것은 실수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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