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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밑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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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크레티우스Titus Lucretius Cans(로마의 시인이자 철학자)는 말했다. "우리는 없는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은 무시한다... 삶은 그런 식으로 소진되며, 죽음은 예기치 못하게 다가온다."

+1700
살아 있지 않음을 슬퍼하거나 두려워한다면, 태어나기 이전도 슬퍼하거나 두려워해야 한다

+1701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부고는 늘 죽음보다 늦게 온다. 밤하늘의 별이 반짝여도, 그 별은 이미 사라졌을 수 있다. 별이 폭발하기 전에 발산한 빛이 지구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 때문에 우리가 그 별을 지금 보고 있을 뿐. 나와 공동체는 이미 죽었는데 현재 부고가 도달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일 뿐.

+1702
사람은 두 번씩 죽는다. 자신의 인생을 정의하던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어 삶의 의미가 사라졌을 때 사회적 죽음이 온다. 그리고 자신의 장기가 더 이상 삶에 협조하기를 거부할 때 육체적 죽음이 온다.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일자리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수명은 전례 없이 연장되고 있다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회적 죽음과 육체적 죽음 사이의 길고 긴 연옥 상태다.

+1703
고도성장을 통한 중산층 진입, 절대악 타도를 통한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과거 수십 년간 이 사회에 에너지를 공급했던 두 약속에 대해 사람들은 이제 낯설어하게 되었다. 이것이었던가, 우리가 열망했던 것은? 민주화와 경제발전이라는 구호가 낯설게 느껴지게 된 이 공동체의 선택은 이제 무엇인가? 마치 형식상 승진은 끝났으나 진정한 연구로부터는 마침내 스스로 소외된 교수들을 바라보는 기분으로 이 공동체의 다음 선택을 바라본다.

+1704
종이 울리고 또 한 해가 시작되었다. 2018이라는 숫자가 적힌 '빤쓰'를 입고 다시 인생이라는 사각의 링에 올라야 한다. 섀도복싱을 시작하는 머리 위로 스포트라이트처럼 하얀 눈이 쏟아진다. 만화 <허니와 클로버>의 주인공은 말했다. "내리는 눈을 올려다보고 있자면, 모래시계 바닥에 서 있는 느낌이 든다"고. 속절없이 쏟아지는 시간의 눈을 맞으며, 부랴부랴 새해의 계획이라도 세우고 싶어진다.

+1705
역사상 가장 뛰어난 권투 선수 중 한 사람이었던 마이크 타이슨은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1706
행복의 계획은 실로 얼마나 인간에게 큰 불행을 가져다주는가. 우리가 행복이라는 말을 통해 의미하는 것은 대개 잠시의 쾌감에 가까운 것. 행복이란, 온천물에 들어간 후 10초 같은 것. 그러한 느낌은 오래 지속될 수 없기에, 새해의 계획으로는 적절치 않다.

+1707
새해라는 건 원래 존재하지 않는다고. 과학소설에 나오듯이, 통속에 든 뇌에다가 어떤 미친 과학자가 새해라는 이름의 자극을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미친 과학자가 바로 우리 자신일 수도 있다고. 그런 가상현실을 통해서라도 우리 삶에 리듬감을 주는 것이 영장류가 발명한 삶의 지혜일 수 있다고. 1분이 60초라는 것도, 한 시간이 60분이라는 것도, 하루가 24시간이라는 것도, 열두 달이 지나면 한 해가 저문다는 것도, 그리하여 마침내 새로운 해를 맞는다는 의식도 모두 인간이 삶을 견디기 위해 창안해낸 가상현실이다. 인간은 그 가상현실 속에서, 그렇지 않았으며 누릴 수 없었던 질서와 생존의 에너지를 얻는다.

+1708
"또 한 해가 가고 오네요."
"당신 나이가 되면 모든 게 선명해질까요?"
"아니요"
"그럼 더 혼돈스러워지나요?"
"그냥 빨리 흘러가요. 비 많이 왔을 흙탕물처럼."
연말연시를 맞아 시간이라는 흙탕물에 서 있는 자세를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핵심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당하면 거치게 된다는 심리 변화 4단계, 부정-분노-체념-인정을 오롯이 밟아나가는 것이다. 자신은 충분히 단련되어 있으므로 그중 어떤 단계를 건너뛸 수 있다고 자만하지 말자.

+1709
하필 그때 철없는 애인이 전화를 해서 묻는다. 나이를 먹고 살이 쪄서 돼지가 되어도 당신은 날 사랑할 거야? 부정-분노-체념-인정 단계를 완수한 사람답게 온화하게 대답하는 거다. 아니 그땐 돼지를 사랑할 거야. 당신은 사라지고 돼지만 남아 있을 테니.

+1710
설거지의 인간론. 결혼은 연애의 업보이고, 자식은 부모의 업보이며, 설거지는 취식의 업보입니다.

+1711
인물도 뛰어나고, 공부도 잘하고, 장학금도 받고, 장래가 창창해 보이는 스스로와 상대방을 불쌍히 여기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제 결혼을 하고 나서 함께 보낼 미래의 시간들은 다름 아닌 노화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과학자들에 따르면 대략 19세를 전후해서 성장이 멈추고 노화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본인들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이미 상당한 노화가 진행된 상태라고 하겠습니다. 노화를 겪는 생활체의 고단함과 외로움과 무기력함을 생각하면, 자신과 배우자에 대해 연민이 샘솟을 것입니다. 그렇게 연민을 가질 때, 사람은 비로소 상대에게 너무 심한 일을 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성인인 공자님이 왜 성인인지에 대해서, 맹자는 다음과 같이 짧게 말한 바 있습니다. "공자께서는 너무 심한 일은 하지 않으셨다."

+1712
미남이 밥 먹여주냐, 얼굴 뜯어먹고 살 거냐, 라는 말들을 하곤 합니다. 그러나 배우자가 잘 생겼으면, 자신이 기꺼이 돈을 벌어 상대의 입을 힘차게 벌리고 밥을 퍼 먹여주고 싶은 심정이 된다고 합니다.

+1713
정체성에 관련된 이러한 대화들은 신성한 주문이 되어 해묵은 잡귀와 같은 오지랖들을 내쫓고 당신에게 자유를 선사할 것이다. 칼럼이란 무엇인가.

+1714
그러나 애써 시험공부를 해서 기왕에 대학에 들어왔다면, 반드시 지식을 통해 머리에 전구가 들어오는 경험을 해야 한다. 자루에 갇혀 있다가 튀어나온 고양이처럼 그러한 사치스러운 지적 경험을 찾아 캠퍼스를 헤매야 한다. 그리고 입시를 위해 보내야 했던 그 지루했던 시간에 대한 진정한 보상을 그 환한 앎에서 얻어야 한다. 세상에는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할 수도 있는 다른 종류의 공부가 있음을 영원히 모른 채로 죽지 않기 위해서.

+1715
잘 쉬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쉬기 위해서는 일단 열심히 일해야 한다. 무엇엔가 열심히 종사하지 않은 사람은, 잘 쉴 수도 없다. 열심히 종사하지 않은 사람의 휴식에는 불안의 기운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쉰다는 것이 긴장의 이완을 동반하는 것이라면, 오직 제대로 긴장해본 사람만이 진정한 이완을 누릴 수 있다. 당겨진 활시위만이 이완될 수 있다.

+1716
누가 그랬던가. 휴식의 궁극은 죽음이라고. 쉬고자 하는 욕망의 끝에는 죽고자 하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고. 만화책으로부터 우리가 휴식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는 자칫 죽음을 통해서라도 휴식을 취하려 들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만화책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1717
선생님은 이 길이 적성에 맞는지는 어떻게 아셨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글짓기 숙제를 내 적이 있었어요. 어떤 주제로 써와도 좋다는 뜻에서, 칠판에 '글짓기 주제는 자유'라고 쓰셨죠. 다른 학생들은 자기 마음대로 일상에 대해서 글짓기를 해온 반면, 나는 자유에 대해 글을 써갔죠. 담임선생님이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보면서, 회사에 취직해서 매출 떨어뜨리지 말고 다른 길을 가라고 말씀해주셨어요.”

+1718
이탈리아 영화감독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Pier Paolo Pasolini는, "삶이 진행되는 동안은 삶의 의미를 확정할 수 없기에 죽음은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즉 여러분들에게는 창창한 미래가 있고, 진정한 평가의 시간은 죽음을 앞두고서야 찾아옵니다. 그러면 미래에 우리가 죽음을 앞두고 스스로의 삶을 평가할 때 적용되어야 할 평가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때 평가 기준은, 돈을 얼마나 벌었느냐, 얼마나 사회적 명예를 누렸느냐, 누가 오래 살았느냐의 문제는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보다 근본적인 평가 기준은, 누가 좋은 인생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1719
영화 <빅 칠The Big Chill>의 주인공에 따르면, 정당화는 섹스보다 중요하다. 단 하루도 안 할 수 없으므로.

+1720
1970년 관측 이래 단 한 번도 얼음이 붕괴한 적이 없어서 '최후의 빙하'라고 불려온 그린란드 북부 해안의 빙하가 올여름 더위에 녹아내렸다. 일부 기후학자는 2030년 이후에는 북극 얼음이 아예 없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 모든 것은 결국 다 소멸한다. 북극의 빙하보다 모질지 못한 당신도, 나도 대학도, 당신이 평생을 갈아 넣은 경력도, 당신의 인생을 대신해서 살아가는 자식들도, 소멸에는 어떤 예외도 없다. 어떤 존재를 지탱했던 조건이 사라지면 그 존재도 사라진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소멸의 여부가 아니라 소멸의 방식이다.

+1721
실로 대학 시절이 진행되는 동안은 무슨 시간이 흐르고 있는지 모른다. 때로는 아직 도래하지도 않은 파국을 걱정하느라 목전의 즐거움을 놓쳐버리기도 한다. 미래에 대해 불안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 의심스러운 나머지, 젊음이라는 아이스크림이 다 녹아버리도록 바라보고만 있기도 한다. 그 불안한 시간이 흐르는 동안은 의미를 확정할 수 없기에 졸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2월 하순이 오면, 학생들은 졸업을 하고 캠퍼스를 떠나야 한다.

+1722
<전쟁과 평화> 완역본을 찾아서 읽었다. 분량이 많았으나 재미있었고, 일종의 역사철학서라는 사실에 놀랐다. 그 덕분에 호화로운 시간 낭비의 맛을 아는 몸이 되었다.

+1723
"자신 있고 겸손한 학자보다 자신 없고 무례한 학자가 많은 것이 대학 사회입니다."

+1724
"우리의 차이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궁극적으로 지니고 살아야 하는 고독과 이웃하고 있으며, 각자 자신의 고독을 확립해야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적어도 나는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1725
꾸물거리지 말고 어서 시집이나 가. 젊은 스가 아쓰코에게 당시 일본 사회는 이렇게 말했다. 반발심이 든 스가 아쓰코를 본격적으로 동요시킨 것은 생텍쥐페리의 문장이었다. "스스로 대성당을 짓지 않으며 의미가 없다. 완성된 대성당에서 편하게 자신의 자리를 얻으려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1726
스가 아쓰코에 따르면, 과거의 향기는 기억 속에서만 존재할 뿐, 마법을 써서 돌아간다 해도 같은 향기를 반복해서 음미할 수는 없다. 이제 공동체는 개인의 고독을 인정한 위에서만 건설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더러움을 찾아 떠나는 무심한 로봇청소기처럼 앞으로 나아갈 때다.

+1727
아, 실로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 그 사랑을 통해서 인생의 권태를 이겨내고, 사랑의 상상 속에서 협애한 자아를 넘어 보다 확장된 삶을 경험한다. 그러나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인간들은 대부분 사랑의 대상이 되기에는 너무 누추하다. 깔끔한 용모는커녕, 화장실에서 손도 씻지 않는 존재들도 적지 않다(내 직장에서 누가 용변 뒤 손을 씻지 않는지 나는 알고 있다).

+1728
모든 이야기에 끝이 있듯이, 인생에도 끝이 있다. 모든 이야기들이 결말에 의해 그 의미가 좌우되듯이, 인생의 의미도 죽음의 방식에 의해 의미가 좌우된다. 결말이 어떠하냐에 따라 그동안 진행되어온 사태의 의미가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인간은 제대로 죽기 위해서 산다"는 말의 의미다. 어느 자리에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 삶은 선택할 수 없지만 죽음은 선택할 수 있다....비록 우리의 탄생은 우연에 의해 씨 뿌려져 태어난 존재일지언정, 우리의 죽음은 그 존재를 돌보고자 한 일생 동안의 지난한 노력이 만들어온 이야기의 결말이다. 스스로를 어찌할 도리 없는 지경에 그저 처박아버리기 위해 일생을 살아온 것이 아니다.

+1729
서울 시장 선거가 끝났다. 선거가 끝났다는 것은, 자신의 당선이야말로 불행을 끝내고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무책임한 말들을 당분간 듣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오늘날 투표하는 사람들에게 영웅적인 면이 있다면, 그 모든 허황된 약속의 역겨움에도 불구하고 투표장에 가고자 한 결단에 있다.

+1730
의미를 추구하는 이러한 해석 행위는 우리가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인간이 존재하는 기본적인 양식이어서, 이러한 해석의 오라aura를 떠난 인간의 삶은 좀처럼 가능하지 않다. 왜 해석을 하지 않고서는 못 견디겠는가?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우리는 쓸쓸해서 해석을 하고, 울음이 나올 것 같아서 해석을 한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불안해서 해석을 한다.

+1731
안타깝게도 우리는 엄마를 찾기에는 이미 너무 커버렸으므로 이런저런 정교한 해석들을 통해서 자기 위안을 찾아 나선다. 그러한 자기 위안들을 통해서, 자기가 부여한 의미들을 통해서, 이 황량한 세계를 그나마 살 만한 곳으로 만든다. 엔지니어들이나 배관공들만이 살기 어려운 환경을 살 만한 환경으로 바꾸어주는 것은 아니다. 이 황량한 세계에서 거주할 의미의 집을 만든다는 점에서 시인들이나 철학자들도 똑같이 대단한 도시 계획가들이다.

+1731
생명보험회사들만이 당사자가 죽고 나서도 이 세상은 여전히 의미가 있는 곳이라고 선전하는 것은 아니다. 죽어도 남는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종교인들이나 예술인들도 대단한 생활설계사들인 셈이다. 그들의 해석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왜 살아가고 있는지 비로소 어렴풋이 알게 되고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잘 지어진 화장실이나 보일러를 갖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다. 그러한 정신의 보일러가 없으면 겨울이 오지 않았는데도 전신이 오들오들 떨릴 수가 있다. 그리고 전문 엔지니어가 아니라도 일상에서 다들 전구쯤은 스스로 갈아 끼우고 살듯이, 누구나 어느 정도는 일상에서 시인들이고 철학자들이다. 그래서 매일매일 자신의 집을 수리하듯이,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어느 나라의 국민으로서 사는지, 누구의 부모로 사는지, 누구의 자식으로 사는지, 어떤 연예인의 그루피로 사는지, 어떤 축구팀의 치어리더로 사는지, 누구를 사랑하면서 사는지, 어떤 운명의 일부로 사는지를 환기하면서, 자기 합리화의 벽돌로 지어진 자신의 관념의 집을 수리하며 산다. 누구는 다소 서툴고 누구는 다소 능숙하다는 차이가 있을지라도.

+1732
아무튼, 책을 꼭 읽어야 하나요? 물으면 사실 안 읽어도 된다고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만, 책은 인류가 발명한, 사람을 경청하게 만드는 정말 많지 않은 매개 중 하나죠. 그렇게 경청하는 순간 우리가 아주 조금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보는 겁니다. 자기를 비우고 남의 말을 들어보겠다는 자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