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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란 무엇인가

 

 

[밑줄]

 

+1733

공부하는 이가 할 일은, 이 모순된 현실을 모순이 없는 것처럼 단순화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모순을 직시하면서 모순 없는 문장을 구사하는 것이다.

 

+1734

영정 사진은 망자를 상기시키기 위해 거기에 있지만, 영정 사진이 곧 망자는 아니다. 즉 재현은 그 어떤 대상을 상기시키지만 그 대상 자체는 아니다. 어떤 풍경화도 그것이 표현하는 풍경 자체는 아니다. 어떤 나라의 지도도 그것이 가리키는 나라 자체는 아니다. 

 

+1735

변화란 그냥 생기지 않고 좀 힘들다 싶을 정도로 매진할 때 비로소 생깁니다.

 

+1736

평소보다 좀 더 무거운 지적 무게를 들기 위해서는 일정한 규율이 필요합니다. 러시아의 유명한 영화감독 타르코프스키는 주기적으로 정해진 일을 하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1737

성적 관련 사안에 대해 최대한 냉정을 유지하고자 하는 저도 두려워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듣자 하니, 자식들의 성적이 잘 나오지 않으면, 어머니나 아버지가 학교에 찾아와서 통사정을 하거나, 떼를 쓰는 경우가 간혼 있다고 하더군요. 참 난감할 것 같습니다. 대학은 유치원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성인이고, 성인이라면 스스로 똥오줌을 가릴 줄 아는 것처럼, 자신의 성적 역시 관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엄마에게 독립영화를 찍어달라고 한 뒤, 그 영화를 들고 독립영화제에 참가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강조했는데도 성적이 안 좋다고 여러분들 엄마가 연구실에 찾아와서 저를 괴롭히면, 저도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저도 엄마를 불러올 수밖에.

 

+1738

호기심에서 출발한 지식 탐구를 통해 어제의 나보다 나아진 나를 체험할 것을 기대한다. 공부를 통해 무지했던 과거의 나로부터 도망치는 재미를 기대한다. 남보다 나아지는 것은 그다지 재미있지 않다. 어차피 남이 아닌가. 자기 갱신의 체험은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보고 있다는 감각을 주고, 그 감각을 익힌 사람은 예속된 삶을 거부한다.

 

+1739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마르셀 프루스트도, 경험에 합당한 언어를 부여하지 않으면 그 경험은 사라지게 된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신의 독특한 경험에 맞는 섬세한 언어로 자신의 경험을 포착하지 않는 한, 그 경험은 사라지고, 그만큼 자신의 삶도 망실된다.

 

+1740

어떤 신문기자가 등반가 라인홀트 메스너에게 물은 적이 있다. "당신이 낭가파르바트 설산을 오르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요?" 메스너는 대답했다. "그렇게 묻는 당신의 인생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의 대답에는 보통 사람이 쉽게 가지기 어려운 어떤 정신의 척추 기립근 같은 것이 느껴진다. 이 정신의 척추 기립근이야말로 유용성의 신화가 지배하는 21세기, 무용한 공부에 매진하는 이에게 허여된 마지막 기대 효과 같은 것이다.

 

+1741

물론 이것이 연장자가 더 나은 견해를 가졌을 거라는 말은 아니다. 혹시라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막스 베버가 한 말을 들려주고 있다. 토론하면서 출생증명서의 생년월일을 들먹이며 이기려 드는 상대를 나는 참아본 적이 없다. 상대가 스무 살이고 나는 오십이 넘었다는 사실 하나로 내가 더 성취하고 더 배웠다고 할 수 없다. 나이가 문제가 아니다. 관건은 삶의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단련된 실력, 삶의 현실을 견딜 수 있는 단련된 실력, 내면으로 감당해낼 수 있는 단련된 실력이다."

 

+1742

엄한 선생 없이는 애매한 재야 고수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 보면, 재야 고수가 프로 선수에게 '처 발리는' 영상이 널려 있다. 학문의 길은 재야 고수의 길보다 잔인하다.

 

+1743

노년이 되면 체력이 현격히 저하된다. 그때 가서 새삼 구해야 할 나라 같은 게 있으면 너무 피곤할 것 같다.

 

+1744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사놓고 그때까지 안 읽은 책들은 이제 포기하겠다. 이 단계가 되면 내 삶에 들어왔다가 나간 동학들이 남긴 흔적들을 천천히 지우겠다. 부고는 들리지 않고, 다만 근황을 듣기 어려울 것이다. 잠시 심호흡을 하고 작은 응접실의 불을 끄는 거다. 이것이 삶이었나요? 이미 다 지난 일이군요.

 

+1745

유학을 통해 나는 변했나?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는 이렇게 노래했다. "덧없는 삶을 사는 우리는 왜 애써 / 많은 것을 추구할까? 어찌 낯선 태양이 / 끓는 곳을 찾아갈까? 고향을 등진다고 / 자신마저 등질 수 있을까?"

 

+1746

나쓰메 소세키의 <쿠사마쿠라(풀베개)>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산길을 오르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이치를 따지면 모가 나고, 정에 치우치면 휩쓸리고, 고집을 피우면 옹색해진다. 이래저래, 사람의 세상은 살기 어렵다." 

 

+1747

책을 왜 읽는가? 어떤 이는 사회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책을 읽는다. 프랑스의 비평가 에밀 파게는 말했다. "독서의 적은 인생 그 자체다. 삶은 질투와 경쟁으로 뒤흔들리고, 우리를 독서를 통한 자기 성찰에서 멀어지게 한다." 

 

+1748

미국의 작가 수전 손택은 말했다. "독서는 제게 유흥이고 휴식이고 위로고 내 작은 자살이에요. 세상이 못 견디겠으면 책을 들고 쪼그려 눕죠. 그건 내가 모든 걸 잊고 떠날 수 있게 해주는 작은 우주선이에요."

 

+1749

너무 세세한 나머지, 대다수 청중은 관심을 갖지 않을 만한 사안을 집어내어 질문하는 것은 생산적이지 않다. 그런 질문은 전체 토론 활성화에 기여한다기보다는 잘난 척하는 '지적질'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소소한 질문은 공식 질의응답 시간이 끝난 뒤에 개인적으로 물어도 족하다. 공식 질의응답 시간에는 가능한 한 다른 청중들도 관심을 가질 만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좋다. 그러한 질문은, 상대의 주장이 경쟁하는 여러 주장 중의 하나임을 상기시키고, 논의의 지형 전체를 제고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1750

지금은 영화감독으로 더 유명한 미국의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젊은 시절 영환 <더티 해리(Dirty Harry)> 시리즈로 유명세를 떨쳤다. 영화의 주인공 형사 더티 해리는 여느 형사와는 달리 범죄자를 체포하는 데 과도한 폭력을 불사한다. 그는 특히 육중한 체구의 악당을 때려눕히기를 즐긴다. "나는 덩치가 큰 놈이 좋아. 쓰러질 때 큰 소리가 나거든." 잠시 후, 악당은 쿵 소리를 내며 땅바닥에 쓰러지고, 더티 해리는 쓰러진 거구를 내려다보며 충족감을 느낀다. 그러한 충족감을 느끼기 위해,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주제를 상대해서 승부를 보려고 한다.

 

+1751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에 나오는 사생아 에드먼드는 사생아를 멸시하는 정실부인 자식들의 상식을 이렇게 뒤집어놓는다. "사생아가 비천하다고? 사생아는 자연스럽게 불타는 성욕을 만족시키다가 생겨난 존재이니, 지겹고 따분한 침대에서 의무 삼아 잉태된 정실 자식들보다는 낫지!" 오, 어쩐지 그럴듯하다.

 

+1752

마침내 예식이 마무리되고 나면 또 하나의 역경이 기다리고 있다. 다들 사진 찍기 바빠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예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주례는 애매하게 내팽개쳐지는 것이다. 도대체 어디 가서 운신을 하고 있어야 할지 마땅치 않은 나머지, 서둘러 예식장을 빠져나오곤 한다. 이러한 많은 어려움들은 주례사 쓰기의 어려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주례사 쓰기가 어려운 이유는, 일단 식장의 청중들이 너무 다양하여 도대체 누구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할지 알기 어렵다는 데 있다. 나이, 학력, 성별, 출신 지역, 인생관, 교육 배경, 혈압, 혈당, 성질머리 등 어느 한구석도 동질성을 찾기 어려운 사람들이 신랑 신부를 축하한다는 명분 하에 그 자리에 모여 있는 것이다. 

 

+1753

상대를 무시하는 가장 흔한 방법은 져주거나 침묵하는 것이다. 상대를 존중하는 사람만이 비판한다.

 

+1754

작업에 대한 평가와 작업자에 대한 평가를 가능한 한 구분한다. 그래야 비로소 상대도 건설적인 비판과 인신공격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상대의 주장이 틀렸다고 해서, 상대를 꼭 쓰레기라고 공개적으로 부를 필요는 없다. 잔인한 것은 이 우주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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