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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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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

인간은 생식이란 과업 이상을 꿈꾸게 되면서 비로소 인간이 되었다. 인간은 번식에 그치지 않고 번식 이상의 의미를 찾으면서 인간이 되었다. 인간은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면서 인간이 되었다. 인간은 약육강식에 반대하고 인간의 선의를 발명하면서 인간이 되었다. 의미와 희망과 선의를 좇으면서 동시에 학살과 전쟁과 억압과 착취의 역사를 만들어온 인간에 대해 생각한다. 대를 이어 생멸을 거듭해온 인간이란 종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 혼돈의 시간에 그들은 어떤 기쁨과 불안과 고통을 느꼈을까 하고 자문해보곤 한다.

 

+1861

희망은 답이 아니다. 희망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상태가 답이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으로는 이미 탈진 상태인 이들에게 앞으로 희망이 있다고 말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희망은 희망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에게 가끔 필요한 위안이 되어야 한다.

인간의 선의는 답이 아니다. 선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상태가 답이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으로는 세상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찬 이들에게 인간의 선의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인간의 선의는 선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에게 가끔 주어지는 선물이 되어야 한다.

의미는 답이 아니다. 의미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상태가 답이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으로는 텅 비어버린 이들에게 인생의 의미를 역설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의미는 의미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가끔 떠올릴 수 있는 깃발이 되어야 한다.

인간에게는 희망이 넘친다고, 자신의 선의는 확고하다고, 인생이 허무하지 않다고 해맑게 웃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인생은 허무하다. 허무는 인간 영혼의 피 냄새 같은 것이어서, 영홍이 있는 한 허무는 아무리 씻어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인간이 영혼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듯이, 인간은 인생의 허무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인간의 선의 없이도, 희망 없이도, 의미 없이도, 시간을 조용히 흘려보낼 수 있는 상태를 꿈꾼다.

 

+1862

어떻게 이 세상을 사랑할 것인가. 세상에는 악이 버섯처럼 창궐하고, 마음에는 번민이 해일처럼 넘치고, 모든 것은 늦봄처럼 사라지는데, 어떻게 이 세상을 사랑하는 일이 가능한가.

 

+1863

선생님이 아직 이 세상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때, 은희는 선생님께 물은 적이 있다. "자신이 싫어질 때도 있나요?" 선생님은 말햇다. "자신을 좋아하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아. 내 자신이 싫어질 때면, 그러는 내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봐." - 영화 <벌새> 중

 

+1864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현은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빗질 자국이 남아 있는 마당이 빗질 자국조차 없는 마당보다 깨끗해 보인다고.

 

+1865

오히려 인간이 만든 문명의 흔적을 그리되 인간은 그리지 않을 때, 인간의 부재가 한층 더 도드라진다. 거대한 건물의 잔해 그림이 전하는 기묘한 감동은 바로 그러한 인간의 효과적 부재에서 오는 것이다.

 

+1866

영화 <보희와 녹양>(2019)은 한 사내가 평상복을 입은 채 입수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것은 옷만 물에 잠기는 빨래나, 평상복을 벗고 하는 수영과는 다르다. 평상복을 입은 채 물속으로 걸어 들어간다는 것은 자신의 일상을 통째로 물속에 집어넣는 일이다. 그것은 우는 것이 금지된 다 큰 어른이 크게 우는 방식이다.

 

+1867

시체를 직면하는 전통은 현대에도 지속된다. 1986년 개봉한 로브 라이너 감독이 만든 영화 <스탠 바이 미>에는 실종자의 시체를 찾아 떠나는 네 명의 철부지 소년이 나온다. 천신만고 끝에 소년들은 마침내 시체를 발견한다. 막상 시체를 두 눈으로 보고 나자 그들의 마음은 더 이상 시체를 보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인생이란 유한하며,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엄연한 사실, 모두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우연과 허무의 물결을 이럭저럭 헤쳐나가고 있음을 철부지들조차 깨닫게 된 것이다.

 

+1868

아직 미망에 사로잡힌 (우리) 보통 사람들은 오늘도 허무한 일상 속을 그림자처럼 걷는다. 마치 세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의 주인공처럼. "인생이란 걸어 다니는 그림자, 불쌍한 연극배우에 불과할 뿐 / 무대 위에서는 이 말 저 말 떠들어대지만 / 결국에는 정적이 찾아오지, 이것은 하나의 이야기 / 바보의 이야기, 분노에 차 고함치지만 / 아무 의미도 없는."

 

+1869

연말연시가 되면 잡지사에서 연락이 오곤 한다.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며, '독자에게 위로와 희망을 줄 수 있는 글'을 써달라는 원고 청탁이다. 답장을 쓴다. "절망을 밀어낼 희망과 위로를 말할 자신이 없어 사양합니다. 너른 양해 바랍니다."

 

+1870

나도 패터슨처럼 일정한 시간에 잠자리에 든다. 잠자리에 들기 전 산책을 하고, 샤워를 한 뒤, 페이스북에 그날 밤에 들을 음악을 올리고, 그날 갈무리한 책과 영상을 보다 잠든다. 그리고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달걀을 삶는다. 타원형의 껍질 안에 액체가 곱게 담겨 있다는 사실에 감탄한다. 오랫동안 해온 일이기에, 나는 내가 원하는 정도로 달걀을 잘 익힐 수 있다. 오래도록 이 일상을 지속할 수 있기를 바란다. 목표를 달성할 수 없어 오는 초조함도, 목표를 달성했기에 오는 허탈함도 없이, 지속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물처럼 흐르는 시간 속에 사라질 내 삶의 시를 쓸 수 있기를 바란다.

 

+1871

선생이 되고 나서 공부를 지나칠 정도로 치열하게 하는 학생을 만난 적이 있다. 왜 그토록 열심히 하느냐고 물으니까, 그는 서슴지 않고 대답했다. 공부하는 순간이 좋아서요. 오, 그런가. 이 대답은 오랫동안 뇌리에 남았다. 언제 올지 모르는 영광된 내일을 위하여 오늘을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대답이었다. 인간은 우연의 동물이며, 순간을 살다가 가는 존재라는 것을 상기하는 간명한 대답이었다. 삶을 연주하는 재즈 피아니스트의 대답이었다.

 

+1872

삶의 행복을 겪으면서 동시에 자신이 행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두 배로 행복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해왔다.

 

+1873

꿈속에서 울다가 아침이 되어 깨어나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해야 할 일이 놓여 있을 것이다. 누군가 시킨 일이기에 자발성을 느낄 수 없는 일, 굻어 죽지 않기 위해서 마지못해 해야 하는 일, 인생을 파멸의 구덩이로 밀어넣지 않기 위해서 하지 않을 수 없는 일, 의미도 즐거움도 없는 일,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일, 아름답지 않은 일들이 우리 앞에 길게 놓여 있을 것이다. 이 길에 끝이 있기나 할까. 목표로 할 것은 이 하기 싫은 일을 해치우고 보상으로 받을 여가가 아니다. 구원은 비천하고 무의미한 노동을 즐길 만한 노동으로 만드는 데서 올 것이다.

 

+1874
완공된 성당의 관리자로, 혹은 성당 의자나 운반하는 사람으로 자기 소임을 다했다고 만족하는 사람은 이미 그 순간부터 패배자다. 지어 나갈 성당을 가슴속에 품은 이는 이미 승리자다. 사랑이 승리를 낳는다. ...지능은 사랑을 위해 봉사할 때에야 비로소 그 가치가 빛난다.

- 생텍쥐베리, <전시 조종사>

 

+1875

내가 산책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산책에 목적이 없다는 데 있다. 나는 오랫동안 목적 없는 삶을 원해 왔다. 왜냐하면 나는 목적보다는 삶을 원하므로. 목적을 위해 삶을 희생하기 싫으므로. 목적은 결국 삶을 배신하기 마련이므로. 목적이 달성되었다고 해보자. 대개 기대만큼 기쁘지가 않다. 허무가 엄습한다. 목적을 달성했으니 이제 뭐 하지? 목적 달성에 실패했다고 해보자. 허무가 엄습한다. 그것 봐, 해내지 못했잖아. 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았지?

 

+1876

행복하고 싶어! 많이들 이렇게 노래하지만, 나는 행복조차도 '추구'하고 싶지 않다. 추구해서 간신히 행복을 얻으면, 어쩐지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 세상에는 그런 일들이 있다. 가는 대신에 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일. 억지로 가려고 하면 더 안 오는 일. 잠이 안 와요, 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우리가 잠에게 가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억지로 잠들려고 할수록 잠이 달아나지 않던가. 행복도 그런 게 아닐가. 나는 자네에게 가지 않을 테니, 자네가 오도록 하게. 행복이여, 자네는 내가 살아가는 동안 부지불식간에 발생하도록 하게, 셔터가 무심코 눌려 찍힌 멋진 사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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