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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담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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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

"나는 정의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 정의가 나의 어머니에게 총부리를 겨눈다면 나는 어머니의 편을 들겠다!" 여기에 카뮈의 인간적인 교훈이 있다.

 

+285

"그러나 우리가 이대로 패배하기엔 너무나 많은 내일이 남아있다. 천치와 같은 침묵을 깨치고 퇴색한 옥의를 벗어던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유혹이 있다. 그것은 이 황야 위에 불을 지르고 기름지게 밭과 밭을 갈아야 하는 야생의 작업이다. 한 손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막고, 또 한 손으로 모래의 사태를 멎게 하는 눈물의 투쟁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화전민이다. 우리들의 어린 곡물의 싹을 위하여 잡초와 불순물을 제거하는 그러한 불의 작업으로서 출발하는 화전민이다. 새세대 문학인이 항거해야 할 정신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항거는 불의 작업이며 불의 작업은 미개지를 개간하는 창조의 혼이다." - 이어령

 

+286

잠 못 이루는 것이 곧 문학의 훈장이라고 생각할 때였다.

 

+287

나는 그 무렵 이래 "문학이란 인간이다"라는 오상순 선생의 말씀보다는 "문학은 말이다"라는 믿음 쪽으로 더 많이 기울어지게 되었다.

 

+288

말의 매혹, 말의 신비, 말의 창조력, 말의 광채, 말의 지혜, 그리고 말의 무력함과 무의미

 

+289

카뮈가 그르니에에 대하여 말했듯이 '"적절한 말, 정확한 지적을 에워싸고 모순이 풀려 질서를 찾게 되고 무질서가 멈춰버린다."

 

+290

오직 백지뭉치와 만년필만 가지고 파리나 로마의 카페 한구석에 홀가분하게 가 앉아서 글을 썼다는 샤르트르가 신기하기만 하다. 

 

+291

책은 많으나 나를 휘어잡거나 나의 존재가 방향을 선회하게 될 만한 책은 이제 거의 없다. 정보를 얻거나 아이디어를, 자료를, 인용문을, 문제성을 취하고 나면 그만인 책들이 대부분이다.

 

+292

하루는 봉투 속에서 편지를 꺼냈더니 백지 위에 손바닥을 펴서 짚은 채 각 손가락의 윤곽을 따라 연필로 서투르게 줄을 그은 손의 그림이 커다랗게 떠올랐다. 그 밑에는 어렵사리 판독한 결과 "저의 손이에요. 만져주어요."라는 뜻으로 읽혀지는 애틋한 글이 딱 한 줄 씌어져 있었다.

 

+293

<독서술>을 쓴 모티머 아들러 교수의 비유는 흥미롭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을 관찰해볼 때 직업이나 특별한 관심사가 있을 때를 제외한다면 그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평소보다 훨씬 더 낫게 글을 읽으려는 노력하는 상황은 단 한 가지뿐인 것 같다. 그것은 다름아닌 연애편지읽기다. 사랑에 빠져서 연애편지를 읽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실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읽는다. 그들은 단어 한마디 한마디를 세 가지 방식으로 읽는다. 그들은 행간을 읽고 여백을 읽는다. 부분의 견지에서 전체를 읽고 전체의 견지에서 부분을 읽는다. 콘텍스트(문맥)와 애매성에 민감해지고 암시와 함축에 예민해진다. 말의 색깔과 문장의 냄새와 절의 무게를 알아차린다. 심지어 구두점까지도 고려에 넣는다. 

 

+294

좋건 싫건 간에, 옳건 그르건 간에 한 인생의 가장 꽃다운 시절의 시간과 정열의 투자 방법과 방향을 결정하게 되어버린 것이 이 나라의 대학입학시험이다. 

 

+295

롤랑 바르트가 말하는 '텍스트의 쾌락'

 

+296

아무런 그림도 장식도 없이, 그냥 백지에 책의 제목과 저자와 출판사 이름만이 찍힌 프랑스 시집을 좋아하듯, 기술적이거나 서술적인 트릭을 거의 쓰지 않는 그냥 담담한 장 르누아르의 흑백영화를 좋아하듯, 보시다가 펼쳐진 채 놓아두신 문집 한 권, 재떨이와 담뱃대, 윗목에 놓인 요강이 전부인 할아버지의 정결하고 고요한 방을 좋아하듯, 나는 그 시집을 좋아한다. 시의 세계로 들어갈 때는 떠들썩한 관광객들처럼 안내를 받아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그리고 저 침묵의 심연을 껑충 건너뛰어 들어서는 것임을, 시는 언어의 벼랑 끝에서 문득 마주치는 침묵의 충격임을 나에게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297

또 돼지라면 출근길 대도시 번잡한 대로에서 만난 트럭 속의 그 살찐 짐승들만 연상될 뿐이다. 그들은 도살장으로 가고 있었다. 나팔 같은 주둥아리에 '뜨물 묻은 겨'도 없이 작은 눈으로 교통신호들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차가 움직이면 그 허연 살덩어리들이 출렁거리며 한쪽으로 쏠렸다. 끼익끼익하며 비곗덩어리의 비명이 자동차 소음 사이로 잦아들었다.

 

+298

그런 책은 소시민들에게 안도감을 준다. 인생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준다는 핑계로 우리의 총명과 감성을 다독거리면서 잠재운다. 눈을 뜨고 자려면 이런 책을 읽으면 된다. "오늘은 시간이 없어 편지가 길어졌습니다"라고 끝맺는 현처(賢妻)의 긴 편지처럼 말을 아낄 줄 아는 책의 세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299

하기야 카뮈는 일찍이 이렇게 술회하지 않았던가. "한 인간이 이룩한 작품이란, 예수라는 긴 우회의 길들을 거쳐서, 최초로 가슴을 열어 보였던 한두 개의 단순하면서도 위대한 이미지들을 되찾기 위한 긴 도정에 지나지 않는다."

 

+300

베니스영화제 은사자賞 수상작품 <금지된 사랑>

영화의 끝부분, 우리를 어둠 속에 망연자실하게 남겨놓은 저 남자와 여자의 쓸쓸한 대화처럼. (8개월 후 우연히 마주쳤을 때)

- 어떻게 지내세요?

- 늙어가고 있어요

- 어서 늙으세요

 

+301

침묵이라 소음과의 대조를 통해서만 비로소 존재하는 것. 침묵은 귀를 잠재우고 오직 눈으로만 보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302

욕망이란 원래 제 자신의 욕망인 경우는 드물고 으레 남의 욕망을 흉내낸 욕망일 때가 많다. 미국 사람들이 부러우면 미국 사람들의 욕망도 부러워지는 것인가 보다. "... 이제 나는 작품이 끝난 줄만 알았다. 단 하나의 획도 덧보탤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밤은 충고에 능하다. 이제 삼사일만 더 손질하면 회화적 깊이가 생기겠다." 이 무렵 그를 찾아온 마티스에게 화가(르누아르)가 한 말이다.

 

+303

1914년 이곳으로 이장한 동생 테오와 함께 나란히 묻혀 있는 빈센트의 무덤에는 침묵만이 뜨거운 불볕 속에 타오르고 있었다. 말없이. 그러나 그 침묵은 우리를 내치는 침묵이었다. 관광객들이여 이제 그만 가보시라. 그대들의 삶은 다른 곳에 있으리니...

 

+304

다른 사람이 땅을 사서 별장을 지으면 집 정원에서 아름다운 알피유 산등성이가 가려서 보이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랬단다. 오로지 늘 보아온 그 풍경을 두고 보기 위해서 알리스는 일생 동안 모은 돈을 다 바친 것이다. 일손을 놓으며 받는 퇴직금이란 바로 이런 데 쓰는 것이구나하고 나는 감탄했다. 일생 동안 모은 돈으로 산이 보이는 경치를 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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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불문학자들은 국문에도 뛰어난가란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김화영 선생과 황현산 선생의 글을 읽으며 든 궁금증이다

우문이다

글을 사랑하는 두 사람이 불문학에 빠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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