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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행복한 책읽기

 

[밑줄]

 

 

+305

통찰을 통해 과감히 잔가지를 치며 핵심에서 핵심으로 건너뛰는 글 걸음 - 이인성

 

+306

산은 깊이 들어갈수록 낮아진다 - 신대철

 

+307

자리매김이라는 말이 나는 싫다... 변화를 전제하지 않은 자리매김이란 딱지 붙이기에 다름아니다.

 

+308

언어는 원칙적으로 나와 타자간의 대화에 지나지 않는다. 질문과 대답은 사유의 제일 요소이다.

 

+309

대가의 화면은, 대개, 정공법이다. - 데이비드 린의 <인도로 가는 길>을 보고.

 

+310

정치적 언어의 특징은 그 뻔뻔함에 있다.

 

+311

잠이 들면 꿈속에서나마 그대의 모습을 볼 터인데, 잠도 오지 않는다는 비통한 탄식은 뛰어난 호소력을 갖고 있다. "꿈길밖에 길이 없어..."라는 황진이의 시나, 한용운의 이별 노래에 맞설만 하다. - <천일야화>를 읽고.

 

+312

미국 영화가 자꾸만 애국심을 강조하는 것은, 미국의 지적 힘이 자신감을 잃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자기 나라가 좋은 나라라는 것을 선전해야만 안심이 되는 나라는 이미 그렇게 좋은 나라가 아니다. 자기 나라가 좋지 않은 나라라고 비판하는 것을 그대로 놔두고 그것을 수용하는 나라가 차라리 좋은 나라이다. 그 체제를 나는 부정적 신학이라는 용어를 차용하여 부정적 체제라고 부르고 싶다.

 

+313

아름답다의 아름은 알음알음의 알음, 앎의 대상이다. 아는 물건 같다가 아름답다의 어원이다. 고유섭은 아름을 앎이라고 생각했으나, 이름은 앎이 아니라 앎의 대상이다.

 

+314

바보들만 하나도 안버리려다가 다 버린다

 

+315

거의 시는 감각의 순간성에 민감하다. 몇 개의 예 : "물냄새를 맡은 낙타/울음/내가 더 목마르다" ; "전갈의 독이 오를때/가장 아름다운 색깔을 띤다/온몸에 번진 적의여"- 황지우의 <나는 너다>를 읽고

 

+316

절제 속에 응축된 감정이 없고, 절제를 위한 절제만이 있을 때, 절제는 속임수로 나아간다. 절제가 힘을 얻는 것은 진솔한 감정이 응축되어 자신을 숨기고 있을 때이다. - 노향림의 <눈이 오지 않는 나라>를 읽고

 

+317

도스토예프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의 가장 끔찍한 전언은 맨 앞 대목에 숨겨져 있다. : "... 그러나 인간의 사는 힘은 강하다. 인간은 모든 것에 익숙해질 수 있는 동물이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가장 훌륭한 정의라고 생각한다."

 

+318

수전노들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않고, 항아리나 궤에 숨겨두는 것도 구멍 체험의 한 변형이다. 빈곳을 채운다는 것이, 늘어나는 숫자보다 그들의 마음에 더 든다.

 

+319

편지는 전화보다 훨씬 내면적이다. - 도스토예프스키의 <영원한 남편>을 읽고.

 

+320

내가 이름하여 위대한 원한이라 부르는 것이 있다. 위대한 것들은 - 하나의 작품, 하나의 행위, 어느 것이든 - 그것이 성취되면 곧 그것을 성취한 자에게 보복을 한다. 위대한 것을 성취함으로써 그는 약해지는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행위를 견딜 수 없으며 그는 더 이상 그것을 바라볼 수 없다.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도 허용되지 않는 것, 인간의 운명에 있어서 한 매듭이 맺어지는 어떤 것이 성취자의 배후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 그리하여 이제부터 그는 그 밑에서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을 그는 거의 부숴버린다. - 그것이 바로 위대한 원한이라는 것이다. -니체 <도덕의 계보>에서 인용

 

+321

16세기 초의 전세계의 인구는 4억쯤 되었는데, 8천만이 미주에 살고 있었다. 16세기 중엽에는 그 8천만 중에서 천만이 살아남았다. 멕시코로 한정한다면, 2500만 중에서 백만이 살아남았다! 어제 저녁 11시쯤 이 끔찍한 대목을 읽고 나니(P138 이하에는 살육의 방법이 10여 가지나 소개되어 있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토도로프의 <미국정복>을 읽고.

 

+322

"미국 말을 피하는 유일한 길은 언어의 다양성, 그 다양성의 긍정적 가치를 주장하는 거지요... 영어를 안쓰는 유일한 방법은 파리 사람들이 생각하듯 불어를 쓰는 게 아니라, 여러 나라 말을 하는 거예요."(Le Monde, 1988.1.13). - 유럽의 미래에 대한 뷔토르의 성찰 중

 

+323

시에 있어서, 감각의 깊이란 결국 삶의 구체성에 대한 실감이 아니면 무엇일까?

 

+324

"그대의 양키 고 홈 구호에서 느낌표를 떼라. 느낌표의 봉건성을 자기 투쟁으로 혁파하라" "느낌표가 붙어 있다는 것은 언제나 시작임을 알리는 동시에,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표현한다." - 김정환의 <세상 속으로 1,2> 중

 

+325

짧은 시들의 특색은 김용택, 권혁진의 그것처럼 압축된 묘사일 수도 있으며, 이성복, 정호승의 그것처럼 절제된 감정일 수도 있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시적 원리는 감춤이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쏟아놓기보다 가능한 한 절제하여 숨겨보겠다는 것이 그 시들을 지배하고 있는 원리다.

 

+326

러시아의 옛말 하나: "생각이란 벼룩새끼들 같아서 헤아릴 수가 없다"

 

+327

운동권 문화가 한국 문화에 끼친 두 가지 영향 : 하나는 금기를 깨나가는 것이 문화 활동이라는 것, 또 하나는 배부르게 사는 것과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는 이동렬과의 대화가 생각난다.

 

+328

오랜만에 만난 주섭일의 말 : "극좌의 존재는, 재산 보호에 혈안이 된 중산층의 위기 의식을 자극하여, 중산층을 파시즘으로 몰고 가는 중요한 요인이에요." 12.16에서의 중산층의 반란은, 주식이라는 재산을 지키기 위한 중산층의 위기의식일까? 중산층의 위기의식을 자극한 것은 무엇일까? 김대중의 온건한 급진주의? 아아, 무서운 중산층!(난 서민이라는 자각!)

 

+329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사랑과 혁명은 같은 길입니다 -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하)> 중

 

+330

나는 시와 만화가 결합될 수도 있으리라고 믿고 있지만, 그 경우에, 그 누구의 시가 그 누구의 만화와 다 결합할 수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다른 매체를 사용하되, 같이 사유하는 사람들끼리만이 잘 만날 수 있다.

 

+331

고난을 수락하면, 그것은 이미 고난이 아니다! - 김지하

 

+332

문충성은 너무 많이 쓴다.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추한 느낌은 들지 않으나, 놀람을 주지도 않는다.

 

+333

시란 '외침'과 '이야기' 사이에 있는 장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334

박정희가 권력을 잡은 이후부터, 단 하나의 담론이 모든 것의 우위에 있었다 : 우리는 잘살아야 하고, 잘살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전제가 붙는다. 물질적으로 잘산다는 것을, 그는, 그냥 잘산다고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조금 부유해졌다고, 과연 잘사는 것일까? 그는 물질을 올리고, 정신, 신앙, 문화를 낮춘다. 정신적인 가치는 물질적 가치에 종속된다. 언제까지? 다 피폐해져서, 물질적 쾌락만 남을 때까지? 그는 상징적인 히로뽕 판매자였다.

 

+335

발레는 여자의 넓적다리(허벅지)를 제일 예술적으로 감상하게 하는 예술이다. 

 

+336

패한 자의 기록은 증오를 낳지 않는다. 그것은 패한 사람에 대한 동정과 연민을 낳는다. 패한 사람이 갖는 역사적 가치는 패한 사람도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데 있다. 패한 사람도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증오심은 어느 정도 사라진다 - 이태의 <남부군>을 읽고.

 

+337

"궁극적으로 여성해방의 과제는 각 계층, 각 집단에서 자신을 연구할 사람들이 나올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있다." 중산층 연구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자기 계층이나 계급의 한계를 반성 못하는 것이 나쁘다는 얘기인 것이다. - 조혜정의 <한국의 여성과 남성>을 읽고

 

+338

빈틈이 없으니, 의외의 것이 끼어들 자리가 적다. - 안수환의 <검은꽃 길을 붙들고>를 읽고

 

+339

넌 누가 저들(꽃/잎)의 일생을 두고서

꽃과 잎

그 어느 쪽이

더 아름답다, 함부로 말할 수 있으랴 - 김정응의 <천로역정, 혹은> 중

 

+340

오래 자주 들으면 소리의 구조가 귀에 보인다. 그때가 고비다. 그 구조가 보이는데도, 좋게 들리는 소리가 있고, 그 구조가 보이면 소리가 상투적이 되어버리는 소리가 있다. 인도 음악은 그 구조가 보여도 듣기 좋다. 

 

+341

그녀는 좋은 문학 교수이다. 그 좋음에서 조금만 더 벗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정효구의 <시와 젊음>을 읽고

 

+342

잡학의 대가인 서정기의 말 하나 : "모음이 많은 이탈리아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받침이 많아 노래가 발달하지 못했어요." 생각해볼 만한 말이다.

 

+343

너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무심코 주워버린 동전 하나

문득 쓸쓸해진

미친년 하나 헤매지 않는

개똥 하나 없는 거리

그랬구나

그 차고 동그란 것이

지상에 빛나는 별이었구나 - 이창기의 <꿈에도 별은 찬밥처럼> 중

말들의 빈틈을 좀 줄여야 하겠다. 그래야 읽힌다.

 

+344

문학은 항상 거창하고 작품은 항상 서투르다 - 박태순의 <낯선 거리>중

 

+345

모든 창조적 열망의 마지막 근원은

따라서 병인 듯하도다

창조하며 나는 회복될 수 있었고

창조하며 나는 건강해졌노라 - 하이네 <신시집> 중

 

+346

증언되지 않는 침묵은 이미 침묵이 아니다

 

+347

인간은 인간에 대해 늑대이다

 

+348

작품은 드물고 비평의 목소리는 높다. 비평가들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쭈뼛쭈뼛한 자세이다. 당당한 비평가들의 글을 읽을 때는 내 마음도 당당해지고, 주눅든 작가들의 작품을 읽을 때에는 내 마음도 주눅든다. 그리곤 그만이다. 울림은 신문의 정치면이나 경제, 사회면을 읽을 때만도 못하다. 신문을 정독하면 작품을 읽을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나 아닌지 겁난다. 그래도 마음 다잡고 읽는다. 씩씩한 비평가들과 주눅든 작가들의 얼굴을 살려주기 위해서.

 

+349

내가 내 육체의 주인이 아니라, 내 육체가 내 주인이라는 생각에 갈수록 깊게 사로잡힌다

 

+350

삶에는 지름길이 없다. 자기가 가야 할 길은 가야 한다

 

+351

새벽에 형광등 밑에서 거울을 본다. 수척하다. 나는 놀란다.

얼른 침대로 되돌아와 다시 눕는다.

거울 속의 얼굴이 점점 더 커진다.

두 배, 세 배, 방이 얼굴로 가득하다.

나갈 길이 없다.

일어날 수도 없고, 누워 있을 수도 없다.

결사적으로 소리지른다. 겨우 깨난다.

아, 살아 있다.

김현(김광남). 1990년 6월27일 48세로 작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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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에게 냉정한 편이다

그러나 김현 선생을 만나면 비평도 창작이라고 인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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