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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록(無序錄)

 

무서록

 

[밑줄]

 

 

+359

나는 처음에 도급으로 맡기려 했다. 예산도 빠듯하지만 간역(看役)할 틈이 없다. 그런데 목수들은 도급이면 일할 재미가 없노라 하였다. 밑질까봐 염려, 품값 이상 남기랴는 궁리, 그래 일 재미가 나지 않고, 일 재미가 나지 않으면 일이 솜쌔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솔직한 말에 내가 감복하였고 내가 조선집을 지음은 조선건축의 순박, 중후한 맛을 탐냄에 있음이라. 그런 전통을 표현함에는 돈보다 일에 정을 두는 이런 구식 공인들의 손이 아니고는 불가능할 것임으로 오히려 다행이라 여겨 일급(日給)으로 정한 것이다

 

+360

그러나 울지는 않았다. 위에 기동차의 소녀처럼 울지는 않았다. 왜 울지 않았는가? 아니 왜 울지 못하였는가? 그 작품들에게 울만치 애착, 혹은 충실하지 못한 때문이라 할 수 밖에 없다. 잃어버리면 울지 않고는, 몸부림을 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런 작품을 써야 옳을 것이다.

 

+361

전에 대원군께 어떤 시골 선비 하나가 찾아와 역시 장지 밖 윗방에서 절을 하였다. 하고나서 보니 대원군은 안석에 기댄 채 책에만 눈을 던지고 있을 뿐 감감하다. 선비 속으로 아마 못 보셨거니 하고 다시 절을 하였다. 그제 대원군은 선비의 간이 달랑할 만치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 손 이게 무슨 해괴한 짓인고? 산 사람헌테 재배를 허다니 날 송장으로 본 셈인가?" 그러나 선비 얼른 대답이 용하였다. "아니올시다, 멋젓절은 뵈옵는단 절이요 나중절은 물러간단 절이올시다." 대원군은 고개를 끄덕이고 사람 하나 얻었음을 즐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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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 전통찻집 <수연산방>은 이태준 선생의 집을 개조해 꾸린 곳이다

일년에 몇차례 생각나면 들르게 되는데

차맛도 일품이지만,  사랑채 밖으로 보이는 정원의 풍경이 

계절마다 다른 눈맛이 있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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