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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수집생활

문장수집생활

 

[밑줄]

 

+417

그래, 술은 낮을 잊게 하고 밤은 과거를 불러오지

- 윤대녕 <피에로들의 집> (문학동네, 2016)

 

+418

아가, 꽃 봐라. 속상한 거는 생각도 하지 말고

너는 이쁜 거만 봐라, 라고 할머니가 말했던 일이 생각났다

- 이은희 <1004번의 파르티타> [푸른 만을 열면] (문학동네, 2016)

 

+419

자판기 커피의 양은 초면인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면서 마시기에 적당했다

- 서유미 <당분간 인가> (창비, 2012)

 

+420

산초, 다이아몬드 하나보다

이 하나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알아야 해

- 돈키호테

 

+421

조잡하거나 사무적인 표정을 한 우편물들 사이로

분홍빛 봉투가 코를 내민 게 눈에 띄었다

- 김애란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아시아, 2016)

 

+422

무엇에든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자가 어디에도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법이다

-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423

이불만은 좋은 것으로 덮어야 해. 그래야 나쁜 꿈을 안 꾸지."

어머니는 두툼하게 솜을 넣은 이불을 손으로 쓸면서 말했다

- 정한아 <애니> (문학과지성사, 2015)

 

+424

조중균 씨는 매일 야근했다. 하루에 겨우 예닐곱장의 교정지가 넘어올 뿐이라서 정작 나는

정시에 퇴근했다. 내욀 봐요, 하고 내가 사무실을 나가면 조중균 씨는 일어나 자기 자리만 남기고

사무실 형광등을 모두 껐다. 그리고 그런 사무실의 어둠을 아주 따뜻한 담요처럼 덮고

원고의 세계로 빠져 들어갔다.

- 김금희 <너무 한낮의 연애> [조중균의 세계] (문학동네, 2016)

 

+425

소개팅 날, 남자가 맘에 들면 절대 가지 말아야 할 곳이 편의점인 것처럼 형광등은 적나라하게 모든 걸 드러낸다.

 

+426

아버지가 낯선 건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긴 방학이 긑나고 개학 첫 날 마주친 담임 선생님 같았다

- 하성란 <여름의 맛> (문학과지성사, 2013)

 

+427

글은 삶의 구체성과 일상성을 확보해야 한다

즉 생활에 바탕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글은 공허하고 헛되다

나는 글을 쓸 때 되도록 개념어를 쓰지 않는다

개념어는 실제가 존재하지 않고 언어만 존재하는 것 같다

자기 삶을 통과해 나온 언어를 써야 한다

- 김훈, 팟캐스트<낭만서점> 중 말

 

+428

뭐랄까 재료와 재료들이 각기 배낭을 메고 어디론가 긴 여행을 떠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성껏 해주신 오징어볶음이 그랬고 불고기가 그랬고 참치 김치찌개가 그랬다.

한 술 뜨면 오징어와 암소와 참치가 씨익 웃고 난 뒤 뒤돌아 저 멀리 석양을 향해 걸어가는 듯한 느낌...

- 이기호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마음산책, 2017)

 

+429

뭐야, 너는 평생 은박 접시 위에 올라앉아 셀로판지에 곱게 싸여 있다 천국으로 직행하고 싶은 거야?

창피한 일, 쑥스러운 일 좀 하는 게 그렇게 겁나? 어딜 찔러도 약점 하나 드러나지 않는 인간이 그리 대단해?

바보! 인생이란 건 두세 달 뒤에는 이미 인생이 아닌 거야. 지금 이 순간만이 인간의 인생이라고!

- 다나베 세이코 <감상 여행> (북스토리, 2009)

 

+430

그것(소파)이 진짜 침대가 아니고 시트나 베개가 없다는 사실이

저항감 없이 나를 편안하게 했다

- 다나베 세이코 <노리코, 연애하다> (북스토리, 2012)

 

+431

커피 잔을 내려놓고 책꽂이에서 책을 몇 권 집어 들었다. 책을 펼쳐 들고 한때 줄을 그어놓았던 문장들을

다시 접해보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모른다. 내게 인상 깊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내가 무엇을 느꼈고 정말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확인해보는 것이다

- 파비오 볼로 <아침의 첫 햇살> (소담출판사, 2014)

 

+432

취업 활동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는 물론 시험에 계속 떨어지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거절당하는 체험을 몇 번이나 되풀이한다는 것은 고통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별로 대단치 않은 자신을 대단한 것처럼 계속 얘기해야 하는 일이다

- 아사이 료 <누구> (은행나무, 2013)

 

+433

줄곧 생각했던 거지만, 긴지, 아직 다 해내지 못한 단계에서 '이거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하고

어필하는 건 관둬. 각본을 다 쓰고 나니 아침이 됐더라, 어쩌고 하는. 그런 건, 공연이 전부 끝난

뒤에 할 말이지 않아? 누구누구하고 미팅 어쩌고 하는 건 공연 끝난 뒤에 '누구누구 님에게

조언을 받아서 만든 공연입니다'로 충분하잖아. 자신을 위해 누군가를 이용하지 마.

그리고 요 며칠 사이 책을 몇 권 읽었느니, 연극을 몇 편 봤느니 그런 것도 아무 상관없잖아.

중요한 건 수가 아니라고. 그리고 연극계 인맥을 넓히겠다고 늘 말하지만, 알아?

제대로 살아 잇는 것에 뛰고 있는 걸 '맥'이라고 하는 거야. 너, 여러 극단의 뒷풀이 같은 데

가는 모양인데, 거기서 알게 된 사람들과 지금도 연락하고 있냐? 갑자기 전화해서 만나러 갈 수 있어?

그거, 정말로 인'맥'이라고 할 수 있는 거야? 보고 있으면 딱하더라, 너.

- 아사이 료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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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저자, 이유미 카피라이터는 소설의 묘사를 통해 카피의 씨앗을 발견해왔음을 고백한다

나 역시 같은 방법으로 발상의 자료집을 만들어왔다

여기 이곳의 밑줄 모음 역시 다르지 않은 작업의 일환이다

아마도 많은 카피라이터들이 대동소이한 방법론을 가지지 않았을까

다만, 근면함의 차이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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