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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만이 무기다

지성만이 무기다

 

[밑줄]

 

+434

현대인은 향락에 너무 익숙한지도 모른다. 향락은 거짓된 즐거움이다. 향락은 요금을 지불해야만 대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시간제한이 있다. 이런 상업적 향락은 테마파크부터 모의연애나 섹스, 게임까지 매우 다양하다. 많은 사람이 그런 향락밖에 모르는 게 아닐까. 즐거움은 누군가로부터 받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435

내가 이렇게 비판할 수 있는 데에는 스스로 시작한 공부가 진짜 즐거움 중 하나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물론 공부하는 즐거움에는 골치 아픈 것도 섞여 있다. 하지만 그런 공부는 누군가가 강제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적극 도전했기 때문에 대체로 즐거움, 충실감을 동반한다. 결과적으로 과거의 자신에게 벗어나 끊임없이 변신하는 모험을 동반한다. 이처럼 매력적인 것이 또 있을까.

 

+436

읽기를 수동적인 행위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읽기는 누군가에게 질문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노력이 필요한 적극적인 행위이다. 물론 오락서나 실용서가 아닌 책을 읽는 경우에만 해당되겠지만 말이다.

 

+437

독서가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작업인 이유는 반드시 뇌의 작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뭔가를 간파한다는 것은 더욱 고도한 작업이다. 독서가 인간의 머리를 활발하게 만드는 것은 이 간파라는 형태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438

책은 물질이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그 알맹이는 눈에 보이지 않으면 오직 책을 읽는 인간을 통해서만 그 가치가 드러난다.

 

+439

독서의 가장 큰 의미는 자신과 타인을 '알아 가기' 위한 것이다.

 

+440

확실한 목적을 위한 준비 작업으로 공부를 서둘러야 할 때는 텍스트를 하루나 이틀 안에 다 읽으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모르는 부분이 있어도 일단 전체를 봐두어야 한다. 전체 내용을 보는 것은 여행을 떠나기 전에 여행지의 지도를 보는 것과 같다. 공부를 하면서 자신이 지금 어느 정도까지 와 있는지 혹은 이 내용이 전체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심리적인 여유를 가질 수 있다. 또한 자신의 진도와 속도를 파악할 수 있어 공부계획도 쉽게 세울 수 있다.

 

+441

노트는 좌우 페이지를 구분하여 사용한다. 즉 왼쪽 페이지에 기록된 메모에서 촉발되어 발전한 사고에 대한 문장, 그 메모와 관련된 사안, 그 메모에 대한 주석, 관련 도서 등을 오른쪽 페이지에 기입한다. 따라서 왼쪽 페이지는 기원, 오른쪽은 그것의 확대, 발전, 파생, 주석, 보충이 되는 셈이다.

 

+442

일반 책은 문장을 읽으면 이해할 수 있는데 왜 교과서 문장만 난해한 것일까. 아니 왜 나한테만 난해하게 다가오는 걸까. 그 이유가 몇 가지 있었다. 즉 설명이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간결하다. 그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다. 그 문장에는 인간이 없다. 즉 문체가 없다. 그래서 문장에 매력도 음악도 없다. 당시의 교과서는 단어와 술어투성이의 시시한 문장이 아무런 억양도 없이 그저 나열되어 있을 뿐이었다. 시시한 양복을 입은 회사원이 지루한 얼굴로 버스 정류장에 줄지어 서있는 것처럼 말이다. 교과서의 문장이 그래도 상관없었던 것은 교사과 교과서를 보완하듯 설명하면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것이 관료들이 생각하는 학교 수업이었을 것이다. 

 

+443

교과서의 문장을 내가 알 수 있도록 내 방식대로 바꿔 썼을 것이다. 아마 내게는 그런 버릇이 있는 모양이다. 평소에도 상대방의 말을 그대로 이해하는 일은 거의 없다. 내 안에서 다른 말로 바꿔 이해한다.

 

+444 

물론 같은 책을 읽는다 해도 각자의 환경이나 생활방식에 따라 의미를 추출하는 방식은 다르다. 하지만 책을 읽음으로써 적어도 스스로 의미와 가치를 헤아리는 연습을 할 수 있다. 또한 동서고금의 온갖 책을 읽음으로써 다양한 지식과 가치관을 접하고 현재 상황을 타개할 실마리로 삼을 수 있다. 폭넓은 독서를 통해 어떤 것도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자신에게 중요한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일상의 요소요소에서 자유롭게 찾아낼 수 있다. 그것이 곧 니힐리즘을 극복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445

책 한 권을 읽을 때마다 인간은 변해 가는 것이다. 그래도 인식이 전혀 변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책에서 지식이나 줄거리 같은 표면적인 쓰레기만을 퍼올리기 때문일 것이다.

 

+446

정독한다는 것은 한 글자 한 구절에 눈길을 주고 거기에 쓰여 있는 모든 내용을 알고자 하는 읽기 방법이다. 지명이 나오면 지도를 펼치고, 인명이 나오면 인명사전을 펼치며, 모르는 도구나 식물이 나오면 도감이나 백과사전을 찾아 용어의 의미를 하나씩 확인한다. 그러면서 책의 여백에 기록하고, 표현의 의미를 조사하며, 종합적으로 문체, 즉 문장의 특징을 토대로 작성된 글의 사상적 핵심을 파악하고 더 나아가 시대 배경까지 캐내는 것이다.

 

+447

어린아이는 인생에 대해 물을까. 묻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상에서 자신이 성장하고 변화해 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태이고, 성장해 가는 자신에게 매일매일 충족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성장은 키나 체격이 커지는 게 아니라 자신이 자발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곧바로 실천하고, 그때 그때의 경험으로 인식과 해석이 확대되어 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성인에게는 그런 의미에서의 성장이 사라진다. 세상의 온갖 세파에 찌든 성인일수록 자발성이 적고, 그저 생활에 필요한 임금을 얻기 위해 자신을 솜씨 좋게 도구화하기 때문이다.

 

+448

자신이 도구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 손쉬운 방법이나 비결을 원한다. 출세의 비결, 소규모 장사로 성공하는 비결, 돈을 버는 비결,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할 수 있는 비결,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할 수 있는 비결, 행복의 비결... 비결을 원하는 이유는 어쨌거나 매사를 손쉽게 처리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어떤 일도 특별한 방법이나 비결 같은 지름길이 틀림없이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비결만 알면 손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결이나 방법이 각자의 능력이나 인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

 

+449

애당초 이런 정부 관료의 의도와 교육 방침 자체가 허무주의다. 그리고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 세금으로 자신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생활을 보장 받는 일이다. 그래서 그들은 납세(納稅)라는 말을 사용하지, 불세(拂稅)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납세의 '납納'은 '거두어 들인다'를 뜻하고, 불세의 '불拂'은 '지불한다'는 의미라서 주체가 다르다.)

 

+450

그래도 역시 정독에는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해본 적 없었던 정밀한 독서 방식을 통해 과거의 자신을 뛰어넘어 새로운 자신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뭔가에 의지해 이미 누군가가 깔아 놓은 길만 걸어온 자신, 정해진 자료를 적당히 분배 받아 만들었으면서도 마치 창조한 것처럼 생각하는 자신, 무슨 일이든 정해진 틀과 정답 혹은 정통과 최고가 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자신, 틈틈히 시간을 내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 등 이 모든 자신이 세속적이다.

 

+451

어휘를 늘리는 것은 다양한 무기를 손에 쥐는 것이다. 예를 들어, 괴테가 만년에 집필한 유명한 작품 <파우스트>에서 여성이라는 말은 단순히 한쪽 성별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인간을 구원하는 전적인 사랑(아가페)를 강하게 의미하는 식이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내일 당장 필요한 생활비를 버는 용도로는 쓸 수 없다. 하지만 세계를 바꾸는 데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세계를 바꾼다는 이 말은 은유도 과잉된 표현도 아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세계의 양상과 그 의미를 자신이 지니고 있는 지식의 양과 깊이가 형성하는 인식의 방식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계의 재발견인 동시에 자신의 재발견이기도 하다. 눈에 보이는 것이 변하기 때문에 그에 따라 자신도 계속 변해간다.

 

+452

재능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조건 중 하나는 자신이 원하는 단 하나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그 다음 조건은 그 단 하나에 대해 계속 관여하는 것이다.

 

+453

우리 어른은 공부를 할 때 보이지 않는 길이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종래의 길로, 사회로부터 주어진 사안 혹은 사회에 이미 존재하는 기성의 지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유형의 공부이다. 이는 자신의 머리를 기성의 주물 속에 집어넣는 것이다. 또 하나의 길은 헤세처럼 상식과 고정관념으로 만든 기성의 주물을 뛰어넘어 밖으로 나와 자신의 감성과 능력으로 터벅터벅 자유롭게 공부하는 것이다. 물론 이 황야의 길이야말로 한없이 피곤하다. 강제도, 기준도, 윤리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길을 걷는 사람만이 새로운 땅에 도달할 수 있다. 지금까지 없었던 관점과 표현 방법에 도달한 유명한 예술가도, 과학자도, 혁신가도 모두 자신만의 황야의 길을 걸어 왔다.

 

+454

현대인은 파우스트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다. 만들어진 교육 시스템에서 필요 사항을 필요한만큼만 암기하고, 지식을 다음 사회적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면, 높은 임금과 안전, 보호를 요구하는 한편 교활함을 지혜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비루한 욕망의 일부분을 음란한 장소에서 남몰래 맛보고 주식과 연금을 계산하면서 노화와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 삶의 방식은 땅속에 사는 벌레나 매한가지다. 땅속에 사는 벌레라고 표현한 것은 자신의 주변만 주된 관심사로 여기며 살기 때문이다. 그러한 삶의 방식에는 전체를 내려다본다는 개념이 없다. 사고방식의 비상도, 행동의 모험도 없다. 손 안의 작은 사안만 좇는 스페셜리스트는 될 수 있을지언정 날아다니며 시공간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는 될 수 없다.

 

+455

독학하는 생활에 불안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헤르만 헤세의 단편소설 <클라인과 바그너>에 있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해주고 싶다.

'사실 사람들이 불안하게 느끼는 것은 단 하나뿐이다. 즉 몸을 던지는 것, 미지의 것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것, 모든 게 보장되어 있는 안전지대를 아주 조금이라도 넘어가는 것이다. 한 번, 단 한 번만이라도 자신을 내동댕이친 적이 있는 사람은 위대한 신뢰를 느끼고, 자신을 운명의 손에 내맡긴 사람은 불안으로부터 해방된다. 그들은 더 이상 지상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 그들은 우주에 낙하하여 별들과 함께 운무를 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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