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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밑줄] +168 철학을 포함한 인류의 문화적 업적은 깊은 사색적 주의에 힘입은 것이다. 문화는 깊이 주의할 수 있는 환경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깊은 주의는 과잉주의에 자리를 내주며 사라져가고 있다. 다양한 과업, 정보원천과 처리과정 사이에서 빠르게 초점을 이동하는 것이 이러한 산만한 주의의 특징이다. 그것은 심심한 것에 대해 거의 참을성이 없는 까닭에 창조적 과정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는 저 깊은 심심함도 허용하지 못한다. 발터 벤야민은 깊은 심심함을 "경험의 알을 품고 있는 꿈의 새"라고 부른 바 있다. 잠이 육체적 이완의 정점이라면 깊은 심심함은 정신적 이완의 정점이다. 단순한 분주함은 어떤 새로운 것도 낳지 못한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재생하고 가속화할 따름이다. 벤야..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밑줄] +156 빛이 오고 난 뒤에도 우리가 한 번 더 이토록 캄캄한 어둠 속에 살아야 했다는 사실을 후세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 카스텔리오, , 1562 +157 자신의 용기에 도취된 상태로 쓰러지는 사람.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자신의 확신을 조금도 포기하지 않고 영혼이 육신을 떠나는 순간에도 확고하고 경멸에 찬 눈길로 적을 응시하는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운명의 손에 의해 한 방 얻어맞는 법이다. 그는 죽임을 당할망정 물러서지 않는다. 가장 용감한 사람들은, 대개는 가장 불운한 사람들이다. 승리를 갈구하는 의기양양한 패배도 있다. - 몽테뉴 +158 지금까지 지구상에 단 하나의 종교, 단 하나의 철학, 단 하나의 세계관이 독재적으로 자리 잡아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정..
농담 [밑줄] +133 내가 무관심이라 불렀던 것은 실은 원한이었던 것이다 +134 부탁하는 일의 성격이 은밀한 것이니 그러자면 그들을 보지 못했던 그 긴 세월 위로 애써 다리를 놓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135 나는 여자애들이 정말 끔찍하게 싫다, 젊음 속에서 잔인한 저 어린 여자애들, 마치 자기들은 언젠가 서른, 서른다섯, 마흔 살이 되지 않을 것처럼, 자신보다 조금 더 나이 먹은 여자에 대해 일말의 연대감도 없는 그런 여자애들 +136 그러면서 동시에 침울해졌다, 아주 많이! 나는 그걸 알아보았고 순간 열기가 확 솟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나를 갈망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그에게 결혼한 여자임을 환기시키자 더욱 그가 나를 갈망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기쁨, 결혼한 여자이므로 나는 다가갈 수 없..
BRAND [밑줄] +82 본래의 자신보다 좋아 보이고 싶은 욕망, 그것이 병의 시작이다 +83 그다지 좋지 않은 제품을 큰소리로 "너무 좋아요~"라고 해 봤자 기분만 상해. 그런데 아직도 그런 광고가 너무 많아. 나는 이것이 일종의 '병'이 아닐까 생각해. 왜냐하면, 사람으로 치자면 이건 커뮤니케이션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야. 솔직하게 이야기를 할 수 없다든가, 솔직한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는 거니까. +84 화술은 광고의 승패를 결정하지. 그리고 상품이건 기업이건 '실력'과 '화술'과의 '차이'는 커뮤니케이션의 장벽이 돼. 스스로가 되고자 하는 모습을 그대로 강요한다면 광고의 코스트 퍼포먼스적인 면에서도 손해야. +85 우리는 소비자 쪽에 보다 가깝지. 항상 소비자의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말이야. 예를..
맨몸의 남자, 멈춘 조종사... '악의 평범함을 거부한 평범한 영웅들 +81 [김창길 기자의 사진공책] 경향. 18년 5월 25일 세계를 뒤흔든 열흘 동안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군중들(러시아 혁명), 총알을 맞고 쓰러지는 어느 공화파 병사의 죽음(스페인 내전), 이오지마 섬에 성조기를 꽂는 미 해병대원들(2차 세계대전), 사살된 게릴라 체 게바라의 주검(볼리비아 혁명)....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래 최고의 르네상스적 인물로 불렸던 움베르토 에코는 하나의 신화가 된 보도사진들을 추적한다. 그는 '우리 세기의 성쇠와 부침은 획기적인 사건들을 증거 하는 대표적인 사진 몇 장으로 정리될 수 있다'고 말했다(김우룡 엮음, , 눈빛 출판). 중국 현대사도 한 장의 사진으로 정리된다. 톈안먼 광장의 탱크 행렬을 혈혈단신 맨몸으로 막아내는 탱크맨 사진이 그것이다. 이었다. 사진은 영화,..
다른 방식으로 보기 [밑줄] +58 말 이전에 보는 행위가 있다. 아이들은 말을 배우기에 앞서 사물을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 그러나 보는 행위가 말에 앞선다는 것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보는 행위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결정해 준다. 우리는 우리 주위를 에워싼 이 세계를 말로 설명하고는 있지만, 어떻게 이야기하든 우리가 보는 이 세계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보는 것과 아는 것의 관계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결코 한 가지 방식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매일 저녁 해가 지는 것을 볼 때, 우리는 해가 지평선 아래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지식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광경과 꼭 맞아 떨어지지는 않는다. +59 ..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 [밑줄] +41 인공지능이란 기계로 지능을 구현하는 걸 말합니다. 인공지능 연구는 당연히 인간지능 연구와 밀접하게 관련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작 인간지능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몰라요. 잘 모르는 것을 구현할 수가 있을까요? 공학자들은 이런 질문에는 관심이 별로 없어요. 인간지능이 인공지능과 본성상 같다는 걸 전제로 깔고 작업하니까요. 그래서 연구가 성공할지 말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철학적으로 이런 물음들을 던질 수 있고, 이런 작업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알파고를 볼까요. 바둑은 경우의 수가 정말 많아요. 우주에 존재하는 원자의 수보다도 많다고 하지요. 그렇긴 해도 바둑은 어쨌건 수학 계산입니다. 그런 점에서 바둑은 비인간적인 활동이에요. 인간은 본래 계산을 잘 못해요. 그게 정상입니..
외면일기 [밑줄] +4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여행을 하는 동안의 여정과 그때 그때 있었던 일들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크고 작은 사건들, 날씨, 철따라 변하는 우리 집 정원의 모습,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 운명의 모진 타격, 흐뭇한 충격따위를 노트에 적어두는 습관이 있었다. '일기'라고 부를 수도 있을 이것은 내면의 일기 journal intime'와는 정반대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에 '외면일기 journal extime'라는 이름을 만들어 붙여보기로 한다. +5 말이 나온 김에 미셸 뷔토르의 생각을 언급해두는 것도 좋겠다. 그는 'exploration(답사)'과 'imploration(탄식)'을 서로 대립시킴으로써 나의 '외면일기'보다 더 나은 착상을 선보인 바 있었다. 전자는 발견과 획득 같은 원심적인 ..
4할의 비결 +3 이용균의 베이스볼 라운지 2018.05.02. 경향 아침식사는 항상 똑같다. 프로 데뷔 후 2010까지는 매일 카레. 이후 탄수화물 섭취를 위해 식빵과 국수를 먹는다. 경기장에는 항상 5시간 전에 도착하는 게 원칙이다. 원정경기 때는 숙면을 위해 전용 베개를 챙긴다. 경기 전 다른 사람의 글러브와 배팅 장갑을 만지지 않는다. 손에 그 감각이 남아 자신의 감각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2005년 이후 휴가를 한 번도 가지 않았다. 휴가를 가서 몸을 편안하게 쉬면 루틴을 망칠 수 있다고 여긴다. "소파에서 하루 종일 뒹굴면 몸이 더 쉽게 피곤할 수 있다"고 했다. 몸의 유연성을 유지하기 위해 특별한 트레이닝 머신을 개발했다. 하루 4번, 정해진 시간 동안 머신을 이용해 운동을 한다. 20년 동안 빼먹..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밑줄] +1 1997년 가모시타 씨가 연출한 연극 의 연습 장면을 일주일 동안 구경한 적 있는데, 저는 그런 정교하고 치밀한 고도의 연출을 도저히 할 수 없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가령 화자이자 주인공 롤라의 남동생 톰을 연기하는 가가와 데루유키 씨가 담배를 물고 "그게 가족의 추억입니다"라며 성냥을 긋는 장면. 연기를 마친 가가와 씨에게 가모시타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냐. '추억'은 내성적인 단어니까 성냥을 그으려면 바깥쪽이 아니라 안쪽을 향해 그어야지." 그리하여 안쪽으로 성냥을 그었더니 확실히 배우가 능숙해 보였습니다. 소름이 돋았습니다. 안쪽을 향하는 단어와 바깥쪽을 향하는 단어란 무엇일까, 하고 필사적으로 메모했던 기억이 납니다. 가모시타 씨는 배우가 계단에서 어떻게 멈춰 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