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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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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밑줄] +133 내가 무관심이라 불렀던 것은 실은 원한이었던 것이다 +134 부탁하는 일의 성격이 은밀한 것이니 그러자면 그들을 보지 못했던 그 긴 세월 위로 애써 다리를 놓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135 나는 여자애들이 정말 끔찍하게 싫다, 젊음 속에서 잔인한 저 어린 여자애들, 마치 자기들은 언젠가 서른, 서른다섯, 마흔 살이 되지 않을 것처럼, 자신보다 조금 더 나이 먹은 여자에 대해 일말의 연대감도 없는 그런 여자애들 +136 그러면서 동시에 침울해졌다, 아주 많이! 나는 그걸 알아보았고 순간 열기가 확 솟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나를 갈망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그에게 결혼한 여자임을 환기시키자 더욱 그가 나를 갈망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기쁨, 결혼한 여자이므로 나는 다가갈 수 없..
BRAND [밑줄] +82 본래의 자신보다 좋아 보이고 싶은 욕망, 그것이 병의 시작이다 +83 그다지 좋지 않은 제품을 큰소리로 "너무 좋아요~"라고 해 봤자 기분만 상해. 그런데 아직도 그런 광고가 너무 많아. 나는 이것이 일종의 '병'이 아닐까 생각해. 왜냐하면, 사람으로 치자면 이건 커뮤니케이션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야. 솔직하게 이야기를 할 수 없다든가, 솔직한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는 거니까. +84 화술은 광고의 승패를 결정하지. 그리고 상품이건 기업이건 '실력'과 '화술'과의 '차이'는 커뮤니케이션의 장벽이 돼. 스스로가 되고자 하는 모습을 그대로 강요한다면 광고의 코스트 퍼포먼스적인 면에서도 손해야. +85 우리는 소비자 쪽에 보다 가깝지. 항상 소비자의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말이야. 예를..
다른 방식으로 보기 [밑줄] +58 말 이전에 보는 행위가 있다. 아이들은 말을 배우기에 앞서 사물을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 그러나 보는 행위가 말에 앞선다는 것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보는 행위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결정해 준다. 우리는 우리 주위를 에워싼 이 세계를 말로 설명하고는 있지만, 어떻게 이야기하든 우리가 보는 이 세계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보는 것과 아는 것의 관계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결코 한 가지 방식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매일 저녁 해가 지는 것을 볼 때, 우리는 해가 지평선 아래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지식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광경과 꼭 맞아 떨어지지는 않는다. +59 ..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 [밑줄] +41 인공지능이란 기계로 지능을 구현하는 걸 말합니다. 인공지능 연구는 당연히 인간지능 연구와 밀접하게 관련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작 인간지능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몰라요. 잘 모르는 것을 구현할 수가 있을까요? 공학자들은 이런 질문에는 관심이 별로 없어요. 인간지능이 인공지능과 본성상 같다는 걸 전제로 깔고 작업하니까요. 그래서 연구가 성공할지 말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철학적으로 이런 물음들을 던질 수 있고, 이런 작업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알파고를 볼까요. 바둑은 경우의 수가 정말 많아요. 우주에 존재하는 원자의 수보다도 많다고 하지요. 그렇긴 해도 바둑은 어쨌건 수학 계산입니다. 그런 점에서 바둑은 비인간적인 활동이에요. 인간은 본래 계산을 잘 못해요. 그게 정상입니..
외면일기 [밑줄] +4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여행을 하는 동안의 여정과 그때 그때 있었던 일들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크고 작은 사건들, 날씨, 철따라 변하는 우리 집 정원의 모습,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 운명의 모진 타격, 흐뭇한 충격따위를 노트에 적어두는 습관이 있었다. '일기'라고 부를 수도 있을 이것은 내면의 일기 journal intime'와는 정반대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에 '외면일기 journal extime'라는 이름을 만들어 붙여보기로 한다. +5 말이 나온 김에 미셸 뷔토르의 생각을 언급해두는 것도 좋겠다. 그는 'exploration(답사)'과 'imploration(탄식)'을 서로 대립시킴으로써 나의 '외면일기'보다 더 나은 착상을 선보인 바 있었다. 전자는 발견과 획득 같은 원심적인 ..
4할의 비결 +3 이용균의 베이스볼 라운지 2018.05.02. 경향 아침식사는 항상 똑같다. 프로 데뷔 후 2010까지는 매일 카레. 이후 탄수화물 섭취를 위해 식빵과 국수를 먹는다. 경기장에는 항상 5시간 전에 도착하는 게 원칙이다. 원정경기 때는 숙면을 위해 전용 베개를 챙긴다. 경기 전 다른 사람의 글러브와 배팅 장갑을 만지지 않는다. 손에 그 감각이 남아 자신의 감각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2005년 이후 휴가를 한 번도 가지 않았다. 휴가를 가서 몸을 편안하게 쉬면 루틴을 망칠 수 있다고 여긴다. "소파에서 하루 종일 뒹굴면 몸이 더 쉽게 피곤할 수 있다"고 했다. 몸의 유연성을 유지하기 위해 특별한 트레이닝 머신을 개발했다. 하루 4번, 정해진 시간 동안 머신을 이용해 운동을 한다. 20년 동안 빼먹..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밑줄] +1 1997년 가모시타 씨가 연출한 연극 의 연습 장면을 일주일 동안 구경한 적 있는데, 저는 그런 정교하고 치밀한 고도의 연출을 도저히 할 수 없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가령 화자이자 주인공 롤라의 남동생 톰을 연기하는 가가와 데루유키 씨가 담배를 물고 "그게 가족의 추억입니다"라며 성냥을 긋는 장면. 연기를 마친 가가와 씨에게 가모시타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냐. '추억'은 내성적인 단어니까 성냥을 그으려면 바깥쪽이 아니라 안쪽을 향해 그어야지." 그리하여 안쪽으로 성냥을 그었더니 확실히 배우가 능숙해 보였습니다. 소름이 돋았습니다. 안쪽을 향하는 단어와 바깥쪽을 향하는 단어란 무엇일까, 하고 필사적으로 메모했던 기억이 납니다. 가모시타 씨는 배우가 계단에서 어떻게 멈춰 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