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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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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도서관 [밑줄] +276 네팔에서는 기도문을 깃발에 써서 집밖에 매달면 그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바람이 깃발을 스칠 때 기도문들이 하늘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277 아버지는 아버지다운 대답을 주셨다. "그건 단지 너의 우선순위가 바뀌었다는 걸 의미한단다. 너는 언제나 독립적이지. 그러니까 지금은 누군가를 위해 일을 하기보다는 너 자신을 위해 일할 시간인게다." 시드니에 사는 친구 마이크는 내가 원했던 최고의 충고를 했다. "일회용 반창고를 제거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지. 천천히 고통스럽게. 또는 빠르고 고통스럽게. 너의 선택이야." +278 스티브 볼머가 그랬듯 나도 우리 룸투리드(Room To Read) 직원들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하고 싶다. 많은 중역들이 자신의 직원들에게 충성을 ..
사소한 부탁 [밑줄] +259 호남 지방에 내려가 웬만한 식당에 들어가면 스무 가지 서른 가지 반찬이 그득하게 차려진 밥상을 받을 수 있다. 감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호남 사람들이, 비록 부잣집에서라고 하더라도, 일상적으로 그런 밥상을 차려놓고 먹었던 것은 아니다. 내 아버지 세대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런 차림은 일제 강점기에 목포나 군산 등지 미두장에 투기꾼들이 모여들면서 생겨난 여관의 밥상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 잔칫집 같은 데서 "이게 여관집 밥상인가"하며 불평하는 어른들을 본 적이 있다. 차린 것은 많은데 먹을 것은 없다는 뜻이다. +260 그래서 저 밥상을 생각하게 된다. 문화를 과시하고 소비하려는 기획은 많지만, 문화의 창조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생산적 이용의 전망을 발견하기는 어려운 ..
밤이 선생이다 [밑줄] +241 불의를 불의라고 말하는 것이 금지된 시대에 사람들은 분노를 내장에 쌓아두고 살았다. +242 어머니가 전자오락에 빠져 있는 아들을 앞에 앉히고 타이른다. 오락의 폐해를 조목조목 늘어놓고 나서 아이를 설득하는 말이 그럴듯하다. "공부보다 더 재미있는 오락은 없다. 너는 갈수록 규칙이 복잡하고 쉽게 끝나지 않는 오락을 찾는데, 공부가 그렇지 않냐? 갈수록 수준이 높아지고 평생을 해도 끝나지 않고." 다소곳이 듣던 아이가 대답한다. "저도 그건 알아요. 그러나 다른 점도 있어요. 오락은 이기건 지건 판이 끝나면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공부는 그럴 수 없으니 아득해요." 대단한 말이다. 아이는 오락과 공부의 차이를 따지면서, 현실의 삶과 가상세계가 어떻게 다르고, 도박과 노동이 어디서 갈리는..
마술라디오 [밑줄] +231 물건이란 것이 요상해서 살 때는 내게 꼭 정말로 필요한 것 같단 말이야. 그것만 있으면 좀 더 완벽해질 것 같은 기분 있잖아. 쇼핑이 고민 해결사, 외로움의 치유사, 계절의 전령사, 권태로운 날의 활력소, 심심한 날의 친구였지. 각종 냄비, 각종 칼, 각종 프라이팬, 그릴, 약탕기, 요구르트 제조기, 두부 제조기, 나중엔 내가 평생 단 한 번도 쓸 일이 없는 야외 바비큐 조리 기구 세트를 샀어. 나는 야외를 싫어하거든, 나는 실내형 인간이야. 그 바비큐 조리 기구 세트 박스를 거실 한가운데 펼쳐놓고 생각했어. 내가 왜 쇼핑 중독증에 걸렸을까? 사실은 나는 누군가 우리 집 벨을 누르길 바랐던 거야. 누가 우리 집 현관과 거실에 들어오길 바랐던 거야. +232 파라솔 밑에서 나는 생각했어...
설계자들 [밑줄] +226 요즘엔 사람들이 모두 쥐새끼처럼 작아지고 약아져서 느리고 거대하며 아름다운 발자국들은 다 사라졌다는 게야. 거인이 사라진 세상이 된 것이지. +227 좋은 정원이다. 마당에 감나무 두 그루가 딴청 피우듯 서있고 구석의 화단에는 자신의 계절을 조용히 기다리는 꽃이 있다. +228 식물의 뿌리처럼, 세상의 모든 비극은 자신이 발 디딘 바로 그곳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래생은 자신이 뿌리내린 바닥을 떠나기에는 너무나 어렸다. +229 우리는 더럽고 역겹지만 자신이 발 디딘 땅을 결국 떠나지 못한다. 돈도 없고 먹고 살 길도 없는 것이 그 원인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우리가 이 역겨운 땅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그 역겨움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역겨움을 견디는 것이 더 황량한 세계에 홀로..
유혹하는 글쓰기 [밑줄] +206 글을 쓸 때는 문을 닫을 것, 글을 고칠 때는 문을 열어둘 것 +207 내 경우에는 마치 살을 맞댄 듯 친밀하고 내가 잘 아는 것들에 대하여 쓸 때 글쓰기가 가장 순조롭다. 그런데 를 쓸 때는 고무잠수복을 입고 있는 듯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208 지금 온 세상이 보고 있는 것은 한 명의 얼간이일 뿐이지만, 그 얼간이는 '행복한' 얼간이, 그리고 모두들 그를 사랑한다 +209 지금 여러분의 책상을 한 구석에 붙여놓고, 글을 쓰려고 자리를 앉을 때마다 책상을 방 한복판에 놓지 않은 이유를 상기하도록 하자. 인생은 예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210 그들은 천재이며 거룩한 우연의 산물이다.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은 그런 재능을 갖기는 커녕 제대로 이해..
이현우의 음악앨범 +201 6살 딸 아이의 유치원 운동회 아이를 업은 남편이 운동장을 돈다 비가 와도 뛰지 않던 남편이 죽을 힘을 다해 달린다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되는데 지구 한바퀴라도 돌 기세다 여자는 남편이 낯설다 13년간 알아온 그 남자가 맞나 싶다 남편은 어릴 적에 부모님을 여의고 외롭게 자랐다 아빠가 되는 일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부터 아이는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한 아빠로 남편을 기억할 것이다 자리로 돌아오는 남편을 여자가 두 팔 벌려 맞이한다 남편의 땀냄새에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202 아파트에 장이 열리는 날엔 자전거를 파는 아저씨도 바쁘다 무료로 수리를 하러 오는 손님들이 많아서다 아파트 경비아저씨도 기다리셨다는 듯 낡은 자전거 한대를 끌고 나오셨다 자전거가 쓰러지자 아저씨가 껄껄껄 웃..
야구의 인문학 9 [밑줄] +191 야구는 다른 구기종목과 점수를 내는 방식이 다르다. 축구에서 득점은 공(ball)을 목표(goal)에 넣음으로써 이뤄진다. 골문 안의 골라인을 공이 통과해야 득점이 기록된다. 농구 역시 공이 림을 통과하면서 골로 기록된다... 북미 프로스포츠 최고 인기종목인 미국프로풋볼(NFL) 역시 던져진 공을 받아 상대 앤드라인 너머까지 옮겨야 터치다운이라 부르는 득점이 인정된다.... 야구는 공이 득점을 결정하지 않는다. 공이 플레이되는 동안 사람의 움직임을 통해 득점이 결정된다. 타자가 주자가 되고, 주자가 1루와 2루, 3루를 돌아 홈플레이트를 터치함으로서 득점이 기록된다. 공이 어디로 향하든 중요하지 않다. 사람이 들어와야 점수가 새겨진다. 공보다 사람이 중요하다. 야구는 '인본주의(huma..
캐비닛 [밑줄] +187 우리는 불안 때문에 삶을 규칙적으로 만든다. 면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삶을 맞춘다. 우리는 삶을 반복적이고 규칙적으로 움직이게 해서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만든다. 습관과 규칙의 힘으로 살아가는 삶 말이다. 하지만 효율적인 삶이라니. 그런 삶이 세상에 있을까. 혹시 효율적인 삶이라는 건 늘 똑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죽기 전에 기억할만한 멋진 날이 몇 개 되지 않는 삶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188 "버드와이저는 싸구려맥주예요." "괜찮아요. 제 인생도 싸구려거든요." +189 하하.허허.헤헤 젠장, 도무지 박자가 안맞다. 웃을 때는 다 같이 웃어야 하는데, 억지로 웃어준 티가 너무 난다. 모두들 머쓱하다. 이런 액션을 한번 취하고 나면 서로가 서로에게 민..
LOVE & FREE [밑줄] +171 사야카의 웃는 얼굴이 좋다 무엇인가 끄적 거리기 전에 우선 이 여자를 즐겁게 해야지 둘이 하나 되기 위해 둘이 둘이 되기 위해 +172 어릴 적 자전거를 갖고 나서 온 동네가 내 놀이터였다 열 여덟 바이크를 갖고 나서 온 도시가 내 놀이터였다 지금 나는 시간을 갖고 나서 온 세계를 내 놀이터로 삼으려 한다 +173 자 이제 슬슬 길 위를 달려보는 게 어때 느려도 좋아 지쳐 걸어도 좋아 꼴찌면 또 어때 한발 내 딛을 때마다 다른 세상을 보게 될거야 제자리걸음도 구두바닥이 닳긴 마찬가진걸 +174 카페에서의 30분 나는 분명히 변하기 시작한다 편안한 마음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명상의 시간을 가질 것 그것이 뜻밖의 계기가 될 지도 모른다 얼굴도 보이지 않는 많은 사람을 향해 누구..
피로사회 [밑줄] +168 철학을 포함한 인류의 문화적 업적은 깊은 사색적 주의에 힘입은 것이다. 문화는 깊이 주의할 수 있는 환경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깊은 주의는 과잉주의에 자리를 내주며 사라져가고 있다. 다양한 과업, 정보원천과 처리과정 사이에서 빠르게 초점을 이동하는 것이 이러한 산만한 주의의 특징이다. 그것은 심심한 것에 대해 거의 참을성이 없는 까닭에 창조적 과정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는 저 깊은 심심함도 허용하지 못한다. 발터 벤야민은 깊은 심심함을 "경험의 알을 품고 있는 꿈의 새"라고 부른 바 있다. 잠이 육체적 이완의 정점이라면 깊은 심심함은 정신적 이완의 정점이다. 단순한 분주함은 어떤 새로운 것도 낳지 못한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재생하고 가속화할 따름이다. 벤야..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밑줄] +156 빛이 오고 난 뒤에도 우리가 한 번 더 이토록 캄캄한 어둠 속에 살아야 했다는 사실을 후세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 카스텔리오, , 1562 +157 자신의 용기에 도취된 상태로 쓰러지는 사람.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자신의 확신을 조금도 포기하지 않고 영혼이 육신을 떠나는 순간에도 확고하고 경멸에 찬 눈길로 적을 응시하는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운명의 손에 의해 한 방 얻어맞는 법이다. 그는 죽임을 당할망정 물러서지 않는다. 가장 용감한 사람들은, 대개는 가장 불운한 사람들이다. 승리를 갈구하는 의기양양한 패배도 있다. - 몽테뉴 +158 지금까지 지구상에 단 하나의 종교, 단 하나의 철학, 단 하나의 세계관이 독재적으로 자리 잡아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