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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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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위(WKW) 영화에 매혹되는 순간 [밑줄] +457 왕가위는 감정을 제대로 끌어낸다. 거물처럼 보이고 싶은 창파의 뜨겁고도 어리석은 욕망부터 소화가 죽어가는 장면에서 유덕화의 눈에 비친 완전히 소진된 표정까지, 영화를 보는 우리는 모든 걸 생생하게 느낀다. 처음부터 왕가위는 최고의 연기를 어떻게 배우들에게 끌어낼지 알고 있었다. 여기서 그는 유덕화의 눈에 익은 아슬아슬한 공허감과 장만옥의 다정함을 솜씨 좋게 대조시킨다. 그는 장만옥에게서 어떤 감독도 알아보지 못한 깊이와 재능을 찾아냈다. +458 그들(왕가위와 그의 부인 에스터)의 만남은 1970년대 카오룽을 배경으로 한 가상의 왕가위 영화 중 한 장면 같다. 두 사람은 청바지 가게에서 여름 아르바이트를 같이했다. 매일 열 시간씩 옆에서 일하다 서로 끌린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아무 진전도..
만화가 시작된다 [밑줄] +456 이노우에 : 결국 자기 자신 밖에 보여줄 것이 없어서, 그걸 그리려 하면 일단 자신을 속이지 않아야 하니, 자기 안을 들여다보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자기 안의 안으로, 또 안으로 들어가다 보면 그 밑바닥은 의외로 보편적이에요. 이토 : 그렇게 괴로웠다면 차라리 이야기를 다른 방향으로 만들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이노우에 : 그렇게는 못하죠 이토 : 못하나요? 이노우에 : 그게 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캐릭터들이 어느 한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제 완력으로 끌어올 수 없거든요. 이토 : 그럼 그 사람이 살거나 죽는 것은 캐릭터들이 멋대로 정하는 거라고요? 이노우에 : 필연이란 무엇인가라는 데에 따르는 수밖에 없죠. 캐릭터의 필연을 따라가는 수밖에 없어요. 스토리를..
지성만이 무기다 [밑줄] +434 현대인은 향락에 너무 익숙한지도 모른다. 향락은 거짓된 즐거움이다. 향락은 요금을 지불해야만 대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시간제한이 있다. 이런 상업적 향락은 테마파크부터 모의연애나 섹스, 게임까지 매우 다양하다. 많은 사람이 그런 향락밖에 모르는 게 아닐까. 즐거움은 누군가로부터 받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435 내가 이렇게 비판할 수 있는 데에는 스스로 시작한 공부가 진짜 즐거움 중 하나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물론 공부하는 즐거움에는 골치 아픈 것도 섞여 있다. 하지만 그런 공부는 누군가가 강제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적극 도전했기 때문에 대체로 즐거움, 충실감을 동반한다. 결과적으로 과거의 자신에게 벗어나 끊임없이 변신하는 모험을 동반한다. 이처럼 매력적인 것이..
문장수집생활 [밑줄] +417 그래, 술은 낮을 잊게 하고 밤은 과거를 불러오지 - 윤대녕 (문학동네, 2016) +418 아가, 꽃 봐라. 속상한 거는 생각도 하지 말고 너는 이쁜 거만 봐라, 라고 할머니가 말했던 일이 생각났다 - 이은희 [푸른 만을 열면] (문학동네, 2016) +419 자판기 커피의 양은 초면인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면서 마시기에 적당했다 - 서유미 (창비, 2012) +420 산초, 다이아몬드 하나보다 이 하나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알아야 해 - 돈키호테 +421 조잡하거나 사무적인 표정을 한 우편물들 사이로 분홍빛 봉투가 코를 내민 게 눈에 띄었다 - 김애란 (아시아, 2016) +422 무엇에든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자가 어디에도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법이다 - 은유, +423 이불만은 좋..
Cutting Edge Advertising [밑줄] +382 "인쇄광고는 여행과도 같습니다" 전체적으로 읽어 나가다 보면 논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흰 종이에 인쇄된 검은 활자들을 생각해보십시오. 독자들은 진지해질 수밖에 없죠. 당신은 독자들 앞에 증거를 내놓아야 합니다. TV광고의 경우 사람들은 자신이 본 내용을 쉽게 받아들입니다. TV와 함께 담합해 버린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독자들이 신문을 읽는 경우는 얘기가 달라집니다. 광고 주변의 기사들은 매우 심각합니다. 현실적인 삶의 이야기들이며,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신문광고를 만들 때는 독자들의 심리 상태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독자들은 TV를 보는 것처럼 신문을 읽지 않습니다. 하월 헨리 찰데콧 / 루리 앤 파트너스, 런던 Howell Chaldecott / Lury & Partner..
평균의 종말 [밑줄] +362 평균적 인간을 바탕으로 삼아 설계된 시스템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363 현재까지도 여전히 과학적 관리법은 모든 산업국가에서 가장 지배적인 기업 조직의 원칙으로 남아 있다. 물론 기업들은 다들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여러 분야에서 테일러주의가 인종차별주의나 남녀차별주의 못지않게 불명예스러운 내력을 얻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잘나가는 기업들의 상당수는 여전히 직원들의 개개인성을 등한시하는 개념을 중심으로 조직돼 있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하면 테일러주의를 넘어서는 다음의 심오한 의문이 들 만도 하다. 시스템을 따를 근로자들과 시스템을 규정할 관리자들의 구분에 기초한 사회라면 그 사회는 누가 사원이 되고 누가 관리자가 될지를 어떤 식으로 결정할..
무서록(無序錄) [밑줄] +359 나는 처음에 도급으로 맡기려 했다. 예산도 빠듯하지만 간역(看役)할 틈이 없다. 그런데 목수들은 도급이면 일할 재미가 없노라 하였다. 밑질까봐 염려, 품값 이상 남기랴는 궁리, 그래 일 재미가 나지 않고, 일 재미가 나지 않으면 일이 솜쌔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솔직한 말에 내가 감복하였고 내가 조선집을 지음은 조선건축의 순박, 중후한 맛을 탐냄에 있음이라. 그런 전통을 표현함에는 돈보다 일에 정을 두는 이런 구식 공인들의 손이 아니고는 불가능할 것임으로 오히려 다행이라 여겨 일급(日給)으로 정한 것이다 +360 그러나 울지는 않았다. 위에 기동차의 소녀처럼 울지는 않았다. 왜 울지 않았는가? 아니 왜 울지 못하였는가? 그 작품들에게 울만치 애착, 혹은 충실하지 못한 때문이라 ..
디자인의 꼼수 [밑줄] +354 아사히 빌딩 사옥의 마지막 프리젠테이션 때, 필립스탁이 작은 서류 가방에서 빌딩의 모형을 꺼내 모두에게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것도 마술사가 실크모자에서 토끼를 꺼내는 것과 같은 분위기로 말이다 +355 '역시 자동차는 불량스러워야 해' 제 35회 동경모터쇼를 보러갔을 때 들었던 생각이다. 지난번 모터쇼는 일본자동차회사가 환경을 중시한 진지한 차들만 출품한 관계로 다소 지루했다. 그때 나는 "에코자동차 같은 걸로 어떻게 여자애들에게 관심을 끌 수 있단 말인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예의바른 자동차로는 여자들의 환심을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성적인 매력'과 '엄격하고 쿨한' 형태야말로 불량스러운 자동차의 매력인 것 같다. +356 향기를 직접 맡아볼 수 없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이나..
고도를 기다리며 [밑줄] +352 포조 - 이제 울음을 그쳤군. (에스트라공에게) 그러니까 당신이 저놈을 대신하게 된 거구려. (생각에 잠긴듯) 이 세상의 눈물의 양엔 변함이 없지. 어디선가 누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면 한쪽에선 눈물을 거두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요. 웃음도 마찬가지요. (웃는다) 그러니 우리 시대가 나쁘다고는 말하지 맙시다. 우리 시대라고 해서 옛날보다 더 불행할 것도 없으니까 말이요. (침묵) 그렇다고 좋다고 말할 것도 없지. (침묵) 그런 얘긴 아예 할 것도 없어요. (침묵) 인구가 는 건 사실이지만. ----------------------------------------------------------------------------------------------------------------..
행복한 책읽기 [밑줄] +305 통찰을 통해 과감히 잔가지를 치며 핵심에서 핵심으로 건너뛰는 글 걸음 - 이인성 +306 산은 깊이 들어갈수록 낮아진다 - 신대철 +307 자리매김이라는 말이 나는 싫다... 변화를 전제하지 않은 자리매김이란 딱지 붙이기에 다름아니다. +308 언어는 원칙적으로 나와 타자간의 대화에 지나지 않는다. 질문과 대답은 사유의 제일 요소이다. +309 대가의 화면은, 대개, 정공법이다. - 데이비드 린의 을 보고. +310 정치적 언어의 특징은 그 뻔뻔함에 있다. +311 잠이 들면 꿈속에서나마 그대의 모습을 볼 터인데, 잠도 오지 않는다는 비통한 탄식은 뛰어난 호소력을 갖고 있다. "꿈길밖에 길이 없어..."라는 황진이의 시나, 한용운의 이별 노래에 맞설만 하다. - 를 읽고. +312 미국..
바람을 담는 집 [밑줄] +284 "나는 정의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 정의가 나의 어머니에게 총부리를 겨눈다면 나는 어머니의 편을 들겠다!" 여기에 카뮈의 인간적인 교훈이 있다. +285 "그러나 우리가 이대로 패배하기엔 너무나 많은 내일이 남아있다. 천치와 같은 침묵을 깨치고 퇴색한 옥의를 벗어던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유혹이 있다. 그것은 이 황야 위에 불을 지르고 기름지게 밭과 밭을 갈아야 하는 야생의 작업이다. 한 손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막고, 또 한 손으로 모래의 사태를 멎게 하는 눈물의 투쟁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화전민이다. 우리들의 어린 곡물의 싹을 위하여 잡초와 불순물을 제거하는 그러한 불의 작업으로서 출발하는 화전민이다. 새세대 문학인이 항거해야 할 정신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항거는 불의 작업이며 불의..
바람의 그림자 [밑줄] +282 누군가를 사랑하는지 생각해보기 위해 가던 길을 멈춰섰다면, 그땐 이미 그 사람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거라고. +283 나는 커피의 마지막 한 모금까지 마시고는 잠시동안 침묵 속에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투명하지만 막연한 두려움을 담고 있는 그녀의 도피하는 듯한 시선에 내가 얼마나 몸을 숨기고 싶어하는지를 생각했다. 그녀와 함께 있기 위한 핑계가 될 속임수도 이야기도 다 떨어져, 그날밤 그녀와 헤어졌을 때 엄습할 고독을 생각했다. 내가 그녀에게 줘야하는 보잘 것 없는 것과 그녀에게 받고 싶어하는 많을 것을 생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