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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가로질러 [밑줄] +909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1899년 베를린에서 쓴 시 는 제목과 똑같은 행으로 시작된다. 우아하고 호기심을 자아내는 첫 행이다. 마지막 행은 다음과 같은 고백이다. "나는 밤들을 믿습니다." +910 세상이 고요해야 비로소 소리가 들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통찰은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생각들이 나의 내면의 밤 속에 있지 않다면 달리 어디에 있을 것이며, 그 생각들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단어들은 또 어디에 있겠는가. +911 인간의 가슴속에는 두 개의 영혼이 깃든 듯하다. 한 영혼에서 인간의 선한 측면이 나오고, 다른 영혼에서 악한 측면이 나오는 것 같다... 개인의 낮-측면과 밤-측면은 둘 다 삶의 일부다. 그 두 측면의 공존은 지구가 자신의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면서 겪..
아무튼, 술 +896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좋아하는 소리는 소주병을 따고 첫 잔을 따를 때 나는 소리다. 똘똘똘똘과 꼴꼴꼴꼴 사이 어디쯤에 있는, 초미니 서브 우퍼로 약간의 울림을 더한 것 같은 이 청아한 소리는 들을 때마다 마음까지 맑아진다. +897 안 그래도 비참한데 뻔하기까지 한 건 싫었다. 그냥 그때는 이렇게 힘들어도 티내지 않는 것이, 이렇게 힘들어도 누구에게 기대지 않고 혼자서 꿋꿋하게 '어른다운 방식'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그 기분이, 세상에서 부릴 수 있는 유일한 자존심이었다. 어렸다. 매우 어렸다. 빈 주머니에 그런 쓸데없는 똥자존심이라도 욱여넣어야 할 정도로. '감춤'으로써 그것은 나만 아는 은밀한 성장처럼 느껴졌다. +898 들어봤지만 들어본 적 없는 소리. 술이었다. 주류 코너에 즐비하게 놓인 ..
건축가 서현의 세모난 집 짓기 [밑줄] +882 집은 어렵다. 설계하기도 짓기도 어렵다. 그리고 살짝 귀뜀하거니와 살기도 어렵다. 집은 바지런한 자들에게 맞는 주거 유형이다. 아파트는 나태한 자들에게도 생존을 보장해준다. 오히려 나태를 적극적으로 권유하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불편함을 근면으로 기꺼이 극복하고 그 가치를 음미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집을 짓겠다고 나선다. +883 건축가로서 집을 짓는 일은 곧 거기 살 사람의 인생에 개입하는 것이다. 사람이 외로운 건 운명을 걸기 때문이라고 했다. 집 짓기가 어려운 이유는 거주자들의 삶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내 경험으로는 작은 집일수록 더 그렇다. 집은 크기는 작아도 사람 사는 건물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넣어야 한다. 짓는 데 많은 사람이 필요하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여기..
엘리먼트 [밑줄] +863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건 신나는 일이죠. 실력이 향상될수록 '오, 드디어 내가 생각했던 대로 좀 그려지는군'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즐거운 일이었어요." - 의 제작자 매트 그로닝 Matt Groening +864 "인생의 초기에 자신이 놀이처럼 즐길 수 있는 일을 찾아내는 것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됩니다. 이런 전환이 인생의 승패를 바꾸어 놓게 되니까요." -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 Paul Samuelson +865 "당신은 키보드를 연주하는 것이 멋지다고 생각하는 거죠. 정말 그걸 하고 싶었다면 이미 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는 그렇게 잘 연주하기 위해 공연 시간 외에 하루 평균 3~4시간 이상을 연습한다고 말했다. 그는 7살 때부터 꾸준히 그렇게 연습해왔다. 그 이야기를..
9번의 일 [밑줄] +862 사람을 온전히 담을 만큼 큰 직업은 없다 - 스터즈 터클의 중에서 ---------------------------------------------------------------------------------------------------------------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자신이 자신일 수 있도록 하는 '일'이 더 이상 자신의 일이 아닐 때, 난 어떻게 달라질까 막연히 닥치면 살아지리라 하던 삶은 과연 지나온 삶보다 더 나은 삶의 모습이 될 수 있을까 내려놓음이나 받아들임 같은 체념의 마음이 아닌 해왔던 '일'과 다른 '일'로 얼마든지 바꿔 담을 수 있을만큼 나라는 그릇은 담대한지 질문하게 된다 다르게 질문하자면, '일' 이외의 '자존'은 어디로부터 나오는가 생의 ..
문장의 일 : How to write a sentence [밑줄] +855 하루는 퇴근하는 길에 라디오 방송을 들었다. 진행자는 전설의 여배우 조안 크로포트(193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할리우드 황금기에 활동하던 여배우이자 댄서-옮긴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크로포드는 집을 나설 때마다 시사회장에 참석하거나 사디스 같은 고급 식당에 가는 사람처럼 옷을 차려입는다는 내용이었다. 인터뷰하던 기자가 이유를 묻자 그녀는 대꾸한다. "옆집 여자가 보고 싶으면 옆집으로 가세요." 조안 크로포드의 생각 자체는 그리 놀랍지 않다. 자신 같은 스타가 스타 행색으로 다니는 것이 팬들에게는 중요한 의미로 다가간다는 통찰은 일견 당연하니까.(그나저나 요즘은 파파라치 덕분인지 모르지만 세탁물을 찾아가는 스타들의 모습까지 구경하게 되었으니 크로포드가 활동하던 시절 이후 세상 ..
히치콕과의 대화 [밑줄] +816 공포를 영화로 표현하는 데 탁월한 이 사람은 정작 그 자신은 아주 겁이 많은 사람이어서 나는 그의 이러한 특질이 그의 성공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경력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배우, 제작자, 기술자 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필요를 느꼈다. 그들의 사소한 실수나 변덕이 작품의 통일성을 해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들 모두는 감독에게 위험물로 여겨진다. 배우들이 전혀 질문할 필요가 없는 감독이 되는 것, 감독 자신이 제작자가 되는 것, 그리고 기술자보다 기술 문제에 대해 더 많이 아는 것보다 스스로를 더 잘 방어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겠는가? +817 감독에게 있어서 가장 큰 위험은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더 이상 영화 전체를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히..
2019 제4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밑줄]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_윤이형 +808 그들은 훗날 가끔 생각했다. 그렇게 고단하고 힘겨운 상황에서 악역까지 맡는 일을, 그들은 각자 감당할 수가 없었던 게 아닐까. 더 나쁜 사람, 가해자가 되는 일을, 희은도 정민도.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두 사람 안에 원래 내재해 있던 영혼의 좋은 부분, 선의와 호의, 배려심 들과 악당이 되기 싫다는 욕망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그것은 불가능하고 또 무의미한 일이었다. +809 그는 점점 벌어져가는 희은과의 사회적 격차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으나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희은을 배려하는 것으로 그 부분을 메우고자 했다. 그는 마지막 한 방울의 시간까지 희은에게 내주었다. +810 희은은 가족이라는 문제에 대해 경험한 답이 만족스럽지 ..
디터람스: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 [밑줄] +805 집을 방문하는 것은 또 하나의 유익한 경험이다. 미적,실용적 질서가 있는 모든 곳을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집을 돌아보는 것은 디자이너 디터 람스를 인터뷰하는 것과 같다. +806 브라운 제품은 사용하기 쉽고 오래가며, 품질이 좋고 미적 감각이 탁월했다. 또한 최첨단도 아니었고, 시장을 압박하려고 사용자에게 좀 더 최신식 제품으로 바꾸도록 유혹하지도 않았다. 실제로 어떤 제품은 1년 내내 동일한 형태를 유지했다. 마지막으로 브라운 제품은 몇몇 사람이 이야기한 것만큼 정말로 차갑거나 기능적이지 않았다. 정서적 관계는 아니겠지만, 브라운 장치를 구입한 많은 사용자가 그들의 제품에 감정적 애착을 가졌다. +807 내일의 세계는 오늘의 학생들이 디자인할 것이다. 그 시대의 ..
페터춤토르 분위기 ATMOSPHERES [밑줄] +786 분위기는 나의 스타일이다 J.M.W.터너가 존 러스킨에게 보낸 편지(1844) +787 우리가 말하는 건축의 질은 무엇인가? 건축의 질이란, 적어도 나에게는, 건축 가이드북이나 건축사에 누군가의 건축에 포함되거나 내 작품이 출판물에 수록되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있어 질 높은 건축은 나를 감동시키는 건물이다. 무엇이 나를 감동시키는가? 어떻게 그 감동을 작업에 적용하는가?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분위기다. +788 우리는 심리적 감성으로 분위기를 감지한다. 믿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작동하는 지각력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이다. 마음에 드는 것을 결정하거나 가던 방향을 돌리는 것이 좋겠다는 결정을 내리기에 항상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결정의 순간에 우리 내면의 무언가가 재빨리..
평소의 발견 [밑줄] +750 필요 이상으로 오랜 시간을, 능력 이상으로 많은 일들을 쳐내기 위해 책상에 앉아 있는 세상의 치약들. 우리에게 중요한 건 뭘까요? 저는 그것이, '평소의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751 짜냄의 시대에 굴하지 않고, 치약이 아닌 존엄한 인간으로 살아보려 합니다 +752 평범하지만, 시시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하루는. 우리의 인생은. +753 톨스토이는 소설 를 쓰고 나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가장 감동적인 글은 필자가 말하거나 설명하지 않고 당시의 상황을 보여줄 때 나온다 +754 내가 읽는 이의 감정을 짜내는 글을 쓰고 있지는 않은지, 더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해 시간을 들이기 전에, 부사와 형용사 뒤에 숨으려 하고 있진 않은지 돌아보게 되었거든요. 아이디어를 내면서 자꾸 뭔가를 더하..
센스의 재발견 [밑줄] +737 '일본에서 가장 잘 팔리는 옷'은 데이터를 뽑으면 어느 정도 수치화할 수 있지만, 그 옷을 입는다고 센스가 좋아지지 않는다. 디자이너 컬렉션이나 명품 옷을 입는다고 센스가 좋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 고 있을 것이다. +738 센스가 좋은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평범함'이라는 감각이 뜻밖에 중요하다. 아니 평범함이야말로 '센스가 좋다/나쁘다'를 측정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다. +739 평범함이란 '좋은 것'을 아는 것. 평범함이란 '나쁜 것'도 아는것. 양쪽을 모두 알아야 '가장 한가운데'를 알 수 있다. 센스가 좋아지고 싶다면 우선 평범함을 알아야 한다. +740 수치화할 수 없는 사실과 현상을 측정하는 방법을 많이 알면 알수록 센스가 좋아진다. 스스로 인식하는 '평범함'의 기준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