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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혹은 여행처럼 [밑줄]+2360여행을 일상의 탈출로 보는 의견에 반대한다. 그보단 차라리 매 순간 여행자의 태도로 살고 싶다. 왜냐하면 나는 여행지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삶 속에선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2361아도르노는 진정한 불의는 맹목적으로 자신을 정의로, 타자를 불의로 설정하는 장소에 있다고 말했지. 그 여름에 내가 너를  불의의 세력으로, 나를 정의의 세력으로 내 맘대로 결론 내린 것 미안해. +2362한때 BBC 방송국의 피디였던 조지 오웰은 에세이집 의 '시와 마이크' 편에서 이렇게 말했다. "방송에서 청취자는 어차피 어림짐작이지만 '단' 한 사람 같은 존재다. 수백만이 듣고 있을 수도 있지만, 각자 혼자 듣고 있거나 작은 그룹의 일원으로 듣고 있으며, 그 각자는 방송이 자기에게..
카페스토리 #21 코로나가 막 시작되던 때였다. 보건소에서 난생처음 남의 손에 콧구멍을 힘차게 찔리고, 그 이질감에 눈물을 찔끔 흘리곤, 터덜터덜 걸어가던 중이었다. 콧구멍과 목구멍 그 어디쯤 한 번도 손 닿지 않았던 순수한 내부의 속살이 자극받아서 일까? 어느덧 내 발길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옻칠공방, 2평 남짓한 동네 미용실, 증기다리미가 바쁘게 왔다 갔다 하는 세탁소를 지나자 소담한 성당이 나왔다. 성당의 담은 성인 남자의 가슴 높이였고, 까치발을 하지 않아도 성당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때마침 유아반의 아이들이 수녀님을 따라 어디론지 나들이 갈 모양인지 재잘거리며 줄을 서고 있었다. 성당 외벽 앞엔 커다란 성모 마리아의 조각이 두 팔을 내밀고 있었고, 아이들을 향해 두 팔을 내..
Thank for the music #20 한쪽 이어폰을 꽂은 채로 아들이 말한다. 이어폰이 고장 나서 한쪽만 들린다고. 이어폰이 귀걸이 마냥 늘 귀에 붙어 있는 녀석인지라, 사준지 1년도 안된 이어폰의 고장이 왠지 이해가 된다. 바쁘신 고2 아들을 대신해 서비스센터에 갔다. 재빨리 미리 검색해 보니 한쪽 이어폰이 고장이면 리퍼 제품으로 교환할 거라고. 근데 그게 가격이 상당하다. 불길한 예감에 서비스 센터 옆 매장에서 신품 이어폰의 가격을 살펴보았다. 고장 이어폰의 검사가 끝났고, 직원은 상냥하지만 피곤한 목소리로 말한다. 두 쪽 다 고장이라 비록 한쪽이 지금 들려도 곧 안될 거라고. 두 쪽 다 리퍼 제품으로 교환하는 비용과 신품을 사는 비용이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다. 작은 망설임을 떨쳐내고 난 신품을 사주기로 결심한다. 선임 중 한 ..
의기양양한 패배 #19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좋아한다. 좌우대칭의 반듯한 인물구도와 아름다운 색감, 회화처럼 하나하나 계산된 미장센과 인물들의 무심한 대사처리… 연극과 만화 그 사이 어디쯤 자리 잡은 느낌이 늘 내 시각과 마음을 간지럽혔다. 근데 그의 영화를 더 좋아하게 만든 계기가 있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의 뒷이야기를 알게 되면서부터다. 이 영화는 한 소녀가 어느 공원으로 책을 들고 찾아가는 모습에서 시작한다. 그 공원의 중앙에는 한 근엄한 남자의 흉상이 보인다. 흉상에 적힌 글은 ‘국가의 보물과 같은 작가’. 그리고 소녀의 책 제목이 보인다. 이다. 영화에서는 그냥 ‘작가’라고 언급됐던 그 남자의 이름을 나는 의 메이킹북을 통해 짐작하게 되었다. 영화 속에는 액자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작가로 나오지만..
축하는 함께 하면 배가 되는 거야. 축배로! / 카스 [뮨의 포트폴리오] CASSX축배 *2024년 1월 On-Air
모든 계절이 유서였다 [밑줄] +2306 어떤 밤, 꽃이 진 자리라던가 달빛이 모여있는 자리를 걸으면 다리가 순식간에 휘청거리곤 했습니다 +2307 가만히 흘러가는 하루 치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동공은 이 대용량의 끝없는 장면을 어떻게 저장하나 놀랍다. 심장은 이 영화를 어떻게 한평생 제멋대로 재생하나 놀랍고. +2308 산책은 살아있는 책이라 산책인가 밤공기 속에 누가 이토록 숨 쉬는 문장을 숨겼나 +2309 숲은 자연의 심장이라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아래로도 맥박이 뛰었다 +2310 전나무 꼭대기에서 보았지 오늘이 처음 착륙하는 자세를 +2311 이곳엔 막 도착한 딱새가 밤이 눈동자를 디디곤 다시 날아올랐다... 나는 그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2312 오래전부터 손톱 밑에는 아무도 모르는 당신이 박힌 까닭에 +23..
The Art of Getting by #18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때론 모든 의욕을 사라지게 한다 하루하루 죽음에 다가가고 있다고 느끼는 것 속에서 우린 어차피 죽을 삶의 의미란 건 도대체 무엇인가 질문한다 그리고 그 질문은 아주 오래된 인간의 근원적 질문이다 누군가는 그 질문의 답을 종교에서 찾고 영원불멸의 삶을 우린 사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거대한 혼돈이라고 생각하며 염세주의적인 철학을 설파하기도 한다 바로 그 지점의 출발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진지하게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인간은 그 답을 알 수 없게 된다 성장기의 인간이라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아직 말도 생각도 근육의 힘도 미성숙한 인간이라면 - 가령 9살이라던지 4살이라던지 하는 나이 – 삶의 의미 따위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스스로 육체를 컨트롤할 수 ..
스포티파이 #운명같은음악 [뮨의 포트폴리오] 스포티파이 X 잔나비 2023년 9월 25일 On-Air
별별명언 [밑줄] +2264 '온전', 이 단어가 성경에서는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요."(누가복음, 6장 22절)에서 '성하면'으로 번역되었다. 즉 눈의 '초점이 맞으면' 제대로 빛을 볼 것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자신에 대한 여러 겹의 이미지들을 갖고 있다. 그런데 초점을 잃으면 그 이미지들은 제각기 따로 보일 테고, 그 결과 우리는 그 여러 이미지들을 좇다 인생은 더욱더 복잡하게 꼬인다. +2265 야속한 상대방이 15분만 확보해 줬다면, 두 사람의 만남은 짧았을 지는 몰라도 분명 감격스러웠을 것이고, 또 그 여운은 남은 생을 버티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호라티우수(Quintus Horatius Flaccus, BC 65-8)의 명언 "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시간을 지키지 못한 우리의 후..
우리는 무엇을 하는 회사인가 [밑줄] +2218 여전히 인간에게는 정체가 분명하고 쉽게 변하지 않는 선호가 존재한다고 전제한다는 점에서 행동경제학 역시 기존의 전통적인 분석 도구와 큰 차이는 없다. 이들 역시 사람들이 뭘 생각하고 어떻게 느끼는지 사려 깊게 묻는 것으로, 인간행동을 이해하는 게 가능하다고 여긴다. 요컨대 우리의 의사결정이 '의식적인 수준', 적어도 그와 유사한 상태에서 이루어진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오판의 여지를 안고 있다. 즉 현대 비즈니스 문화의 정수 안에서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뇌, 그리고 거기서 벌어지는 생각 프로세스를 분석해야 한다는 '가설'이 뿌리내리고 있다. 바로 이러한 가설 때문에 오늘날의 비즈니스는 인간의 깊은 내면에 접근하고자 하는 시도에서 번번이 헛수고만 거듭하고..
씩 데이터 THICK data [밑줄] +2171 인류학은 공감과 선입견 없는 관찰, 총체적 접근을 통해 감춰진 이면을 포착함으로써 인류가 현재 어디로 가고 있고, 앞으로 무엇을 향해 갈지 통찰을 얻는 학문이다. +2172 문화 상대주의적 시각이란 나 자신이 아니라 상대방의 관점에서 문제를 다시 보는 것을 가리킨다. +2173 한국 시장의 특징은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한국 시장은 경쟁이 극심하다. 뒤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필립모리스의 비전은 '담배 연기 없는 미래 Smoke-Free Future'다. 이를 위해 10년간 13조 원을 쏟아부어 전자담배 아이코스를 개발했다. 그런데 아이코스가 한국 시장에 진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국내 리딩 경쟁사에서도 궐련형 전자담배를 출시했다. 그뿐 아니라 이후 평균 7개..
우리를 배반한 근대 [밑줄] +2041 역사의 진실은 희망과 환멸 사이, 아니면 기대와 두려움 사이 어디쯤엔가 있을 것이다 +2142 나는 근대를 '18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사이에 형성되어 그 이후 인류의 삶에 영향을 미친 가치(그리고 제도)가 지속된 시대'라는 뜻으로 쓰려한다 +2143 에리히 프롬은 고독과 무력감으로 불안해할 때 누군가 개인의 자유를 박탈하더라도 불안을 없애준다고 약속하면 자유에서 벗어나 그 관계 속으로 도피하거나 복종으로 도피하는 강력한 경향이 생겨난다고 보았다. +2144 근대의 사회체제는 개인을 발달시켰지만 개인을 더욱 무력하게 만들었고, 자유를 증대시켰지만 새로운 종류의 의존을 낳았다. +2145 독립된 자아는 도덕적, 공동체적 유대감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혼자만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