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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의 종말 [밑줄] +362 평균적 인간을 바탕으로 삼아 설계된 시스템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363 현재까지도 여전히 과학적 관리법은 모든 산업국가에서 가장 지배적인 기업 조직의 원칙으로 남아 있다. 물론 기업들은 다들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여러 분야에서 테일러주의가 인종차별주의나 남녀차별주의 못지않게 불명예스러운 내력을 얻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잘나가는 기업들의 상당수는 여전히 직원들의 개개인성을 등한시하는 개념을 중심으로 조직돼 있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하면 테일러주의를 넘어서는 다음의 심오한 의문이 들 만도 하다. 시스템을 따를 근로자들과 시스템을 규정할 관리자들의 구분에 기초한 사회라면 그 사회는 누가 사원이 되고 누가 관리자가 될지를 어떤 식으로 결정할..
무서록(無序錄) [밑줄] +359 나는 처음에 도급으로 맡기려 했다. 예산도 빠듯하지만 간역(看役)할 틈이 없다. 그런데 목수들은 도급이면 일할 재미가 없노라 하였다. 밑질까봐 염려, 품값 이상 남기랴는 궁리, 그래 일 재미가 나지 않고, 일 재미가 나지 않으면 일이 솜쌔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솔직한 말에 내가 감복하였고 내가 조선집을 지음은 조선건축의 순박, 중후한 맛을 탐냄에 있음이라. 그런 전통을 표현함에는 돈보다 일에 정을 두는 이런 구식 공인들의 손이 아니고는 불가능할 것임으로 오히려 다행이라 여겨 일급(日給)으로 정한 것이다 +360 그러나 울지는 않았다. 위에 기동차의 소녀처럼 울지는 않았다. 왜 울지 않았는가? 아니 왜 울지 못하였는가? 그 작품들에게 울만치 애착, 혹은 충실하지 못한 때문이라 ..
디자인의 꼼수 [밑줄] +354 아사히 빌딩 사옥의 마지막 프리젠테이션 때, 필립스탁이 작은 서류 가방에서 빌딩의 모형을 꺼내 모두에게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것도 마술사가 실크모자에서 토끼를 꺼내는 것과 같은 분위기로 말이다 +355 '역시 자동차는 불량스러워야 해' 제 35회 동경모터쇼를 보러갔을 때 들었던 생각이다. 지난번 모터쇼는 일본자동차회사가 환경을 중시한 진지한 차들만 출품한 관계로 다소 지루했다. 그때 나는 "에코자동차 같은 걸로 어떻게 여자애들에게 관심을 끌 수 있단 말인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예의바른 자동차로는 여자들의 환심을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성적인 매력'과 '엄격하고 쿨한' 형태야말로 불량스러운 자동차의 매력인 것 같다. +356 향기를 직접 맡아볼 수 없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이나..
고도를 기다리며 [밑줄] +352 포조 - 이제 울음을 그쳤군. (에스트라공에게) 그러니까 당신이 저놈을 대신하게 된 거구려. (생각에 잠긴듯) 이 세상의 눈물의 양엔 변함이 없지. 어디선가 누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면 한쪽에선 눈물을 거두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요. 웃음도 마찬가지요. (웃는다) 그러니 우리 시대가 나쁘다고는 말하지 맙시다. 우리 시대라고 해서 옛날보다 더 불행할 것도 없으니까 말이요. (침묵) 그렇다고 좋다고 말할 것도 없지. (침묵) 그런 얘긴 아예 할 것도 없어요. (침묵) 인구가 는 건 사실이지만. ----------------------------------------------------------------------------------------------------------------..
행복한 책읽기 [밑줄] +305 통찰을 통해 과감히 잔가지를 치며 핵심에서 핵심으로 건너뛰는 글 걸음 - 이인성 +306 산은 깊이 들어갈수록 낮아진다 - 신대철 +307 자리매김이라는 말이 나는 싫다... 변화를 전제하지 않은 자리매김이란 딱지 붙이기에 다름아니다. +308 언어는 원칙적으로 나와 타자간의 대화에 지나지 않는다. 질문과 대답은 사유의 제일 요소이다. +309 대가의 화면은, 대개, 정공법이다. - 데이비드 린의 을 보고. +310 정치적 언어의 특징은 그 뻔뻔함에 있다. +311 잠이 들면 꿈속에서나마 그대의 모습을 볼 터인데, 잠도 오지 않는다는 비통한 탄식은 뛰어난 호소력을 갖고 있다. "꿈길밖에 길이 없어..."라는 황진이의 시나, 한용운의 이별 노래에 맞설만 하다. - 를 읽고. +312 미국..
바람을 담는 집 [밑줄] +284 "나는 정의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 정의가 나의 어머니에게 총부리를 겨눈다면 나는 어머니의 편을 들겠다!" 여기에 카뮈의 인간적인 교훈이 있다. +285 "그러나 우리가 이대로 패배하기엔 너무나 많은 내일이 남아있다. 천치와 같은 침묵을 깨치고 퇴색한 옥의를 벗어던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유혹이 있다. 그것은 이 황야 위에 불을 지르고 기름지게 밭과 밭을 갈아야 하는 야생의 작업이다. 한 손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막고, 또 한 손으로 모래의 사태를 멎게 하는 눈물의 투쟁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화전민이다. 우리들의 어린 곡물의 싹을 위하여 잡초와 불순물을 제거하는 그러한 불의 작업으로서 출발하는 화전민이다. 새세대 문학인이 항거해야 할 정신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항거는 불의 작업이며 불의..
히말라야 도서관 [밑줄] +276 네팔에서는 기도문을 깃발에 써서 집밖에 매달면 그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바람이 깃발을 스칠 때 기도문들이 하늘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277 아버지는 아버지다운 대답을 주셨다. "그건 단지 너의 우선순위가 바뀌었다는 걸 의미한단다. 너는 언제나 독립적이지. 그러니까 지금은 누군가를 위해 일을 하기보다는 너 자신을 위해 일할 시간인게다." 시드니에 사는 친구 마이크는 내가 원했던 최고의 충고를 했다. "일회용 반창고를 제거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지. 천천히 고통스럽게. 또는 빠르고 고통스럽게. 너의 선택이야." +278 스티브 볼머가 그랬듯 나도 우리 룸투리드(Room To Read) 직원들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하고 싶다. 많은 중역들이 자신의 직원들에게 충성을 ..
사소한 부탁 [밑줄] +259 호남 지방에 내려가 웬만한 식당에 들어가면 스무 가지 서른 가지 반찬이 그득하게 차려진 밥상을 받을 수 있다. 감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호남 사람들이, 비록 부잣집에서라고 하더라도, 일상적으로 그런 밥상을 차려놓고 먹었던 것은 아니다. 내 아버지 세대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런 차림은 일제 강점기에 목포나 군산 등지 미두장에 투기꾼들이 모여들면서 생겨난 여관의 밥상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 잔칫집 같은 데서 "이게 여관집 밥상인가"하며 불평하는 어른들을 본 적이 있다. 차린 것은 많은데 먹을 것은 없다는 뜻이다. +260 그래서 저 밥상을 생각하게 된다. 문화를 과시하고 소비하려는 기획은 많지만, 문화의 창조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생산적 이용의 전망을 발견하기는 어려운 ..
밤이 선생이다 [밑줄] +241 불의를 불의라고 말하는 것이 금지된 시대에 사람들은 분노를 내장에 쌓아두고 살았다. +242 어머니가 전자오락에 빠져 있는 아들을 앞에 앉히고 타이른다. 오락의 폐해를 조목조목 늘어놓고 나서 아이를 설득하는 말이 그럴듯하다. "공부보다 더 재미있는 오락은 없다. 너는 갈수록 규칙이 복잡하고 쉽게 끝나지 않는 오락을 찾는데, 공부가 그렇지 않냐? 갈수록 수준이 높아지고 평생을 해도 끝나지 않고." 다소곳이 듣던 아이가 대답한다. "저도 그건 알아요. 그러나 다른 점도 있어요. 오락은 이기건 지건 판이 끝나면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공부는 그럴 수 없으니 아득해요." 대단한 말이다. 아이는 오락과 공부의 차이를 따지면서, 현실의 삶과 가상세계가 어떻게 다르고, 도박과 노동이 어디서 갈리는..
마술라디오 [밑줄] +231 물건이란 것이 요상해서 살 때는 내게 꼭 정말로 필요한 것 같단 말이야. 그것만 있으면 좀 더 완벽해질 것 같은 기분 있잖아. 쇼핑이 고민 해결사, 외로움의 치유사, 계절의 전령사, 권태로운 날의 활력소, 심심한 날의 친구였지. 각종 냄비, 각종 칼, 각종 프라이팬, 그릴, 약탕기, 요구르트 제조기, 두부 제조기, 나중엔 내가 평생 단 한 번도 쓸 일이 없는 야외 바비큐 조리 기구 세트를 샀어. 나는 야외를 싫어하거든, 나는 실내형 인간이야. 그 바비큐 조리 기구 세트 박스를 거실 한가운데 펼쳐놓고 생각했어. 내가 왜 쇼핑 중독증에 걸렸을까? 사실은 나는 누군가 우리 집 벨을 누르길 바랐던 거야. 누가 우리 집 현관과 거실에 들어오길 바랐던 거야. +232 파라솔 밑에서 나는 생각했어...
설계자들 [밑줄] +226 요즘엔 사람들이 모두 쥐새끼처럼 작아지고 약아져서 느리고 거대하며 아름다운 발자국들은 다 사라졌다는 게야. 거인이 사라진 세상이 된 것이지. +227 좋은 정원이다. 마당에 감나무 두 그루가 딴청 피우듯 서있고 구석의 화단에는 자신의 계절을 조용히 기다리는 꽃이 있다. +228 식물의 뿌리처럼, 세상의 모든 비극은 자신이 발 디딘 바로 그곳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래생은 자신이 뿌리내린 바닥을 떠나기에는 너무나 어렸다. +229 우리는 더럽고 역겹지만 자신이 발 디딘 땅을 결국 떠나지 못한다. 돈도 없고 먹고 살 길도 없는 것이 그 원인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우리가 이 역겨운 땅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그 역겨움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역겨움을 견디는 것이 더 황량한 세계에 홀로..
이현우의 음악앨범 +201 6살 딸 아이의 유치원 운동회 아이를 업은 남편이 운동장을 돈다 비가 와도 뛰지 않던 남편이 죽을 힘을 다해 달린다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되는데 지구 한바퀴라도 돌 기세다 여자는 남편이 낯설다 13년간 알아온 그 남자가 맞나 싶다 남편은 어릴 적에 부모님을 여의고 외롭게 자랐다 아빠가 되는 일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부터 아이는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한 아빠로 남편을 기억할 것이다 자리로 돌아오는 남편을 여자가 두 팔 벌려 맞이한다 남편의 땀냄새에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202 아파트에 장이 열리는 날엔 자전거를 파는 아저씨도 바쁘다 무료로 수리를 하러 오는 손님들이 많아서다 아파트 경비아저씨도 기다리셨다는 듯 낡은 자전거 한대를 끌고 나오셨다 자전거가 쓰러지자 아저씨가 껄껄껄 웃..